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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햇살이 나른하다.

 

 

그렇다고 눈이 녹을 정도의 따스함은 아니었다. 빙판길 낙상 사고를 조심하라는 안내 문자가 더블로 쌓였다. 화면이 번쩍이는 와중에도 정환은 하늘을 보고 있었다. 티 없이 푸른 상공엔 이름 모를 하얀 새가 날아다녔다. 신청한 연차가 막 반려됐다는 답이 온 참이었다. 정환이 작게 중얼거린다. 아홉수라는 게 진짜 있긴 한가 보다. 멋대로 푸념이 튀어나왔다. 정환의 옆에서 설산의 경치를 구경하던 지훈은 조용히 먹금한다. 물고 있던 팁을 놓아버리곤 연기를 내뱉었다. 예상 못 했어요? 위에서 이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정환이 먼저 권유했다. 읽어 볼래? 싫어요. 아니야, 사양할게. 얼굴에 닿기 직전까지 들이민 화면을 이리저리 눈여겨 보던 지훈이 작게 혀를 찼다. 사유를 개인 여가로 쓰니까 안 받아주죠. 어디 하나를 망가뜨려도 승인될까 말까인데. 정환은 핸드폰을 낚아챈다. 그게 정확히 경력 단절로 가는 지름길이란다. 선배가 그러니까 안 되는 거예요. 네가 미쳤구나. 제정신이면 여기 있겠어요? 아니니까 이러고 있죠. 어제 인사고과 공지 뜬 거 못 봤지. 예. 죄송하다고 해봐. 죄송하다고. 지훈아. 예.

 

 

- 정환 씨.

- 네?

- 제보자 왔어.

 

 

그런데, 3팀은 여전하다. 허물 없는 모습이 보기 좋네. 청초한 목소리가 직구를 날린다. 이거 돌려 까는 건가. 정환이 머리를 싸맸다. 대신 오토 사냥 돌린다. 지훈이 나섰다. 지안 씨는 어엄청 한가하신가 봐요. 사족도 덧붙이고. 물론 큰 타격은 없었다. 제보자 얘기나 더 하지? 하려고 했는데 마침 누가 시비를 걸어서. 발도 걸어드려요? 순간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인영에 셋이 휘청거렸다. 지금 조사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걸요. 저보다 어려 보이던데. 팀 막내 경재가 종알거리며 서류철을 건넨다. 가볍게 뜬 머리카락엔 갓 스물 딱지 뗀 티가 났다. 해맑은 목소리로 한 대 먹인다. 연초? 취향 올드하시네요. 니가 뭘 알아. 어떻게 구하셨어요?

 

 

- 닥쳐. 제보자 이름은?

- 정형준이요.

- 목격한 개체는?

 

 

모르겠어요. 말을 안 해서. 정환이 황당하다는 듯 묻는다. 방문 사유는 들었지? 제발 그거라도 알고 있으라는 뜻이었다. 답지 않게 뜸을 들인다. 뭔데. 정환이 경재의 어깨를 툭 쳤다. 곧바로 머쓱한 답이 돌아왔다. 친구를 찾고 싶대요. 정환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한다. 아랫동네에 경찰서 있잖아.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잔불은 발로 비벼 껐다. 불씨가 완전히 죽은 걸 확인하고 나서야 눈길을 돌린다.

 

 

- 진상일까요.

 

 

약간의 우려가 담겨 있었다. 그 정도면 정짜야. 순한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일주일 전 대낮부터 센터 정문 앞에 드러누워 자신은 외계인과 결혼해야 한다며 난동을 부리던 남자를 떠올린 게 틀림없었다. 선생님, 여기는 결정사가 아니라서요. 신붓감이나 신랑감을 찾으시는 거면 지구에서 해결하세요. 행성 간 결혼은 대부분 끝이 안 좋더라구요. 노파심에 덧붙인 한마디가 선례로 인식되어 남자에게 가능성과 희망을 심어줬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런 사족 따윈 목에 칼이 들어와도 삼켰으리라. 수영 국대 출신이라고 했다. 제압하려다 봉변 당한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지훈의 다급한 호출로 인해 강제 참전했던 정환도 그중 하나였다. 아직도 맞은 곳이 욱신거렸다. 시퍼렇게 부어오르던 옆구리가 선명하다. 정환이 바득 이를 갈았다. 그래, 나 킥판 꼴 낸 새끼. 잠시 불편한 침묵이 맴돈다. 근데 저희 늦겠네요. 경재가 정환을 잡아 이끌었다. 지훈은 지안과 함께 손 흔든다. 입 모양이 깔끔해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수, 고.

 

 

새까만 벽처럼 보이던 문은 카드키를 가져다 대자 매끄럽게 열렸다. 경재의 입은 복도를 거닐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 들어온 신입들이 빨터로 쓰는 공터와 연결된 뒷문을 개구멍이라 부른다고.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분기마다 들리는 본사 직원들도 뒷문으로 다녔으니까. 센터의 현장 수집팀을 칭하는 은어가 사냥개였다. 말이 좋아 수집이지 추적과 포획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니까, 정환 본인이 그쪽에서 좌천된 케이스라 꿰고 있었다.

 

 

- 특이 사항은?

-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했어요.

- 근처에 상담소 같은 건 없다니.

 

 

산골 맨 끝자락으로 발령 난 지가 삼 년이다. 정환은 모르는데 경재가 아는 것이 있을 리 없었다.

 

 

- 찾아볼까요?

- 됐어. 농담인데 뭘.

 

 

얽히던 발소리는 두 개로 줄었다. 몇 호야? 206호요. 골방에 처박아뒀구만. 그건 너무 곡해죠. 그래서 물어보고 싶다는 건? 어른이 뭐냬요. 되게 철학적인 질문이네. 꼴값 떤다는 말을 길게도. 눈치가 늘긴 하는구나. 가볍게 몇 마디 주고받다 보니 금세 조사실 복도였다. 문을 열기 꺼리는 경재와 다르게 정환은 노크도 없이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 정형,

- 늦어서 죄송합니다. 조사는 정환 씨가 담당하실 거예요.

 

 

늦부터 요까지 정확히 사 초. 군더더기 없는 안내. 그렇게 간단한 목례만 남긴 채 도망치듯 자리를 뜬다. 얼빠진 정환은 덤으로 두고. 저 새끼 달렸어. 분명 달렸어. 졸지에 혼자 남은 정환의 시선이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쟤 지금 나한테 진상 넘기고 튄 거 맞지. 정짜라고 올려 쳐준 게 언제라고 냅다 진상이라 칭한다. 알 수 없는 표정의 남자는 맞은편에 앉아 가만히 정환을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당신도 나를 버리고 떠날 건가요, 라고 묻는 얼굴로.

 

 

아무렴 일터다. 아무렴 직장이고. 정환은 억지로 웃어 보이고는 책상 중앙에 달린 녹음 버튼을 누른다. 이내 빨간 불이 들어왔다.

 

 

- 시작하겠습니다. 친구를 찾고 싶다고 하셨죠?

- 네.

- 센터는 어떻게 접하셨나요?

- 제보를 권고하는 포스터를 봤어요.

- 친구분과 연관 짓게 된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 조건을 읽었는데, 완벽하게 비일상 축에 해당하길래.

 

 

그렇다면 찾으신다는 친구분이 개체인가 보네요. 특징을 좀 알려주시겠어요? 그냥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되는데. 작은 일화라도 좋고요. 그, 뭐라고 하더라? 썰 풀듯이. 어떻게 만났다, 그런 거. 요즘에는 개체들도 사회에 잘 섞여서 살거든요. 기관에서도 인명 피해 안 내는 것들은 방생하는 추세고. 이제는 호기심에 가깝죠. 미지와의 조우. 어쨌거나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네.

 

 

꾹 다물고 있던 입이 열린다. 정환이 안도했다.

 

 

-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였고,

- 예.

- 날이 엄청 더웠어요.

- 예.

- 근데 구름은 또 없어서.

- 아, 예.........

 

 

문득 말을 멈춘다. 고개를 몇 번 갸웃거리더니 진지하게 물었다. 제가 생각을 다시 해봤는데요. 예. 친구가 아니면 어떡해요? 정환이 무언갈 받아적던 펜을 내려두고 종이를 넘긴다. 예? 그러면요, 그럼 유감인 거죠. 정환은 배터리가 반쯤 닳은 핸드폰을 집어 들고선 눈앞의 남자가 진상인지 정짜인지 이대로 조사를 계속 진행할지 다 때려치우고 경재에게 삐삐를 칠지 결정할 대답을 기다렸다.

 

 

- 친구 아닐 수도 있어요.

 

 

진상 확정. 삐삐 확정.

 

 

- 잘 모르겠어요. 친구인지 아닌지도, 그냥.

 

 

더 볼 것도 없다. 중증 환자다. 정환은 빠르게 손을 내려 책상 밑으로 타자친다. 경재의 핸드폰이 미친 듯이 울렸다.

 

 

[야]

[당장바꿔]

[캥거루]

[캥거루3호 시발롬아]

[저 방금 호출 새로 들어왔어요]

[나보고정신과상담을하라고?]

[화이팅!]

 

 

 

 

 

 

랑데뷰

rendez-vous







 

 

 

 

1.

 

 

 

 

살다 보면 가끔 낙뢰 같은 순간들이 있다. 낮은 확률로 내리꽂혀 단숨에 삶을 앗아가 버리는 찰나가. 운 좋아 살았다 해도 혈관이 터져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흉터처럼. 기억 한 켠에 박혀 빠지지 않는 못 같은 거다, 그건. 개인적인 소감으론 정말 뭣 같았다. 이 악물고 뽑아내도 사고다. 아물긴 커녕 패인 흔적만 남는다. 참고로 위 문장은 이성 간의 사랑 따위에 한정된 말이 아니다. 결코 그럴 수 없다. 두 대상을 단순하고 무지한 시선으로 담아내지 말자. 어쩌면 이 또한 무례하고 끔찍한 단정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우정은 싸구려 사랑보다 더 오래간다.

 

 

 

 

2.

 

 

 

 

- 서울서 왔네?

- 끝자락이면 거의 경기도죠.

- 김 선생, 이것 봐. 대단한 놈이 왔어. 깍쟁이가 왔다구.

- 자사고까진 아니었구나. 6모는 잘 쳤니?

- 전학생 온 게 얼마 만이야.

 

 

사람의 첫인상은 대략 3초 내외로 정해진다고 한다. 정형준은 오 분 전 자기소개를 끝마치고 자리에 앉았다가 방송실 스피커에 이름 불려 교무실로 온 거니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폐급 전학생으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3학년, 그것도 방학 지난 2학기에 오는 전학이란 그런 거였다. 당황스럽게 보는 눈빛은 제가 더 마주하기 힘들었다. 얼핏 쟤 저거 강전 아니냐는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강전은 뭔 강전이야, 생각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본인 의지 없이 강제로 온 전학은 맞았다. 촌뜨기들 논리가 저보다 명확하다. 인마 너는 꼭 논술로 가라. 값싼 덕담도 얹어줬다.

 

 

무적 고등학교. 

 

 

전라남도 모 리에 속한 재적골. 이름 한번 제대로 후졌다. 대한민국 팔도강산 중 이왕 남단이면 부산 바로 옆일 것이지 어중간하게 기울어진 마을. 그 옆 바다엔 무적도라 불리는 섬이 하나 있다. 있다고 했다. 마을 이장이었나 누가 핏대를 세워가며 마을 자랑을 했는데. 어, 우리 마을은, 아주 유서가 깊고, 척박한 황무지를 주민들이 개척해 낸 거고, 도시랑 교류도 활발하고, 옆 광역시도 엄청 훌륭하지만 우리 마을도 꽤, 아무튼. 듣다가 까먹은 걸 보니 그리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돌림노래 수준의 내용보단 튀겨대는 분비물이 더 거슬렸다. 어딘가 원장과 닮은 남자. 그렇게 잘난 마을이면 고등학교 이름부터 갈았어야지.

 

 

명문에 걸맞은 인재가 되자. 천하무적 무적인.

 

 

뇌를 거치지 않고 정한 듯한 교훈. 다 까진 페인트칠. 대가리 큰 밀레니엄들. 바야흐로 청춘의 시대였다. 그런 진부한 단어로 담기에도 아까운, 그러나 더없이 적합한. 덧없이 완벽한. 끝없이 미화되는 기억에 반강제로 후한 점수를 쳐주게 되는 날들.

 

 

적어도 아직은 내 세상의 중심이 나로 돌아가고 있을 때.

 

 

 

 

3.

 

 

 

 

여기가 무적도입니더. 어눌한 사투리가 귀에 박혔다. 매일 배를 타고 다녀야 하나요? 질문에 선장이 뭐 당연한 걸 묻느냔 얼굴로 답했다. 이미 그렇게 등교하는 애들도 있는데예. 잘만 타고 다니구. 거리도 가깝구. 그렇다면 따르는 게 맞았다. 일찍 일어나야겠단 생각과 함께 알람을 여섯 개쯤 맞춘 뒤 지도를 켰지만 데이터도 잘 안 터졌다. 섬에는 와이파이 없어요? 아이바이가 뭐여. 아니에요.

 

 

선장은 다시 배를 몰아 뭍으로 떠난다.

 

 

정형준은 끌던 캐리어를 멈추고선 아담한 섬을 둘러봤다. 그리곤 원장 개새끼를 세 번 복창했다. 럭키는 개뿔, 이건 형벌에 가까웠다. 물비린내로 가득 찬 섬은 존나 가혹했다. 뭐 정을 붙일래야 붙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저 멀리 나무에 매달려 휘날리는 오색천에 소름이 끼친다. 아무리 그런 쪽에 무지한 빡추라도 알 수 있었다. 서낭당. 당산나무.

 

 

신을 모시는 곳.

 

 

마을에 무당이라도 있나 보다.

 

 

 

 

4.

 

 

 

 

전학을 통보받은 건 여름의 일이었다. 따지자면 초여름. 슬슬 해가 늘어질 즈음에. 정형준은 수긍했다. 세상사 으레 그렇듯 열아홉 뜻대로 되는 건 하나 없으니. 이런 쪽은 받아들이고 자시고의 문제도 아니고. 네가 싫으면 어쩔 건데. 다른 건 몰라도 그 논리는 맞서기 힘들었다. 애는 어른한테 진다. 지게 되어있다. 그냥, 이길 수가 없다. 웃통 까고 링 위로 올라가지 않는 이상 당연한 순리였다.

 

 

옷값. 밥값. 집세. 이사 비용. 하다못해 제 버스비도 원장 지갑에서 새는 거다. 빳빳한 고개 꺾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형준은 딱 기본만 했다. 알량한 자존심은 묻어둔 채.

 

 

거기에도 너 같은 애들 후원해 주는 재단이 있다더라. 너 좋은 기회 잡은 거라고. 럭키. 럭키럭키. 등짝 팍팍 치면서 지껄이는 탓에 점심을 그대로 게워 낼 뻔한다. 저 방금, 밥, 먹었는데. 뚝뚝 끊으며 뱉어내는 말엔 더 이상 건드리지 말란 의미가 담겨 있었지만 원장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어깨를 두드려댔다. 후져빠진 유전자에 눈치라곤 쥐뿔도 없는지.

 

 

- 표정 굳었네. 쫄았냐?

- 어차피 성인까지 반년도 안 남았는데요.

 

 

차라리 내보내 줬으면 좋겠어요. 무슨, 도매상도 아니면서. 이리저리 필요에 따라 넘겼다가 받아오지 말고. 무감하게 중얼거린 몇 마디에 볼품없는 낯짝이 일그러진다. 우리 다 사람이잖아요. 눈 접어 웃어놓곤 선 긋듯이 몇 발짝 물러난다. 여기에 원장님은 죽어도 못 껴요. 앳된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두꺼운 볼드체로.

 

 

- 너,

- 그 돈은 다 어디 갖다 썼어요?

 

 

그러니까, 어차피 성인까진 반년도 안 남았고, 이 빌어먹을 시설은 며칠 내로 떠날 거니까. 정형준은 야무지게 백팩 고쳐 맨다. 볼 사탕 몇 번 굴리다가 주특기인 입 놀렸다. 뭐? 후원금이요. 나라에서 주는 거 말고. 기업에서도 따로 받잖아요. 고로 이건 전부 저쪽 탓이다. 제가 그만하라고 할 때 물러났어야 했다. 감추던 속내 조금 뱉었다고 그새 얼굴이 폈다. 원장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 씹, 형준이 너.........

- 되게 나쁘다. 그냥 고아인데. 그래봤자 부모 좀 없는 건데.

 

 

고작 그거 가지고 못살게 굴고. 지 기분 내키는 대로 막, 팼다가, 달랬다가. 봐요. 지금도 손 올리지.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습관적으로 치켜든 손바닥이 멈칫한다. 정형준은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어깨 털었다. 뭐 하나 예상을 빗나가질 않아. 사람 앞에 두고 다 들리게 헐뜯는다.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누구 말대로 못 배워서 그렇다. 적당히를 몰랐다. 그것도 배운 적 없으니까.

 

 

그러니 이것 또한 순리다.

 

 

- 야, 정형준.

- 예?

- 아까 돈 얘기 한 거. 그거 뭐야.

 

 

나도 네 약점 쥐었으니 이걸로 적당히 끝내자는 뜻인데 분간 못 하고 다른 포인트에 꽂혀서 난리다. 금방이라도 펑 터질 것 같은 이목구비가 버거웠다. 강한 개성의 주둥이가 여닫힐 때마다 사방으로 침이 튄다. 어설프게 주워듣고 와서, 분수도 모르고, 쥐새끼 같은 놈. 가로세로. 배은망덕한 자식. 동서남북. 골고루 잘 익힌 토마토다. 역겨운 장관이었다. 정형준은 착실하게 답한다. 모르는 게 더 웃기죠. 뭐?

 

 

- 원장님 손목.........

 

 

이야, 혼자만 삐까뻔쩍. 까만색 수능 시계 찬 손목 이리저리 돌려가며 비웃는다. 저는 저기, 무지개 문방구. 만 천 원짜리. 원장은 어지간히도 약이 올랐는지 시뻘건 얼굴로 부들부들 떨었다. 입버릇처럼 떠벌대던 대학 네임. 그 잘난 인서울 대졸 출신이 중졸한테 한 방 먹은 거다. 정형준은 삐뚤빼뚤한 금니들 보면서 한계선 가늠했다. 의외로 잘 참아주고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 헛소리 말고,

- 옷만 후레하게 입으면 될 줄 알았어요?

 

 

이젠 가여운 수준이다. 분명 저 인간이 무서웠던 때가 있었는데. 그 머리로 명패는 어떻게 달았지. 정형준은 입 안 다물고 걸리는 곳 족족 쑤셔댔다. 가기 전에 감사라도 불러 볼까요. 그래야 속이 시원하시겠어요? 링 따윈 필요 없었다. 순수 말로 찍어 눌렀다.

 

 

원장은 그제야 설설 긴다. 야, 형준아, 너 곧 갈 거잖아. 그냥 조용히 가. 떠나는 마당에 한바탕 들쑤셔서 좋을 게 뭐가 있니. 잽싸게 꼬리 말고 도망치는 꼴이 우습다. 원장님 말대로 떠나는 애 달랠 정신으로 예진이랑 민우 맛있는 거나 사주세요. 요즘 많이 나오던데. 크로플? 그런 거 있잖아요. 이젠 아무렇게나 지껄였다. 네, 저는 저 같은 애들 후원해 주는 곳 가서 잘살아 볼게요. 지원금도 잘 안 나온다고 보육원에서도 빨리 손 털고 싶어 하는 애들. 돈을 주면 줬지 뺏긴 어려워서 어디 보내려고 안달 난 그런 애들이요.

 

 

어린 열아홉은 무력하다. 이런 열아홉은 그저 고난이다. 정형준은 그냥 튜토리얼 싹 스킵하고 어른이 되고 싶었다. 뭐 대단한 게 아니라, 적어도 제 몸 하나는 건사할 수 있는 스물. 그렇게 별거 아닌 것처럼 보였던 스물도 마냥 쉽진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건 먼 훗날의 일이 되시겠다.

 

 

아주 아주 먼 훗날에.

 

 

 

 

5.

 

 

 

 

- 형.

- 어?

- 저 박영환이요.

 

 

탁한 모래 날리는 운동장에서 피크닉 빨다가 마주친 건 다름 아닌 1학년 후배다. 명찰 색이 밝았다. 박영환이 누군데? 저요. 네가 누군데. 박영환이요. 그러니까, 나는 네가 누구냐고 물었어. 제가 박영환이라고요. 가라. 아이큐 두 자릿수 이하랑 대화 못 한다.

 

 

- 전학 왔댔죠. 항구에서 배 타고 다니고.

- 어떻게 알아?

- 저도 섬에서 사니까요.

 

 

배 타고 등교하는 거 전교에서 둘밖에 없었어요. 이제 선배까지 더하면 셋이고요. 정형준이 대답한다. 그렇구나. 

 

 

- 그래서?

- 회장 선배도 섬에 살거든요.

- 같이 다니자는 말이면 거절할게.

- 셋이서 같이 다녀요.

 

 

꿈자리가 사납더라니.

 

 

- 그, 꼭 세 명이어야 할까?

- 저는 그게 좋아요. 하나가 없어도 둘이 남잖아요.

 

 

일리 있는 말이었다. 이건 보너스. 아니다, 뇌물. 원 플러스 원. 박영환이 피크닉 한 개를 더 건네며 덧붙인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도형도 삼각형이래요. 정형준은 잠시 박영환과 자신 사이에 낀 황수현을 생각했다. 어떤 모습을 그려봐도 셋 다 일직선에 놓일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나를 두고 나머지가 겹칠 일도.

 

 

- 황수현이랑 친해?

- 몰라요.

- 네가 왜 몰라.

- 제가 열 마디 하면 딱 두 마디 해주거든요.

 

 

박영환이 고개를 저었다. 원래 자기 얘기를 잘 안 해요, 그 형은. 말하는 투엔 옅은 호기심이 묻어있다. 다만 선을 넘어갈 의지까진 없는. 아마 그렇게 관계를 유지했겠지. 이 당돌한 후배는 백 마디 천 마디를 해가며 답을 얻어냈을 거다. 정형준은 괜히 유치하게 굴었다. 내가 이겼어. 나 두 마디 하면 걔가 다섯 마디 해. 와 대박.

 

 

- 그래도 살가운 애가 제일 기억에 남는 법이에요.

- 퍽이나.

 

 

어차피 반년 남은 일상이라면, 이런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6.

 

 

 

 

그냥 걔 이름 석 자면 됐다. 철저하게 갠플 위주인 학교에서 어떻게 발을 넓혔는지, 황수현 세 글자만 대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다. 사실 두 글자로도 충분하긴 했다. 수현이가 부탁했는데. 수현이가 그러자고 해서. 고작 담배 몇 갑 구하는 것부터 주먹과 감정이 오고 간 사안까지 전부. 정형준은 그게 참 신기했다. 어디 가서 사회성으로는 밀려본 적 없는 자신이라 더욱 그랬다.

 

 

- 너 교장 손주 같은 거야?

- 아니.

- 그럼 이사장 아들?

- 그건 윤재.

 

 

나는 그냥, 전교 회장. 황수현이 작게 웃었다. 기이하게도 고요한 운동장. 힐끗 보면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원하던 건 얻었어? 솔직히 꽁 담배 좋잖아. 정형준이 담담히 부정했다. 나 안 피워. 그래봤자 담배 아니면 약이지. 너 같은 애가 한 둘이니. 그렇게 말하는 얼굴에는 언뜻 지겨움이 비쳤다. 동시에 정형준은 오기를 느꼈다. 단순한 일반화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다. 생각 없이 겉만 핥아대는 멍청이들과 덩어리로 묶이는 건 수치였다. 이런 게 수치였다. 제가 어찌 손쓸 수 없는 보육원 타이틀 따위가 아니라.

 

 

- 아무튼 그거 때문에 친해지려 한 거 아니었어?

- 그걸 알면서도 받아 줘?

- 쫓아낼 이유도 없지.

 

 

너 되게 별난 것 같아. 그런 말 자주 들어. 근데 나 진짜 담배 안 피워. 알아. 뭐야? 역한 냄새 안 나거든. 약도 안 해. 그것도 알아. 어떻게? 대화가 통하잖아. 황수현이 몸을 틀었다. 정확히 시선을 맞춘다. 이유 모를 오싹함이 등줄기를 타고 내린다. 나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사실 네가 찾는 게 없다는 것도 알아. 너는 그냥 빨리 졸업하고 싶잖아. 이런 걸 어디서 얻을 수 있겠어. 아직 학생인 주제에 교장을 닦달할 수도 없고. 닦달해서 나올 것도 아니고.

 

 

정형준은 잠시 상상했다. 졸업장을 내놓으라며 교장의 어깨를 쥐고 짤짤 흔들어대는 저와 황수현을. 절로 웃음이 샜다. 이런 건 반칙이지. 그런데 쟤는 같이 안 해줄 것 같았다. 사실을 고증하고 나니 혼자 정신 나간 하극상을 벌이는 자신과 그를 뒤에서 지켜보는 황수현이 그려졌다. 그래. 이쪽이 더 가능성 있었다. 그렇지만 역시나 되도 않는 일이다.

 

 

뭐든 그 정도 분간은 했다.

 

 

 

 

7.

 

 

 

 

알고 보니 박영환은 다른 쪽으로 유명한 애였다.

 

 

귀신 보는 유급생. 나이는 열여덟인데 야무지게 1학년 명찰 차고 1학년 교실에서 1학년 수업 듣는 애. 남들은 못 보는 게 보인다고 했다. 정확히는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 멋대로 봐선 안 되는 것들이. 정형준은 그거 듣자마자 등부터 잡아 떠밀었다. 잘 됐다, 황수현 좀 제대로 보고 와. 박영환이 당신 미쳤냐고 악쓰는 거 들은 척도 안 하고 틈 사이로 구겨 넣는다. 미술실 문이 요란하게 여닫혔다.

 

 

- 아, 사람이라니까.

- 아냐. 쟤 이상해.

- 형준이가 오늘 뭘 잘못 먹었나 보네.

 

 

박영환이 부서질 듯 열린 문에서 튀어나오며 격하게 부정했다. 완전 멀쩡해요. 애초에 그런, 그런 거였으면 학교 애들은 어떻게 알겠어요. 섬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제일 챙기는 게 저 형인데. 지금 내가 죽은 사람 감싸주게 생겼어요? 몇 번을 말해. 황수현은 무고한 표정으로 고개만 갸웃거린다. 형준아 왜 그래. 박영환도 말을 얹었다. 형 진짜 왜 그래요.

 

 

정형준만 미친 사람이 됐다.

 

 

 

 

8.

 

 

 

 

학교와 섬에 적응한 지 어느덧 몇 주다. 정형준은 괜찮은 무적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남색 교복을 입고, 섬을 두른 비린내에 적응했으며, 다섯 개로 줄인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그건 이 분이고 오 분이고 인정사정없이 출발해 버리는 해병대 출신 선장님의 공이 컸다. 박영환도 그렇게 지각하는 버릇을 고쳤다고 했다. 황수현은 매일 첫 번째로 도착해 있었다. 박영환은 가끔 늦었다. 정형준은 어쩌다 한 번씩 늦었지만 누구보단 빨랐다.

 

 

내내 자습만 하는 삶. 기다리는 것은 딱 두 개. 점심과 하교. 차라리 섬에서 굴러다니는 게 더 적성이다 싶을 즘에,

 

 

<나갈래?>

 

 

책상 위로 찢긴 종이가 툭 떨어졌다.

 

 

정갈한 글씨. 황수현이다.

 

 

 

 

9.

 

 

 

 

- 전교 회장이 일탈을 종용한다.

- 입 다물자.

- 영환이는?

- 수업 중.

 

 

황수현이 저를 데리고 온 곳은 학교 도서관이었다. 유독 조용한 곳.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황수현의 옆은 항상 조용했다.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니 아마도 기분 탓일 거다. 황수현은 고전 도서를 집는다. 적막한 공간에선 종이 넘어가는 소리만 들렸다. 정형준은 최신 문학이라 적힌 책장으로 갔다가 족히 몇 년은 된 책들인 걸 깨닫고선 아무렇게나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세계 문학 단편선. 삼국지. 에세이. 영어 원서. 일본 추리 소설. 오, 만화책.

 

 

다음으로 눈길을 잡아 끄는 건 책장 최하단에 박혀있는 교지. 발간 연도가 올해였다. 맨 밑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먼지 없이 깨끗한 상태다. 꼭 누가 최근에 건드린 것처럼.

 

 

정형준이 손을 뻗는다. 얇은 책자는 쉽게 잡혔다.

 

 

 

歷代 委任 全校 會長 (역대 위임 전교 회장)

 

제 1대 皇雖賢

제 2대 況修縣

제 3대 荒壽懸

제 4대 滉須眩

제 5대 慌誰吅

제 6대 徨秀譞

제 7대 晃愁垷

제 8대 惶遂嬛

제 9대 遑隨灦

제 10대 㤺殊泫

제 11대 㨪輸懸

제 12대 㬻需䧋

제 13대 䄓獸夐

제 14대 䍿垂玹

제 15대 䞹帥琄

제 16대 䪄洙俔

제 17대 㾮睡臤

제 18대 䑟搜弦

제 19대 䳨隋絢

제 20대 肓髓繯

제 21대 簧銖虤

제 22대 怳蒐蜆

제 23대 晄酬䲻

.

.

.

제 47대 黃首現

 

 

 

그럼 47대 전교 회장이 황수현인 건가. 한자는 전공도 아니라 대충 덮었다. 황수현은 책을 꽂아두곤 옆에 앉는다. 너 뭐해? 교지 있길래. 근데 너희는 되게 빨리 내나 보다. 우린 종업 맞춰 주는데. 정형준의 말에 황수현이 즉답했다. 볼 게 없으니까. 너 자꾸 블랙 조크 치지 말라고. 왜? 웃기면서.

 

 

- 다 봤으면 이제 갈까.

- 이럴 거면 왜 오자고 했어.

- 그냥 땡땡이.

- 라고 제 47대 전교 회장님이 말하십니다.

- 너가 해. 회장직 너 줄게. 너 가져라.

 

 

어. 내가 가져갈게. 정형준은 별 생각 없이 교실로 발길을 돌린다. 황수현은 남은 책을 정리하고 뒤따라왔다. 사서 쌤 안 계셔? 우린 전부 셀프야. 이 학교 참 웃긴 학교네. 언제 폐교하냐. 황수현이 소리 내어 웃는다. 내가 졸업하고 나면.

 

 

- 곧 졸업하잖아.

- 뭐, 그렇지.

- 회장이면 졸업 답사도 할 거고.

- 응.

- 빨리 그랬으면 좋겠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참 시답잖고 영양가 없는 대화였다.

 

 

 

 

10.

 

 

 

 

그러다 박영환이 나머지 둘을 소집했던 적이 있다. 여기 좀 이상해. 우리는 몰라도 저 형은 내보내는 게 어때. 여기 이상했던 게 뭐 새로운 일이라고. 천하무적 저거 교훈부터 글렀어. 물론 이땐 박영환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황수현은 꽤 귀담아들었는데, 이내 박영환의 당산나무 발언을 듣고서는 얼굴이 굳었던 것 같기도 하다.

 

 

- 뭐라고?

- 당산나무는 그렇다고 쳐. 원래 기가 안 좋았으니까.

- 난 거기 좋던데. 공기 맑잖아.

 

 

티피오는 개나 준 대화 방식에 박영환이 먹금을 시전했다. 나는 죽은 사람들은 잘 안 보려고 해. 무서워서. 대화도 못 하고 목소리도 안 들리고. 그런데 계속, 계속..........

 

 

웬 나뭇가지를 쥐고 수현이 형을 툭툭 치질 않나. 입 찢어지게 웃으면서 형만 보고 있질 않나. 계속 여기서 머무는데 어떻게 안 불안하고 배겨. 다들 웃겨 죽겠다고 완전 축제 분위기란 말이야. 소금이라도 좀 뿌리고 다녀. 그 말에 정형준이 마을 회관으로 달린다. 맛소금부터 히말라야 핑크 솔트까지 챙겼다. 야무지게 한 주먹씩 쥐고 전신에 뿌려댔다. 황수현은 거절했는데, 혼자 고상하게 군다고 두 주먹을 맞았다. 마을 어르신들이 보면 기함할 꼴이었다.

 

 

- 걔네가 뭐 위험 감지는 안 해줘?

- 어렸을 땐 조금. 주인 없는 돈 위치도 알려주고 그랬어.

- 대박이네.

- 부모 없는 거 불쌍하다고.

- 아하.

 

 

지금은 별 상관 안 하는 것 같네요. 반 정도 남은 소금 통을 보던 박영환은 다시 집어 들어 황수현에게 남은 걸 다 부었다. 뭐해? 부정 타지 말라고요. 아주 친형제구만.

 

 

- 아예 나가서도 같이 살지 그래?

 

 

정형준에 말에 박영환이 질색했다. 저 형은 섬 안 나가요. 완전 본투비 무적 사람. 너 진짜 섬 안 나갈 거야?

 

 

황수현은 웃음으로 답할 뿐이었다.

 

 

 

 

11.

 

 

 

 

황수현이 정형준을 잡고 뛴다. 여름치곤 해가 이르게 저물었다. 왜? 어디 가는데? 박영환은? 머뭇거리는 답이 불안하다. 정형준이 발걸음을 멈췄다. 얘기 안 하면 안 가.

 

 

- 형준아, 놀라지 말고 들어. 방금...........

 

 

 

 

12.

 

 

 

 

박영환이 죽었다.

 

 

시신은 끝내 못 찾았다. 장례도 단출하게 치렀다. 단순 실족사라고 했다. 이런 섬에서 애가 빠져 죽는 건 흔한 일이라고. 흔한 일. 흔하다는 말에 담길 수 있는 죽음이라. 그런 말로라. 정형준은 제가 다 비참했다. 산 채로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죽고 싶었다. 콱 죽어버리고 싶었다. 화가 났다.

 

 

다 찢어진 교복 조끼. 바닷가로 밀려온 명찰. 흔적이랍시고 돌아온 것들을 태우며 무슨 생각을 했던가. 잠시 울었던 것 같기도 하다. 쇠꼬챙이에 엉겨 붙은 덩어리가 그 애의 뼛조각이었다면 조금은 나았을까, 따위의 무의미한 가정을 되뇌면서. 만약 박영환이 아니라 제가 죽었다면 어땠을지 같은. 차라리 그랬다면 예전처럼 셋이 대화할 수 있었을 텐데. 박영환은 정형준이 어디에 있든 알아볼 것이다. 늘 그랬듯이 단 한 음절만으로도 저를 찾아낼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바뀌는 건 없다. 만일은 가정일 뿐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간 정신은 둘째 치고 궁금했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본디 죽을 운명을 가지고서 태어나는 게 인간이었다. 통상적으로도 그게 맞았다. 그럼 나는 왜 이 꼴로 있는가. 박영환이 뭐 대단한 순리를 거스른 것도 아닌데 왜. 작별 인사를 안 해서 그랬나. 그렇다기엔 마지막으로 건넨 말도 분명 인사였는데. 대체 무엇이. 어떤 부분이. 그래서 이런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찾지도 못한 시체 붙들고 왜 물조심 안 했냐고 어깨 흔들어 봤자 박영환이 살아서 돌아오나. 만약 그렇다면 재림 영환이라도 바랄 참이었다. 누가 너보고 우리들 고난 다 짊어지고 가랬냐고.

 

 

정형준은 아주 잠시 극점까지 건넜는데, 일단 입교한 뒤에 죽은 사람 살려내라고 니네가 말하는 기적 은혜 성은 다 보여달라고 지랄 싸는 거다. 못 하면 사이비, 근데 사이비가 사이비라는 거 증명해서 뭘 하나. 그런 거 믿는 사람들이 정말 그게 옳다고 생각해서 믿는 게 아니라고 그랬는데. 근본적인 결핍을 채울 수 있는 게 그거 하나라면, 그걸로 진짜 뭐가 채워진다면. 뭐 하나라도 나아지는 게 있다면 씨발 나도 한번 들어가 볼까. 이틀 간의 기억만 지우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그냥 애당초 섬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

 

 

그 애는 일찍 죽었다. 너무 빨리 가버렸다. 

 

 

어디로?

 

 

다른 건 몰라도 그곳에 정형준과 황수현이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13.

 

 

 

 

딱히 삶에 관해 대단한 미련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살아야 하니까. 대부분 그쪽을 쫓으니까. 그러니 죽음이란 개념은 어떻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영원한 유실이란 남겨진 자들의 수명을 좀먹으며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상복 대신 교복 입은 정형준이 중얼거린다. 우리가 납득하고 말고 할 게 있니. 유난히 차분한 어조에 기시감이 들었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어느새 황수현의 말투가 배어 있었다. 그 사실을 말해준다고 좋아할 것 같진 않았지만.

 

 

박영환의 장례식 이후 둘은 몇 주간 말을 섞지 않았다.

 

 

정형준의 도피가 컸다. 교실에도, 도서관에도, 옥상에도 코빼기 하나를 안 비추더니 종종 부둣가에서나 발견되고 하는 것이다. 박영환의 교복이 밀려온 그곳에서.

 

 

황수현은 나름대로 이 사태를 분석했고 이 끔찍한 상실감과 침묵의 원인은 박영환의 부재라고 결론 내렸다. 유독 마음이 허한 이유는, 그래. 형이라고 불러줄 사람이 없으니까.

 

 

끝끝내 정형준을 찾은 황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한참 뒤에 작게 한마디 뱉는다.

 

 

- 형.

- 미친 놈아..........

 

 

둘은 정확히 그 순간을 기점으로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었다. 

 

 

 

 

14.

 

 

 

 

결론적으로 박영환은 죽은 게 아니라 죽임당했다는 걸 알았을 때. 정형준은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화가 났을 것이다. 황수현은 정형준을 이해할 수 없다. 본질적인 문제였다. 나는 너를 알 수 없으니까. 네가 나를 모르는 것처럼.

 

 

인간은 너무 다양해서, 보육원 출신 아이들을 지원하면서도 천애 고아 한 명쯤은 죽일 수도 있는 거다. 대체 덮을 게 뭐길래. 유급까지 해서 학교 다니는 애를 그렇게, 왜.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정형준은 무력감을 느꼈다. 또 죽고 싶었다. 애 바다로 떠민 새끼 낯짝이나 한번 본 다음에 닻에 매달아 담그고 싶었다.

 

 

황수현은,

 

 

 

 

15.

 

 

 

 

신이란 무엇인가.

 

 

그 신도란 또 무엇인가. 하등 실체도 없는 것에 매달리며 살아가는 것들은 얼마나 멍청하고 안타까운가. 비련한가. 미천하지 않은가. 진창 밑바닥에서 발버둥 치는 꼴이 웃긴다고 여긴 지가 한 세기다. 조소가 나왔다. 황수현은 제 인간성이 닳았다고 생각했다. 남들 백 년 아껴 쓰는 걸 늙지도 않는 애새끼가 있는 대로 족족 갖다 쓰니까, 그렇게 돌려막으면서 버티니까 아예 동이 나버린 거라고. 도로 채우기엔 글러서 꾸역꾸역 감추고 살아야 한다고.

 

 

언제라고 영원할 것들은 없다. 더군다나 가변의 대명사인 인간이 그렇게 남았으리라는 보장은 더더욱 없었다. 모든 건 퇴색되기 마련이다. 개념은 흐릿한 추상이라 쉬우면 쉬웠지 더 어렵진 않았다.

 

 

이를테면 선.

 

 

정.

작은 결심들.

마을을 부흥시키겠단 일념.

 

 

그래, 분명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머리를 조아리고 도와달라 했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사람이 있다 들었습니다. 어르, 어르신. 희끗하게 센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손자 뻘에게 말을 절어대는 촌장을 보고 황수현은 무슨 생각을 했던가. 웃기다. 재밌다. 두고 봐서 나쁠 건 없겠다.

 

 

- 수현아.

 

 

그 촌장의 증손자가 제게 명령하고 있다.

 

 

- 마지막이야.

 

 

나지막한 경고.

 

 

- 알지?

 

 

황수현은 고개 끄덕인다. 그러니까, 알기는 알았다.

 

 

 

 

16.

 

 

 

 

정형준은 몇 번째 전학생이더라. 전부 다 지겨웠다. 빌어먹을 마을부터 제 타고난 성정까지, 그 모든 게.

 

 

무적도의 전통 제사는 인신 공양.

 

 

삼 년에 한 번씩 가축 대신 사람을 잡았다. 조건은 마을 사람이 아닐 것. 그러니 외부인으로 오는 애들이 제일 적합했고. 그 조건으로 집단의 결속력은 강해졌다. 적어도 나는 피해자가 되지 않을 거란 믿음은 안전한 가두리가 되었다.

 

 

사람을 잡아다가 바치면, 물귀신들도 땅귀신들도 전부 기분이 좋아져 터가 난다고. 그 제사를 제안한 게 신빨 떨어진 엉터리 박수의 핏줄이란 걸 아는 것도 황수현밖에 없지만.

 

 

죗값은 먼 미래에 치르기도 충분했다. 열아홉에 멈춘 몸뚱이가 지옥으로 던져질 가능성도 전무하다. 모든 전제를 제친다 해도 끝내 이타를 쫓게 되어있었다. 본성이 선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착하지 않았다. 이미 죽은 애들이 족히 서른은 넘는다. 다 살려서 돌려보낸 것도 아니었다. 눈깔 파여 물로 밀려온 시체부터 서낭당에 목맨 아이까지. 자비도 관철도 오로지 제 마음대로.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어쩌면 평생을 어리게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17.

 

 

 

 

- 수장시킬 거야.

 

 

피 맺힌 검지가 바닥을 가리킨다.

 

 

- 이 바다 밑에.

 

 

실소가 터졌다.

 

 

웃기지도 않아. 정형준은 그것 참 미친 소리라 생각했다.

 

 

 

 

18.

 

 

 

 

괘씸하다고 생각했나.

벌하고 싶었나.

내가 뭐라고?

 

 

하도 신이라 떠받들어지니 드디어 정신을 놓았던 건가. 제게 무엇을 판단하고 처벌할 권리는 없다. 당산나무에 묻힌 뼈들이 저를 위한 게 아니라 마을을 위한 것들이었던 것처럼. 판을 설계한 건 전부 사람들이다. 저는 좋은 핑계였다.

 

 

또한 공범자다. 더한 죄인이면 죄인이지 무결한 적 없다.

 

 

- 쟤가 마지막이야.

- 아니지. 마지막은 박영환에서 끝났어야지.

- 그래서 네가 뭘 어쩌게. 재적골로 튀려고?

- 아, 그놈의 싸가지 좀.

 

 

씨발 네 증조할아버지가 날 떠받들고 살았다니까. 황수현이 의자를 들어 촌장의 머리를 내리친다. 먼저 몸부터 부딪히기로 했다. 목표? 그런 거 모르겠고 일단 이건 독단 행동에 대한 벌이라고 해두자. 얼마나 세게 쳤는지 다리가 뚝뚝 떨어졌다. 머리통 부여잡고 멍한 표정으로 보던 촌장이 따라 가위를 집었다. 황수현은,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집으려다 체중을 실어 밟았다. 액정이 고루 깨진다. 촌장이 욕을 짓씹었다. 위에서 아래로 휘두르던 가위는 손으로 잡았다. 어차피 안 죽었다. 죽어서 나가는 건 저쪽이다.

 

 

- 수현이가 왜 그럴까, 진짜!

- 상춘아 니가 어렸을 때 나한테 삼춘 삼춘 거렸다.

- 기억 안 난다고.

- 그거 알츠하이머야. 네 아빠도 딱 그랬어.

 

 

촌장이 기어코 지 아랫사람들을 찾는다. 빨리 안 와? 쌍놈의 새끼들아 빨리 오라고! 상스럽게도 지껄이는 말에 황수현은 정말 자식새끼 (물론 남의 새끼지만) 키워봤자 하나도 소용 없다는 말이나 생각했다. 회관 문이 벌컥 열리고,

 

 

들어오는 건 정형준이다.

 

 

- 왜 니가 와?

- 너무 시끄러워서. 대체 뭐 하세요?

 

 

잠깐 대화. 이 되바라진 새끼가 날 죽이려고 허지 않냐. 각자 대가리랑 손에서 피 질질 흘리며 하는 말이 하나도 안 맞는다. 정형준의 얼굴에 잠시 당황이 스쳤지만 빠르게 핸드폰으로 112를 찍었다. 시선은 황수현에게 꽂혀 있었다. 입 모양을 감추려는 노력도 없이 너 괜찮냐고 계속 물어오는 말에 황수현은 괜찮다고만 했다. 진짜 괜찮았다. 어디 산등성이에서 굴러떨어져도 안 죽던 몸이고.

 

 

- 근데 형준아 좀 나가주라. 너 지금 너무 방해 돼..........

 

 

황수현은 캐비넷 안에 있던 장도리를 꺼낸다. 정형준이 경악했다. 죽이게? 빨간 줄 그이고 싶어? 박상춘이 낄낄 웃는다. 애 둘이서 하긴 뭘 하려구. 비장하게 비상 호출 버튼이나 달칵달칵 눌러댔지만 바깥은 조용했다. 황수현은 그 광경을 무심히 봤다. 병신. 전선 끊어놓은 게 엊그제였다. 정형준은, 장도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보고선 문으로 뒷걸음질 쳤다. 황수현은 나중에 다 말해줄 생각이었다. 눈앞의 일만 처리하고 나면. 전부 끝나고 나면.

 

 

- 마지막이니까 삼춘으로 불러드려?

- 추하게 가려고 하지 마. 그냥 가.

- 폼만 잡어, 맨날.

 

 

황수현은 문득 반쯤 열린 문을 바라본다. 노을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정형준이 나가고 있었다. 촌장이 그 뒤를 바라보는 순간 장도리로 이마를 깼다. 이젠 안 돼. 더 죽이려고 하지 마. 영환이도 원래 죽으면 안 됐잖아. 형준이랑 착각한 거잖아, 어두워서.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았니..........

 

 

쏟아지는 피는, 역시 솟는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울컥거리며 새는 붉은 액체가 황수현의 교복을 적셨다. 제 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핑 도는 듯했다. 상춘아.

 

 

정형준은 완전히 빠져나갔다. 농업용 가위로 발악하던 촌장은 고꾸라져 숨만 색색 내쉬며 꿈틀거릴 뿐이었다. 텅 비어버린 문틈 사이는 온전한 노을을 담고 있었다.

 

 

황수현은 다시 한번 장도리를 치켜든다. 촌장이 의자 다리를 짚고 일어나 황수현에게 주먹을 꽂았다. 아프다. 동시에 제가 내보냈던 아이들을 떠올렸다. 항상 같은 레파토리였던 것 같은데. 제가 잡힌 채 그 애만은 내보내고. 물론 그렇게 살려서 내보낸다 해도 죽어 돌아오는 것들이 태반이었고 전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렸지만. 그게 당연한 거지만.

 

 

괘씸하다고 생각했나.

한 번은 나를 봐주길 기대했던가.

혼자 떠나 버리는 게 아니라, 나도 이곳에서..........

 

 

- 아 진짜 황수현 이 대책 없는 놈아!

 

 

저 애는 기어코 돌아온다. 망설임 없이 문을 제끼고 달려오는 인영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손에 들린 쇠갈퀴는 대체 어디서 구한 건지 감도 안 잡혔다. 근데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다 터진 입에선 고운 말이 안 나왔다. 죽으려고 작정했지. 이 미련한 새끼야. 네가 나랑 같아? 같냐고. 너는 죽어.

 

 

- 어쩌라고. 경찰 불렀는데 안 오는 걸 어떡해.

- 지금 경찰을 불러놓고 그걸 들고 온 거야?

- 안 그럼 니가 죽게 생겼잖아.........

 

 

촌장이 좀비처럼 다시금 몸을 일으킨다. 정형준이 달려들어 갈퀴 막대로 뒤통수를 갈겼다. 뻑 소리가 났다. 가해진 충격에 촌장이 뒤로 돌았다. 황수현이 장도리로 같은 곳을 후렸다. 촌장은 게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피가 고인 장판이 찰박거렸다. 둘은 누가 봐도 살인자 같은 모습으로 문을 잠갔다.

 

 

- 죽었어?

- 아마.

- 나 대학 못 가?

- 정당방위로 어떻게 잘.........

 

 

촌장이 죽었다. 촌장을 죽였다.

 

 

키우다시피 보살폈던 꼬맹이는 어느새 장정으로 컸고, 배가 나온 중년이 됐고, 나보다 더 늙은 모습으로 남았고.

 

 

황수현은 또 이름 모를 감정을 느낀다.

 

 

대신 죽고 싶었다. 그를 대단히 아껴서 그런 건 아니었다.

 

 

 

 

19.

 

 

 

 

있잖아, 나는 너랑 달라. 나에겐 도망칠 내일이 없어. 내 시간은 흐르지 않아. 평생을 학생 신분으로 살아왔는데, 이젠 내가 내 터전을 부수려고 하는 거야. 더 이상 가망이 없으니까. 바뀌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설득하기엔 네가 죽게 생겼으니까. 일을 벌인 것도 나고 책임져야 하는 것도 나야. 

 

 

영원은 없댔지. 실재하지도 않는 걸로 말이 많다고.

 

 

그럼 나는 뭔데?

 

 

 

 

20.

 

 

 

 

[그거 진짜 맞아요?]

 

[좀 많이 옛날이던딩 ;]

 

[https://news.nn.co.kr/news/pc/main.html]

 

[file.190928]

 

[file.190928.exp]

 

 

 

 

21.

 

 

 

 

- 잠시만요.

 

 

그러니까,

 

 

- 수현 씨.

 

 

눈앞의 남자는 황수현이다. 정형준이 아니라.

 

 

 

 

22.

 

 

 

 

 

[단독] 통영 인근 섬, 폭파 장치로 인해 붕괴… 촌장 박 모 씨 사망한 채로 발견

 

대한민국 남단 인근 해역의 섬 무적도(無跡島)가 지난 28일 새벽, 섬 내부에 설치된 폭파 장치로 순식간에 붕괴됐다. 또한 합동 조사본부에 따르면, 폭발 흔적이 발견된 섬 내 마을회관 근처 광에서 촌장 A(사망 당시 36세)씨가 살해된 채로 발견됐다는 소식이다. 이후 군사·경찰·해양수사 기관이 합동으로 사건을 수사 중이다.

 

무적도는 면적 약 1.5㎢로 비교적 넓은 섬이며, 소수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최근 들어 지질학자와 해양생물학자들이 연구 대상으로 접근해왔으며, 섬 주변 해저 균열과 지층 변화를 관측하는 장비가 설치되어 있다.

 

 조사 관계자는 “섬 내부 구조와 폭발 흔적을 면밀히 분석 중이며, 범행 동기와 배후 세력 여부를 철저히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섬 주변 해저에서는 무인 탐사선(AUV)이 촬영한 영상에서 기묘한 구조물 잔해가 포착돼, 인공 폭발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분석되고 있다.

 

(사진 자료)

 

 섬 바로 옆에 위치한 재적골에 거주하는 어민 B 씨는 “섬에서 큰 폭발음과 함께 연기가 치솟는 것을 봤다”며 “폭발 직후 섬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고 증언했다.

 

(사진 자료)

 

 일각에서는 “무적도의 지형이 오래전부터 미지의 해저 동굴과 연결돼 있었다”는 지역 어민들의 민간 설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일부 학계 관계자는 “지진이나 자연 붕괴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히는 한편, “이번 사건이 지질·지형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조사본부는 현장에서 발견된 폭발 흔적, 암석 파편, 구조물 잔해를 정밀 분석하고 있으며, 인근 해역의 위성 자료와 해저 지진계를 활용해 폭발 에너지 경로를 추적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외부 공격 가능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경 합동으로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섬 붕괴와 관련한 추가 정보는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공개될 예정이다.

 

2019.09.29

/ 이창욱 기자 leechangook@nnn.com

 

 

 

 

 

23.

 

 

 

 

.............

 

 

 

 

完.

 

 

 

 

아니 잠시만. 수현 씨. 음, 개체 형씨. 정환이 황당하다는 듯 내뱉었다. 지금 22세기잖아요. 어떻게 교복을 입고 있어요, 아직도. 그 정도면 본인 취향이 아니신지.

 

 

좀 긁히라고 던진 말에 아무 반응도 없다. 수현은 그저 남색 넥타이만 매만질 뿐이었다. 정환이 잡고 있던 펜을 몇 번 똑딱거렸다. 애초에 거짓말을 숨길 생각도 없었던 것 같고.

 

 

- 형준이라는 친구가 찾고 싶은 거예요?

- 아뇨.

- 그럼?

- 그냥 궁금했어요. 이해해 보려고요.

 

 

어떻게 알았어요? 그래도 가고 나서 알 줄 알았는데. 수현의 물음에 정환이 책상 밑에서 핸드폰을 꺼내 흔들었다. 타 부서 사람한테 물어봤어요. 그쪽 말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뉴스 하나 안 났을 것 같진 않아서. 비공식적으로라도 뭐가 남아있겠다 싶었죠. 최근에 사라진 섬 같은 거 있냐고 물었는데 뭐가 있대요. 근데 백 년은 족히 지났다는 거예요. 내가 소름이 끼쳐요, 안 끼쳐요. 수현이 못 믿겠다는 듯 묻는다. 언제 연락했는데요? 아까 몇 분 전에요. 책상 밑에서 안 보고 타자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이것두 나름 연마해야 하는 기술이라구요. 정환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 걔는 여기 안 왔어요? 

- 동명이인 제보자가 왔으면 한 번 훑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 분은 죽을 때까지 신고 안 하셨다는 거죠. 센터는 21세기에도 있었어요. 비공개에서 공개로 돌린 게 최근이에요. 아, 못 했을 수도 있고요. 그전에 죽었으면.

 

 

정형준은 죽었을 것이다. 그날, 혹은 몇 년 전에.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22세기의 중반이니까. 아무리 미래 과학 시대라고 해도 사람 수명 억지로 늘리는 기술은 부족했고. 심각한 부작용이 논란으로 대두된 이후 관련 연구가 싹 묻힌 게 꼬박 한 달 전이었다. 물론 눈앞에 있는 건 불로불사의 개체였지만. 원래 인공물보다 자연이 더 위대한 법이다. 아무런 인풋 없이 최고의 아웃풋이 나오기도 했다.

 

 

- 근데 신기하다. 저 개체랑 말하는 거 진짜 오랜만이에요.

- 난 아니에요. 친구들도 곧 오고.

 

 

수현은 담담하게 굴었다.

 

 

- 이대로 비상 버튼 누르면 지하실 직행인데?

- 아직 서류상으론 졸업도 안 해서.

 

 

그린 듯한 미소를 짓는다. 정환이 불편한 웃음으로 받아쳤다. 당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온 거야?

 

 

수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복 위에 걸친 코트의 매무새를 정리한다. 정환은 얼탄 채로 문을 막아섰다. 지금 내가 몇 시간 동안 자원봉사나 하려고 했던 건 아니라서요. 수현이 뭐라 입을 열려던 찰나, 여러 발소리가 섞여 들렸다. 곧 온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제삼자가 끼면 복잡해졌다. 이래서 영리한 개체는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싫다니까. 벽 너머로 경비원의 목소리도 울린다. 대단하신 친구들은 친절히 안내까지 받아서 들어온 모양이었다.

 

 

- 지방 방송 좀 끄라고.

- 서한솔 너 볼륨 낮춰.

- 그래. 국가 공인 기관에선 닥쳐야 돼.

 

 

수현은 어깨를 으쓱한다. 어딘가 데자뷰다. 네가 지금 나를 놓아주는 것 말곤 뭘 할 수 있겠냐는 얼굴이었다. 정환이 얼굴을 구기며 권유했다. 백 년 뒤에는 또 어쩌시게. 네 친구들 다 죽고 나면 어쩔 거냐는 물음이다. 수현이 웃었다. 내가 다시 찾아올게요. 그때는 진심으로 무료해질 것 같아서.

 

 

- 이런 건 얼마 하냐.

- 만지지 마. 괜히 건드렸다 일낼라.

- 예예. 슬기 님은 다섯 살 때부터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드시고 가랑잎을 타고 압록강을...........

- 아, 오빠 진짜.

 

 

정환이 먼저 문고리를 잡았다.

 

 

- 그래서 쟤는 언제 나와?

- 나야 모르지.

 

 

수현이 느릿한 발음으로 덧붙인다.

 

 

- 내가 약속으로 달아두는 거니까요.

- 약속 뜻은 아시고요?

- 잘 알아요. 이만 가볼게요. 실례 많았어요.

- 예, 공무원이 다 그렇죠.

 

 

그렇게 개체 잡아 연구하는 센터에 두 발로 걸어들어온 개체는 다시 두 발로 멀쩡히 제 친구들과 함께 걸어 나갔다. 세상에는 정말 인과라는 게 있긴 한 건지. 시말서 각은 완벽히 잡혔는데 몰래 기밀 사항 넘겨준 지안 씨 입은 또 어떻게 막아야 할지. 그래도 경재가 담당 안 해서 다행인가. 다행 맞나?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대낮 아침부터 뭐 하는 거야.

 

 

까딱하면 진짜 잘리겠다. 권고사직이면 퇴직금은 나오려나. 학생 넷을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게 내보낸 정환은 머리를 싸맨다. 이내 입에 뭘 하나씩 물고 들어오는 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손에는 배달 봉투가 가득 들려있다. 니네는 지금 배때지에 그런 게 들어가지. 성배도하나드싱내여? 난 됐다. 아까 그 친구는요? 저기 쟤네들. 귀엽다, 졸업하나 봐요. 성배닝징짜안드새여? 안 먹어. 저기 고등학교 되게 유명한데. 정환이 한숨으로 대답했다.

 

 

- 그러게. 용케 섬을 나와 살았네.

- 방긍머라고하션써여?

- 아냐, 입 다물고 꼭꼭 씹어 먹으라고. 나 오프 좀.

 

 

자리를 뜬 정환이 이리저리 배회한다. 이 정도 스케일의 단독 행동엔 지독한 사유가 필요했다.

 

 

그래도 장점만 뽑자면 괜찮은 거래였다. 만일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고. 사냥개 풀면 대개 한 달 안에 잡혀 오는 것들이 개체였다. 인간 거죽 썼다고 다 인간인가. 모방 좀 한다고 짜가가 진퉁되는 거면 세상 모든 문제들 중 반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다. 애초에 정환은 애사심이 바닥난 사람이었다. 필요 이상의 충성은 쓰잘데기 없는 부산물 그 미만도 아니라는 걸 몸소 뛰면서 배웠으니, 아무튼 간에. 저 개체는 앞으로도 오래 살겠지. 혼자 살아가겠지. 저렇게 죽지 못해 사는 삶은 어떤 걸까. 신과 다를 바가 있나. 원치 않는 영생은 누굴 위한 고통인가. 

 

 

정환은 센터의 홍보 포스터를 집어 든다.

 

 

황수현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영원한 일상에 끼어든 비일상이 그 두 명일 수도 있겠구나.

 

 

순간의 자신을 기억해 줄 사람이 전부 사라졌다는 건 너무나도 외로운 일이다. 인간은 외로움에 취약한 족속이라. 어쩌면 모든 생물체가.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도 참 많고. 세상에 아무리 완벽한 동화는 없다지만 이런 이야기라면 나름의 우화 정도는 될 거고.

 

 

또한 그를 잡지 않은 비상식적 판단에 개인적인 이유를 들자면, 밖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에 두려움이 아닌 작은 기대가 서려 있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가 더 이상 피하지 않을 거란 걸 가늠했기 때문이다. 뒤돌아 도망치지 않을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정환은 센터의 문을 닫는다.

 

 

오늘은 유독 지우고 감춰야 할 기록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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