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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인이 악인을 사랑(그게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과 용서로 회개시키는 장면은 언제나 저연령층 대상 히어로물의 클리셰처럼 여겨져 왔다. 좋은 사람이라면 악인조차 늘 모범적으로 대하는 게 정석…. 이었으나 안타깝게도 25년 여름의 강릉 해양연구소 소속 수석 연구원 잠뜰은 그런 ‘좋은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25년 봄, 갑작스러운 해수면의 변화로 나타난 심해 생물 ‘케테아’를 연구하던 잠뜰은 의도치 않게, 어쩌면 의도한 대로 마로제약과 차석 연구원 간의 비리를 밝혀내었다. 봄부터 여름은 그들로부터 망가진 해양 환경이 되돌아오길 기다리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문제의 차석 연구원은 중징계를 받았고, 얼마 못 가 스스로 연구원 자리를 그만두었다. 잘못도 잘못이지만 그 과정에서 수석 연구원을 해하려던 일이 드러났으니 어떻게 되든 연구소에 발붙이고 살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수석 연구원, 위험에 처하면서까지 해양 생태계를 위협하던 문제를 밝혀낸 선인, 잠뜰은-

 그냥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영위했다.

 

 내가 나로 살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힘이 필요하다는 걸 잠뜰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마로제약과 차석 연구원 사이의 일로 주변이 한동안 시끄러웠고, 그에게 밀려나 바다에 빠지면서까지 모든 일을 밝혀낸 잠뜰은 자신이 아닌 뭔가 다른 얼굴로 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잠뜰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매스컴에서의 그의 이미지는 어딘가 자신이 아는 나보다 훨씬 용감하고, 무모하고, 어떻게 보면 좀 멋있기까지 했다.

 

  ‘잠깐 이러다가 말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오늘도 내 할 일을 한다. 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사는 잠뜰이 어느샌가 반복하듯 되뇌며 붙잡은 말이었다. 할 일만으론 사람은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건, 미역 통조림은 씹을수록 질겨지고 물을 마셔도 목이 마른 어느 초여름날이었다.

 

  ‘휴가를 쓰자.’

 

 다른 답은 없었다. 쉬지 못해서 몸과 마음이 이런 거로 생각해야만 했다. 케테아고 마로제약이고 차석 연구원이고 뭐고 일단 눕고 싶었다. 휴가 신청은 예상 밖으로 빠르게 승인되었다. 연구실에서 연구만 하다 죽는 직업이 연구원이라 했는데, 적어도 쉬는 동안에는 실로 오랜만에 수석 연구원이 아닌 잠뜰이라는 보통 사람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집에 누워서 유튜브나 보며 하루를 보낼 수도 있었으나, 귀소본능인지 한국인 유전자에 새겨진 일개미 DNA의 연장선인지는 몰라도 잠뜰은 강릉 바다에 다시 가기로 했다. 일과는 관련 없이 그냥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바다를 보면서 넋 놓고 있는 게 지금 가능할까 싶었으나, 어찌 되었든 바다 생각이 자꾸 났다.

 

  ‘그날 일 때문인가? 내가 바다에 빠져서….’

 

 누구만 아니었다면 배가 고장 나지 않는 이상 해수욕장도 아닌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빠질 일 같은 건 없었을 것이다. 바다로 내던져진 그 날 이후, 잠뜰은 자꾸 심해를 하염없이 헤엄치는 꿈을 꾸었다. 그는 물에 가라앉아 죽지도, 위로 올라가 빛을 보려 애쓰지도, 정체불명의 생물에게 잡아먹히지도 않았다. 그저 어두운 바다를 끝없이 헤맸다. 계속.

 

  ‘죽을 뻔한 걸 케테아가 구해줬으니 그럴 만도 하지.’

 

 누구나 흔하게 겪는 일은 아니었으니 무슨 꿈을 꾸어도 이상하지 않다. 문제는 별 내용 없이 같은 꿈이 반복된다는 데 있었다. 마치 그때의 일을 일부만 잘라 연속 상영하는 것처럼 잠뜰은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심해에 갇혀 방황했다.

 

 며칠간 생각을 정리하고 나면 좀 나아지겠지, 라는 말로 모든 걸 상자에 구겨 넣듯 덮어버리고 잠뜰은 바닷가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숙소는 바로 앞에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잡았다. 언제든 창문을 열고 그대로 바다로 뛰어내려도 이상하지 않게.

 

*

 

 방은 고요히 깔끔하고 바닷가는 아름답게 무난하다. 잠뜰이 짐을 풀고 속으로 내비친 첫 감상이었다. 장소만 옮겼을 뿐 별다른 변화가 없는 하루, 강릉의 한 해변에 있는 웨일 호텔은 투숙객들의 평이 가장 괜찮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잠뜰이 선정한 곳이었다. 개인 취향이라든가, 실내나 밖의 경치가 어떻다든가 별로 상관없었다.

 

  ‘연구하는 것도 아닌데, 어차피 바다 보이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파도 소리나 들으며 머릿속을 정리할 심산이었다. 사실 굳이 뭐가 안 되어도 상관없었다. 그냥 잠깐이라도 좋으니 연구소라는 공간에서 벗어나 혼자 있고 싶을 뿐이었다. 일상에서 도망쳐봤자 그냥 일상의 바깥 테두리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랬다.

 

 잠뜰은 짐을 정리하고 간단하게 필요한 것만 챙겨 바로 방을 나왔다. 빨리 행동하지도 않았는데 일찍 출발한 탓인지 시간은 아직도 오전이었다. 하루가 이렇게 여유로워도 되나? 조금 낯선 기분이었다.

 

 천천히 빨려 들어가듯 익숙하지 않은 복도를 걷자 복도 끝 창문에서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 사람이 보였다. 기껏 휴양지까지 와서 한다는 게 그냥 서서 멍하니 어딘가를 보고 있기라니,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것만 같아 잠뜰은 무심결에 그를 바라보았다.

 

  ‘음? 뭔가 익숙한 얼굴인데….’

 

  “잠뜰 연구원님?”

  “엥?”

 

 당황한 나머지 바보 같은 추임새 비슷한 말이 입에서 튀어나와 버렸다. 눈앞의 사람은,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자신의 눈이 틀린 게 아니라면….

 

  “오랜만입니다.”

 

 차석 연구원-지금은 과거형이 되어버리다 못해 연구소에서 존재가 사라진-수현이었다.

그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할 건 없었고, 확실한 건 연구소 밖에서 별로 다시 마주치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큰 사건이 휩쓸고 지나갔는데도 그는 자신을 가리고 있지 않았다. 마로제약과의 비리 건으로 각종 매스컴에 얼굴이 팔렸지만, 그래도 일반인이라고 그의 얼굴을 알아볼 사람은 관계자 외엔 많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동안 잘 지내신 모양이네요.”

  “사람을 바다에 던져놓고 지금 그런 말이 나와요? 여전히 제정신 아니네.”

  “말하는 거 보니까 잠뜰 연구원님도 여전하시고요.”

 

 분명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사람이지만 잠뜰은 그에게 욕설이나 폭언을 퍼붓거나 그를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마이너스 에너지, 즉 부정적인 감정을 쏟을 만큼의 관심조차 없기 때문이었다. 케테아 사건만 아니었다면 굳이 인사를 받아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한 번 죽이려 들었기에 그에게로 발걸음이 향했다. 더는 차석 연구원도 아니고, 목표도 없는 그는 연구소에 있을 때보다 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거침없이 말할 수 있었다.

 

  “멀쩡한 건 저보단 그쪽 같은데?”

  “저도 그냥저냥 지냈으니까요.”

  “퍽 그랬겠네요.”

  “뭐, 좋을 대로 생각하세요.”

 

 오랜만에 만나는 그는 목적도 목표도 잃은 사람처럼 공허한 눈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생기가 돌았다. 저 정도로 뻔뻔해야 죽일 뻔한 사람하고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는 건가?

 

  “그래서, 여긴 무슨 일이에요? 저야 휴가차 왔지만, 그쪽은 이제 강릉에는 더 올 일이 없을 텐데……. 설마 저처럼 그냥 쉬려고?”

  “바다 보려고요.”

  “네?”

 

바다를 사랑하지도 않았으면서 뭘 인제 와서, 라는 말을 잠뜰은 속으로 삼켰다.

 

  “갑자기 무슨….”

  “바다가 갈라지는 걸 봤어요.”

  “네?”

  “그래서 확인하러 왔어요. 다시.”

 

 이게 뭔 소리람.

잠뜰은 순간 이따 6시에 호떡집에 불이 날 거라는 말을 하는 드라마 주인공의 상대역이 된 기분이었다. 장난 전화와 같은 말이었다. 바다가 뭐? 수현 님이 모세세요? 그가 성당에 다니고 세례도 받았다는 말을 동료 연구원들에게 어렴풋이 듣긴 했다. 이참에 계시받아서 사이비 종교 교주로 전직하게? 근데 아무리 불명예 퇴직이라고 해도 연구원에서 종교인은 너무 급커브 드리프트 수준 아닌가? 무당도 아니고.

 

 ...라는 말들은 당연히 속으로만 삼키고 물어보았다.

 

  “어디서요? 요 앞바다에서요?”

  “네. 언젠가 새벽에 주변을 관측하다가 어렴풋이 본 거 같은데…. 그때는 피곤한가 보다 하고 넘겼지만, 문득 그게 다시 기억이 나서 보러 왔어요.”

 

 눈 앞의 그가 하는 말은 실체 없고 허무맹랑한 데다가 날짜고 뭐고 모호한 것들투성이라 진짜 뭐에 단단히 홀린 사람이 하는 말처럼 신빙성이 없었다. 누구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수치와 데이터 뒤에 기대 살아가야 하는 연구원이 이런 말을? 아무리 과거형이라지만.

 

  “수현 씨 혹시 최근에 어둠의 루트…. 그런 거에 손댄 거 아니죠?”

  “저 완전 맨정신입니다.”

  “그걸 저보고 믿으라고요? 아니, 있다 치자. 확인해서 뭐하게요?”

  “확인받고 싶거든요. 제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완전히 미쳤구나. 그의 대답을 듣고 잠뜰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감상은 그것 딱 하나였다. 인제 와서 뭐할 건데? 당신은 이제 차석도 연구원도 아닌데…. 남은 건 수현이라는 이름 두 글자뿐이다. 인간은 사람됨을 포기해서 온갖 수식어가 다 떼어져도 끝내 이름만큼은 남는다. 참 신기한 일이다.

 좋은 일을 해도 한 집단으로 싸잡혀 명명되는 것들투성인데.

 

  “그런다고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아요.”

  “또 제가 하는 일을 방해하시려고요?”

 

 말도 논리가 있어야 받아치지 이건 뭐 주장의 근본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어서 어떻게 받아쳐야 하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제가 뭐가 좋아서 방해합니까? 저도 막는다고 아무것도 돌아오는 거 없는데요. 피차 마찬가지라고요.”

  “그럼 아무 말 하지 말고 내버려 두세요. 정 못 믿겠으면 이따 같이 나가 보시던가.”

  “아뇨. 괜찮습니다. 바다가 가로로 갈라지든 세로로 갈라지든 세모로 갈라지든 네모로 갈라지든 아무 관심 없으니 뭐 확인하시고? 돌아가세요. 그럼 저는 이만.”

 

 더 이야기한다고 좋을 게 없어 잠뜰은 자리를 피했다. 그라는 사람 자체가 거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보다는 그의 사고방식을 통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옳다고 믿으니까 어떤 짓이든 할 수 있었던 거겠지만, 바다가 갈라진다는 말은 어떤 생각에서 출발했는지조차도 도통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할 사람은 아닌데. 밀물 썰물 현상을 잘못 본 것도 아닐 테고. 뭐지 진짜?’

 잠뜰은 의아해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단순히 모든 걸 잃은 이후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의 말이 계속 걸렸다. 악인이라면 악인이지 실력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어쩌면 새로운 심해 현상의 연장선일 수도….

 

  ‘너무 피곤해서 별생각을 다 하네. 그만두자.’

 

 아무리 그래도 바다가 갈라진다는 말을 믿을 정도로 자신이 판단력도 뭣도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잠뜰은 굳게 믿었다. 새벽이 오고 동이 트면 알아서 돌아가겠지. 그러면 자신도 일어나서 아침 바람이나 좀 맞다가 돌아가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만약에, 만약에 내가 안 자고 새벽에 깨어있다면 한번 나가서 보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아무 일도 없다면 그를 비웃어줄 수라도 있다. 그조차도 쓸모없는 에너지가 드는 일이라 굳이 하지는 않을 거지만.

 

*

 

 새벽 3시.

잠뜰은 짠 것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미친 사람을 만나고 미친 소리를 들었으니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지사였으나, 결국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라는 이유가 더 컸다. 무슨 소리를 듣든 난 그냥 나다, 시간이 흐르면 알아서 무슨 취급이든 다 지나가겠지…. 라는 말로 대강 결론짓고 덮어버렸다.

 

케테아 사건 이전에도 자신은 수석 연구원이었고, 종종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어 왔지만, 능력은 뛰어나도 딱히 입 모아 칭찬할 정도의 사람까지는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수석이라는 자리에 확신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냥 뭐든 과하면 부담스러우니까. 잘 닦인 자리는 항상 미끄러우니까. 그뿐이다.

 

 그런 잠뜰에게 매체에서 부여한 해양 환경의 파괴를 막은 영웅과도 같은 각종 수식어는 과분했다. 사실이 어찌 되었든 무게가 그랬다.

누군가 지금 자신을 본다면, 자신을 죽이려던 사람하고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잘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보살 같다고 생각하겠지만 그조차도 용서와 포용 같은 감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수석 연구원은 차석 연구원이라는 존재를 애초에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애석하게도 차석이 그러지 못했을 뿐이다.

 

  ‘나가자.’

 

 의도치 않게 생각의 끝이 차석 연구원이었던 존재로 나니 잠뜰은 침대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이고 뭐고 오늘로 그와 좁고 얕은 관계를 끝내야 앞으로가 좀 괜찮을 거 같았다. 더는 장애물도 뭣도 아닌데도, 자신을 위협할 이유도 이젠 없는데도 잠뜰은 그의 존재가 처음으로 아주 조금 거슬렸다.

대강 옷을 갈아입고 호텔 앞 해변으로 향했다. 예상했던 대로 아무 날도 아닌 평일 비수기의 늦은 새벽 바다는 사람이 없었다. 새벽에 바다가 갈라지는 걸 봤다고 주장하는 웬 미친 사람 하나 빼면.

 

  “오셨네요. 잠뜰 연구원님.”

  “네. 뭐, 그렇게 됐어요. 잠이 통 안 와서, 바다 갈라지는 거 보면 아예 잠이나 확 깨버릴까 싶어서요.”

 

 거짓말이다. 바다가 갈라지는 일 같은 건 없을 테니까.

 

  “바다는 이미 갈라졌어요.”

  “네?”

 이건 또 뭔 소리람.

 

  “저기, 저 끝에….”

 

 잠뜰은 그의 손끝이 가리키는 대로 돌아보았다. 해변 끝에 걸친 바위 앞바다에, 무언가 익숙지 않은 풍경이 보였다.

 

  “말도 안 돼.”

 바다가 갈라져 있었다. 마치 기적처럼, 일자로 쭉. 밀물 썰물 시기에 원래 이런 현상이 생긴다 해도 믿을 정도로 그 광경은 자연스러웠다. 놀라움보다는, 이걸 이때까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물이 갈라져 바닥이 드러났다면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먼저 봤을 터였다.

 

  “지금 장난치신 거죠?”

  “누가 물을 가르는 장난을 쳐요? 그게 가능은 하고?”

  “저기 가봐야겠어요.”

 

 수현의 대답도 듣지 않고 잠뜰은 바다가 갈라진 곳으로 재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수현은 말없이 느긋하게 뒤를 따라갔다. 빨리 가니 해변의 끝까지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바로 앞에서 본 바다의 풍경은 생각보다 더 말이 되지 않았다. 마치 이리로 오라며 인도하는 듯 쫙 펼쳐진 길에 잠뜰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끝까지 걸어가면 떠오르는 태양에도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역시…. 틀리지 않았어요. 이건 분명 제가 발견한 새로운, 최초의 이상 현상이에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더는 어떤 장비도 연구소에 요청할 수 없으니, 그가 사진을 찍는 모습은 마치 자신이 아직 기록할 위치에 있다는, 아직은 그럴 자격이 된다는 어떠한 증명과도 같아 잠뜰은 그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사진은 찍어서 뭐 어쩌시려고요?”

  “뭐라도 하나 더 남겨놔야 증거가 되죠. 아니, 사진이나 영상은 조작 의심을 받을 수도 있으니…. 제가 직접 들어가 봐야겠어요.”

  “네?”

  “걸어서 저 끝까지 가봐야겠다고요.”

  “아니, 무슨 걸어서 세계 속으로 찍어요? 정신 차려. 그러다가 갑자기 닫히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새벽에 관측했다며.”

 

 새벽에 봤다가 나중에 잘못 본 줄 알고 넘겼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잠깐의 상태로,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는 말이다. 아무리 늦어도 동이 트기 전엔 닫히기 시작하거나, 최악의 경우 수심이 확 깊어지는 부분에서 갑자기 물에 잠겨버릴 수도 있다.

 

  “제가 증거가 되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죠.”

  “그러다 죽을 수도 있는데도?”

  “전 신을…. 그리고 저를 믿으니까요.”

  “신이 신자면 다 살려준대? 해양생물을 죽인 것도, 나를 죽이려 했던 것도 당신이야. 케테아를 살려준 것도, 조난된 스쿠버다이버를 살려준 것도 나고.”

 

 그렇게 말하며 잠뜰은 높이 팔을 뻗어 수현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확 낚아챘다. 평소 같으면 확실하게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사진첩에 들어가자,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사진들만이 가득했다. 갈라진 바다를 찍은 모습이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이조차도 지금이 이상 현상임을 입증하는 연장선 같았다.

 

  “봐요.”

  “이건….”

  “하나도 제대로 안 찍혀있죠? 상황 자체가 이상해. 이래서는 여기서 뭘 해봤자 아무것도 소용없어요. 그냥 돌아갑시다.”

  “싫습니다. 방해하지 말고 돌아가세요.”

  “그놈의 방해라는 표현은 저번부터 쓰시는데, 저는 그때도 지금도 제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게 방해로 느껴지신다면, 장애물은 제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겠죠.”

  “뭐라고?”

  “말 그대로입니다. 이건 돌려드릴게요.”

 

 잠뜰은 한때 눈앞의 사람에게 죽임당할 뻔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의연했다. 정직하게 가지 말라 말하고, 곧이곧대로 휴대전화를 돌려준다. 그야말로 모범적인, 좋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자신을 해하려 했던 사람에게도 살의 따위 가지지 않는.

 

 수현은 그대로 휴대전화를 받아들었다. 잠뜰은 여전히 담담했고, 올곧았다. 그래서 더 이대로 돌아가기 싫었다. 또 진다. 자신은 더는 차석이 아님에도, 바다를 등지면 또 밀려난다. 2등으로, 땅으로, 기어이 아무 수식어도 붙지 못하는 곳으로.

 

 그는 그 길로 등을 돌려 갈라진 바다 사이를 가로질렀다. 비로소 탐구해야 할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기분에 그는 옅은 미소를 띠었다.

 

  “저, 저 미친 거! 저거!”

 

 뒤에서 잠뜰이 부르는 소리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달리면서 뒤를 돌아보니, 잠뜰은 자신을 쫓아오지 않고 있었다. 아마 여기까지가 한계라고 생각했는지, 미동도 없는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진짜 잠뜰의 감정은 그조차도 감당하기 버거운 일이라 포기했다기보단, 저 미친놈 보게…. 에 가까웠다.

 

  “뭔, 기껏 애써서 휴가까지 쓰고 나왔더니 이런 일에나 휘말리고.”

 

 잠뜰은 그러세요. 하는 눈으로 휴대전화를 열어 어딘가에 연락했다. 분명 수현은 자신에게 목숨 걸고 살려줄 정도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를 지나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케테아가 그랬듯, 어떤 스쿠버다이버가 그랬듯, 이때까지 마주친 많은 해양생물이 그랬듯 살려야만 했다. 중요치 않더라도, 마이너스 감정조차 쏟고 싶지 않을 정도로 별 대상이 아니더라도, 심지어 자신을 죽이려 들었을지라도.

 

  ‘일단은 살리고 봐야지 뭐….’

 

 그건 영웅 심리도, 인류애도, 선인의 마음도, 아무튼 추앙받을 정도로 별 대단한 감정도 아니었다. 케테아와 스쿠버다이버와 수현이 동시에 물에 빠진다면 최대한 같이 살릴 방법을 찾는다. 그게 해양 연구원이 해야 할 일이니까.

 

 바다에서는 더는 어떤 생명체도 죽어 나가서는 안 되니까.

단지 그뿐이었다.

 

*

 

 바다에는 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걸었다. 마주 하고 싶은 줄 알았는데 뒤를 돌아보니 도망치고 있었다.

 

 무엇으로부터?

 수석 연구원 잠뜰, 강릉 해양연구소, 마로제약, 마레, 잠뜰을 바다로 던져버린 날…. 기억나는 일은 수도 없이 많았다. 지치면 숨을 고르며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었고, 언뜻언뜻 보이는 바다가 열려 생긴 신기한 광경은 그냥 지나쳐갔다. 자신이 보고 싶은 건 하나,

 

길의 끝이었다.

 갈라진 길의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그게 어딘가의 해변으로 통하든 그곳에 다다라, 이건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고, 환각이나 착각이 아닌 진짜 바닷길이 열렸음을 증명해보고 싶었다. 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지는 이미 뒷전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 그의 행동은 잠시 헛것을 봤다며 넘겨버린 과거의 자신마저 부정하는 셈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차석 연구원이 아니었고, 부정할 것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믿거나 말거나 그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감각은 사실이었다. 설령 잘못되더라도 어딘가에서 자신이 관측되었다는 정보만 남으면 상관없지 않나 싶었다. 그는 스스로 관측 대상이 되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바라보는 게 언제나 익숙했는데, 이제는 해양생물 관측은커녕 제 주변조차 볼 수 없게 되었다.

 

 문득 옛날 일이 생각났다. 언젠가, 우연히 시간이 맞아 잠뜰과 연구소 근처 시래기 국밥집에서 밥을 먹은 날이었다. 따로 먹어도 상관없었으나, 그냥 같이 먹죠? 상관없는데. 라는 잠뜰의 말에 이끌려 아무 데나 들어갔었다. 침묵이 싫어 표면적으로 한 대화는 몇몇 아이돌 팬 사인회보다 성의 없었다.

 

 쉬는 날엔 뭐 하세요? 아 저 성당 나가요. 아 그러시구나. 저도 천주교인데 성당은 잘 안 나가거든요. 아 그러시구나. 잠뜰 연구원님이 신을 믿는 줄은 몰랐는데. 의왼가요? 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하고 대화는 끝. 그러고는 뭐, 서로 세례명 이야기하고 밥 먹고 후식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씩 들고 각자의 연구실로 돌아갔다. 각자 수석과 차석 연구원이 되고도 서로는 딱 그 정도 사이였다.

  ‘틀어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마주하면 원인은 누가 봐도 뻔했으니.

 

 꽤 깊이 들어왔는지 플래시를 켜도 양옆은 별로 밝지 않았다. 늘 연구로 탐험해 왔던 심해의 한가운데에 직접 들어와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라기보단, 수족관에 방문한 것만 같았다. 갈라진 바다 사이를 걷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기분이었다.

 

 자신은 더는 수석이 될 수도 하물며 목표로 할 수도 없지만, 심해를 찍고 끝에 도달해야만, 심해의 모든 생물을 자신의 눈으로 봐야지만 후련할 것 같았다. 무엇도 자신의 것인 적 없었기에 더 그랬다.

 다리가 아프다는 감각도 없어지려는 찰나, 발에 무언가 차이는 정도가 아닌 커다란 무언가가 그를 가로막았다.

 

  ‘뭐지, 이게?’

 

 그건 커다란 바위였다. 배를 막는 암초처럼 그가 나아가려는 걸 막고 있었다. 굳이 넘어가고 싶다면 어떻게든 딛고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이 보였으나, 비현실적으로 매끈한 표면에 적힌 글씨가 그를 가로막았다.

 

돌아가

구름이 차오르니까

숨이 막힐 거야

 

  ‘뭐라는 거지?’

 

 그는 무시하고 발을 디뎠다. 어렵지 않게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석의 자리처럼.

 

 그리고, 구름이 보였다.

 

시선이 하늘로 미끄러진 것이다.

 

돌아가라는 말을 무시하고 넘어가 보려고 했으니 당연한 이치일까? 하지만 여기서 또 미끄러지면--

 

시선의 높이가 완전히 수평선과 비슷한 경계가 되려는 찰나, 거대한 파도가 그를 덮쳤다.

 

그러나 그는 가라앉지 않고 계속 떠올랐다.

구름이, 하늘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해—찰—다— 라는 말만이 어렴풋하게 귓가를 맴돌 뿐이었다.

 

*

 

 들리는 목소리는 희미했지만, 어투는 또렷했다.

 

  “수현 연구원님을 용서하진 않아요.”

  “네?”

  “이해도 못 하고, 수용도 못 하겠고.”

  “그게 무슨….”

  “솔직히 말하자면 신경조차 쓰고 싶지도 않고요. 해양 생태계 연구가 중요하지 차석이 무슨 생각을 하든 그게 중요한가. 연구원이 연구하려고 연구소 들어오지,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었잖아요, 우리.”

  “우리….”

  “죽이려 했던 주제에 소름 돋으니까 우리 강조하지 마시고요.”

  “….”

  “솔직히 말할게요. 바다가 갈라지는 틈을 구경하러 가든 모세의 기적 영접이든 뭘 하든 제가 상관 쓸 바는 아닌데요.”

  “네.”

  “바다는 좀 그만 귀찮게 합시다.”

  “….”

  “제가 귀찮은 건 뭐 그래요, 돌아서면 기억도 하기 싫은 사람이니까. 근데 이젠 놔줄 때도 됐잖아요. 그거 다 욕심이고 이기심입니다.”

  “당신이 뭔데?”

  “저요? 전 강릉 해양연구소 수석 연구원 잠뜰이라고 합니다.”

  “하….”

 

 눈앞의 사람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연구소에 있을 땐 늘 저런 표정이었지. 하나하나가 중요하다는 눈은 언제나 연구 장비를 볼 때만 하고 있었다.

근데 여기는 어디지?

 

  “수현 연구원님. 인간은 해양생물이 아닙니다. 아가미도 없고, 물속에서 숨을 쉴 수도 없어요. 스쿠버다이버 장비가 왜 있는데요?”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거죠?”

  “산 채로 밀어서 바다에 빠트리면 죽는다고요.”

  “아….”

  “하긴, 아니까 그랬겠지.”

 

 그러고선 잠뜰은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이 사람이 내가 알던 잠뜰이 맞나? 어딘가 이상했지만, 다시 보니 퍽 후련해 보였다. 두르고 있는 연구복은 전혀 무거워 보이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가 입는 게 맞았다는 것처럼….

 

  “어때요? 물에 잠겨보니까 죽을 것 같죠? 제가 그랬어요. 뭐, 전 그래도 누구랑 다르게 말렸지만.”

  “지금 사람 놀리려고 나타나신 건가요? 제 꿈에?”

  “아뇨? 살리려고요.”

  “뭐….”

  “제가 그렇게 좋은 사람이고 올바른 연구원인지 사실 저도 잘 몰라요. 뭐 그래도 어쩌겠어요? 살아야 할 사람은 살아야지.”

  “전 당신을 죽이려고 했는데도요?”

  “그렇네요. 그렇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제가 희대의 보살이고 성자라 살려주는 게 아니라, 수현 연구원님이 죽으면 그 죽었다는 사실을 신경 쓰게 될 것 아녜요?”

  “….”

  “난 그게 참 싫더라. 영원히 별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죽어버리면 어찌 되었든 옆에서 같이 연구하던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에 관심을 주고 감정을 쏟고 신경을 써야 하니까….”

  “하하….”

  “그러니까 죽지 마세요. 제가 죽었다는 사실에 신경 쓰지 않게.”

 

 그렇게 말하고선 잠뜰은 무언가의 뚜껑을 열었다. 수현이 마로제약과 협업해 개발한-인간에게는 해가 없지만, 해양 생물에게는 치명적인-해양정화제 마로였다.

 

  “뭐, 뭐 하려고?”

  “제가 사랑과 용서로 회개는 못 시켜서, 이런 거로라도 정화 좀 시켜보려고요.”

 

그러고서 잠뜰은 마로를 전부 쏟아부었다. 수현의 머리 위에, 보랏빛 끈적한 액체가 어깨를 타고, 팔과 다리를 타고, 쏟아진다. 분명 인간에게는 아무런 해가 없다고 했는데 신에게 천벌이라도 받은 것처럼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는다. 보라색으로 변한 눈앞에 겨우 보이는 잠뜰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보이지 않는다.

 

  ‘물이, 물이 있으면 금방 희석되어서 증발할 텐데, 물이….’

 

 어디선가 물이 차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수현은 눈을 떴다.

 

*

 

  “해양경찰입니다.”

  “네?”

  “정신이 드십니까?”

  “여, 여긴 어디죠?”

  “새벽에 웬 사람이 혼자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습니다. 웨일 호텔에서요.”

  “…신고자는요?”

  “강릉 해양연구소 소속 연구원이라고 밝히긴 했는데, 아시는 분입니까?”

  “아…. 네.”

  “하마터면 목숨이 위험할 뻔했습니다.”

  “….”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어도 이러지는 맙시다. 그게 뭐든 죗값은 살아서 치러야죠.”

 

 죽으려던 게 아니라 바다가 갈라져서, 내가 본 게 맞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들어갔을 뿐이라고 말해봤자 죽음을 기도하다 실패하자 그 충격으로 정신까지 나가버렸다는 취급을 받을 게 분명해서 수현은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 신고자분은 지금 어디 계신가요?”

  “아직 호텔에 계십니다. 감사 인사라도 하시려고요?”

  “아뇨, 그냥 궁금해서요.”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다 한가운데에 떠올라 계셨습니다. 걸어 들어갔다가 정신을 잃은 건지, 가라앉지 않은 게 진짜 천만다행입니다.”

 

 뒤이어 들어온 간호사는 기적적으로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말을 덧붙이며 그는 해양경찰과 함께 병실을 나갔다.

다시 완전한 혼자였다.

 

그 길로 수현은 잠뜰에게 전화를 걸었다. 감사 인사 같은 걸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본 걸 그도 봤는지가 궁금해서였다. 신호는 의외로 빨리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여보세요.”

  “잠뜰 연구원님.”

  “네.”

  “바다는…. 갈라졌었죠?”

 

 수화기 너머에서 어처구니없다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죽을 뻔했는데 그게 궁금해요? 진짜 제정신 아니네. 답은 뭐, 저보다는 그쪽 휴대전화에 있지 않겠어요?”

 

 수현은 통화를 끊지 않고 사진첩을 열었다. 휴대전화는 완전히 방수 처리라도 되었던 건지 자신과 같이 물에 처박혔을 텐데도 멀쩡히 돌아갔다. 모세의 기적은 신화에나 나오는 일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플래시를 켜 수십 장 넘게 찍은 사진과 영상은 온데간데없었다.

 

  “말도 안 돼.”

 

 그러나 자신의 휴대전화 사진첩에 없으면 바다가 갈라지고, 자신이 그 안에 들어갔다는 건 어디서도 증명할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이 겪었던 일이 실제든 아니든 결국, 또 져버렸다는 생각에서였다. 자신의 증명은 다시 아무것도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아니, 증명할 수 있다.

한 사람만 있다면 증명할 수 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

  ‘어차피 어디다가도 밝힐 수 없는 거, 당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나도 봤었다고 말만 해준다면.’

 수현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기억이 맞는다면 아직 체크아웃 시간은 되지 않았다. 퇴원 절차고 뭐고 옷을 갈아입고, 갖고 있던 소지품들을 모조리 챙겨 그는 그 길로 웨일 호텔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빠르게 달렸다.

 창밖에는 언제 널 집어삼켰냐는 듯 푸른 바다가 일렁였다.

 

*

 

  “뭐야? 미친.”

 룸서비스라도 오는 줄 알고 한가로이 아침을 맞이하던 잠뜰은 노크 소리에 문을 열어주곤 화들짝 놀랐다. 불과 몇 시간 전 갈라진 바다를 가로질러 걸어가던 수현이 구조 당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꽤 멀쩡한 얼굴로 눈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제 갈라지는 바다를 봤죠?”

  “아니, 죽다 살아나서 하는 말이 그거예요?”

  “네.”

  “뭐가 이렇게 대답이 자연스러워? 아무튼, 봤냐 안 봤느냐로 따진다면 봤죠.”

  “역시.”

  “얼마나 오래 거기 서 있었는지는 기억도 안 나고…. 아무튼 전혀 안 보일 정도로 멀어져서 그냥 돌아갈까 했는데, 갑자기 파도가 치더라고요. 그래서 신고했어요. 그리고 호텔로 돌아갔고요.”

  “그게 전분가요?”

  “네.”

  “결국, 절 따라오지 않았군요.”

  “미쳤다고 제가 거길 들어가요? 같이 죽을 일 있나.”

  “됐습니다. 어제 저희가 본 게 사실이라면.”

  “만족해요? 아무것도 얻은 게 없는데? 그냥 이상 현상을 눈으로 봤다, 그거 빼고 뭐가 남는 게 없잖아요.”

  “뭐, 언젠가 잠뜰 연구원님이 주변을 관측할 때 다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면 제가 조언 정도는 해줄 수 있겠죠.”

  “아직 죽었다가 덜 깨어난 거 같은데 병원으로 돌아가시지 그래요?”

  “이젠 괜찮습니다. 누구 말마따나 살아있어야 하니 살아야죠.”

  “네? 당최 뭐라는 건지.”

 

 잠뜰이 당황하든 말든 그는 그 말을 하고선 인사도 하지 않고 마치 새벽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같은 층에 있는 자신의 호텔 방으로 돌아갔다. 얼굴은…. 웃고 있었나? 잘 그린 그림을 인정받아 기분 좋은 유치원생의 표정 같기도 했다.

 

  “기껏 구해줬더니 고맙다는 말도 없네, 와, 뭐, 됐다.”

 

 잠뜰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체크아웃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꽤 남아 있었다. 죽게 내버려 둘걸, 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오늘 자신은 바다를 봤고, 앞으로 이 이상 현상이 계속 일어날지, 지속한다면 해양 생태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몰랐지만….

 

  ‘일단 사람 하나가 살았다는 게 중요하겠지….’

그러곤 잠뜰은 눈을 감았다.

꿈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

 

 잠뜰이 방을 치우러 온 호텔 직원의 손길에 놀라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체크아웃 시간이 지난 뒤였다.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반복하곤 서둘러 짐을 챙겨 나갔을 때 무심코 고개를 돌려 본 수현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영원히 못 볼 줄 알았는데, 훌쩍 나타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구나.’

 

 언젠가부터 아는 사람처럼 스며들듯 들어왔다가 시끄럽게 사라진 연구소 때랑은 정반대였다. 휴대전화에는 여전히 그의 번호가 있었으나, 잠뜰은 구태여 그의 번호를 지우지도 그렇다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냥 연락처가 있으니까, 라는 생각과 함께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어버리곤 호텔을 떠났다.

 

 딱히 뒤를 돌아 바다를 바라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얼마 뒤, 한때 큰 문제를 일으켰던 연구원이 죄책감에 스스로 물에 들어가 목숨을 끊으려 했다가 그걸 본 동료 연구원의 신고로 목숨을 보전했다는 기사가 났다. 이게 당연한 일상이라는 듯 CCTV 영상에는 갈라진 바다 같은 건 온데간데없었다. 당일 그 어디에서도, 바다가 갈라지는 현상 같은 건 관측되지 않았다고 했다.

 

 잠뜰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굳이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을 살려냈다는 말은 어디선가 전해져 다시 멋진 모험담처럼 연구원들의 가십거리로 떠돌았다.

 

  ‘그래봤자 호텔 앞바다에서 112를 누른 게 전부라고 나는….’

 

 여전히 자신은 남을 용서로 회개시키는 선인 같은 건 못 된다는 걸 수현이 증명해 주고 있었다. 자신이 굳이 바다까지 따라가 주고 112를 누르는 수고를 했음에도 그는 아마도 조금 변했을지언정 여전히 그대로일 것이다. 그래도 다시 자신을 죽이러 오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어쩌면 조금 안도했는지도 모른다.

 

 그날의 진실은 어차피 말해봤자 믿을 사람도 없고, 연구원에게 절대적인 객관적인 자료는 그걸 증명하기는커녕 비웃고 있었으니 잠뜰은 갈라진 바다를 보았고, 수현은 스스로 죽으러 들어간 건 아니라는 말은 영원히 하지 않기로 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둘만의 비밀, 이라는 과한 단어가 생각나는 탓에 잠뜰은 소름에 몸서리쳤다.

  

 잠뜰은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가끔 수현의 안부를 묻는 사람이 있었으나 그는 그냥 그냥 살려주기만 했을 뿐 모른다고만 대답했다. 뭐 언제부터 그렇게 친했다고. 아무튼, 모든 건 사실이었다. 그날 아침, 자신과 대화할 때 죽다 살아난 것 치고는 말도 안 되게 괜찮아 보였으니 어쩌면 지금도 그냥저냥 괜찮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냥 더는 생사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살아있으면 살아있는 거겠지 뭐. 그렇게 믿기로 했다.

 

 다시 여느 때처럼 같은 날들의 반복이었다. 연구하고, 밥을 먹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스쿠버다이버 친구에게 스쿠버다이빙 하기 좋은 장소를 추천해주고, 다시 연구에 매달리려 등대에서 미역 통조림과 생수로 밥을 때우기도 했다.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더는 미역 통조림과 생수의 맛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잠뜰은 연구소 근처 바닷가에서 파도에 밀려온 돌을 발견했다. 돌은 크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끄럽고, 판판해 눈으로 보기만 한다면 파도에 떠밀려온 것 같지가 않았다. 잠뜰은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표면에 무슨 글씨가 적혀있었던 것 같았는데, 그 부분은 파도에 침식당했는지 어쨌는지 읽을 수 없었다.

 

  ‘희한한데, 무슨 옛날에 세운 비석이었나?’

 

 뜬금없지만 보기 흉하지는 않아 그냥 두기로 했다. 어차피 들 수 있는 무게도 아니었다. 그냥 누가 걸려서 뒤로 미끄러지지나 않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진짜 비석이었다면 연구가 잘 안 풀릴 때 저기다가 제발 잘 되게 해달라고 소원이나 빌어야겠다. 잠뜰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 큰 돌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유독 오늘따라 구름이 짙었다.

 

*

 

  “이게 뭐야?”

 

 실로 오랜만에 쉬는 날, 별로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집에 누워 한가하게 유튜브나 보는 나날을 보내던 잠뜰은 현관 우체통에서 의문의 편지를 발견했다.

발신자는 수현이었다. 잠뜰은 믿기지 않아 눈을 두 번 깜빡였다. 지금요? 왜요? 나 집 가서 빨리 삼각김밥에 라면, 과자 먹어야 하는데? 아 물론 다시마 사리는 식감이 질려서 빼고. 아무튼, 잠뜰은 이유 모를 편지를 집어 들었다. 밥 먹고 천천히 봐야겠다라는 생각에 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걸 식탁 한가운데에 던져놓았다.

 

 역시 라면에는 미역 건더기가 없어야 맛있다니까. 잠뜰은 조금 설익은 라면을 입에 털어 넣으며 생각했다. 먹은 걸 치우고, 설거지까지 마치고, 3시간 동안 유튜브 탐방을 하고 나서야 그는 아, 맞다 편지, 하면서 일어났다.

  “대체 뭐라고 썼을까?”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질문이었다.

 

 소름 끼칠 정도로 밋밋한 편지봉투를 열자 소름 끼칠 정도로 밋밋한 편지지가 튀어나왔다. 단정하고 정갈하지만, 어딘가 끝처리가 미약한 글씨체로 (잠뜰이 생각하기에, 수현이 자신에게 보낼 법한 편지의 길이치고는) 꽤 긴 내용이 적혀있었다.

 

수현입니다.

그날 이후에 다른 강릉 쪽 바다에도 가보았는데 역시 아무것도 없더군요. 그날 제가 본 게 환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냥 의아해서 말입니다. 어째서 그때 저희 둘만 같은 걸 보았던 걸까요?

 

  “에이 씨, 우리 저희 이런 말 쓰지 말라니까.”

 

 순간 몰입이 깨졌지만 잠뜰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 쓰면 안 되지. 암.

무의식중에 그와 같은 부류로 묶이는 게 싫었다는 사실을 잠뜰은 불현듯 깨달았다. 물론 그냥 깨달았을 뿐이었다.

 

저는 더는 연구원이 아니니 당연히 연구도 할 수 없고, 잠뜰 연구원님 역시 아무 연구도 할 수 없으실 겁니다. 객관적인 자료가 모두 바다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그날 저희가 목격했던 게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희는 그냥, 선택을 받았던 겁니다.

퍽 사이비 종교 신도의 단어선택처럼 들리시나요? 하지만 이것 말고는 정말 설명할 길이 없네요.

어쩌면 바다에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 더 면밀하게 연구해라, 라는 바다의 신 비슷한 존재의 계시 같은 거라고 볼 수도 있겠죠.

 

  “소설을 써라.”

 

 딱히 신앙심에서 비롯된 말이 아닌, 그냥 비유나 자기합리화임을 알았음에도 잠뜰은 선택이라는 단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가 잠뜰님에게 편지를 쓴 이유는 별거 아닙니다.

새삼스럽지만 앞으로도 제 몫까지 바다를 계속 연구해주세요.

원래 네 몫까지 연구했거든, 이라는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미친, 독심술 해?”

 

 잠뜰은 소름 돋아 순간 편지를 내던질 뻔했다. 수현은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지금만큼은 아닌 것 같았다.

미쳐서 드디어 제3의 눈이라도 떴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 것조차 잠뜰님에겐 자의식 과잉처럼 느껴진다는 부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냥 전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뭘 하고 지낼지 궁금하지조차 않으시겠지만 바라건대 부디 뭘 해도 무탈하길 빌어주세요.

 

  “내가 왜?”

 

 아니, 이 말이 아니지. 편지 한마디 한마디 진짜 악성 댓글 달기를 참을 수가 없다. 죽일 뻔한 사람한테 무탈하길 빌어달라니 어이가 없네, 진짜.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비속어를 애써 억누르고 그는 편지의 마지막 부분을 기어이 펼쳐보았다.

 

추신.

미역 통조림은 서른 번 넘게 씹으면 그때부터 꽤 맛있습니다.

 

  “그래서 뭐라는 거야 이게?”

 

나 놀리려고 보냈나? 편지의 의도를 도통 알 수 없었으나 굳이 따져보자면 해양 연구원 일을 포기하지 말라는 소리 같았다. (잠뜰 딴에는 최선의 선한 해석이었다.)

 

  “원래 그만둘 생각 없었거든?”

 굳이 굳이 편지로 써서 보내니까 더 열 받네. 앞으로 내가 관둘 때까지 수석 자리 놓치나 봐라….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편지를 집었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인 편지봉투에 넣지 않고, 잠뜰은 서랍장을 열어 자석을 하나 꺼내 편지지를 통째로 냉장고에 붙였다. 편지를 보면 뭔가 알 수 없이 흥분하는 기분에 바깥에 꺼내 식혀놔야 할 것 같았다. 힘들 때마다 보면 안 좋은 쪽으로 힘이 나는 메시지. 구겨버리고 싶었으나 그 정도의 악인은 못 되는 탓에 붙여버릴 수밖에 없었다.

  “어쩌자는 건지 이젠 나도 모르겠다!”

 잠뜰은 소파에 털썩 걸터앉아 티브이를 틀었다. 장난이라도 치는지 봉사활동으로 사람 여럿의 목숨을 구한 한 종교인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좋은 일 하셨네.”

 항상 얼떨결에 얄팍한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야. 음. 잠뜰은 채널을 돌렸다. 요즘 유행하는 예능 프로가 나왔다. 그는 생각 없이 멍하니 그것을 들여다봤다. 다들 웃고 있었다. 다들 뭐가 저렇게 즐겁다고 웃지. 나는….

 

  “아, 안 되겠다.”

 잠뜰은 홧김에 한 행동을 홧김에 철회하러 편지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냉장고에서 붙은 편지를 떼 서랍 구석 어딘가에 처박아뒀다.

 

후련했다.

 

  “이게 맞지.”

 

 아침에 환기해서 그런가 상쾌한 기분은 배로 들었다. 그래. 나는 그냥 잠뜰이다. 수식어가 붙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지만 구태여 떼려고 하지도 않는. 그렇지만, 그런데도….

 

  ‘떼고 싶지 않은 수식어는 있어.’

 

 그는 지갑을 꺼내 명함을 뺐다. 강릉 해양연구소 수석 해양 연구원 잠뜰이라는 글자가 크게 눈에 들어왔다. 바로 이것. 난 선인도 뭣도 되고 싶지 않았지만, 오직 이것 하나만을 위하여.

 

  ‘달려가다가 지금에 왔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수석 연구원이 되고 싶었다. 계속, 그 과정에서 행했던 무수한 일들은 사실 부차적이었다. 착하려고 수석 연구원인 건 아니잖아.

그는 무심결에 다시 티브이를 보았다. 언제 채널을 돌렸는지는 몰라도 영화 속 악당이 눈물을 흘리며 감화되고 있었다. 주인공은 그를 매주 그랬듯 넓은 의미의 사랑으로 감싸준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정말 뻔한 패턴이군.

 

 잠뜰은 티브이를 껐다. 그리고 방금까지 편지지가 붙어 있던 냉장고를 바라보았다. 그는 일어나 서랍에서 다른 편지지를 꺼냈다. 수신자는 수현. 그러곤 이렇게 적었다.

 

잠뜰입니다.

다시 등대에 갈 일이 생기는 대로 미역 통조림을 먹어보겠습니다.

서른 번 씹어도 색다른 맛이 나지 않으면 등대에 있는 미역 통조림 모조리 들고 찾아갈 생각입니다.

각오하세요. 그때까지 살아계시고.

그럼 이만.

 

 음, 안타깝게도 25년 가을의 강릉 해양연구소 소속 수석 연구원 잠뜰 역시도 ‘좋은 사람’과는 거리가 먼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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