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항상 바다 근처는 유난히 여름이 뜨거울까. 나무에 찰싹 달라붙어 제 짝을 애타게 찾았을 매미도 기세등등하게 작열하는 태양 탓에 울지도 못하고 축 처져있었을 여름이었다.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찬란하게 빛을 내며 제 존재를 주장하는 태양빛이 모래사장 위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 위에 어른어른 피어나는 아지랑이는 마치 제게 살려달라 외치는 것 같아 금방 고개를 돌려버렸다.
코를 찌르는 비릿한 냄새에 저절로 잔뜩 미간이 찌푸러졌다. 손에 들린 휴대폰 화면이 뜨겁게 열 오르는 탓에 차라리 놓아버리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모래 알갱이가 사이사이에 끼어 피곤해질 게 뻔했으니 꾹 참았다. 화면에는 초록 검색창이 있었고, 그 위에 회백색 글씨로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문구와 함께 재촉이라도 하는 양 조그만 막대기가 껌뻑거렸다. 나는 그 위에 천천히 글씨를 써 내려갔다.
[비린내 제거하는 법]
비린내를 제거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
W. 아디
암막 커튼은 여름에 쓸모가 없다. 수년간의 여름을 겪어온 사람의 결론이었다. 일어나기 싫어 한참을 뒹굴거리다 겨우 눈을 떴으나, 커튼 새로 들어오는 햇빛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을 수밖에 없었다. 여름은 유독 해가 일찍 뜨는 계절이니 몇 시인지조차 추정할 수도 없어 결국 몸을 일으켰다. 시간은 오전 7시 28분. 예상보다 일찍 일어난 시각. 여름에는 늘 그랬다. 해가 빨리 떠서 그런 건지, 혹은 몸이 기억하는 건지. 커튼을 젖혔다. 거대한 빛 덩어리가 두 눈에 갑작스레 들어와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눈을 감지 않고 그저 그렇게만 보고 있었다. 하늘은 구름으로 잔뜩 뒤덮여있는 탓에 태양도 기가 죽은 듯싶었으나, 아랑곳 않고 작열하기 바빴다. 창문을 열었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 내음 덕에 기분이 좋았다.
오늘의 여름 상태는 양호. 흔히 사람들이 미화하는 여름처럼 구름 한 점 없는 말간 하늘이라던가,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 그에 맞추어 싱그러운 풀들이 나풀거리는 소리 따위는 전혀 없었지만 그것이 박덕개가 좋아하는 여름이었다. 물론 여기서 조금만 더 습해져도 박덕개는 양호라는 글자에 두 줄을 직직 그어버리고 최악이라 수정할 테지만, 아무튼 오늘의 여름은 양호했다.
***
교복까지 말끔하게 챙겨 입은 박덕개의 발걸음은 늘 그렇듯 바닷가로 향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기데에는 20분도 채 걸리지 않거니와, 오전 8시 40분까지만 도착하면 되었으니 오전 7시 43분인 지금은 여유가 있다 못해 한숨 자고 가도 될 판이었다. 평소에는 그렇게나 예민하던 감각이 유일하게 둔해지는 아침을 맞던 박덕개는 유독 여름만 되면 그렇게나 무던해질 수가 없었다. 박덕개에게 여름은 그저 아침잠이 많은 자신을 금방 깨우는 이상한 계절이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몸에 배어있는 습관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바닷가 앞의 모래사장을 가뿐히 밟자 꼭 손님을 환영하는 것처럼 타이밍 좋게 바람이 제 뺨을 스쳐 지나갔다. 한적한 바닷가 시골 마을. 이런 데서 사람 죽기 딱 좋다는데. 박덕개는 언젠가 자신이 읽었던 추리 소설의 내용을 떠올렸다 금방 접고 말았다. 아침 일찍 바다에 도착한 박덕개가 하는 일은 어쩌면 당신의 생각보다 더 별거 없다. 바다 보면서 멍 때리기. 그러다가 코 끝에서 물 비린내가 스멀스멀 올라오면 도망가기.
“ 바다는 비린내가 나서 싫어.”
어느 순간부터 박덕개가 줄곧 달고 다니는 한마디였다. 바다는 늘 비린내가 났고, 자신은 늘 그렇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뒤로 물러섰다. 몸에 배어있는 습관처럼.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 조용하며 지루한 바다 마을에서 자라난 아이치고는 결코 어울리지 않을 말과 행동이었다. 당연히 처음부터 그 때문에 바다가 싫어진 것은 아니었을 터. 흐릿하게 지워진 기억 속 한구석에서는 조그마한 주홍빛 머리의 소년이 거대한 바다 앞에 쪼그려 앉아 제 것보다 조금 더 진한 갈빛의 머리통을 쏘아보며 종알대는 모습이 이따금 반짝거리는 걸 보아, 싫어했다기보단 좋아했을 게 더 맞았으리라.
여름의 시간 중 아침이 제일 좋았다. 낮이 되면 쨍-하고 울리는 태양과 그에 맞춰 합주하듯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짜증 났고, 밤이 되면 바다의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가 피부에 눌어붙어 거슬렸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진해져 코끝을 찌르는 비린내는 최악이었다. 주머니 속에 잠잠하던 휴대폰이 울렸다. 오전 8시임을 알려주는 화면과 함께 경쾌한 선율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박덕개는 여전히 바다 끝에 거품이 일며 사라지던 파도을 응시하다 금방 시선을 거두어 휴대폰을 껐다. 이제 학교에 갈 시간이었다.
***
“전학생이다.”
전학생. 그 단어는 늘 쳇바퀴 굴리듯 지루한 생활을 하는 아이들에게 충분히 흥미가 끌릴만한 소재였다. 시끌벅적한 수다 소리를 배경음 삼아 창가를 응시하던 박덕개 또한 순식간에 잦아들은 소리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이런 시골 동네에 전학을 왜 왔을까. 박덕개의 생각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는지 이곳저곳에서 소근거리는 목소리가 박덕개의 의중을 증명했다. 박덕개는 느릿하게 눈을 옮겨가 어색하게 차렷 자세로 서있는 남학생의 행색을 훑었다.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체구, 부스스한 머리카락, 꼭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바쁘게 돌아다니는 눈동자, 그리고…
비늘?
아, 눈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박덕개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아까의 방향대로 돌려놓았다. 음, 하늘 좋네. 의미 없는 생각으로 뒤덮으며 애써 여전히 자신에게 똑바로 꽂히는 그 시선을 외면했다. 금방 집중하라며 호통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하는 수없이 그를 바라보았으나, 순전히 착각이었던 건지 다른 쪽을 보고 있는 눈동자에 얕게 한숨을 쉬었다. 그 눈동자는 더 이상 누군가를 찾지 않는 듯, 혹은 이미 찾았다는 듯 바쁘게 움직이지 않았다는 약간의 변화를 지닌 채, 그는 입을 열었다.
“정공룡.”
“...그게 끝?”
“아, 정공룡입니다. 잘 부탁해요…?”
뭐야, 저 애매한 물음표는. 어색하게 올라간 목소리와 존댓말. 차렷 자세로 눈썹을 한껏 치켜뜬 표정이 꽤나 우스웠다. 그러고는 씩 웃어 보이는 미소. 박덕개는 전학생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며 이상한 놈이네, 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이상한 놈. 그것이 정공룡에 대한 박덕개의 첫 감상평이었다. 아까의 당황스러움을 배반한 머릿속에 목덜미를 덮은 물고기 비늘 같은 것이 떠올라 마음 한구석을 자리 잡았으나, 작은 생선 가시 정도로 생각하며 꿀꺽 삼켜내고 말았다. 아무도 못 본 걸까. 나만 본 걸까. 내가 본 게 틀릴 리가 없는데. 허나 이 작은 학교에선 눈치 없는 게 이득이다. 박덕개는 작게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져버렸다. 신경 쓰지 말자, 신경 쓰지 말자.
“박덕개.”
“...응.”
“박덕개야?”
“......어, 내가 박덕갠데.”
“그렇구나….”
아침 수업이 끝난 점심시간, 박덕개는 늘 그렇듯 홀로 도시락을 우물거리며 창가를 보고 있던 중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집요한 시선에 못 이겨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선 들려오는 말, 박덕개? 너무나도 익숙한 자신의 이름이었다. 살면서 수천 번은 불렸을 이름이 그 애의 입에서 나오니 이상했다. 꼭 완전히 처음 불린 건 아닌 것 같았던… 아니지, 원래 이름이란 건 사람이 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존재이지 않았던가. 박덕개, 박덕개. 제 이름을 입안에서 여러 번 굴리며 내뱉는 꼴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건지. 슬슬 인내심이 바닥나던 참에,
“박덕개.”
“어, 내가 박덕개라고. 그만 좀 물어—”
“나 알아.”
애매한 마침표. 이번에는 또 어색하게 내려간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자기를 아냐고 묻는 건지, 아니면 나를 알고 있다고 하는 건지.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그것도 오늘 처음 보는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답지 않았다. 가령 오늘 처음 본 것도 아니고, 이미 꽤나 친한 사이였다고 가정한들 이딴 식으로 대화를 걸어대면 말이 안 통해 답답해서 죽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바닥나는 인내심을 따라 스멀스멀 올라오던 열기가 한순간에 식어버리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온통 물음표들뿐이었다. 할 말이 아직 남아있는 건지 입을 몇 번 벙긋대던 전학생은 교실 문이 열리며 반 친구들이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금방 자신의 자리에 가 앉았다. 전학생은 이상하다. 완전히 이상한 놈.
***
점심시간이 끝이 난 뒤 오후 수업은 잘만 흘러갔다. 어느새 박덕개는 아까의 찝찝함은 대충 넘겨버리고 최대한 빨리 집으로 귀가해 침대에 눕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가방을 챙겨 학교를 벗어나 익숙한 길가를 걸었다. 고개를 들었다. 새파란 하늘 위에 흩뿌려진 물감들이 박덕개의 얼굴 위에 어둡게 내려앉았다. 낮의 여름 시간이었다. 귓전을 때릴 듯이 울어대는 매미 소리, 그 사이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또 다른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 꼭 제 걸음 속도에 맞추는 듯 기가 막히게 맞아오는 타이밍. 뒤도 돌아볼 것도 없이 박덕개는 그 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았다. 우리 반에 새로 전학 온 애, 조금… 아니, 많이 이상하고 또 이상한 애. 목덜미 쪽에 물고기 비늘이 있는. 마지막은 잊어버릴까.
“야.”
멈칫.
“왜 따라와?”
답지 않게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특별히 타인에게 배려심이 있고 친절한 성격은 아니었으나 최소한 적은 만들지 말자- 가 인생의 모토였던 박덕개가 누군가에게 날카롭게 구는 것은 처음이었다. 박덕개 또한 그런 자기 자신이 낯설어 순간 멈칫했지만, 그런다고 이제 와서 수습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이 전학생 앞에서는 이성보다 감정이 훨씬 앞서는 것 같았다. 적잖이 당황한 듯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어색했다. 어쩔까. 뒤를 돌아볼까, 아니면 다시 걸을까.
“덕개.. 덕개야-”
아까처럼 불러대는 그 목소리가 짜증 날 정도로 거슬렸다. 꼭 어디에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아서. 분명 그럴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박덕개는 반사적으로 잊혀진 기억들을 하나둘 들어내다 관뒀다. 정공룡의 목소리는 박덕개가 자신의 기억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이한 힘이 있었다.
“왜 따라오냐니까.”
“...어, 음….”
“간다. 따라오지 마.”
“나 알잖아.”
“박덕개, 나 알지.”
몰라. 난 오늘 널 처음 봤는데 어떻게 알아?
박덕개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차마 육성으로 토해지지지 않았다. 무언가가 턱 막은 것처럼.
기억하지 못하는 뇌와 기억하는 감각이 충돌한다.
박덕개는 정정했다.
박덕개는 정공룡을 안다.
***
박덕개는 바다가 싫었다. 비린내가 나서, 코를 찌르는 비릿한 냄새가 싫어서. 그럼에도 바다 옆에 머물렀다. 강박적으로. 한때 누군가는 이 비릿한 바다마저도 사랑했으리라. 사랑하다 못해 없으면 살 수가 없어서 깊게 잠겨 영원을 약속했으리라.
“...아, 머리….”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 늘 그렇듯 온몸을 감싸는 포근한 침대, 눈동자를 살짝 굴리자 보이는 익숙한 벽지. 눈꺼풀을 느릿하게 두어 번 껌뻑였다. 어렴풋이 덕개야, 덕개야 하고 제 이름을 담는 그 목소리가 맴돌았고, 그것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었다. 몸이 무겁다. 꼭 물을 잔뜩 머금은 솜마냥 일어나기 어려웠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오다 금방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몸을 일으켜 방을 나왔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진 것. 풀잎처럼 싱그러운 녹빛과 비 온 뒤 보이던 눅진한 록색이 오묘하게 어우러진 색을 담은 물고기 비늘.
“...왜?”
일반적인 상황에서 비늘이 떨어질 일은 없다. 심지어 그냥 생선 비늘 같지도 않고 무어라 정의 내릴 수 없는 빛깔이 싱싱하게 도는 비늘이라면 더더욱. 분명 아침에 보았던 전학생의 목덜미를 덮고 있던 비늘이었다. 나는 아까의 기억이 없었고, 이 비늘은 명백히 정공룡의 것이고. 기절했나? 대체 왜? 제아무리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기민한 몸이었다고 한들 그렇다고 기절할 만큼 쇠약한 몸뚱아리는 아니었다.
암전 된 것처럼 어두운 기억을 되짚었지만 떠오르는 문장은 단 하나뿐이었다. 박덕개는 정공룡을 안다.
도대체 왜, 어째서. 하나둘씩 떠오르는 물음표들을 시작점으로 그 끝자락에 마침표로 끝나는 생각. 무엇을 던져내든 얻을 수 있는 것은 그것 하나였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생각들에 박덕개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맑아진 정신머리를 붙잡은 채 박덕개는 멋대로 이 생각의 끝을 내버리기로 했다. 몰라, 어디선가 스쳐지나듯 봤나 보지. *** 인간의 기억이란 얼마나 어리석고 하찮은 것인지. 정공룡은 어색하게 제 시선을 피해 애꿎은 책상만 바라보느라 고개를 숙인 박덕개를 보았다. 며칠 전 나 알지, 하고 물었을 뿐인데 건드리면 안 될 것을 매만진 것처럼 힘없이 주저앉은 그에 어지간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인간의 언어를 박덕개에게 잠깐 배우고 말았던 터라 서투른 편이긴 하다만, 적어도 나 알지-라고 물었을 때 충격적일 만한 건 단 한 개도 없지 않았는가?
하여튼 간, 예나 지금이나 박덕개는 이상했다.
“아이구, 어린아이가 어쩌다가…”
물에 잠긴 도시. 정체 모를 거대한 쓰나미가 대한민국을 휩쓸었고, 바다 근처의 부산은 물론 서울까지. 혼자 남게 된 어린아이를 향한 다정하고 잔인한 동정의 말. 마치 죽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그들에게 박덕개는 말하고 싶었다. 죽지 않았다고, 조금 멀리 떨어진 것뿐이라고. 허나 아이의 말을 제대로 들을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들 함부로 동정하고 멋대로 배려하면서 종점에는 결코 제 우리 안으로 들이는 어른은 없었다.
혼자 남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 같은 허울만 다정할뿐인 감정이 아니었다. 그저 같이 웃고 떠들 수 있는, 자신을 이해하려 들지도 않으며 공감 같은 건 해주지 않는, 어쩌면 조금은 이기적인 존재가 필요했다. 자신의 옆에서 웃고 떠들며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 존재가. 그리고 그것은 결코 인간이 아니었다.
“물고기?”
오묘한 빛깔이 돌던 녹색의 비늘. 그 작은 눈동자에 오롯이 담긴 빛깔이 반짝이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박덕개는 어인의 존재도, 어인이라는 단어조차도 몰랐지만 한눈에 보아도 자신과 다른 존재임을 알았다. 잠긴 도시 위를 유영하며 자유로이 헤엄치는 모습은 어린아이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물에 젖지 않은 머리카락에 손을 뻗었다. 무어라 말을 하려 입을 열었으나, 아이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왜 여기 있어? 라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에게 들리는 거라고는 물거품 소리 그 이상도 되지 않을 테니, 금방 입을 다물었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보면 경계하며, 절대 그들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위해를 당할 수 있고, 죽음까지 이르는 데에는 며칠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너도 그렇게 될 수 있으니 꼭 조심하려무나. 정공룡은 언젠가 할머니에게 들었던 말이 스멀스멀 울려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가 간과했던 한 가지의 사실은. 정공룡은 호기심이 많다. 어쩌면 조금 불필요할 정도로.
“나랑 친구 하자.”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일방적인 선언. 심지어 자신은 인간의 언어를 모르기에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이 그저 그렇게 박덕개의 마음대로 친구가 되었더랬다. 이상했다. 그 말 한마디면 친구가 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이 애만 그렇게 구는 걸까. 인간은 이상했고, 박덕개는 자신이 보았던 인간들 중 가장 이상했다. 그것이 정공룡의 박덕개에 대한 첫 감상평이었다.
이름은 박덕개. 서울인가 하는 지역에서 왔고, 도시가 물에 잠기는 바람에 어쩌다 보니 이곳으로 떠밀려왔다—가 그의 스토리였다. …솔직히, 그냥 흘러가는 대로 듣고 있었던 탓에 자세한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잘 몰랐다. 너 지금 제대로 안 듣고 있지? 움찔. 됐어, 어차피 넌 모르는 게 나아.
“날 불쌍하게 여기지 않잖아.”
아이의 조그마한 손이 잔잔하게 일렁이던 물결을 스쳐갔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정공룡의 꼬리가 물속을 가르며 첨벙거리는 소리뿐이었다. 하늘은 끝도 없이 파랗고, 흰 물감이 덧칠해져 있었으며 새벽의 공기를 미처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물내음, 태양빛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바다가 반짝였다.
“난 바다가 싫어.”
“내가 살던 곳을 다 집어삼켰으니까.”
“바다는 욕심쟁이야?”
몰라.
그래도 난 바다가 좋은데.
“...넌 바다 없으면 살 수 없으니까 그렇겠지.”
정공룡은 바다가 없으면 살 수 없다. 바다를 위해 존재하는 몸이었고, 그것은 결코 박덕개와 어울릴 수 없는 이유기도 했다. 허나 기이하게도 박덕개는 꿋꿋이 정공룡을 만나러 왔다. 친구가 필요했던 소년에게도 인간은 지긋지긋했으니.
“어른들한테 들키면 안돼.”
왜?
“사람들은… 자기랑 다른 존재를 보면 틀렸다고 생각하고 제거하거든.”
죽을 위기에 놓인 인간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기적인 바다는 사람들을 집어삼켰고,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이들은 아예 정신을 놔버리기가 대다수였다. 바다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기이한 행위들이 마을에 잔뜩 깔렸고, 그들의 눈에 어린아이들은 너무나도 만만한 대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공룡이 발견된다면… 박덕개는 입을 열었다 다시 다물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인에게 그런 짐을 짊어주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몇 백 살은 한참 더 어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직도 바다가 싫어?
아니. 이젠 괜찮아.
왜?
너랑 얘기할 수 있잖아.
난 말을 못하는데.
그래도 난 다 알아들을 수 있어.
박덕개가 조금 이상해졌다.
원래도 이상한 애였지만 요즘은 더. 바다는 비린내가 나서 싫어. 박덕개가 바다를 싫어한다고 불평한 것은 한두 번 일도 아니었으나, 정공룡과의 대화가 끝나고 나면 꼭 따라붙는 한마디였다. 습관처럼, 혹은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언제는 바다가 싫지 않다면서. 흑색으로 뒤덮인 하늘이 점점 짙은 남색으로 옅어지는 시간, 해가 바다의 수평선을 아직 다 올라오지 못하고 머리만 살짝 보일 때면 찾아오는 그 작은 소년은 해가 완전히 떠올라 아침이 밝아올 때 자리를 떠났다. 박덕개는 제 나름대로 이모가 부르신다, 아저씨를 도와야 한다며 일리 있는 핑계를 댔지만 10살 배기 소년의 거짓말은 정공룡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늘 새벽부터 점심까지 같이 있던 일상이 조금씩 어그러지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모른척할 수 없었다.
“아저씨가 아침부터 빨래 너는 것 좀 도와달라고 하셔서. 오늘은 이만 가볼게.”
거짓말.
“...공룡아?”
마음속에 깊이 묻어두었던 것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왜 화가 났지? 거짓말을 해서? 자꾸만 날 피하려고 들어서? 정제되지 않는 물음들이 머릿속을 타고 내려와 심장을 두드려댔다. 붙잡은 팔을 한참 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무언가 걸리는지 안절부절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고개가 보였다. 그때 정공룡은 곧바로 직감했더랬다.
아, 걸렸구나.
간사한 인간들이 또다시 제게서 친구를 빼앗으려 드는구나.
***
“바다의 신이시여, 이 비천한 인간들에게 노여움을 푸시옵고…”
비릿한 바다 냄새가 코끝에 아릴 정도로 찔렀다. 이미 저 심해 속에 가라앉았을 선착장을 억지로 끌어와 만들어낸 엉성한 나무 판자, 그 끝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행색. 바다에 저항하는 것을 마침내 포기하고 순응하는 저 모양새. 박덕개는 헛구역질이 올라와 정신을 놔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사람이 일정 수치 이상 미쳐버리면 이렇게 되는 걸까? 풍덩- 무언가 묵직한 것이 바닷속으로 빠지는 양 시원한 소리와 함께 박덕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저들은 그 무엇도 아니다. 바다의 제물도, 하물며 저 깊은 곳을 자유로이 헤엄치는 어인도 아니다. 정말 이게 최선인 거야? 정말? 눈을 차마 뜰 수 없어 감으면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들이 뒤덮여 울렁거렸다. 바다의 신이 정말 있을까? 있다면 왜 우리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였을까. 아, 싫다. 박덕개는 역시 바다가 싫었다. 인간의 본성이 아무리 이기적이고 간사하더라도 결국 자신 또한 인간이었으니 생존하고픈 열망이 펄떡여 심장을 시끄럽게 두드려댔다. 박덕개는 나직이 심호흡을 했다. 숨을 들이쉬자 공기조차 비릿했고, 그 숨을 내쉬자 입안이 바짝 말라 쩍쩍 갈라지는 기분이었다. 머리가 핑 돌았다. 그리고 자신이 눈을 감았을 때부터 느껴지는—
시선.
“덕개야, 정말 친구는 안 데려오는 거야?”
“언제까지고 외롭게 바다에 둘 수는 없잖니.”
“아저씨가 같이 가줄까? 우리 마을 소개 좀 해줘야지.”
싫어요.
안돼요.
하지 마세요.
***
오늘은 왜 또 오지 않을까. 온갖 핑계를 다 대더니 소재가 떨어졌나. 정공룡은 느릿하게 주변을 훑었다. 어슴푸레 빛을 밝히고 있던 해도 이젠 높이 떠올라 물표면에 비쳐 반짝이는 것들이 일렁였다. 물에 잠긴 마을은 고요하다. 이따금 바다가 넘쳐 이 지상 위를 넘실거릴 때 들려오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이 고요함을 가르고 제게 말을 걸어오던 그 작고 하찮은 목소리가 없는 탓이었다. 궁금하지도 않던 자기네들의 언어를 가르쳐 주는 그 목소리가 정공룡에게 나름의 재미 요소였는데.
박덕개를 기다리며 홀로 물장난을 치던 정공룡의 눈동자에 주홍빛이 깃들었다. 수면 위의 반짝이던 것들도 이내 미미하게 숨을 죽였다. 분명 원래였다면 이 정적이 익숙했을 터, 자신이 이 정적에 낯설어하는 건 모두 박덕개 때문이었다. 한풀 기세가 꺾인 태양이 바다 속으로 점점 들어오고 있을 쯤에, 저 멀리서 어렴풋이 익숙한 형체가 보였다. 박덕개와, 그보다 두 배 정도는 커 보이는 인간들.
“도망가!”
바다의 고요함을 가르던 그 작고 하찮은 목소리가 긴박한 어조로 짧게 울렸다. 더 이상 들려오는 말은 없었다. 도망가. 그 한마디로 의도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정공룡은 어쩌면 예상했을지도 몰랐다. 뭐 때문에 박덕개가 굳이 바다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몸 앞에서 비린내가 난다고 투덜댔었는지, 억지로라도 자신에게 정을 떼려 되지도 않는 구실로 자리를 피했는지. 정공룡은 알고 있음에도 외면했다. 최대한 오랫동안 이 소년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으니까. 그 지루한 공백을 채워줄 소년이 필요했기에.
인간은 이기적이다. 그러나 인간보다 이기적인 존재가 있다. 소년은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존재가 필요했고, 그 존재는 소년에게 다가올 위험을 알고 있음에도 모른척했다. 자신의 재미를 위해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혼자는 이제 지겨웠으니까.
탁-!
그런데 덕개야, 내가 도망치면 넌 어떡할 거야?
내가 도망치면 저 사람들은 널 바다의 제물로 바치려 들겠지.
인간은 바다의 제물이 될 수 없다. 바다 없이도 살 수 있는 몸이니.
그러나 자신은?
바다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몸.
그러니 바다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
바다에게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어야만 하는 존재.
바다에 잠겨 영원을 다짐해야만 하는 존재.
바다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
어인은 이기적인 선택을 하기로 했다.
혼자가 되기 싫었던 어인은 자신의 친우를 혼자 두었다.
그리고 그렇게, 바다에 잠겨 영원을 다짐했더랬다.
***
박덕개가 어떠한 아무 연유도 없이 정공룡의 한마디에 픽 쓰러졌던 때 이후로 직접적으로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일은 없었다. 이따금 느껴지는 집요한 시선이 박덕개를 향했으나, 필사적으로 모른 체 마주치지 않으려 넘어가기를 벌써 열댓 번은 되는 것 같았다. 차라리 그때처럼 쓸데없이 의미심장한 말이라도 건네는 게 나았을지도 몰랐다. 정공룡은 이러나저러나 박덕개의 심기를 의도치 않게 살살 긁어대는 데 재주가 있는 듯했다.
“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박덕개는 그 끈질긴 시선에도 꾸준히 의식하지 않고 넘어갈 정도로 인내심이 긴 사람이 아니었다.
“...너, 나 알지.”
아무말 없이 바라보는 갈빛 눈동자에 나지막이 덧붙였다. 누군가에게 들어본 적이 있었던 말이 박덕개의 목구멍에 턱 막혀 고이다 결국 내뱉어졌다. 당최 무슨 생각과 기분이 담겨져 있는 건지 감히 추측조차 할 수 없는 그 눈동자를 박덕개는 똑바로 직시했고, 그 눈동자는 도르륵 굴러가다 애매하게 자신을 빗겨나가 허공에 머물렀다. 한참의 정적이 지나고 나서야 열리는 그 입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아직도… 바다가 싫어?”
무슨 소리냐고, 갑자기 웬 바다 얘기를 하냐고 묻고 싶었다.
“아니. 이젠 괜찮아.”
또다. 박덕개는 또다시 무언가가 턱 막혀 그것을 육성으로 내뱉지 못하는 경험을 또 한 번 겪었다. 심지어 자신이 말하려던 의지와는 전혀 다른 말을 내뱉기까지 한다. 습관처럼, 또는 그래야 한다는 듯이. 기억하지 못하는 뇌와 이전의 일을 똑똑히 기억하는 감각이 충돌한다. 우리의 신체는 머리의 전체적인 통제 하에 움직인다. 그러나 기억의 한해서는 늘.
“왜?”
“너랑… 얘기할 수 있잖아.”
감각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
쏴아아 -
마을에 비가 왔다. 그냥 비도 아니고, 폭우 수준으로 굵은 물줄기가 바닥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낼 정도로. 폭우주의보가 발령되어 마을 사람들은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진동하며 폭우주의보 문자로 뒤덮인 화면을 꺼버리고 후드를 뒤집어쓴 채 집을 나섰다. 우산을 펴니 얇은 천에 부닥치는 빗소리가 귓가를 때려 박았다. 질척해진 흙더미 탓에 운동화가 더러워지고 있었지만, 신경 쓸 겨를 따위는 없었다. 막대한 양의 비 때문에 순식간에 불어난 바다가 모래사장을 조금조금씩 집어삼켰다. 비가 오는 날에는 바다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비린내가 심하니까. 역시나 코끝을 쿡쿡 찌르는 비린내에 무표정하던 박덕개의 얼굴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물에 잠긴 도시에서 비가 오면 어떻게 될까. 물이 불어나는 건 당연지사, 그 커다란 도시를 먹어치운 욕심 많은 바다는 이제 인간들까지 탐하려 들었다. 온갖 강한 척 허세를 부리던 인간들은 금방 겁을 먹고 달아났고, 그 인간들 중 하나 또한 자신이었다. 물론, 제 의지는 아니었지만. 바다는 무서운 곳이야. 난 안 무서운데. 바다를 좋아하는 애가 있거든요. 바다를 너무너무 좋아해서, 그 속에 잠겨서 영원을 다짐하는 애가 있어요. 세상에, 너 도대체 어떤 아이와 어울렸던 거니? 괴물이 틀림없어. 제 친구는 괴물이 아니에요. 신발코 끝이 서서히 젖어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축축하고 기분 나쁜 감각.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는 평소보다 두세배는 더 집요하게 박덕개의 팔을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오늘의 여름은 정말 최악이었다. 자신이 겪었던 수년간의 여름들 중에서도 가장.
“덕개야.”
어슴푸레 얇게 보이던 비늘이 선명해져 그의 목덜미를 덮었다. 오묘한 빛깔의 초록이 한층 더 진해져 눅진한 것이 박덕개의 눈동자를 가득 담았다.
“비린내를 제거하려면.”
“바다에 들어가면 돼.”
“비린내를 몸에 잔뜩 묻혀서,”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싫어할 수 없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