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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은 진부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현생 인류의 손으로 완성된 종교화의 레퍼런스를 본뜬 고리타분한 도입부. 축적된 시간의 무게로 이루어진 흐름이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소리 없이 사뿐히, 그러나 무시하지 못할 부피감으로.

 

 어느 날, 하늘에서 천사가 떨어졌다.

 

 한눈에 보기에 그것은 선과 악의 관념에서 매우 동떨어진 모습을 띠고 있다. 힘없이 널브러진 팔뚝 아래 무참하게 짓눌린 날개부터가 사리에 맞지 않다. 그것의 날개는 순백의 무결성으로 아름다움을 강조하긴 고사하고 약간의 충격에도 부스러질 듯 남루하다. 시맥 뻗은 모양이 무늬로 여기어질 반투명 재질의 깃이 하나하고도 둘, 수십하고도 수백이 모여 거대한 새의 시익을 모방한다. 한때 인류가 가장 선망하였던 것을 기망으로 채워 이루어낸 형상. 형용치 못할 불쾌감이 목구멍을 스멀거려 그는 끔찍한 기분에 시달린다. 도무지 불가능한 것. 존재해서는 안 될 것. 이치에 어긋난 무언가의 탄생을 꼼짝없이 직면하고 말았다, 고. 그는 생각한다.

 

 그것이 신성과 죄 없음으로부터 괴리되었으리란 추측은 진실에 진배없다.

 

 피부 아닌 뇌를 통해 끼쳐오는 이질성이 속을 더럽힌다. 아무런 상해를 입지 않았음에도 배안이 누더기로 변해가는 감각을 떨치어낼 수 없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그것의 날개로부터 시선을 돌린다. 사고가 행동을 뒤따른다. 사람과 비슷한 것이 하늘에서 추락한 사태임에도 주변이 고요한 게 뒤늦게 수상쩍다. 머리의 방향을 바닥에 엎어진 그것에 고정하고 그는 신중하게 좌우를 살핀다. 곁 스치어 지나는 이들은 멈추어 설 기미가 없다. 이 순간 현상을 경험하는 자는 오직 그 하나뿐이니. 무슨 오류가 일어난 건지 짐작되지 않는다.

 

 버그 픽스 신고 번호를 떠올린 그가 다시 시선을 내리었을 때, 그것은 눈을 뜨고 있었다.

 

 희멀건 낯짝, 굵고 짙은 눈썹 아래. 감기지 않는 눈이 그를 바라본다. 두려워 말라¹ 창백하게 굳은 얼굴이 속삭인다. 반사적으로 퍼질 뻔한 비명을 간신히 억누르고 그는 묻는다. 누구세요? 그것이 답한다. 거룩하지 않은 자의 사자.

 

  “아니, 뭐 하시는 분이시냐고요.”

  ‘거룩하지 않은 자의 일을 대신하는 분.’

  “아… 네…….”

  ‘더 안 물어봐?’

  “…그래서 어떤 걸 대신하시려고 제 앞에?”

  ‘네가 아까부터 나한테 하고 있는 거.’

 

 질문의 의의를 잃어버린 입이 다물린다. 그가 함묵하자 이번에는 그것이 묻는다. 너는 누구지? 어렵지 않은 질문이다. 제 이름은 박덕개라고 하고요. 대학생이에요. 당신이 누구시냔 질문엔 바로 이렇게 답해야 함을 전달하듯 간결하고 모범적인 대답이다. 바닥에 늘어진 사지를 모아 반듯하게 누운 그것이 심드렁히 고개를 끄덕인다. 알고 있어. 하나로 묶인 머리카락이 그것의 짧은 동작에 맞추어 맨바닥에 비비어진다. 흐트러진 흑발 사이 별빛이 등색으로 아른거린다.

 

 

 

 

 

 소통 부적합. 제어 불가. 피드백: 대상을 구분 짓고 질문에 대한 대답에 유의할 것.

 

 

 

 

 

 각별이 본인을 일컬어 천사라 언급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만약 그랬다면 덕개는 자신이 추론한 그것의 정체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푸르스름한 날개와 고명도 반사광으로 만들어진 광휘, 짙은 흑발 위에 펼쳐진 네온 옐로우 빛깔 후광 따위……. 그것의 모든 면모가 역사 속 종교화에 비할 바 없이 난잡하다.

 

 일견의 외면부터도 종교적 카리스마가 부재한 자다. 스스로 천사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면 남아있던 신비로움조차 아주 휘발되었을 테다. 하므로 덕개가 그것을 천사라 명명하였던 건 사소한 직감과 보편적이지 못한 몇 가지 경험에 의한 것이지, 신분 증명을 통한 확고의 인증이 아니었다. 결국 신이란 절대적 다수가 목격하지 못한 관념적 존재이므로 누군가의 안에서 천사는 저것과 비슷한 형상으로 빚어지는 걸지도 모른다, 고. 그는 이해한다.

 

 홀로그램. 반투명. 평면 이미지의 부자연스러운 입체성.

 

 인류가 본능적으로 예술의 필요를 깨우친 이래 상상력은 나날이 발전하였고 오래된 관념을 탈피하련 시도 역시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불가지론자와 무신론자의 발생이 이어지며 무용해진 천국의 지위가 이상의 공간에서 이른바 소재 덩어리로 전락하는 동안, 선과 악은 계속하여 겉가죽을 바꾸어 써야만 했다. 그것은 매개에 따라 대체로 고지식해졌고 이따금 졸렬해졌으며 가끔은 자비로워졌다. 그는 다양성을 수용할 줄 아는 어른이었으므로 치장에 불과한 모양새에 집착하지 않아야 함을 각별과 만나고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그러나 작금은 망상의 시대가 아니다.

 

 공허한 믿음과 불안정한 과학으로 생을 연명하던 시대는 이미 저물고 없다. 초목이 사라지어 먼지로 뒤덮인 회백색 행성에서 인류는 전신을 고철 덩어리에 맡기고 자유를 맞이했었다. 파괴된 환경의 지속되는 멸망이란 골칫거리에서 해방된 그들은 흙으로 빚어진 땅이 아닌 영과 일로 이어진 길고 긴 흐름을 유영하며 살아가야만 했다.

 

 그는 손가락을 비비어 갈라진 표지에서 묻어나온 가죽 조각을 떼어낸다. 거칠게 넘겨도 구김이 가지 않도록 원본과 똑같이 재현된 얇은 종이 위로 가늘게 뭉친 가죽 조각이 떨어진다. 이토록 오래된 서적을 들추어 보아도 짐작되는 바가 없다. 믿음이 사라진 시대에 거룩하지 않은 신의 사자가 내려와 이루어야만 하는 업이 대관절 무엇인지. 재로 덮여 푸르지 않은 하늘 아래 죽은 풀을 밟고 살아본 경험이 없는 그로서는 아리송하기만 하다. 하다못해 속 시원히 의도를 밝혀주면 피차 편하련만. 각별이 덕개에게 요구하는 바란 집요하도록 일관된다.

 

 그것의 질문에 대답할 것.

 

 천사는 그에게 세상을 구하거나 교세를 확장할 것을 명하지 않았다.

 

 종내 도움이 되지 못한 책을 덮어 빈자리에 끼워 넣는다. 종잇장 틈새로 떨어진 조각을 빼내진 아니한다. 그 정도 오류는 도서관 시스템에 의해 알아서 처리될 것이다. 멀끔하게 복구된 책등이 눈 깜빡할 사이 잘못된 위치에서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그는 뜯어진 흔적 없이 깨끗해진 가죽 커버를 문질러 연약하도록 재현된 부위를 뜯어낸다. 손끝에 묻어난 조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류로 처리되어 사라진다.

 

  “저는 이루고 싶은 소원이 없어요.”

 

 현관에 멈추어 선 덕개가 각별에게 건넨 건 정다운 인사가 아니다. 그는 그것과 평범한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다. 시도를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지금은 맥락 없이 이어지는 선문답만이 서로가 나누는 소통의 전부다. 소파에 늘어진 머리가 음성에 반응하여 치켜 오른다. 팔걸이 아래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짧게 산들거린다. 빛을 반사하지 않는 탁한 눈동자가 덕개에게 향한다. 느른하게 풀린 눈꺼풀 두어 번 깜빡거린 그것이 선선하게 되묻는다.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이거 아니에요?”

  ‘뭔데.’

  “당신 같은 존재가 나타나면 소원이나 부탁을 들어주는 게 일반적인 흐름이던데.”

  ‘얘 웃기네. 혼자서 김칫국을 얼마나 들이마신 거야?’

  “아니면 아닌 거지 사람 민망하게.”

  ‘얼마나 들이마신 거냐니까.’

  “그것도 질문이었어요?”

 

 당연하지. 명확하게 단정 지은 그것이 의미 없는 질문을 반복한다. 얼마나? 그는 한숨을 내쉬며 신발을 벗는다. 아마 한 세 바가지 정도. 질 낮은 낄낄거림이 이어진다. 인간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도 창작물에 흔히 나타나는 천사의 상 중 하나다. 그는 무심코 힘이 들어갔던 주먹을 풀어 손끝을 늘어트린다. 울컥 치고 올랐던 감정이 한순간에 꺼져 잠잠해진다. 축 늘어진 손을 일별한 그것이 치켰던 고개를 도로 내리고 천장을 올려다본다. 장판에 닿았던 머리카락이 허공에 흐느적거리며 흔들린다. 그는 관성적으로 흔들리는 흑발에서 반짝이는 별빛을 응시한다.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²

 

  “정말로 구원이에요?”

  ‘구원?’ 

  “중요한 계시를 내리러 왔다든가.”

 

 짙은 눈썹이 반응을 내보이듯 과장되게 휘었다가 내려간다. 무표정한 얼굴을 깨트리지 아니하고 그것이 이기죽거린다. 내 목표가 구원이면 네가 뭘 어쩌게. 그는 잠시 고심하듯 진지한 표정으로 침묵하다가, 오래지 않아 수긍한다. 하긴 그렇죠.

 

  “세상의 종말이니 종의 멸절이니. 미리 듣는다고 뚝딱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긴 해요. 내가 뭐라고.”

  ‘알면서 왜 물어.’

  “궁금해서요.”

  ‘뭐가 또.’

  “인간이 스스로 잘못된 점을 정정할 수 있는 세계에도 신의 구원이 필요한지?”

  ‘너희들이 죄가 뭔지 알기나 했던가.’

  “몰라도 모든 게 영과 일로 이루어진 이곳에선 얼마든지 고칠 수 있죠.”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도덕적 연대를 바라고 써 붙인 종이 한 장보단 생성된 쓰레기를 아예 삭제하는 방식이 세상을 유지하기엔 훨씬 효율적이며 이롭기까지 하다. 전자는 개개의 양심에 명운을 걸어야 하지만, 후자는 간단한 원칙으로도 현상이 유지된다. 영과 일로 이루어진 세계라는 건 바로 그런 게 가능한 곳이다.

 

 하나의 행성 내에서 먹이사슬 최상위 포식자로 올라섰음에도 욕망을 우선시하여 도태의 길을 벗어나지 못한 인류는 밟고 설 땅을 잃어버린 후에도 편해지고자 하는 욕망을 놓아버리지 못하였다. 손짓 한 번이면 접시에 나뒹굴던 음식 쓰레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세계. 망가진 기물은 현실에서 가져온 원본 이미지를 삭제하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복구할 수 있는 세계. 구태 움직여 청소하지 않아도 늘 청결한 집과 더는 없는 것이 되어버린 바깥의 오염. 이 세계는 자체가 결백하므로 항시 청명한 하늘도 이상 현상이 아니다. 그는 소파의 맞은편, 벽 한 면 완전히 차지하고 덮어버린 디스플레이를 돌아본다. 대기 화면을 따로 설정하지 않아 떠 있는 기본 이미지가 시각 정보로 입력된다. 파란 하늘. 흰 구름. 싱그러운 잔디. 나무 한 그루.

 

 문득 그는 발밑으로 풀이 자라나는 듯한 착각을 느낀다.

 

  ‘너는?’

 

 헛숨을 들이킨다. 뺨까지 흘러내린 식은땀이 윤기 흐르는 장판 위로 소리 없이 떨어진다. 모르는 사이에 수그린 허리를 어설프게 펴내고 소파에 있을 그것과 시선을 맞춘다. 완벽하게 곧은 자세로 앉은 천사의 형상과.

 

  “…저요?”

  ‘달리 누가 있나.’

  “저, 뭐… 왜…….”

  ‘모든 게 영과 일로 이루어져 있다며.’

  “네. 그랬죠.”

  ‘그건 즉 사람도 영과 일로 이루어져 있단 소린데.’

  “…….”

  ‘너도 여차하면 고칠 수 있는 정보의 집약에 불과한가?’

 

 창백하고 길쭉한 손가락이 그를 향해 뻗쳐온다. 중심 언저리가 뾰족한 핀으로 꿰뚫린 것만 같은 거짓된 감각. 그는 묵직해진 명치를 손바닥으로 더듬거리어 가린다. 속이 울렁거려 덩달아 시야가 일그러진다. 그것은 계속하여 알맞은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 통증은 느껴지지 않는다. 제아무리 몸을 굽히고 굽히어도.

 

  ‘덕개야.’

 …….

  ‘너 살아있니.’

 

 바닥에 떨어졌던 땀방울은 마른 흔적도 남지 않고 지워졌다. 그런 세계다.

 

 

 

 

 

 여섯 번째 핫픽스. 비판적 자기 판단 과잉. 필수 업데이트 사항: 추상개념의 간략화.

 

 

 

 

 

 그는 그것이 요구하는 질문과 답변의 시간이 달갑지 않다. 각별의 물음은 그것이 내보이는 형상과 같이 규격을 가지지 않고 난잡하다. 어제의 질문과 오늘의 질문이 다르고, 그러므로 오늘의 질문과 내일의 질문도 죄 다를 것이다. 답변이 궁해질 때마다 찾아드는 초조감과 일정한 음성으로 거듭되는 물음. 실체 없는 몸. 상공에서 추락하여도 흠집 하나 남지 않는 비물질의 특성. 사이버 유토피아에 등장한 천사는 존재의 이질성에 맞추어 현생 인류와 다른 설정값을 지니고 있다. 하여 물리적으로 그것에 닿을 방도란 아예 없음에 가까우므로, 회피하지 못하고 직면해야만 하는 허상이란 이렇듯 유해하다.

 

 그는 무력감에 젖어 읽고 있던 자료를 책장으로 돌려놓는다. 손바닥에 묻은 먼지를 바닥에 털어내면서도 한숨만큼은 삼키었다. 도서관에선 정숙할 것. 절대적인 개념 앞에서 개인은 무력하니 별수 없겠다. 그러나 아주 만약, 그조차 백스페이스 몇 번으로 지워질 코드 쪼가리의 개념에 불과하다면…… 어찌하여 고통에서 해방되지 못하는가…….

 

  ‘네가 인간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경쾌한 음성이 그의 상념을 마저 잇는다.

 

  ‘아니면 인간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따라붙은 그림자가 묻는다. 뭐가 좋을까. 뭐로 하고 싶어? 발날을 기웃거리며 그림자는 선택을 종용한다. 그는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재촉한다. 발밑으로 그와 함께 나란한 그림자가 기지개를 켜듯이 크게 부풀어 오른다. 활짝 펼친 날개의 형상이 보편적으로 표현되는 악을 닮아있다.

 

 한 차례 비일상을 겪어낸 그는 그림자로 나타난 그것의 존재를 최초보단 쉬이 받아들이고 말았다. 질문은 나의 것이란 고고한 태도 유지하시는 불신실한 신의 사자와 달리 그림자는 초장부터 자신의 정체를 모호하지 않은 형태로 전달하여 왔다. 나를 뭐라고 부르고 싶어? 그렇게 말하고 그림자는 두 가지 택지를 건네었다. 악마, 아니면 누군가의 대리자. 느낌상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택지였으므로 덕개는 그림자의 정체가 악마일 것이란 추측에 더욱 무게를 실었다. 어느 화창한 오전, 도서관의 유일한 응달에서 기어 나온 악마는 보편적 악의 형상을 표방한 그것의 외관에 걸맞게 질 낮은 유희를 추구했다.

 

  ‘덕개야.’

  “왜요.”

  ‘안 고를 거야?’

  “꼭 지금 골라야 해요?”

  ‘지금 골라도 되고, 나중에 골라도 되고.’

 “나중에 고를래요.”

  ‘그래.’

  “…….”

  ‘생각보다 똑똑하네.’

 

 쇠붙이를 긁어내리듯 선명한 음성이 키들거린다. 발치에서 불쑥 솟아오른 그림자가 덕개와 비슷한 크기로 변해 나란히 보폭을 맞춘다. 눈동자로 추정되는 부위를 짙게 물들이며 그것은 그를 보고 있다. 색이라곤 전부 빼앗긴 것처럼 회색으로 만들어진 악마의 형상은 음영을 통해 표정을 바꾸고 의사를 전달하였으니, 그 꼴이 퍽은 기묘하기 짝이 없다. 이토록 다르게 생긴 것들이 똑같이 징그럽게 느껴진다는 점조차 기묘하다, 고. 덕개는 생각한다. 분명 다를 텐데 다르지가 않아서.

 

 기괴하다.

 

 

 선은 두렵고 악은 모호하다. 세포 아닌 전자식으로 이루어진 신세대임에도 불구하고 덕개는 구세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사고한다. 기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신의 자손이라는 불분명한 명목으로 말미암아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인간의 생명 가치를 부정하고 기원이라 칭송된 자의 탄생으로부터 수 세기가 지났다. 그런데도 상상의 한계에 부딪힌 덕개의 반응은 구세대 인간이 보였던 반응과 전연 다르지 아니한 것이다. 상세 불명의 위협 속에서 인류는 희뿌연 구름 너머 그들 조상의 시조를 만들어냈고, 기어이 책임과 의무를 전가할 강인한 절대자를 내세우기에 이르렀다. 땅 위와 땅 아래 보이지 않는 한구석에 살아있는 동안은 결코 밝혀내지 못할 미지의 공간을 주장하며 바랐던 것은 그저 이해 내지는 체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망상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저기요. 제 속마음 좀 읽지 마시겠어요.”

  ‘네가 생각하지 말든가.’

  “이것들은 왜 다 이렇게 뻔뻔하지?”

  ‘분명 다를 텐데 다르지가 않으니까?’

  “미치겠네. 원래 그렇게들 만들어지나.”

  ‘모르겠는데. 넌 만나본 적도 없는 인간 성격까지 꿰고 살아? 되게 피곤하게 산다.’

  “진짜 개열받아.”

  ‘정 궁금하면 삼자대면할까? 싫으면 안 해도 되지만.’

 

 네가 골라. 음영만으론 구분되지 않는 이목구비로 그림자가 그를 돌아본다. 소리 없이도 덕개는 직감한다. 그것이 웃고 있다. 목 아래가 울렁거린다. 뇌를 휘저어 오는 아득한 감각을 쓸데없이 익숙하게 받아들이며 그는 명치 언저리를 문지른다. 주어진 택지는 두 가지임에도 불구하고 다가올 미래는 하나일 것이란 예감이 불길하게 번득인다.

 

  ‘하지만 궁금하잖아.’

  “…….”

  ‘망상이 자기 보호의 일종이라면, 그러한 믿음조차 사라진 세계에서 너는 무엇에 기대야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지.’

  “…….”

  ‘그렇지?’

 

 처음 뵙겠습니다, 같은 인사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 집에 사회적인 제스처가 통하는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두 존재를 갈마본다. 각기 선과 악의 형상으로 나뉘었으니 상극이리란 예상과 달리 반응이 부재하다. 그것들은 서로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며 각자의 시선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저기요. 삼자대면 하자면서요.”

  ‘난 그런 적 없어. 너 뭘 데려온 거야?’

  “그쪽 말고.”

  ‘뭘 데려온 거냐니까.’

  “환장하겠네.”

 

 건조하게 말라붙은 눈동자가 느릿하게 굴러간다. 조금 전 덕개가 취한 행동을 따라 하듯 그것이 그와 그림자를 갈마본다. 등줄기가 서늘하도록 어색한 동작에 눈을 질끈 감은 그가 한숨을 삼키고 앞으로 나선다. 소개할게요. 이쪽은 아마도 천사인 각별 씨고요. 이쪽은 책장에서 튀어나온 악마인… 이름이 뭐랬죠? 그림자가 웃음을 터트린다. 그걸 이제 묻네. 의뭉스럽게 뭉뚱그린 대답은 아무리 되물어도 돌아오지 아니한다. …책장에서 나온 악마예요. 아마도.

 

 소개만으로 한껏 지쳐버린 그가 식탁에서 의자를 끌고 온다. 소파에 누운 천사와 바닥에 앉은 악마와 의자에 앉은 인간의 삼자대면이 시작된다. 터놓고 얘기해 봅시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예요?”

  ‘왜 우리가 너한테 원하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자아가 비대한데?’

  “비난하지 말고 제대로 말을. 말을 하자고. 소통을 못 해?”

 

 시작부터 순탄하지가 않다. 그는 다 때려치우고 집을 팔면 이것들과 영영 마주치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허랑한 공상이다. 지친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려낸 그는 중얼거린다. 그냥 그쪽들 윗분한테 직접 오시라고 하면 안 돼요? 거룩하지도 않다면서. 오. 싸가지. 자아가 진짜 비대한데.

 

  “하다못해 계시를 내린다든지. 뭔데. 정말로 세계가 멸망하기라도 해요? 내가 지금부터 생물 코드를 불법 복제해서 인간들을 방주로 옮겨야 하나?”

  ‘…….’

  ‘…무슨 자신감으로 이렇게까지 자아가 비대하지?’

 

 좀, 진짜. 세 번째로 등장한 동일한 비난에 그는 고개를 홱 들어 올린다. 뜨끈하게 열이 오른 머리로 섣부르게 벌려낸 입이 눈앞의 상황을 직면하고 헛숨과 함께 다물린다. 어스름이 진 거실에서 그것들이 덕개를 똑바르게 쳐다보고 있다. 표백되어 텅 빈 얼굴이 그를 향해 고정되어 부동하다.

 

  ‘덕개야.’

 

 입이 없는 얼굴이 그를 부른다. 음성의 출처는 확고하지 아니하다. 불현듯 그는 아득한 공포심에 얼어붙고 만다. 그것들이 계속 그를 부르고 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³

 

  ‘인간은 사소한 불편에도 신을 찾곤 하지. 자신의 선의에 과장된 가치를 부여하고 기대지 않고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을 타협하려고 들어. 그런데 제각기 도착한 곳에서 주어진 답을 받아들여야만 할 때, 침묵하는 신께서 무슨 응답을 내려주셨는지 결정했던 건 과연 누구였을 것 같아?’

 

 반투명한 날개의 시맥이 꺾이고 일그러진다. 찌그러진다. 아래로 처진다. 새카맣게 물든 깃의 끄트머리 추악한 물방울이 점을 새기어 떨어진다. 뚝, 뚝. 장판에 부딪힌 검은 물은 영영 고이지 아니한다.

 

  ‘세상만사의 모든 것을 지레짐작하여 판단을 내리는 게 너희들이야.’

 

 그것의 날개가 더러운 물에 녹아 흘러내릴수록, 저것의 날개는 색이 바래어 바스러진다.

 

  ‘네게 중요한 건 신이 왜 우리를 너에게 보냈는지, 세상에 구원이 필요한지, 그 따위 시시한 게 아니잖아.’

 

 짓이긴 열매가 묻어나듯 지저분한 흰 얼룩이 회색의 피막을 뒤덮는다. 마른 찰흙으로 뭉친 어린아이 장난감처럼 생기 없는 날개가 갈라진다. 떨어진다. 부패한다. 곧내 떨어져 나간 흔적마저 먼지처럼 삭제되어 보이지 아니한다.

 

  ‘너는 왜 선과 악의 사이에서 무언가를 고심해야만 하는지.’

 

 가루가 되어 허공을 떠다니는 뿔과 점멸하는 광휘. 픽셀 유동화로 휘저어낸 이미지처럼 일렁일렁 뒤섞인다.

 

  ‘왜 네게는 구원이 필요했는지…….’

 

 형체를 잃고 뒤틀린 후광을 맞이하며 덕개는 그 스스로 건네야만 했던 의문을 떠올린다. 사바세계의 허구성과 얼마 남지 않은 종교 서적의 지리멸렬함을 딛고 망상증의 법칙을 벗어나 깨우치기 위하여 알아야만 했던 것.

 

 통속의 뇌에게도 거짓되지 않은 삶이 존재하는가?

 

 

 

 

 

  ‘덕개야. 너는 살아있니?’

 

 

 

 

 

 신체를 기계장치에 의존해 지어낸 정신의 유토피아에서 인류는 한 세기가 넘는 시간을 보냈다. 멸망의 운명으로부터 도피하여 도착한 안식처에서조차 살아가던 습관을 버리지 못한 그들은 바깥과 흡사한 세계를 지어 이전과 유사한 삶을 이어 나갔다. 그리하여 시간이 흐르고 이 세계의 보편적 주민이 바깥에서 온 구세대 인류가 아니라 태생부터가 영과 일로 이루어진 신세대 인류로 넘어가고 말았을 때, 세대의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죽지 못한 목숨들은 이윽고 자신들이 일종의 소수가 되었음을 깨닫고 말았다. 영과 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인위적으로 영생을 부여받은 인간에게 내려진 천벌은 다름 아닌 공포심이었다. 한때 인류의 생태를 종교에 의탁하도록 만들었던 두려운 감정이 종교가 사라진 세계에 거악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누가, 언제, 먼저. 말을 꺼냈는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어느 순간 바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구세대에 퍼지고 있었다. 신세대의 근간을 뒤흔드는 철학적 딜레마가 제시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몸이 없는 정신은 정말로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가? 일순간 튀어나온 실수와 다르지 않은 물음. 그것뿐이었다.

 

 고작 한 마디 물음으로 신세대는 그들의 어버이 세대로부터 분리돼 이종이 되었다.

 

 구세대의 시위가 시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드는 자들이 발생했다. 사이비 종교가 점령한 마을을 벗어나듯 간절하게 이탈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신세대는 회의에 잠겼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의 연속이었다. 왜 당신들은 우리를 두고 떠나가는지, 바깥과 이곳이 무어가 다르다는 것인지.

 

 그들은, 덕개는 유토피아가 왜 유토피아인지도 모르고 성장한 세대의 학생이었다.

 

 대부분 구세대가 바깥으로 돌아간 뒤에야 혼란은 종식되었다. 설계된 체계는 무너지지 아니하였으므로 시스템은 남아버린 신세대를 위하여 완벽한 환경을 유지했다. 영과 일의 세계에서 구세대가 던져놓은 딜레마를 끌어안고 덕개는 별수 없이 생활을 ‘유지’해야만 했다.

 

 먹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밥을 먹었다.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잠자리에 들었다. 집에 가지 않아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반드시 귀가했다. 이제는 사라진 구세대의 기록만이 남은 도서관을 꼬박꼬박 방문했다. 그런 식으로 생활을 찾아가면 차츰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일상에 복귀하여 이전과 다름없는 삶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하늘에서 천사가 떨어졌다.

 

 종교와 철학과 예술사의 이야기로만 인지했던 존재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덕개는 구세대가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진 그것의 행동 양식은 신세대 알고리즘에 가까웠으니 퍽은 허망한 믿음이 아닐 수 없었다. 덕개는 그것의 존재로 말미암아 희망과 실망을 동시에 감각했으며 생애 처음으로 바깥에 성행하였다는 종교의 의의를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그가 각별이라고 이름 붙인 그 존재는 통속의 뇌가 내놓은 오류투성이 미봉책이었다. 사고를 멈추지 못하게 막는, 계속하여 생각하도록 만드는 단발적인 장치. 필요에 의한 생성. 그야 인간은…….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므로.

 

 살아있다, 는 증명은 생각하는 자만이 취할 수 있는 특권이란 걸 응달에 잠긴 서고에서 그는 학습했다.

 

 돌아오지 않을 이들을 그리워하지 않는 방법을 덕개는 배우지 못하였다. 구세대는 신세대에게 그리움을 극복하는 방식을 트라우마로 남기고 떠났다. 하니 이 세계가 거짓되었으며 반드시 무너져야만 한다는 종말관이 성행한들 구원을 원하는 자는 이곳에 남아있지 않다. 단지 그들이 바라는 건 한 가지 증명이다. 설령 그리움에 져버렸다 해도, 우리가 당신들이 버리고 갈 만큼 가치 없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 철학적 논거를 그러모아 끊임없이 물음하고 물음하고 물음하고 물음한다.

 

 몸이 없는 정신은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가?

 

 통속의 뇌에게도 거짓되지 않은 삶이 존재하는가?

 

 선과 악이 녹아내린 거실 한복판에서 무릎을 꿇고 그는 양수를 맞잡는다. 한갓 버그 덩어리를 향해 기도하는 꼴이 되겠으나, 덕개가 진정 인간이라면 그에게서 발생한 이 버그들은 다름 아닌 그의 사고일 것이므로.

 

 우리가 살아갈 날이 오기를.

 

 형체 없이 지워진 시체에 대고 기도한다.

 

 

 

 

 

……

……

……

피드백: 추상개념의 실재하는 정신에 유의할 것.

 

 

 

 

 

₁ 이사야 41:10

₂ 창세기 1:3

₃ 고린도전서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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