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잠뜰은 지친 걸음으로 편의점의 문을 열었다.
“점장님, 저 왔어요.”
편의점 카운터에는 덕개가 반가운 얼굴로 잠뜰을 맞이했다.
점장님 바로 뒤 타임이 편하냐, 고 묻는다면 잠뜰은 그렇지 않았다.
“역시 우리 편의점 에이스야. 칼 같네. 칼 같아.”
“네. 감사합니다.”
덕개의 저런 너스레를 받는 것도 이제는 익숙했다.
“점장님, 오늘은 뭐 없어요?”
“오늘? 뭐 따로 할 건 없고. 평소 하던 대로만 해~ 간다~”
“예, 가세요.”
덕개가 나가고, 잠뜰은 곧바로 조끼를 꺼내 입고 포스기 앞에서 시재 점검 버튼을 눌렀다.
금고가 열리고 잠뜰은 돈을 차례대로 세어 횟수를 입력했다.
삑-
삑-
탁-
“휴, 끝났다. 일단은 폐기 시간부터 볼까?”
잠뜰은 신선식품의 소비기한을 확인하고 다시 카운터로 돌아와 앉았다.
딸랑-
“어서 오세요.”
잠뜰이 앉기 무섭게 손님이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사장님! 여기 활명수 어딨어요?”
“오른쪽에서 두 번째 냉장고 맨 위에 있어요!”
“아 감사합니다!”
손님은 금세 카운터로 돌아왔다.
삑-
“천 구백 원입니다.”
결제를 마치고 손님이 나가자마자 동시에 파란색 물류 박스를 든 남자가 들어왔다.
“아, 안녕하세요.”
남자는 박스들을 내려놓고 잠뜰에게 종이를 건넨 후 나갔다.
“수고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잠뜰은 재고 종이와 볼펜을 들고 박스 안을 확인했다.
“삼각김밥이 열두 개에, 도시락 세 개. 김밥 세 개.”
잠뜰은 물류 정리를 끝내고 다시 카운터 의자에 앉았다.
시간을 보니 겨우 2시였다.
“아, 폐기 쳐야지.”
잠뜰은 아까 봐두었던 삼각김밥과 줄 김밥들을 꺼내 폐기를 찍었다.
“이제 좀 쉬자.”
의자에 앉은, 잠뜰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깥에 쨍한 햇살이 내리쬐었다.
“날씨 좋네. 나는 일하는 중이지만.”
따뜻한 빛을 보고 있으니, 졸음이 밀려왔다.
“안 되겠다. 커피라도 하나.”
딸랑-
“어서 오세요.”
잠뜰은 눈두덩이를 꾹 누르며 정면을 응시했다.
긴 머리카락을 묶은 미형의 남자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를 보랏빛이 섞인 머리칼의 남자가 뒤따라왔다.
“선배, 아까 그 인간은 어쩌려고 그냥 보내요?”
“어쩌긴, 다시 잡아 와야지.”
“일은 선배 혼자 해요?”
“꼬우면 네가 먼저 들어오던가.”
‘진짜 유치하게 싸운다.’
두 남자 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뜰이 생각할 때쯤이었다.
“여기 계산이요. 수현아 네 카드로 한다?”
“카드는 또 언제 가져갔어요! 대신 저녁은 선배가 사요.”
“오냐~ 그 전에 어떻게든 퇴근하고 만다. 내가.”
“진짜 쪼잔하게 이러기에요? 어떻게 처음 볼 때랑 그대로야 선배는.”
“야,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 라잖냐.”
“선배가 사람은 아니죠.”
“그치. 너도 그렇고.”
‘저게 다 무슨 소리래. 정장 차림인 걸 보면 회사원 같은데.’
잠뜰은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바코드를 찍었다.
“육천팔백 원이요.”
삐리릭-
“네, 됐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잠깐 먹고 갈 건데 괜찮죠?”
“아 네. 그럼요.”
긴 머리의 남자가 뒤를 도는 순간. 잠뜰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남자의 등에는 깃털로 이루어진 날개가 펼쳐졌다.
갑작스레 펼쳐진 상황에 당황하기도 잠시. 바닥으로 깃털 몇 개가 떨어졌다.
‘저게 뭐야?’
“아 선배! 저 이것도 계산해 주시겠어요?”
“아, 아 네.”
잠뜰은 정신을 차리고 바코드를 찍었다. 시선은 여전히 남자에게 향해있었다.
“삼천이백 원입니다.”
“네, 잠시만요. 선배! 제 카드요.”
“옛다.”
눈앞의 남자는 카드를 받기 위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남자의 등에는 날개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잘못 봤나?’
“카드, 빼주셔도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남자는 미소를 짓고 뒤를 돌았다. 편의점 바닥으로 깃털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아.”
짧은 탄식에 남자들이 뒤를 돌아봤다.
그 시선에 잠뜰은 움찔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래~요? 야 수현아. 우리 뭐 찾을 거 있지 않나?”
“네? 각별 선배. 무슨 소리예요. 우리가 여기에 찾을 게 뭐가 있어요.”
“아니 있는 거 같아서. 저기 사장님? 알바생?”
“네?”
“보이죠? 이거.”
각별은 자신 머리 위를 가리켰다.
“선배. 뭐 하세요.”
“있어봐. 알바생분, 이거 보이죠?”
“무, 무슨 말씀이 신지. 잘 모르겠는데요.”
잠뜰은 각별의 눈을 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잠깐 본 각별의 눈은 금방이라도 눈이 멀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허, 일부러 피하시는 것 같은데.”
“선배 왜 이러세요. 죄송합니다. 수고하세요.”
수현은 각별의 팔을 잡아끌어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잠뜰은 어안이 벙벙하게 두 남자가 나간 쪽을 쳐다봤다.
“내가 뭘 본거지?”
*
잠뜰은 바닥을 쓸었다.
“뭐였지. 그 사람들.”
바닥을 쓸었지만, 나오는 건 없었다. 분명 순백색의 깃털들이 흐드러지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지만, 남은 건 없었다.
“요새 많이 피곤한가.”
* * *
이상한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갔을 때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두운 저녁, 잠뜰은 새벽 알바를 위해 거리를 걸었다.
오늘따라 거리는 더 어두웠다. 가로등은 고장 난 듯 깜박였고, 도로 위로 자동차는 한 대도 다니지 않았다.
“어, 원래 간판이 저런 색이었나?”
낮에 볼 때는 푸른색이 더 많아 시원한 느낌이 났던 간판이 지금은 냉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간판도 많이 낡았나 보네.’
잠뜰은 그렇게 생각하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왔니?”
“안녕하세요. 어, 그건 뭐예요? 못 보던 건데.”
잠뜰은 덕개의 옆에 있는 라디오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이거 집에서는 영 안 틀어서 여기서라도 두면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가져왔지.”
“네? 점장님. 요즘 라디오를 누가 써요. 심지어 새벽인데, 하는 채널도 없지 않아요?”
“에이~ 은근히 새벽에 재밌는 채널 많아. 여기 둘 테니까 잠뜰이 너도 한 번 들어보고, 혹시 모르지. 라디오 이벤트에 당첨될 수도 있잖아?”
“네- 네-”
잠뜰은 유니폼을 입고 카운터에 앉았다.
“아 그리고, 아니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네, 가세요.”
*
새벽의 편의점은 고요했다.
밖에는 차도 거의 다니지 않았고,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심심한데, 라디오라도 틀까?”
폰으로 볼만한 영상이 없는지 보던 잠뜰의 시선이 라디오를 향했다. 잠뜰은 라디오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게 이렇게 하고, 이걸 누르면 되는 건가?”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종소리가 들렸다.
딸랑-
“어서 오세요.”
“사장님~ 여기 천사 왔다 간 적 없어요?”
“네?”
갈색 머리에 정장을 입은 남자가 들어와 물었다.
“야, 오늘 알바 쓰는 날인가 본데?”
그 뒤로 붉은 머리의 남자가 뒤따라 들어왔다.
“아~ 꼬였네, 그냥 여기한테 물어보면 안 되나?”
“되겠냐? 애초에 알바생이 그 녀석들을 볼 일이 있겠어?”
“그건 그렇지. 그럼, 여기서 죽치고 기다릴까?”
“너 그냥 농땡이 치려고 그러지.”
“걸렸네?”
두 남자는 티격태격했지만, 기분 나쁜 기색은 아니었다.
‘천사라면, 저번에 그 사람들을 말하는 건가? 근데 이거 말해도 되나?’
고민하는 잠뜰은 고개를 들어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남자들은 잠뜰의 시선을 눈치채고 급히 매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야 공룡. 뭐라도 사가자.”
“어? 그래 안 그래도 출출했는데 잘됐다.”
‘아 살 거 없으면 그냥 나가도 되는데.’
잠뜰은 짧게 한숨을 쉬고 라디오를 마저 만지작거렸다.
‘이거 되기는 하는 건가?’
그 순간.
깜빡-
깜빡-
깜빡-깜빡-
깜빡-깜빡-
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
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
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
편의점의 조명이 미친 듯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잠뜰은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붙잡았다.
“아-. 라더. 왔나 보다.”
“그러게.”
‘도대체 뭔데!’
남자들이 서늘한 표정으로 입구를 응시하는데 잠뜰의 귓가에 청아한 종소리가 울렸다.
뎅-
이윽고, 문으로 나온 건 저번에 보았던 수현과 각별이었다.
“휴, 겨우 들어왔네.”
“그러게요. 좀만 늦었어도 몇 달은 더. 아.”
수현은 매장 안쪽에 서 있는 공룡과 라더를 보고 탄식했다.
“왜, 아~ 뭘 놀라고 그러냐, 악마 처음 봐?”
“그냥 좀 뜻밖이라서요.”
‘뭐야? 뭐가 어떻게 돼가는 건데?’
잠뜰은 카운터에 쪼그려 앉아 휴대폰을 두드렸다.
뚜르르-
뚜르르-
‘점장님! 제발 받아요. 전화하라며!’
열심히 전화를 걸었지만, 덕개는 받지 않았다. 잠뜰은 조용히 심호흡했다.
“공룡. 어쩔 거야?”
라더가 천사 쪽을 응시하며 물었다.
“어쩌긴, 여기서 끝내야지.”
“사장님도 없는데 괜찮나?”
“없어서 다행이지, 있었으면, 벌써 난리 나지 않았겠어?”
“하아. 귀찮게 됐네.”
공룡과 라더의 손에서 검은 연기가 일렁였다.
“수현아. 준비해라.”
수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품속에서 부채를 꺼냈다.
“하, 그깟 부채로 뭘 어쩌겠.”
공룡이 비아냥거리는 순간, 그의 옆으로 순백색의 화염이 스쳐 지나갔다.
“야. 집중해.”
라더가 그런 공룡에게 한마디 했다.
새하얀 불꽃과 검은색 연기가 이리저리 뒤섞이는 모습은 흡사 예술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눈앞에서 보는 잠뜰에겐 그저 재앙일 뿐이었다.
잠뜰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
도저히 저 사이에 끼어들 자신이 없었다.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까…!’
딸랑-
“안녕하세요.”
‘손님. 손님이다.’
“어, 어서 오세요.”
잠뜰은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 말했다.
매장 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끔한 상태였다.
누구 한 명은 죽일 듯이 싸우던 사람들도 평범한 손님처럼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잠뜰은 그 광경에 숨을 몰아쉬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잠깐만. 빨리, 전화. 전화!’
잠뜰은 다시 덕개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잠뜰아 무슨 일이야?”
“그, 점장님. 그게.”
잠뜰은 금방이라도 말을 토해내려다 입을 닫았다.
‘이걸 믿을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천사니, 악마니. 모든 게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 손님이 점장님한테 물어볼 게 있다고 하셨어요. …천, 사가 온 적이 있냐고.”
잠뜰은 천사라는 단어에서 목소리를 줄였다.
“아 그래. 잠뜰아. 잘 들어. 라디오 있지?”
“네.”
“라디오 채널 번호를 22로 맞춰.”
“…그게 다예요?”
“나도 지금 좀 멀리 있어서 가는 데 오래 걸릴 것 같아. 그러니까, 일단 맞춰놔.”
“하아, 네 점장님.”
잠뜰은 통화를 끊고 다급하게 채널 번호를 22로 맞추었다.
“안녕히 계세요.”
그와 동시에, 손님이 나갔다.
문이 닫히고 매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적당히 좀 하지?”
공룡이 날아오는 불꽃을 피하며 말했다. 슬슬 한계가 온 표정이었다.
“적당히는 무슨. 야 수현아 뭐 해. 추가 근무하고 싶은 건 아니지?”
“아니 선배. 그게 무슨. 아무튼 너희 악마들 때문에 놓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놓친 천사 잘못이지. 그게 어떻게 우리 잘못이야?”
공룡이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말했다.
“왜 쟤네랑 대화하려고 해. 그냥.”
챙-!
“몰아붙여.”
각별은 기다란 검으로 라더의 연기를 베어냈다.
분명 검은색의 연기였지만, 어쩐지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라디오는 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뜰은 무의식적으로 포스기 화면을 응시했다.
02:21
시간은 어느새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우리가 너무 불리한데, 어떡하냐. 라더야.”
“다른 문은 없어?”
“없지. 문은 저쪽 천사들이 막고 있고.”
공룡은 매장 안을 눈으로 쭉 훑기 시작했다.
그의 갈색 눈은 붉게 빛났다.
잠뜰은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있었다.
“찾았다. 다른 문.”
“뭐? 어디?”
공룡은 턱짓으로 잠뜰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알바생이잖아. 뭐 어쩌려고?”
“설마 천사들이 죄 없는 인간을 인질로 잡아도 우릴 죽이려 들까?”
“근데 애초에 우리가 이러고 있는 게 저 사람한테 보이긴 할까?”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우리가 살아서 나가는 거지.”
“하긴, 그리고 이 광경이 보이면 저렇게 있을 수 있겠어?”
문제는 잠뜰이 그 말을 다 듣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저 사람들 날 미끼로 삼고 여길 나갈 작정인 것 같은데, 아니 점장님은 언제 오시는 거야!’
잠뜰은 라디오 방향으로 몸을 옮겼다.
“라더야, 잠깐만 시간 끌 수 있지?”
“당연하지.”
“오, 케이.”
라더는 검은 연기를 수현과 각별의 주위에 흩뿌려 터트렸다.
연기가 자욱하게 깔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였다.
어둠 속에서 잠뜰의 손목을 누군가 채 잡았다.
“됐다.”
“아, 안돼!”
02:21:58
02:21:59
02:22:00
딩-동-댕-동
-2시 22분에 알려드리는 새벽 라디오가 방송됩니다. 청취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라디오의 소리에 공룡의 손이 멈칫했다.
잠뜰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공룡을 힘껏 밀쳤다.
-오늘의 사연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엄청나게 흔들렸어요. 사연자님 무서우셨겠어요.
방송이 흘러나왔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것처럼 깜빡였어요. 무사히 층에 도착해서 내렸는데 택배 기사님을 마주쳤는데.
‘뭐 어쩌라는 거야?’
-생각해 보니 이상했어요. 저희 아파트는 택배 보관함이 따로 있거든요. 어머나.
-아 네. 관측 번호 ELPR39130 현상이라고 하네요. 제보 감사합니다. 사연자님.
‘어?’
라디오를 듣던 잠뜰의 표정이 패닉으로 물들었다.
‘저게 무슨 말이야?’
-새벽 2시 22분의 라디오는 O2TO2C의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2222-0222로 여러분의 비일상 현상을 제보해 주세요.
-긴 문자는 500원 짧은 문자는 100원입니다. 통화료 부담은 수신자에게 부과됩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끝났다.
라디오에서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치직거리는 소리뿐이었다.
“아까 번호가.”
잠뜰은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눌렀다.
뚜르르-
“네. O2TO2C입니다.”
“저 여기 정장에 천사 날개 달린 사람들이랑.”
잠뜰은 공룡과 라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머리에 빨간 뿔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싸우고 있어요.”
“어떤 무기를 사용하고 있나요?
“천사 쪽은 부채랑 하얀색 검 같은 걸 사용하는데, 불이 나오고, 또 악마 쪽은.”
“어이 거기 알바생? 사장님한테 우리 얘기 못 들었나 봐?”
잠뜰은 전화기에 대고 빠르게 말을 뱉어냈다.
“악마 쪽은! 검은 연기를 손에서 내보내요. 터지기도 하는 것 같고. 아무튼 빨리 좀 도와주세요!”
“접수 완료되었습니다.”
뚜-뚜-
“뭐야. 이러고, 끝이야?”
통화 종료음에 잠뜰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휴대폰을 쳐다봤다.
공룡은 상당히 열받은 듯한 표정으로 잠뜰을 보고 있었다.
“알바생. 어디에 연락했어? 사장님인가?”
“그….”
잠뜰의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공룡! 아직 멀었어? 이제 좀 한곈데.”
“아 진짜. 작전 변경. 대화로 해결 가능한가?”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악마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각별은 라더가 방심한 순간, 그의 팔에 칼을 꽂아 넣었다.
“커헉!”
“야! 너 괜찮-.”
라더의 등이 울렁이더니 박쥐 날개 같은 것이 등 가죽을 찢고 나왔다.
“하아-.”
라더의 붉은 눈동자 주변은 검게 물들고 있었다.
“야, 공룡. 내가 서두르라고 말했지.”
공룡은 본능적으로 움츠러든 몸을 바로 하고 라더에게 다가갔다.
“나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어.”
“그래서 이제 뭐 어쩌게.”
라더는 천사들을 가리켰다.
“수현아, 이거 어떻게 보이냐?”
“아무래도 각성 같은 거 아닐까요? 선배.”
“하- 거의 다 된 거였는데 이렇게 꼬이냐.”
“어이! 천사 양반. 이대로 더 싸우면 둘 다 손해 아닌가?”
공룡이 천사들에게 말했다.
“수현아. 네가 얘기해 봐.”
“알았어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저기 알바생 보이지?”
수현과 각별은 그제야 카운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몸을 웅크린 채 휴대폰을 귀에 대고 손을 떨고 있는 잠뜰이 있었다.
“저 알바생은….”
각별이 중얼거리자, 공룡이 이때다 싶어 말을 이었다.
“보다시피, 저 알바생을 우리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거 이대로 넘겨도 됩니까?”
“선배.”
“하. 끝나고 처리할 수 있을까?”
“안 되겠죠. 언제까지 연결될 거란 보장도 없고.”
“그럼, 이대로 두고 가야 한다고? 우리의 존재를 목격한 인간을?”
“그럼 어떡해요. 그렇다고 우리가 인간을 해칠 수는 없잖아요.”
수현의 말을 생각하던 각별의 눈이 일순 빛났다.
“그래. 우리는 못 하지. 그럼. 쟤들은 어떨까.”
“선배 설마.”
각별은 싱긋 웃더니 입을 열었다.
“어이~ 거래하나 하지.”
“뭐지?”
공룡이 물었다.
“둘 중 한 명이 알바생을 맡아주면. 한 명은 곱게 보내줄게. 어때?”
공룡과 라더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남은 한 명은 어쩔 거지?”
라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일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서약만 남기면 조용히 보내줄 거야.”
“선배…!”
“조용히 해봐. 너는 한 명 나가면 바로 가서 붙잡아라.”
수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더야. 어쩔래, 내가 남을까?”
천사들을 경계하며 공룡이 라더에게 물었다.
“너, 아직 날개 펼칠 수 있지.”
“어.”
“그럼 됐어. 내가 남는다.”
“뭐?”
공룡은 놀란 표정으로 라더를 바라보았다.
“저 녀석들 우릴 살려 보낼 생각이 없는 거 같거든.”
“역시 그렇겠지?”
“나가자마자 바로 지원 불러. 여긴 내가 어떻게든 버텨볼게.”
“그래.”
“회의는 끝난 것 같은데 어쩔 거지?”
각별이 물었다.
“조건을 받아들이겠다.”
“좋아. 그럼, 저 인간부터 처리해.”
“그러지.”
라더는 잠뜰에게 다가갔다. 그와 동시에 공룡은 출입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유감이지만. 우리도 살아야 해서.”
잠뜰의 머리 위로 라더의 손이 드리워졌다. 잠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누구든 좋으니까, 제발!’
치직-
치지직-
-새벽 2시 22분 라디오 특별 방송입니다.
“뭐야.”
라더의 당황하는 목소리와 함께 편의점의 문이 열렸다.
딸랑-
-사연자님께서 굉장히 희귀한 목격담을 전해주셨어요.
뚜벅- 뚜벅-
“안녕하세요.”
여자인지 남자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목소리가 들렸다.
온몸이 검은색으로 뒤덮인 사람의 인영은 잠뜰을 보고 있었다.
검은색 가면 사이로 보이는 눈은 시선을 빨아들일 것처럼 깊은 색이었다.
“…어서 오세요.”
잠뜰은 홀린 듯 그렇게 말했다.
언제나처럼.
가면을 쓴 사람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환한 빛이 매장을 가득 채웠다. 눈부심에 잠뜰은 소매로 눈을 가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기요.”
“저기요!”
“계산 좀 해주세요!”
“네?!”
잠뜰은 음료수를 채워 넣다 말고 카운터로 걸음을 옮겼다.
“네!”
잠뜰은 황급히 물건을 찍었다.
“천 구백 원입니다.”
손님은 카드를 꽂았다.
“안녕히 가세요.”
손님이 나간 매장은 조용했다.
“지금 몇 시지?”
잠뜰은 무심코 포스기의 시간을 쳐다봤다.
오후 2시 22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