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가자.
이 원초적이고 뻔한 문장이 어째서 인류의 심금을 울리는 말이 되었는가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안정성에 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사람의 인생이란 있을 곳을 찾는 과정이라 말해도 틀리지 않았다. 추상적으로 말하면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장소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고 사회적인 활동을 마친 후에 돌아온 집이라거나, 몇 년 만에 먹는 가족의 집밥이라거나, 아주 어른이 되고 나서야 돌아온 고향이라거나. 자신의 일상과 평화로운 감정이 강하게 남은 곳을 목도할 때면 사람은 안정감을 느낀다. 그럴 수밖에 없다. 새로운 것보다는 기존의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건 이미 증명된 심리 반영이다. 그러나 언제던 예외가 있다.
돌아온 집이 숨 막히고 답답하다고 여길 수도 있고, 집밥에 대한 추억이 없을 수도 있고, 고향이 재개발되어 예전의 모습을 잃었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어디로 돌아가야 할까?
자신이 편한 장소, 안정적으로 여길 수 있는 장소, 따뜻하다고 읊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녀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장소, 사람, 현상…… 어디로든 사람은 자신이 어울리는 곳으로 가고 싶어 한다. 이 맞지도 않는 장소를 떠나,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도록.
즉, 돌아가자는 말에 감동 받기 위해서는 불안감이 필요하다. 힘겨움을 넘어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클리셰적인 감동을 겪을 수 있다.
즉석식품이 전부 조리되어 부드럽게 퍼진다. 공룡은 습관적으로 음식에 고개를 묻고 먹으려다가, 자신이 있는 장소를 깨닫고는 그릇째 들어 마셨다. 쓰지도 못하는 전자레인지, 가정의 흉내도 내지 못하는 냉장고, 지금까지 지구에서 배워온 모든 정의가 의미 없는 장소. ‘돌아가자’ 라는 말은 이런 곳에서도 형용할 수 있을까?
그야, 공룡은 우주로 나왔다. 지구에서 배운 모든 상식이 무가치해지는 세계로.
익숙함을 그리는 사람이 있다면 새로운 걸 그리는 사람도 있어야 세계의 균형이 맞아떨어지지. 공룡이 자주 말하던 문장이다. 공룡이 추구하는 건 새로운 것 그 자체라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마주했을 때 뒤따라오는 배움이다. 공부는 재밌었고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우고 싶었다. 근데 또 너무 어려운 건 별로다. 너무 흥미 밖의 것도 별로였다. 공룡은 사물보다는 사람을 좋아했고, 사람을 이루는 구성물보다는 사람의 심리에 관심이 컸다. 그 외에도 사회 현상이나 문화권, 역사를 좋아했기에 배울 수 있는 영역이 무진장 넓었다. 그때까지는 우주 같은 게 들어올 자리도 없었다.
언제였더라. 꿈에 토끼가 나왔다. 늦었다, 늦었다 하면서 뛰어가길래 호기심에 따라갔다. 그러다 구덩이에 빠졌고, 한참이나 떨어지더니 도착한 곳은 달이었다. 저 멀리 지구가 폭발하는 것이 보였다.
정말 피곤했나 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피곤하면 꾸는 꿈’의 정석인 수준이다.
“뜰 님.”
“어.”
“나 우주 공부할까 봐.”
고작 그 꿈이 공룡을 이끌었다. 이상할 정도의 끌림이었다. 누군가가 공룡이 이런 생각을 품도록 의도하는 것처럼. 기이한 일이다. 잠뜰은 알아서 하라는 답을 던져주었고, 공룡은 인연도 없던 우주 서적을 찾기 시작했다. 유명한 교수의 책을 몇 권 읽어본 감상은 간단했다. 이게 초심자용이라고? 당장이라도 리뷰에 ‘뭐라는 건지 모르겠더염’을 적고 별점은 3점 정도로 주고 싶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초심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적힌 다정한 입문 책’ 같은 말은 다 거짓말이다. 개 처 어렵네. 그러나 그것이 공룡의 오기와 학구열을 자극했다. 책장 한 칸을 아예 우주용으로 바뀌었고 유튜브는 알고리즘이 우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어느 날엔 자리를 정리하던 잠뜰이 혀를 찼다. 왜요, 마음대로 하라면서. 이렇게까지 오래 갈 줄은 몰랐지. 연구소가 자기계발하는 곳인 줄 알아? 심지어 관련도 없는 우주에 꽂혀서. 이번만 봐줘잉. 잠뜰이 정리를 하다 말고 토할 것 같은 표정을 한 채 등을 돌렸다. 저렇게 행동해도 봐줄 것이다. 공룡이 자기 일을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오래 앉아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산책이라도 해야겠다.
며칠, 몇 달이 지나도 루틴이 변하지 않았다. 이런 걸 일상이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있다면 공룡은 굉장히 평화로운 일상을 살았다. 이 생활에 위화감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찾아왔다.
연구소 골목에 있는 길 강아지를 사람들은 덕개라고 불렀는데, 요즘 하도 보이지 않아 사람들이 걱정하던 것이 떠올랐다. 출근까지 시간도 남았으니, 주변을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했고,
13분을 돌아다닌 결과 덕개는 만나지 못했다. 거처를 옮겼을 수도 있고. 그래도 사람 손을 탄 앤데 아주 야생에는 못 가지 않으려나. 공룡은 덕개를 귀여워했던 사람 중 하나였기에, -연구소 사람 중 덕개를 싫어한 사람 자체가 없기는 하다.- 미련을 떼어내는 게 영 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출근길로 발을 돌렸을 때였다.
“저기요.”
“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공룡은 뒤를 돌아보았고…
“어, 덕개야!”
거기엔 덕개가 있었다. 계속 안 보이다가 포기하는 순간 모습을 보이다니. 아주 똘똘한 녀석이다. 내밀고 있는 혀, 붕붕 돌아가는 꼬리까지 모든 게 공룡이 알던 덕개였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하다 아 맞다, 날 부른 사람이 있었는데. 사실 내가 아니었나. 덕개를 발견하게 해 준 고마운 사람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룰루, 일어나서 다시 가려는데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저기요.”
주변을 크게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 내가 피곤한가.
“저 덕갠데요.”
공룡의 시선이 내려갔다. 덕개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표현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 주둥이가 열리고 사람 말을 뱉었다.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나 피곤한가. 내가 오늘 몇 시간을 잤더라. 아 7시간밖에 못 잤다. 사람의 기본 수면 시간을 12시간으로 늘려줘야 강아지가 말하는 걸 보는 일이 없을 텐데. 오늘 청원 올려야겠다.
“우주로 가주세요.”
“엥?”
“72일 뒤 지구가 멸망해요.”
“……엥?”
“당신만이 지구를 구할 수 있어요.”
그날 하루는 기억나지 않는다. 공룡은 미친 사람처럼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연구소에 출근했고, 연구소에 들어와서는 종일 집중하지 못하고 멍때렸다고 한다. 공룡은 내내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현실 감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머리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이게 꿈꾸는 것도 아니고 내가 정신이 나간 것도 아니라면 진짜 상황이라는 건데, 왜 나만이 지구를 구할 수 있지? 아동 애니메이션 전개도 아니고 나는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연구원이다. 그보다 왜 우주로 가야 하는데?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혼란은 멈추고 다시 덕개에게…… 덕개는 왜 말을 하지……. 내가 마법 청년 같은 게 되면 덕개가 마스코트 파트너인 걸까…….
“이 세계는 선택받지 못했어요.”
이번엔 출근길에 덕개가 서 있었다. 사람의 손을 많이 탔는지 털결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덕개였으니 사랑을 몰아서 받았나 보다.
“거대한 블랙홀이 이 세계 자체를 집어삼킬 거예요. 지구를 넘어 우주를, 세계 자체를요.”
만나서 물어본다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린데……. 누가 세계를 선택하고 없애고 막… 그러는데? 그게 뭔데 씹덕아…….
“이제 71일 남았어요. 하루가 급해요, 영웅님!”
“공룡이야.”
“공룡 님, 저는 당신을 인도하기 위해 온 강아지입니다. 당신에게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 때는 또 뭔데? 나 지금 때 아닌 거 같은데. 아주 혼란스러운데?”
“이상한 꿈을 꾸시지 않았나요?”
그런 걸 꿨던가. 한참 생각하고 나서야 우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계기가 생각났다. 토끼를 따라가다가 달로 떨어졌던 꿈을 꿨다. 그리고 분명 지구가 폭발했다. 그게 뭐 어쨌다고. 사실 미래 예지 그런 거였다고?
“표정을 보니 짐작 가는 게 있으신 모양이네요.”
“내 이름도 몰랐으면서 내 표정은 어떻게 읽는데.”
“어쨌든!”
우우우우우우웅. 거대한 진동 소리가 들렸다. 덕개의 뒤에 빨간색 동그라미가 나타났다. 동그랗게만 보였던 것에서 문이 열리고 사람이 나왔다.
“야, 시간 다 됐어.”
“공룡 님! 갑시다!”
“지금 이렇게 갑자기? 나 출근해야 하는데?”
“지구가 멸망하면 출근도 못 해요.”
지구가 멸망해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라는 제목의 글이 아니란 말입니다. 덕개가 공룡의 바짓자락을 물고 잡아당겼다. 비록 사람 말을 하는 정체를 모르겠는 종족이라 할지라도 강아지를 내칠 수는 없었기에 공룡은 덕개를 따라 동그라미에 탔다. UFO가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선택한 현대판 디자인 같다고 생각했다. 공룡이 UFO -매번 동그라미라고 부를 수 없으니 알아서 맞춤형 단어를 쓰기로 했다.- 에 올라타자, 빨간색 머리의 사람이 소파를 가리켰다. 저기 앉아 있어. 덧붙이는 걸 듣고 나서야 주변을 훑어보았는데, 겉보기에만 동그란 모양이지 내부가 호텔이었다. 심지어 꽤 값이 나갈 것 같은 호텔. 집이 움직이는데 시설까지 좋다니… 어릴 적에나 하던 상상의 실현이다. 공룡은 떨떠름하게 소파에 앉았다. 덕개가 따라 올라와서는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빨간 머리의 남자는 머그잔에 차를 만들어왔다.
“설명은 대충 들었지?”
탁자에 머그잔 두 잔과 개 밥그릇 하나가 올라왔다.
“나는 너를 우주로 보내줄 사람이야.”
“오…….”
“반응이 뭐 이래?”
“하루아침에 이해 안 되는 말만 듣다가 갑자기 모르는 사람의 UFO에 올라와서 이런 소리를 듣는 제 심정을 이해해 주시죠.”
“이해하기 싫은데? 그리고 반말해.”
“그래 이 싸가지야.”
“어어? 네 우주선의 안위가 나한테 달렸어.”
“아 죄송.”
빨간 머리의 남자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공룡이 여태 한 입도 대지 않은 것을 신경 쓴 건지, 한 모금이 유독 길다.
“이름은?”
“공룡이요.”
“반말하라니까. 나는 라더.”
공룡이 따라서 머그잔을 잡았다. 따뜻했다.
“O2TO2C. 들어봤어?”
“아니.”
“나는 거기에 소속된 사람이야. 네가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자면 비일상 연구소라고 할까.” 라더가 덕개를 향해 고갯짓했다. “쟤도 그 비일상의 산물이야. 말하는 강아지라는 비일상이지.”
“비일상이라 해도 간단하거든. 괴담이나 꿈 같은 일들 있지? 출처 모르겠는 소문, 괴물 호텔, 귀신이 타는 지하철- 이런 거. 사실은 그게 모두 실존하는 이야기고, 우리 측에서 관리하는
거지.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런 곳이랑 나랑 무슨 상관인데?”
“덕개가 말하지 않았어? 이 세계는 선택받지 못했어. 일상을 영위할 가치가 없는 세계가 되었다는 거지. 곧 여기는 비일상으로 가득 차게 될 거고, 그렇게 이야기가 끝날 거야.”
“아니, 현실감이 없는 건 둘째 치고…… 왜?”
“이 세계엔 뽑아 먹을 수 있는 이야기가 없으니까.”
탁자와 머그컵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라더가 잔을 내려놓았다. 덕개가 동그랗게 말아둔 몸을 풀더니 탁자에 다가가 혀를 내밀었다.
“너무 평화로운 세계가 되었다는 거야. 자극적이지도 않고, 재미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우주 속에서도 특히나 가치 없는 행성이 우리의 지구가 됐어.”
“……딱히 평화롭진 않은데.”
“해봤자 사람들끼리의 마찰이잖아. 이 우주엔 수십억의 비일상이 있는데 사람끼리의 분노와 권력욕, 물욕 같은 게 재미있겠어?”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공룡은 그냥 차를 마셨다. 공룡도 창작 스토리에 대한 흥미가 없던 것은 아니라 법칙은 알고 있었다. 전개가 계속되기 위해선 위기가 필요하고 모든 위기가 끝난 이야기는 모든 가치를 다한 채 마지막을 맞이한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오래오래 지속된 삶에 마찰 한번 없었을까? 마냥 행복하진 못했을 텐데. 평범하게 싸우고, 울고, 그런 일이 몇 번이고 일어날 텐데. 하지만 그것은 위기가 되지 않는다. 누구나 아는 평범한 삶일 뿐이다.
“그런 우리한테 떨어진 마지막 기회가 너야.”
“그러니까…… 왜.”
“너도 들어본 적 있을 거야.”
그리고 라더는 아주 클리셰적인 문장을 말했다.
“단 한 사람이 죽으면 이 세계가 지켜져. 어떻게 할래?”
공룡은 대답하지 못했다.
“네가 죽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너는 이 지구에 있어서는 안 돼.”
“영영 우주에 있어야 해.”
“떠나서, 결코 돌아오지 말아야 하는 거야.”
라더가 말을 마친 후,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덕개가 색색거리는 소리마저도 사라진 침묵이다.
어떻게 했으면 될까. 왜 나냐고 소리쳤으면 됐을까? 나는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아온 고작 연구원이라고, 이 세계의 안위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 대의나 멋진 신념조차 없는 그저 그런 존재라고, 그렇게 말하며 울었으면 뭐라도 해결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공룡은 우주에 왔다. 어떤 사람도 없이, 혼자서.
라더와 덕개는 공룡에게 30일의 유예 시간을 주었다. 그동안 공룡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했고, 사고 싶었던 것들을 사고,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했다. 낯간지러운 감사 표현을 잔뜩 받은 잠뜰은 감동보다는 걱정을 표했다. 너 요즘 왜 그래? 라는 말엔 웃음을 돌려주었다.
돌아가자. 그 말이 서글프게 느껴진다면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떠난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다. 지구는 여전히 평화로울까? 또 가치 없는 세계라는 판단이 내려왔으면 어떡하지? 그런 고민을 하던 때도 있었으나 공룡은 모든 잡념을 그만두었다. 그저 우주선을 달에 상륙했다. 그리곤 저 멀리에 있는 지구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평범한 삶이라면 반드시 딸려오는 기쁨과 슬픔, 분노와 우울은 느끼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공룡을 가득 채우는 감정은 하나였다. 그리움. 지키기 위해 떠나야만 했던 모든 추억을 등에 이고서 하루하루를 반복해야 했다. 비일상으로 만들어진 우주선에는 부족한 것 하나 없었다.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완벽할 정도로 채워졌다. 공룡은 움직이는 집에서 물질적으로 풍족한 우주 생활을 했다. 결코 채울 수 없는 그리움만을 상기하면서.
좀 이기적으로 굴어야 했을지도. 사라지든 말든 알 바냐며 박박 우겼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공룡은 지구를 사랑했다. 멸종되는 건 공룡이면 족하다.
뒤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우주는 무슨 일이든 일어나는 곳이었다. 우주에 있는 시간이 길었던 공룡은 관심을 두지 않고 지구만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소란이 잠잠해진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더니, 무언가가 공룡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제야 고개를 돌린다.
“당신을 구하러 왔어요.”
토끼처럼 귀가 길게 늘어진 우주복, 오랜만에 보는 사람. 비일상에 침잠한 공룡에게 새로운 비일상이 난입했다.
공룡은 앞에 선 사람을 보다가 지구를 돌아보았다. 다시 사람을 쳐다본다.
“저는 지구를 구해야 하는데요?”
헬멧 너머로 웃는 얼굴이 보인 것 같다.
공룡의 우주선에 들어서자, 그 사람은 우와, 우와 그런 말을 연신 뱉었다. 겉보기엔 작아 보였는데 안이 되게 크네요. 오랫동안 사람이랑 대화하지 않은 탓에 어떤 대답이 적당할지 모르겠기에 그냥 웃어넘겼다. 원활한 대화를 위해 헬멧을 벗으니 토끼 귀가 튀어나왔다. 덕개같은 건가. 어떻든 사람 얼굴을 보니 반가운 건 사실이었다. 차라도 타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유감스럽다.
“공룡 씨 맞으시죠.”
“네.”
“저는 O2TO2C에서 온 수현이라고 해요.”
익숙한 이름이다. 고개 들어 쳐다보자, 수현이 양손을 저었다.
“저는 다른 세계에서 왔어요.”
“네?”
“그러니까, 다른 지구에서 왔어요. 제가 타고 온 건 그냥 우주선이 아니라서 차원 이동 장치도 포함되어 있거든요.”
덕개가 말을 걸었던 그때부터 공룡이 지켜온 상식들은 종이조각처럼 느껴졌다. 이번에도 공룡이 할 수 있는 건 그렇군요, 같은 긍정밖에 없었다…만.
“그러면 그 지구엔 제가 갈 수 있어요?”
지나칠 수 없는 의문이 들었다. 수현의 입가가 미소를 지었다.
“네.”
“저는 당신을 데려오라는 임무를 받았어요.”
빛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수많은 빛이 오고 가고 머무르는 우주였지만, 이만큼 아프지 않게 찬란한 건 처음이었다. 공룡은 당장 나갈 채비를 했다. 원래 자신의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 우주선은 그냥 내버려둬도 다음에 이 달로 올 지구인이 발견하게 된다면 외계인의 흔적처럼 기록될 테다. 중력이 자신의 몸을 잡아당기고 온갖 상식과 추억이 존재하는 지구로 돌아가 땅에 발을 딛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충분한 게 없다. 그리고 돌아가서 나를 걱정하던 사람들에게…… 공룡의 생각이 멈췄다. 머리가 삐그덕 돌아간다.
“제가 아는 사람이 있어요?”
수현은 웃는 표정 그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있을 장소는요.”
“지원해 드릴 예정이에요.”
“직장은?”
“저희 쪽으로 합류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가족은요.”
다시, 대답하지 않았다.
공룡의 기억이 아주 먼 예전으로 돌아간다. 빨간 UFO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던 때의 기억이 뇌 내에 출력된다. 비일상이란 것들은 죄다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을 뒤흔들곤 멋대로 결론을 내린다. 그 결정이 있기까지의 정보는 필요 없다. 그런 걸 당사자가 고려해야 할까? 남은 것이라곤 혼돈과 그리움뿐인데.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공룡이 침묵하자 수현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서, 여기서 계속 사실 건가요?”
이 우주에서 영영. 돌아가지도 못하는 곳을 멀찍이 바라만 보면서. 죽을 때까지. 평생?
유예를 위해 쫓겨난 당신의 처지가… 억울하지는 않았고?
저 지구는 더 이상 당신의 별이 아니에요.
“지금 아쉬운 사람은 제가 아니에요. 당신이지.”
사람과 가족이 없는 것은 똑같다. 장소와 땅이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공룡도 알고 있다. 이제야 깨닫는 것은, 어쩌면 공룡은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을. 대부분의 이야기가 그러하듯, 모든 사건을 지나고 나서 결국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는 것을. 아주 평범한 삶을 지금까지 포기하지 못했다.
그렇잖아. 돌아가자, 라는 말이 어째서 클리셰가 되었는데…….
중력조차 없는 공간에서 공룡을 붙잡아주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수현은 생각해 보세요, 라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떴다.
우주는 공룡이 혼자 생각할 수도 없게끔 소란스러웠다. 머릿속에서 하나의 세계가 구성되었다가, 흩어졌다가, 다시 조립되더니 분해한다. 시선 끝에 머무는 건 결국 하나다. 지구.
공룡은 수현을 기다리지 못했다. 직접 수현을 찾아 움직였다. 생각보다 큰 우주선이 있었고, 대화가 들렸다. 너는 임무를 하라니까 그 사람을 부추기면 어떡하냐. 어떻든 상관없잖아요. 애초에 데려오라던 것도 관리 목적 아니었어요? 바로 떠날 준비만 해주세요. 새삼 충격적이기엔 공룡은 너무 많은 길을 지나왔다. 수현이 말을 덧붙인다. 그리고 어쩌면, 멸망할 기점은 이미 지났을지도 모르고요? 그건 무슨 소리야. 기한이 정해져 있었잖아요. 딱 그날만 조심하면 됐을 수도 있지. 꿈 같은 소리를 하네. 수현이 어깨를 으쓱이며 문을 열었다. 수현은 바로 앞에 있는 공룡을 보고 놀라지 않았다. 대답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공룡 또한 정해진 대답을 뱉었다.
“나는…”
“돌아갈래.”
“내가 있던 지구에.”
후에는 일사천리다. 수현의 일행으로 보이는 검은 머리카락의 남자는, 공룡이 타는 우주선에 달린 돌아오지 못하도록 조정된 장치를 손봤다. 아주 간단히 매만지고는 문제 없이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수현은 웃으며 공룡에게 악수를 권했다.
손이 마찰한다. 이것도 오랜만이었다. 원하는 바 잘 이루시고요. 네.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안녕히 가세요.
원래 사람 없이 홀로 있던 공간임에도 사람의 공백은 컸다. 공룡은 오랜 시간 지구를 바라보다 몸을 움직였다.
우주선을 조종하는 건 이제 어렵지 않다. 지구에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공룡이 우주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주선이 출발한다. 지구를 향해.
왜 하필 나였을까.
내가 아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주 어쩌면, 처음부터 거절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애초부터 우주로 나오지 않았다면 더 좋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쩌면……
그 모든 만약을 지나치고 만들어진 지금.
끝에 도착하자, 공룡은 웃었다.
중력이 잡아당긴다.
땅에 발이 닿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