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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아주 어릴 적부터 잠뜰은 비밀 하나를 가졌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말하면 안 된다. 이건 잠뜰의 비밀이었다.

그러니까, 이 존재는 잠뜰의….

 

 

 

1. 일상

 

우르릉, 천둥소리가 울리자 잠뜰은 고개를 들었다. 펜이 뚝 멎었다. 어느샌가 비가 오고 있었다. 한 겹 창문과 커튼은 빗소리는 어렴풋이 가릴지언정 천둥소리까지 막지는 못했다. 그게 꼭 성질이라도 부리는 것만 같아 잠뜰은 조용히 뇌까렸다. 알았어. 급하긴. 그 말을 듣는지는 모르겠다. 빗소리는 되려 매워진다. 잠뜰은 그즈음에 결국 펜을 팽개쳤다. 왜냐하면, 비가 내리니까.

문제집을 덮고 얇은 옷을 걸치는 사이 다시 한번 허공이 번쩍였다. 현관에서 신발을 꿰신으며 속으로 수를 센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우르릉.

 

  “성질도 급해라….”

 

빗줄기에 대고 말한들 들을 사람도 없다. 잠뜰은 현관에서 창밖을 한 번 흘겨보고 우산을 챙겼다. 늘 들고 다니는 새파란 색의 단우산이다. 어디 나가니? 물어오는 엄마한텐 네, 한 마디가 전부였다. 그야, 비가 오고 있으니까.

 

 

4월, 올해의 첫 비였다. 적어도 잠뜰은 그렇게 세었다. 온 줄도 모르게 땅을 적시는 봄비는 성에 차지 않았다. 보지 못한 눈을 첫눈으로 세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우산을 편 잠뜰이 발을 떼기 전에 물건부터 기울였다. 우두두두, 우산 위로 살벌하게 쏟아지는 소리에도 인상 한 번 쓰지 않았다. 핀 듯 만 듯하던 벚꽃들도 죄 쓸려 내려갈 만큼 억센 빗줄기였다. 어차피 시험공부하느라 꽃구경은 글렀다. 비 구경이라도 하는 셈 쳐야지. 잠뜰은 제가 채 보지도 못한 꽃잎들이 둥둥 떠다니는 길거리를 걸었다. 시간은 애매한 오후. 귀가하는 학생들이나 몇 보이는 거리 옆을 힐끔대다가 골목길로 꺾었다. 비 오는 날의 단골 장소였다. 사람 없고, 고인 물이 잘 빠져나가지 않는 장소. 발이라도 담그면 찰박이며 신발이 젖고 말 웅덩이 앞에서. 잠뜰은 고개를 기울인다. 머리카락이 어깨 아래로 쏟아진다. 우산에 가려진 그 몇 발짝의 공간. 그 안으로는 물방울도 지지 않는다. 잠뜰은 너머를 마주 본다.

 

  “안녕.”

 

그러면 너머에서도 잠뜰을 마주 본다. 눈꼬리를 휘어 접어 웃으며. 입가로 뾰족한 송곳니가 드러나도록. 무슨 재미난 장난이라도 치는 듯이. 초록색 우비인지 후드인지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마치 거울의 반사면처럼, 잠뜰을, 마주 본다. 한 겹 웅덩이의 물그림자 건너에서. 소리는 없으나 뒤잇는 것은 말이다.

혀는 입천장에 대고, 입술을 길게 잡아끈다. 언뜻 이가 비친다. 꼭 웃는 것 같은 낯이다.

다시 동그랗게 입술을 만다. 오므리지 않는다. 혀가 떨어져 입 모양의 바닥에 붙는다. 오래 유지하진 않는다. 곧장 도로 웃느라.

안, 녕, 소리 없는 인사다. 두 글자 정도는 이제 잠뜰도 쉽게 읽는다. 손을 흔들지 않아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다. 흐린 표면으로 얼굴이 비친다. 튀어 오른 빗방울 몇 조각이 물결을 일렁이고 다시 가라앉는다. 얕은 웅덩이가 두 세계를 가르고 비친다. 그래, 안녕. 속삭인 잠뜰이 웃었다.

 

 

이 비밀 친구는 꽤 오랜 역사가 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있었다. 원래부터. 적어도 잠뜰이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순간부터. 그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물웅덩이의 반대쪽에는 모르는 사람이 있다. 이미 알게 된 지가 오래니 모르는 사람은 아닐지도. 어쨌든 잠뜰은 그를 오직 물웅덩이로만 만났다. 좀 더 정확하게는, 비 오는 날의, 고인 물웅덩이 너머로. 한 번도 그걸 이상하게 여겨본 적 없었다. 남들은 그 표면에 무언가가 비쳐 보이지 않으며, 굳이 무언가가 보인다고 한다면 보통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는 걸 알았을 때도. 잠뜰은 그냥, 그렇구나. 특이하네. 그 정도의 생각으로 감상을 마무리했었다. 제가 특이한 건지 남이 특이한 건지도 궁금하진 않았다.

잠뜰은 열 살 남짓해서 그것의 ‘인사’를 알아보았다. 그날 잠뜰은 노랗고 촌스러운 우산을 쓰고 있었고, 장화 대신 고집을 부린 운동화는 잔뜩 젖어 있었고, 비는 억세게 내리는 날이었으며, 학교 정문 앞에는 물이 잔뜩 고이는 자리가 있었다. 모든 아이가 제각기 발목을 적시기 싫어 뛰거나 돌아가는 공간에서 잠뜰은 오랫동안 서 있었다. 우산 아래로 노랗게 빛이 번지고, 물방울의 파동은 덜한 자리에 그것이 있었다. 잠뜰이 들여다보는 만큼 너머도 잠뜰을 마주 보았다. 그것은 그날 손을 흔들었다. 아주 명랑하게.

그날, 처음으로 잠뜰은 그것이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처럼 생긴. 가끔 잠뜰을 정말 그림자처럼 흉내 내곤 하는.

하지만 어찌 됐든 악의는 없어 보이고, 대체로 웃고 있는.

잠뜰의 말을 알아듣는. 그러나 잠뜰에게 목소리를 들려주지는 못하는.

오직 잠뜰에게만 보이는, 그런 존재.

그것은 잠뜰의 비였다. 태풍이었다. 웅덩이였다. 잠뜰은 곧잘 그걸 물그림자라고 불렀다.

호칭이 어찌 됐든 저것은 이름이 있다. 잠뜰이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사람처럼 생기기도 했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썹을 찌푸리거나 으하하 웃어버리기도 한다. 머리색은 어둡고, 입은 옷은 유난히 쨍한 게 척 봐도 녹색이다. 여름의 색. 어쩐지 장마는 늘 여름이더라, 하고, 잠뜰은 어릴 때 제멋대로 생각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것이 늘 녹음을 등에 지고 찾아오는 탓이었으리라.

야, 너, 뭐라고 부르든 간에 그것은 곧잘 알아들었다. 한바탕 웃은 다음에는 꼭 여러 번 같은 발음을 반복했다. 그 의도를 맞추는 건 발음을 맞추는 것보다 쉽다. 이름을 알려주려고. 야나 너 따위로 부르지 말라고. 그런 뜻인 줄은 알아도 이름은 몰랐다.

혀도, 치아도 보이지 않도록 오므리고, 혀를 한 번 굴린다.

유감스럽게도 고유명사는 유추할 수 있는 바가 없어서 암만 쳐다본들 알아듣기 쉽지 않다. 물 너머로는 겉보기도 한 번 흐려지니 더더욱 그랬다. ‘오’인지 ‘우’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입 모양. 좁아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혀와 치아의 위치. 한 음절인지 두 음절인지도 불분명한 형태. 이름을 부른다고 하기엔 우스운 동작이었으나 잠뜰은 그럭저럭 충분했고, 그것 역시 그냥, 그렇게 살았다.

비 오는 날이면 이름 모를 그것은 으레 잠뜰을 따라다녔다. 어릴 적부터 보폭을 맞춰 걸었다. 반사면처럼 똑 닮은 것은 아니었다. 거울은 어긋남이 없는데, 물그림자는 아니었다. 저것과는 가위바위보가 가능할 것이다. 좀 괴담 같겠지만. 물웅덩이 너머에서 손을 뻗어 ‘너를 데려가겠다’라고 한 적은 없으니 됐다. 장난기가 많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물웅덩이 위에서 두 걸음을 걷고 멈추면 가끔 세 번째로 발을 내디뎠다가, 반걸음을 물린다. 그리곤 재밌다는 듯 깔깔 웃어버리는 것이다. 잠뜰이 심술을 부리겠다고 고인 물 위에서 암만 발을 굴러도 소용은 없다. 덕분에 잠뜰은 어릴 적부터 종종 옷을 망쳤다. 실은 비 오는 날이면 거의 매일. 흙탕물 싸움을 하니, 웅덩이에서 굴렀니, 따위의 불명예스러운 추측에도 할 말은 없었다. 어느 정도는 틀린 말도 아니긴 했으니까. 물 너머에 이상한 애가 있어서요. 걔랑 싸우고 싶었는데. 걔는 제가 밟아도 아무 말을 안 해요. 되게 좋아해요.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는걸.

그러니까 그건 평생 비밀이었다. 잠뜰의 비밀.

 

 

뭐, 해. 물그림자가 입을 달싹였다. 대답이 없으면 다시 한번. 입을 다물었다가 열고, 납작하게 입꼬리를 당긴다.

물 너머에서는 소리가 없다. 대신 빗소리만 가득하지. 덕분에 소통을 위해서는 서로 인내심을 기르는 수밖에 없었다. 입 모양으로 말하려면 발음이 올발라야 하고, 알아듣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잠뜰은 천둥이 멈춘 하늘을 한 번 힐끔 올려다보다가 다시 아래를 보았다. 놀랍게도 이 존재는 소리가 없는데 수다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답이 곧장 돌아오지 않자 친절하고 입바르던 모양새가 슬그머니 빨라진다. 뭐해. 뭐 하냐고. 뭐, 해. 여러 번 반복해 읊는 단어들을 잠뜰은 대답 없이 구경했다. 대답은 그다음에야 느긋하게 돌려주면 그만이다.

  “요즘은 뭐, 그냥. 공부해. 나 또 시험기간이잖아. 야, 나 이제 고3이다? 대학 가기 싫다고 해도 아무도 안 들어주고, 진짜.”

  “….”

  “처음에는 저 올해 고3이에요, 하는 것도 되게 싫었는데…. 너 안 오는 사이에 그건 다 적응했어. 아니, 왜 3월에는 비가 안 오나 몰라. 소나기 보기도 되게 힘들고. 요즘 대한민국이 가뭄이래. 좀 자주 안 오니, 너는? 뭐 비 올 때만 오고.”

  “….”

  “11월엔 비도 안 올 텐데. 대학 갔다 안 갔다 얘기는 뭐 할 수 있겠냐, 이래서.”

 

저 너머는 잠뜰의 말을 곧잘 알아들었다. 원리는 몰랐다. 그냥 이쪽에서는 안 들리고, 저쪽은 잘 들리고, 그런 식이었다. 그래서 잠뜰은 혼자서 실컷 떠들곤 했다.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는 것과 비슷한 심정이다. 풍덩, 그다음에는 가라앉겠지. 영영 찾지 못할 단어들. 건져낼 수 없는 단어와 문장들. 어디에도 못할 말들. 비밀들. 가지고 있는 불만. 힘들었던 일. 저번에 대회에서 상 받았어, 장려상. 그 시험은 찍은 문제를 죄다 틀려가지고. 그 자식은 말도 마, 내가 뻥 차버렸지. 새 친구가 생겼는데 좀 바보 같아, 사실 좀이 아니고 많이. 다음에 보여줄게. 사실 보여줄 순 없지. 네가 알아서 보든가 해.

 

그러니 비 오는 날을 지나칠 수 없게 된 것이다. 오직 그때에만 볼 수 있는 게 있으니까.

 

어느샌가 억세던 빗줄기도 조금은 가늘어진다. 그새 잠뜰은 우산을 쓰고도 제법 젖었다. 웅덩이 옆에 쪼그려 앉는다는 건 그런 뜻이었다. 두어 번 정도는 지나가는 사람이 이 너머를 힐끔거린 것도 같다. 비 오는 날엔 거르지 않고 찾아오지만, 모든 비 내리는 시간을 물웅덩이와 함께할 순 없었다. 잠뜰은 그 너머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쟤는 글로 뭘 써온 적은 없다. 핸드폰 같은 도구를 들고 있는 것도 본 바가 없다. 저 너머에서 보내는 소통은 으레 잠뜰이 간신히 읽는 입 모양이거나, 아니면 표정과 손짓발짓 따위였다. 그딴 걸 소통이라고 부를 수 있긴 한가? 잠뜰의 의문이야 어찌 됐든. 언제나처럼 그것은 웃고, 허공에 손을 휘적이고, 제 가슴팍을 팡팡 치며 무어라 중얼거리다가, 다시 고개를 가까이 드밀고 읊는다. 반복적인 입 모양을 잠뜰은 천천히 읽어낸다. 입을 다물었다 떼고, 혀도 떨어진다. 김, 애, 아니지. 힘. 힘, 내. 별것 아닌 격려를 따라 읊으면 너머에서는 호들갑스럽게도 긍정한다. 잠뜰은 우산을 기울인 채 키들거린다.

비닐에 맺힌 물방울이 후두둑 한 방향으로 떨어지며 웅덩이를 흐린다.

 

잠뜰은 화답하듯 입술을 둥글게 모은다. 혀도, 치아도 보이지 않도록 오므리고, 혀를 한 번 굴린다.

아주 오랫동안 읽어온 동작. 유일하게 잠뜰이 소리 내지 않는 것. 저것의 이름이다.

물 너머에서 쪼그려 앉은 것은 흐린 물 표면 너머를 애써 들여다보려 미간을 좁혔다가, 제 이름을 알아보고 낯을 편다. 물 건너에는 소리가 없는데, 잠뜰은 저것의 웃음소리가 들린 것도 같다. 잠뜰은 입꼬리를 올려 씩 웃었다.

 

  “나 갈 거야. 공부해야 해.”

 

그 말에 물그림자는 손을 휘적거린다. 가라는 뜻인가 하고 들여다보니 가까이 오란다. 잠뜰은 일으키려던 몸을 다시 기울여 숙였다가, 웅덩이 너머에서 물장구를 치자 비명과 함께 벌떡 일어났다. 당연히 맞은편이 튀긴 물은 이쪽에 닿지 않는다. 그냥 잠뜰이 제풀에 놀랐을 뿐이지. 흐려진 표면이 가라앉으면 배를 잡고 깔깔 웃는 저쪽의 모습도 고스란히 보였다. 잠뜰은 짜증스레 발을 굴러 물웅덩이를 튀겼다가, 도로 제가 흙탕물을 뒤집어썼다. 야, 내 옷! 이거 아끼는 건데…. 쫄딱 젖은 제 꼴을 한 번 들여다보고 다시 한번 물웅덩이를 째려보면, 그것은 웃는 낯으로 말을 읊는다. 반복해서. 단어를. 말한다. 잠뜰은 우산이 기울어져 젖는 줄도 모르고 도로 유심히 들여다본다. 골똘히 들여다보며 아는 낱말을 건져 올린다.

 

  “하늘.”

  “….”

  “조…. 애. 조…. 조심해.”

  “….”

  “하늘…. 을? 조심해?”

 

완성된 문장에 그것은 환한 낯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잠뜰은 얼굴을 적신 빗물을 소매로 엉성하게 닦아내고 우산을 바로 세운다. 고개를 들어봤자 하늘엔 먹구름뿐이다. 천둥은 진작 그쳤고, 비도 아마 곧 끝물일 테다. 조심할 게 뭐 있나? 그것도 하늘을? 다시 시선을 내리자 그것은 손을 흔든다. 할 말은 그게 다였다는 듯이. 무슨 뜻인데? 물어도 대답은 없다. 정확히는, 뭐라 말은 했는데 잠뜰이 알아듣진 못했다. 혼잣말이지. 이젠 그걸 알았다. 잠뜰에게 들려주려는 의도였다면, 그만한 속도로 말했을 테니까.

 

4월의 짧은 소나기는 그걸로 작별이다. 호된 빗줄기에 떨어진 꽃잎 한 장이 웅덩이 곁을 맴돌다 떠밀려온다. 곧 다 젖어 가라앉을 것이다. 그러건 말건, 물그림자는 언제나 거기 있다. 웅덩이가 말라도 다음 비에 다시 찾아올.

 

비 오는 날의 일상.

  “…다음에 오면 알려줄 거야?”

 

마지막 머뭇거림과 함께 물어도 물그림자는 대답이 없다. 송곳니가 다 드러나도록 웃을 뿐이다. 잠뜰은 인상을 한 번 쓰고는 되돌아간다. 쫄딱 젖은 옷이 괜스레 찝찝하기만 했다.

 

 

 

2. 비

 

모든 미지가 공포스러운 것은 아니다. 잠뜰은 그걸 알았다.

 

바다와 우주는 사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죽음 뒤의 세계는 때로 평온과 안식의 땅이 되었다. 동물의 유령에 관한 귀여운 일화를 들어본 적 있는가? 오래 아낀 인형이나 장난감이 움직였다는 이야기는? 미스테리하지만 신비로운 것들은 많았다. 누구든지 뿔 달린 말을 선망하지 않나. 잠뜰은 물웅덩이 너머의 존재와 발맞춰 걸었다. 그러니까, 한 겹 너머에서 발끝을 함께 디뎠으니, 이거야말로 진실한 발맞춤이겠다.

 

동시에, 친밀한 것이 모두 익숙한 것은 아니다. 아침에 내린 비는 오후까지 물이 고여 있었으나, 저녁이 되기 전에 다 마를 것이다. 잠뜰은 부러 물이 남아있는 곳만 골라 걸었다. 물그림자는 즐거워 보였으나, 잠뜰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시시때때로 무엇을 말하려 했다. 단순한 인사는 아니었다. 음절이 길었다. 잠뜰은 못 알아듣는 체를 하던 참이었다. 이러고 있을 때면 저것은 유쾌하게 웃다가도 조잘거리느라 바쁘고, 그러다가도 또 웃었다. 잠뜰의 장난에 이제는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그래봤자 비 오는 날뿐이니, 잠뜰을 보는 날은 얼마 안 될 텐데도….

 

아닌가. 어쩌면 비 오지 않는 날에도 나를 보고 있나?

 

알 길 없는 일이다. 잠뜰이 찰박, 발을 내디뎠다. 가라앉았던 흙먼지가 일어나며 고스란히 신발과 양말을 적셨다. 이마저도 하루이틀의 일은 아니라 잠뜰은 그러려니 했다. 대신 고개를 기울였다. 흙탕물이 가라앉아 물 표면이 드러나면, 그 너머를 골똘히 들여다보던 상대가 도로 드러난다. 눈이 마주치면 웃는다. 속 모를 낯으로.

 

초여름이다. 날은 마악 더워지기 시작하고, 어쨌든 오늘 아침의 비는 소나기였음을 안다. 그보다는 큰비가 좋았다. 잠뜰은 곧잘 비 오는 날을 기다렸다. 폭풍을 기대했다.

 

아마 머지않았을 테다.

 

 

 

3학년 1학기의 기말고사. 반드시 점수를 올려야만 했던 시험은 그럭저럭 망쳤다. 이것보단 더 잘 봤던 것 같은데…. 잠뜰은 비 내리는 시험지를 쥐고 한숨을 내쉬었더란다. 뭐, 삶이란 게 그런 거지. 시험을 말아먹은 사람이 잠뜰만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이번 시험이 진짜 이상했다니까. 내 생각에는, 이거 분명 답지가 잘못된 거야. 찍은 게 열 개인데 다 틀릴 수가 있어?”

 

하굣길을 엇박자로 따라오며, 곁에서 맹렬히 투덜대는 음성이 잠뜰을 쫓았다. 날은 점차 더워지고, 학생들은 죄 반소매를 꺼내입기 시작한 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흥. 잠뜰은 마냥 코웃음만 쳤다. 열 개나 찍으니까 그렇지. 차라리 한 줄로 세우지 그랬어? 공부를 해놓고 점수 타령을 하든가. 별것 없는 타박이나 우스갯소리처럼 늘어놓으면 입을 비죽이는 이쪽은…. 고등학교 내내 알고 지낸 친구 되시겠다. 잠뜰은 연신 투덜대는 덕개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느낌이 왔단 말야, 느낌이. 하늘의 계시처럼, 딱!”

  “딱 틀렸겠지! 찍어놓고 말이 많아!”

  “아, 원래 인생 역전의 기회는 그런 식으로 오는 거라고. 로또 번호 오는 것처럼.”

  “로또도 안 산 게 말이 많아….”

 

착한 바보. 잠뜰이 내리는 덕개의 평은 딱 그랬다. 덜렁거리고 멍청한 짓은 많이 하는데, 곁에 두면 나름대로 웃겼다.

너 솔직히 산타 믿지. 게르마늄 팔찌, 옥장판 이런거 사봤지?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덕개는 그럴 리가 있느냐고 성을 내곤 했다. 그래봤자 잠뜰은 코웃음만 쳤다. 덕개는 미신도 믿고, 귀신도 믿고, 한 번은 정말로 시험 잘 보는 부적 같은 걸 사 온 일도 있었다. 효과는 물론 없었다. 한 등급이 더 떨어졌다며 머리를 싸매는 앞에서 부러 쯧쯔 혀를 차줬던 기억이 선명했다. 너 이러다가 거하게 사기당할 듯. 그때 잠뜰이 했던 말에도 머쓱하게 웃으며 화를 내는 통에, 화를 내든 웃든 하나만 하라며 윽박질렀더랬지.

 

덕개라면 물그림자 이야기를 해도 철석같이 믿을는지도 몰랐다. 왜, 존재하지도 않는 거울 속 귀신이나 열세 번째 계단보다야 훨씬 신빙성 있지 않은가? 정말 그 정도로 바보니까.

 

그래도 이야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물그림자에 대해서는. 제법 입이 무겁고 순한 덕개에게조차.

 

  “야.”

  “왜?”

  “하늘을 조심하라는 게 뭔 소릴까?”

 

오늘은 날이 맑았다. 근 일주일간은 그랬던 것 같다. 물그림자를 못 본지도 꼭 그 정도가 되었다는 뜻이다.

초여름 날씨라는 게 그렇지, 무더워지느라 바쁘지. 속으로는 생각하면서도…. 청명한 날이 오래갈 땐 잠뜰은 종종 종종 답답함을 느꼈다. 난 말야, 물가에 살아야 하려나 봐. 아니면 비 많이 오는 나라. 언젠가 한 번쯤은 그렇게도 말했었지만, 정말 그 바람이 이루어질 것 같지도 않다. 그때 덕개는 뭐랬더라. 그럴 거면 바닷속에 살라고 면박을 주는 통에 또 금세 티격태격 다툼이 되었던 기억만 남아있었다.

 

아무쪼록, 내뱉지 못하고 머금은 말이 오래될 때는 덕개가 그걸 주로 들어주었다. 나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성적과 진로, 친구들과 부모님, 선생님이나 학원에 관한 이야기야, 원래는 또래에게 하는 말 아닌가? 아이들 모두가 제각기 물그림자를 가지고 있진 않을 테니 말이다.

 

  “그게 뭔 소린데?”

 

그러니까, 잠뜰은 그것이 남기고 간 말을 곱씹던 참이었다. 채점도 못 할 그 이상한 문제를.

 

  “대충…. 오늘의 운세.”

 

운세라는 건 변명이지만,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물그림자는 종종 이상한 소리를 했다. 한때는 그냥 하는 헛소리겠거니 생각한 적도 있었다. 워낙에 장난기가 있으니까. 그런데 겪다 보니 꼭, 헛소리만은 아닌 것도 같았다. 기묘하게도.

내일 또 봐. 그렇게 말한 날은 다음날까지 비가 이어지거나, 새로 내리곤 했다. 오늘 하늘 꼭 봐야 해, 꼭! 그런 강조를 했던 날, 도서관 위쪽으로 무지개가 걸렸던 것을 잠뜰은 보았다. 그 밖에도 많았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준다거나, 지름길을 알려준다거나. 알려준 곳으로 가봤더니 처음 보는 새들이 모여있었다거나.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들. 삶에 딱히 도움은 안 되고, 가끔은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했다며 성을 낼 때도 있었지만….

 

적어도 못 알아 들을 말을 한 적은 없었다. 이전까지는.

하늘을 조심하라고? 그 말을 한지도 벌써 몇 달째였다. 물그림자에게 물어도 대답은 없었다. 치사하기 그지없는 행태였다. 고민한들 대답이 나올 리는 없다. 옆에서 덕개도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잠뜰이 떠올려내지 못한 걸 기적처럼 덕개가 떠올릴 일도 물론 없었다.

 

  “뭐…. 비라도 오는 거 아니야?”

  “그건 별로 조심할 일이 아니잖아. 나 우산은 맨날 가지고 다니는데.”

  “날씨가 이렇게 맑은데 우산을 왜 들고 다니냐니까?”

  “비 오는 거 아니냐고 한 건 너거든? 아무튼. 뭐인 것 같냐고.”

  “벼락 맞나 보지. 천벌.”

  “뒤진다, 진짜.”

 

텄다, 텄어. 잠뜰이 거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늘 보고 로또 번호나 받아오겠다던 덕개에게 물을 일이 아니기야 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한 거 누구야? 제발, 옆에서 종이를 구기고 있잖아요…. 도움이 안 돼, 도움이. 잠뜰이 홀로 탄식을 삼키든 말든. 덕개는 여전히 잠뜰이 내던진 단어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늘, 하늘이라. 하늘이라…. 저렇게 중얼거린다고 대답이 나올 리도 없는데. 잠뜰은 코웃음이나 쳤다.

그래도, 덕개는 제법 진지한 낯이었다. 시선은 새파란 하늘에 붙박은 채로. 바닥도 보지 않고 걸으며….

 

  “그걸 어디서 들었다고?”

 

길이 갈리는 길목 앞에서야 덕개는 문득 물었다. 언제까지 저러고 있나 두고 보려던 잠뜰도 그 말에는 입을 딱 다물었다.

그 잠깐동안 잠뜰은 상상한다. 덕개에게 진실을 고백하는 것이다. 어디서 들었냐면 말야, 물웅덩이 너머에 사는 내 친구가 알려줬어. 가끔 이상한 소리나 주절거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하늘을 조심하란다. 기가 차서. 비도 안 오는데, 뭐라는지 이해가 안 가, 이해가….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문 입을 우물거리던 잠뜰이 대충 핑계를 둘러댔다.

 

  “그냥, 인터넷에서 본 운세 사이트였는데. 다음에 보면 너한테도 링크 보낼게.”

 

비밀을 지키는 게 쉽다고 말한다면 거짓이다. 잠뜰은 종종 유혹에 휩싸였다. 야, 있잖아, 실은 말야…. 그러나 실제로 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믿지 않을까 봐? 설마. 물그림자를 믿을 사람을 단 하나만 꼽으라면 그게 덕개였다. 와, 신기하다! 그리고 자기도 보고 싶다며 물웅덩이를 맴돌겠지. 적어도 전 세계 어린아이들의 잘잘못을 죄 기록했다가 하룻밤 만에 선물을 나눠준다는 상상 속 동물보다는 더 사실 같지 않은가! 이건 실존하기까지 했다. 적어도 잠뜰의 기준에서는.

 

그러니까, 그런 것보다는….

 

기묘한 감각이다. 말하면 안 돼, 누군가 속삭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니, 그것보다는 그냥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아무도 알려준 적 없는데도,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잠뜰은 갈대밭과 대나무숲의 결말을 알았다. 그 꼴이 날 수는 없다. 그래. 오늘도 잘 참았군. 자신을 다독이기나 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무슨 운세가 그런 식으로 나온대? 이상한 사이트네….”

  “내 말이. 뭐, 모르겠으면 됐어. 내일 보자.”

  “어어. 내일 봐.”

 

두 사람은 커다랗게 손을 흔들고 돌아섰다. 날씨는 맑았고, 낮이 긴 만큼 해 역시 높았다. 잠뜰은 짧디짧은 제 그림자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모퉁이 너머에 있던 사람이 쓱 그림자 너머로 지나갔다. 행인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을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어쩐지 이쪽을 보고 있던 것 같다는 생각에, 잠뜰은 도로변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길목에는 다시 사람이 오가지 않았다. 한참동안이나.

 

 

 

다음 날엔 정말로 비가 왔다.

 

아침부터 흐린 듯 아닌 듯하더니, 하교 시간이 가까워지며 비가 쏟아졌다. 잠뜰은 마지막 수업 시간 내내 바깥을 힐끗거렸다. 창문 바로 옆자리가 아닌 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간만의 비가 반가워서. 창문 옆에 앉았더라면, 슬그머니 유리를 밀고 팔만 밖으로 빼 물을 받아보았을 텐데.

 

하교를 위한 종례가 끝나자마자 우당탕 교실을 뛰쳐나가다가 덕개와 부딪힌 것도 우스운 해프닝 중 하나일 뿐이었다. 서로를 탓하며 또 한바탕 소란을 피우긴 했지만, 다치지도 넘어지지도 않았으니 두 사람은 또 대충 서로를 용납했다. 그 정도의 너그러운 기분이기도 했다. 입가에 새겨진 미소를 굳이 지울 필요도 없었다.

 

  “날씨 좋다, 그지?”

  “뭐래….”

 

덕개의 퉁명스러운 대답에도 아랑곳 않았다. 잠뜰은 억센 빗소리에 망설이는 학생들을 등지고서 정문을 나섰다.

빙그르르, 우산대를 쥐고 돌리면, 우산의 원단에 맺혀있던 물방울이 튕겨 나간다. 그 탓에 물벼락을 맞은 덕개가 고개를 푸르르 털며 언성을 높였다. 야, 다 젖잖아! 물론 덕개가 호통을 쳐 봤자 잠뜰은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들은 체 만 체나 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물웅덩이는 피할 필요가 없다. 언뜻 시선을 내리면 늘 그렇듯 발맞춰 걷는 존재가 거기에 있다. 첨벙, 속도도 힘도 줄이지 않은 걸음에 물이 다시 한번 허공으로 퍼진다.

 

  “넌 진짜, 비 올 때면 기분 좋아 보이더라.”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의 다양성을 존중해, 덕개야.”

  “너 양말, 신발…. 다 젖었는데. 나까지 적셔놓고 존중은 얼어 죽을…. 으악!”

 

투덜거리는 덕개 쪽을 향해 아예 물을 걷어찼더니, 덕개는 후다닥 멀어져서는 삿대질로 바쁘다. 하지 말라고! 하지 말라니까! 소리는 저쪽에서 치고 있는데, 발밑의 물그림자가 땅을 치고 바닥을 구를 기세로 웃고 있었다. 잠뜰도 따라서 웃었다. 덕개는 반쯤 젖어 눅눅한 모양새였는데, 물론 잠뜰의 짓만은 아니었다. 반 정도는 순전히 장대같이 긋는 빗물 덕이다. 아마도 곧 장마가 시작되겠지.

 

  “할 말이 하지 말란 말밖에 없어? 이리 와, 우리 덕개. 아주 그냥 쫄딱 젖게 해줄게.”

  “아, 싫어! 네가 더 많이 젖었잖아!”

  “나? 나 이미 다 젖었지. 난 잃을 게 없어.”

  “고작 물장난하면서 그런 대사 맞아, 진짜?”

 

투덜거리는 걸 내버려두고 깔깔 소리 내 웃어 보인 잠뜰이 다시 손짓했다. 하굣길, 붐비는 거리에서 물장구를 치기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터였다. 우산을 무슨 동아줄처럼 붙들고 잠뜰의 눈치를 보던 덕개가 연신 꿍얼거리는 소리만 언뜻 들려왔다.

 

  “맨날 저래. 기분 진짜 좋아 보이네. …라서 그런가….”

  “야, 뒷담 같은 거 할 거면 크게 말해.”

 

잠뜰의 투덜거림에 입을 비죽이던 덕개는 그 말대로 고스란히 언성을 높였다. 유치한 말씨름이었다.

 

  “귀신이 잡아가 버려라!”

  “비 좀 온다고 귀신이 아파트 앞에 나타나겠니? 날이 흐려서 그렇지, 해 지려면 멀었어.”

  “아니거든? 나오기도 하거든?”

  “그거 저번 체육 시간에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 아냐?”

  “…맞아.”

 

결국 덕개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종종종, 빠른 속도로 잠뜰을 따라잡은 덕개가 젖은 옷이며 신발을 보며 또 한바탕 불만이다. 넌 또 그걸 믿니. 멍청아. 한바탕 타박을 늘어놓던 잠뜰도 젖은 신발을 보려 시선을 내렸다.

 

물웅덩이에 발을 딛자 선명하게 물소리가 튀었다. 너머로 언뜻 보이는 물그림자가 어떤 동작을 했다. 흐려진 표면 탓에 제대로 보이진 않았다. 여기서 쪼그려 앉아 쳐다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두 걸음 만에 웅덩이가 끝이 나면, 잠뜰은 아쉬움으로 느려진 걸음을 다시 보챘다. 시선 끝이 간신히 뒤를 돌아보는 대신 앞을 본다. 그리곤 잠깐, 속으로 궁리나 하는 것이다.

 

이건 그런 거 아니야. 귀신 같은 거. 속으로 되뇌면서도, 물론 말할 수는 없다.

 

단지 스스로 되물을 뿐이다. 귀신이 아니면, 그러면 뭔데?

  “너 말야.”

  “엉.”

  “저번에…. 같이 집 갔을 때.”

  “응.”

 

어느덧 아파트 단지 앞이다. 저번에도 이곳에서 헤어졌었다. 바로 그 골목이다. 잠뜰은 우산을 들고서 제가 서있던 자리를 빤히 보았다. 그때, 인영이 지나갔던 게 이곳이었던가….

 

  “누구…. 이상한 사람….”

  “뭐? 이상한 사람 왜?”

  “아이, 됐다. 니가 뭘 알겠니. 나 간다.”

  “아, 잠깐만.”

 

그대로 멀어지려던 잠뜰은 덕개의 부름에 멈추어 선다. 비가 쏟아지며 두 사람의 우산을 맹렬히 두드렸다. 키가 큰 덕개를 보려면 고개를 조금 들어야 한다. 잠뜰은 제가 젖는 것도 개의치 않는 것처럼 우산을 함께 든다. 젖혀진 만큼 빈 공간으로, 덕개가 제 새까만 우산을 조금 기울였다. 감은 것처럼 보이는 속눈썹은 속 모를 표정인데, 입은 몇 번씩 우물거리며 소리 없는 고민을 뱉었다. 두 번만 더 망설였으면 잠뜰은 덕개를 두고 지나쳤을 테다. 대꾸는 그 전에 떨어졌다.

 

  “별 건 아니고. 그냥…. 조심해. 혹시 모르니까.”

 

평소라면 무시했을 텐데. 그런 말 따위. 왜 쓸데없는 소리를 그렇게 무게 잡고 하냐고, 갑자기 헛소리를 한다고 실컷 면박이나 주고 말았을 텐데.

비는, 여전히 쏟아지고…. 곧, 장마가 시작될 것이다. 그토록 기다렸던 비다. 마른 땅이 다시 젖고 있었다. 평소라면 들떴을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왜일까? 그 경고가 진짜 같아서? 아니면, 우산 그림자 아래서, 덕개가 난생처음 보는 표정을 하고 있었어서?

 

그 순간 물그림자를 떠올린 건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뭐를?”

  “있어.”

  “무슨 소리냐니까.”

  “오늘 운세에서 그러더라.”

 

전혀 대답은 되지 않는 말이었다. 어깨를 으쓱인 덕개가 손을 흔들고 멀어졌다. 그 뒷모습이 모퉁이를 꺾어 사라질 때까지, 잠뜰은 오래도록 노려봤다. 빗줄기가 우르르 쏟아지는 것을 느끼며.

 

 

귀신이라느니, 유령이라느니, 그런 건 믿지 않았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가장 비현실 같은 일은 제가 겪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건, 이미 잠뜰의, 아주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해가 왜 뜨는지, 밤이 왜 오는지 궁금해하지 않듯이.

파도가 치고 비가 내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것들.

 

비가 내린다. 물그림자는 또다시 거기에 있다. 잠뜰의 우산은 늘 그렇듯이 새파란 색이다. 흐린 구름에도 가려지지 않는 하늘의 색을 쥐고서…. 잠뜰은 웅덩이를 들여다본다. 운세라니. 미신은 믿지 않았다. 남들은 비일상으로 믿을만한 것을 이미 보고 있으니까. 그 말인 즉, 보이지도 않는 것들을 믿을 이유는 깡그리 사라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진짜’다. 물그림자는. 잠뜰은 알았다.

 

그렇다면, 언제나 궁금한 건데, 너는 ‘뭐’야? 왜 거기에 있어?

 

호기심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어렴풋이. 수많은 질문 속에서, 그것이 답해주지 않은 몇 가지 대답 중 하나다. 잠뜰은 곧장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 없고, 물웅덩이가 고이는 곳으로. 다 젖은 양말과 신발이 질척이는 소리를 냈다. 엉성하게 받쳐 든 우산을 쥐고서 쪼그려 앉는다. 뺨으로 머리카락이 달라붙는다. 잠뜰은 숨죽여 그것의 이름을 불렀다. 입을 둥글게 말고서 혀를 굴린다. 물그림자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손짓한다. 강아지 귀를 흉내 낸 동작은 덕개일 테다. 모양새를 보니 덕개의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뒤이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아마도 이상하다거나 시끄럽다거나, 웃긴다거나. 그런 뜻이겠지. 구태여 말로 하지도 않은 적나라한 뒷담화에 잠뜰은 고민을 잊고 웃었다.

 

그래, 그뿐이다. 물그림자라는 건. 그냥 물장구를 치고 놀 수 있는 상대일 뿐이다. 다른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물그림자는 어깨를 으쓱인 뒤 잠뜰과 별것 없는 대화를 일삼았다. 그날 역시도 제법 평범했다. 장대 같은 비. 쫄딱 젖은 옷. 물웅덩이 너머의 친구. 그런 일상의 한쪽.

 

그렇게 넘길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잠뜰은 코를 훌쩍였다.

 

저번의 쫄딱 젖은 날부터 시작된 감기 탓이었다. 여름 날씨만 믿고 빗물에 쫄딱 젖은 채 돌아다녔으니, 업보래도 별 수 없기야 했다. 열이야 나는 둥 마는 둥 하다 말았으니 다행이지만, 으슬으슬한 추위에 기침은 도무지 멎질 않았다. 날이 습하고 더우니 하루빨리 에어컨을 켜자며 아우성치는 교실에서, 잠뜰은 담요를 둘둘 말고 지내곤 했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던데….”

  “너도 걸렸잖아, 이 개….”

  “아니, 그건 감기가 아니지! 그냥 좀 코맹맹이 소리 난 것 가지고 맨날 뭐라 해.”

 

덕분에 덕개와 벌이는 말씨름은 더욱 영양가 없어졌다.

 

며칠간은 비도 드물었고…. 비가 온대도 나갈 길이 없었다. 바빠서, 아니면 아파서, 이 여름에 추워서…. 핑계는 많았다. 잠뜰도 그게 핑계인 건 알았다.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문제집을 들여다보며 손안에서 펜을 굴렸다. 너는 비 오지 않는 날에도 올까? 물웅덩이가 아닌 곳 너머에서도 나를 보고 있진 않을까? 언젠가의 물음을 당겨오거든, 바닥에 끌린 자국이라도 남은 듯 찝찝하기나 했다. 나을 듯 나을 듯, 여전히 기침이 새는 감기랑 다를 바도 없었다.

 

그러니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잔뜩 속이 꼬인 잠뜰에게 매번 시비나 걸어대는 덕개가 나빴다. 잠뜰보다 일주일 전에 감기를 앓았던 덕개를, 그때는 실컷 놀려먹긴 했지. 그걸 여태껏 잊지 않더니 훌쩍일 때마다 한소리를 해대는 것이다. 덕분에 쌓인 잔소리가 한 트럭은 되겠다. 속도 좁지. 뒤끝은 길고. 물론, 잠뜰이 지금 덕개를 보며 잔뜩 인상을 쓰는 건 꼭 그 이유만이 아니라….

 

  “왜 조심해야 해?”

  “뭐를?”

  “네가 말했잖아. 조심하라고. 똑바로 좀 말해….”

 

잠뜰은 두런두런 불만이나 토로하며 책상 위로 길게 엎어졌다. 이런 입씨름은 요 며칠간 내내 이어진 것이었다. 둘 다 좀체 서로에 대해 설명할 생각이 없는 탓이었다. 덕개는 종종 그 순간을 잡아떼고 싶은 것처럼 보였지만, 어쨌든 잠뜰은 덕개의 말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조심해, 라니. 뭐를? 그 질문은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물그림자에 대한 경고일 테지. 그게 이상한 것이다. 쟤가…. 물그림자를, 내 비밀을 어떻게 알고 있는데?

 

맹세하건대, 잠뜰은 한 번도 비밀에 관해 이야기한 적 없었다. 가끔 말을 흘린대도, 네가 모르는 친구가 있다든가.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든가. 물웅덩이를 종종 들여다보고 웃는, 고작 그 정도였을 테다. 거기서 ‘물속에 사는 나만의 친구’를 유추해 낸다면, 얘는 그냥, 어디 가서 무당 해야 해. 직감이 그 정도일 수 없잖아, 사람이.

 

  “그냥 하는 말이다, 그런 말을 했었냐, 시치미 떼는 것도 한두 번이지. 뭘 조심하라고 한 건지 말 안 할 거면, 왜 그 말을 했는지라도 말해보라니까. 앞뒤 없이 조심하라고만 하면, 뭐, 내가 대체 뭘 조심해야 한다는 건데. 이게 조언이야? 도움도 안 되는 훈수지. 그냥 신경 쓰이라고 하는 말 아냐?”

  “뭐야. 화났어?”

  “안 나겠냐!”

 

제대로 소리치고 싶었는데, 어쩐지 코맹맹이 소리가 나는 통에 박력이라곤 쥐뿔도 없었다. 킁. 코를 훌쩍인 잠뜰이 벌떡 일으켰던 몸을 다시 슬렁슬렁 눕혔다.

 

  “짜증 나게 할 거면 가라….”

 

호수에는 파도가 치지 않는다. 물결이 인다면, 누가 돌을 던져서 그렇겠지. 그리고 범인은 덕개다. 내 호수같이 잔잔한 마음에 말야. 아주 그냥 물수제비를 뜨려고 말야.

물론 불만을 가지든 말든 덕개는 어깨나 으쓱이고 말았다. 속 터지게 하는 데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그 정도로 진지하게 한 말 아니라니까. 솔직히, 어? 사람이 말야. 뭐든지 조심해야지.”

  “뭐든지?”

  “사람 조심, 차 조심, 날씨 조심…. 너 봐. 감기도 조심해야 하고.”

  “….”

  “뭐, 귀신도 조심해야 하고.”

  “귀신 아냐.”

본능처럼 튀어나온 대답에 덕개는 어깨를 으쓱였다. 쉬는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책상 위에 늘어져 고개를 꺾은 탓에, 뺨은 차가운 면 위로 고스란히 눌린다. 잠뜰은 덕개를 빤히 노려본다. 올려다보는 각도였다. 부산스럽게 자리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소란, 복도를 뛰는 발소리. 그런 것들이 지나는 동안 덕개는 그곳에 서 있었다. 그다지 오래는 아니고. 하지만 적잖은 시간 동안.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고.”

 

수업이 시작하고도 잠뜰은 한동안 그 대화를 곱씹었다. 덕개는…. 덕개는 분명 뭔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도무지 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물그림자가 참 수상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나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 당연하지. 그런데, 이제 보니 수상한 게 그것뿐이 아니란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일이다. 잠뜰은 지우개질을 하다 말고 작은 물건을 손안에 쥐었다. 새빨간 겉 포장지가 손안에서 멋대로 굴러다녔다. 그 색을 보고 사과를 떠올린다. 먹고 나면 선과 악을 알게 된댔다.

묻고 나면 진실을 알게 될지도 몰라….

 

그 순간 느낀 감정이 기대와 설렘인지, 두려움과 불안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3. 비일상

 

자, 침대 밑에 무언가 있다.

 

그냥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른다. 어쩌면 영영 모를 수도 있고.

위험한 건지, 안전한 건지…. 유용한지 쓸모없는지도 모른다. 침대 밑을 들여다보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그런대로 잘 지내왔다. 사는 데 별문제는 없더라. 적어도 여태껏은 그래왔다.

 

그러나 오늘, 이불을 뒤적이며 생각하고야 만다. 그래서 침대 밑에 뭐가 있는 걸까?

 

갈수록 날이 흐리더니, 수업이 끝나자마자 비가 떨어졌다.

 

이제 정말 장마의 시작이다. 소나기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내일쯤 온다던 비가 오늘 내리는 모양새였다. 억세지는 빗줄기를 피하려 발을 동동 구르거나 뜀박질을 내달리는 아이들 사이, 잠뜰은 늘 가지고 다니던 우산을 꺼내 들었다. 한 번도 빼놓은 적 없는 물건이다. 비 오는 날은 언제나 젖곤 했지만, 뭐. 그거랑은 관계없는 일이지.

 

새파란 천이 펼쳐지는 순간을 맞춘 듯이,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쏟아지는 빗소리 사이로.

 

  “우산 좀 빌려줘.”

펼친 우산 끝이 처마 밖으로 기울어진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이 비스듬한 천을 때리고 흘러 다시 바닥으로 떨어진다. 잠뜰은 홱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퉁명스러운 태도였다.

  “나도 하나밖에 없어.”

  “그러면 같이 쓰고 가자. 너희 집 앞까지만.”

  “싫어! 내가 왜.”

흥! 익숙하게 콧방귀를 뀌고 잠뜰은 돌아섰다. 후다닥 계단을 뛰어내렸더니, 거센 빗줄기가 벌써 신발이며 양말을 적셨다. 세 걸음 정도를 고스란히 내달렸다가, 잠뜰은 멈칫 자리에 섰다. 덕개는 학교 정문의 현관 아래,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화를 내지도 않았다. 다른 방도를 찾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조용한 응시였다. 오가는 학생들은 이상하리만치 드물고, 두 계단 위에 있는 시선이 유난히 낯설다. 높이가 다른데도 잠뜰은, 책상에 엎드린 채 보았던 덕개의 낯을 떠올렸다. 우산을 조금 더 들춘 잠뜰이 덕개와 시선을 맞췄다.

 

이상한 일이다. 수상쩍었다. 낯설기 짝이 없었다.

 

왜 저렇게 분위기를 잡고 있대. 기분 나쁘게.

 

정말, 이상하게….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아직 감기를 떨치지 못한 몸이 쏟아지는 비에 반응하듯 떨렸다. 괜히 한기가 몰려와, 잠뜰은 코를 훌쩍였다. 학생들은, 오가는 학생들은 이상하리만치 드물고…. 누구도 그들을 보고 있지 않은데. 하물며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발밑엔 물웅덩이조차 없다. 잠뜰은 고개를 들었다가, 그대로 우산에 시야가 막힌다. 흐린 하늘 대신 우산만 새파랬다.

  “우산, 씌워주면. 뭐 해줄 건데?”

이것은 어떤 예감과도 같다.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신호처럼. 잠뜰은 그냥, 느린 걸음으로 다시 돌아갔다. 센서 등이 고장 났는지, 하늘이 흐린 만큼 현관도 유난히 어둑했다. 잠뜰이 팔을 높이 들자, 덕개는 고개를 숙여 우산 아래로 들어왔다. 사람이 둘이 되자 좁아진 만큼 우산 아래는 덜 추웠다. 그래, 이것만큼

은 물그림자랑은 다르다. 얘는 진짜 사람이니까.

 

그럼 걔는…. 아니, 됐다. 지금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다.

 

  “매점 가서 간식이라도 사줄게. 내일. 어때?”

  “그거 말고.”

  “말고?”

잠뜰보다 훌쩍 큰 덕개가 우산을 대신 들었다. 팔이 무겁지 않다는 건 그나마 좋은 일이다. 크지 않은 단우산 사이 옹기종기 끼어있으려니, 그것만큼은 좀체 맘에 들지 않았지만. 아니, 맘에 안 드는 게 어디 그것뿐이겠나. 잠뜰은 부러 발을 세게 굴러댔다. 그래봤자 이제 막 내리기 시작한 비. 웅덩이로 고이지 않은 물은 덕개에게 튀기지 않았다.

 

  “나한테 할 말 없어?”

째려보다시피 한 잠뜰의 눈초리에, 덕개는 어색하게 웃으며 뺨이나 긁었다. 슬그머니 잠뜰 쪽으로 우산을 기울이는걸, 잠뜰은 제 맘에 맞도록 각도도 세밀히 고쳐 주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내 우산이니까.

  “어…. 뭐…. 없는데?”

그래, 이쯤은 예상했다. 좀 전에 분위기를 잡았던 게 거짓말처럼 덕개는 바보 같은 얼굴이었다. 늘 보던 그 낯. 순진하고, 좀 바보고. 오래된 친구의 얼굴 아래에…. 뜻 모를 말을 하는 네가, 섞여 있는 건가? 알 길 없는 의문이다. 당사자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잠뜰은 뚱하게 말을 돌렸다.

  “그럼 됐어. 대신 무서운 이야기라도 좀 해봐.”

  “그건 왜?”

  “네가 귀신 조심하래서.”

그렇다면 뜻 모를 말이나 해대는 낯선 얼굴의 네 안에도, 바보 같고 무르기만 한 내 친구가 섞여 있을까. 너는 어느 만큼이나 너인가?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잠뜰은 묻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묻는 것은 다른 것들로 충분했다.

 

그건 이를테면 돌려 묻는 것이나 다름없다. 수상쩍은 말을 그렇게 해댈 거면, 그래 놓고 뭔지는 좀처럼 이야기해 주지 않을 거라면. 빙 돌려서 하는 말로는 단서를 줄 수 있지 않나? 손짓발짓에 표정만으로 이야기가 되지 않아, 결국 물웅덩이에 코를 빠뜨릴 듯 바싹 고개를 기울이고 읊어대는 물그림자처럼 말이다. 그것의 입 모양을 잠뜰이 읽어냈듯이. …정말 도움이 되고 싶어서 던진 돌덩어리들이라면. 그 파도가 필요한 것이라면.

 

  “네가….”

  “응.”

  “나쁜…. 애라고는.”

  “…응.”

  “생각하지 않는데….”

 

말은 그렇게 어색하게 끊어진다. 그다음에 와야 하는 문장이 대체 무얼까? 그런데, 네가 나를 너무 헷갈리게 해. 가끔 네가 너무 위험해 보여. 나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잖아. 골치 아프고, 머리 아프고, 속 아프고 짜증도 나게 하잖아…. 그게 ‘착한’ 쪽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동시에 그렇다고 나쁜 의도가 아닌 건 알겠다. 물그림자처럼. 그냥, 이상하지만, 아마도 도움이…. 되려는 거겠지.

이 여름, 장마철, 빗소리는 조금씩 더해가고…. 잠뜰은 수수께끼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 삶에 얼마나 큰 수수께끼가 있었는지를 생각하자면 우스운 모순이다.

 

 

덕개는 대답하지 않고 발을 맞춰 느리게 걸었다. 남이 씌워주는 우산 아래서 잠뜰은 유난히 좀 덜 젖었다. 그것도 참, 이상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물귀신 이야기. 어린아이를 잡아먹고 자식인 척 집으로 돌아가는 요정. 집안에 살며 물건을 숨기는 도깨비. 여름 시골, 비 오는 날에 벌어진 사건…. 덕개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은 이야기를 잘도 했다. 가끔은 호들갑스러웠고, 때로는 음산한 체를 하기도 했다. 잠뜰은 대체로 시큰둥하게 들었다. 물론 이야기가 고조되는 순간에 번개가 쳤을 땐 둘이 나란히 놀라 소리 지르기도 했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천둥소리에 놀라 놓고는, 두 사람은 웃지도 못했다. 나 집에 어떻게 가지. 혼자 가다가 무서워지면 어떡해. 덕개는 그런 답도 없는 소리를 했지만, 늘 헤어지던 골목. 아파트 단지 앞에서 잠뜰은 매정하게 멈춰 섰다.

  “너 있잖아. 그런 이야기 좋아하지.”

숨어있는 이야기. 미신, 가짜, 허풍이 판을 치는 이야기들. 누군가 만들어낸 게 빤한 이야기들을, 덕개는 망설임 없이 주워들었다. 이러다가 한 번쯤 사고 칠 게 뻔한데. 생각하며, 잠뜰은 고개 끄덕이는 덕개의 낯을 뚱하니 바라보았다.

 

  “나한텐 왜 얘기한 거야?”

  “뭔 소리야, 네가 이야기해달라고….”

  “그 이야기 하는 거 아니잖아.”

젖은 바닥을 밟고 서서, 잠뜰은 덕개가 쥔 우산을 받아 들었다. 덕개는 대번에 놓아주진 않았다. 우산의 높이가 낮아지자 허리를 숙였을 뿐이다. 새파란 빛이라도 돌 듯 형형한 눈을 피하지도 않은 채다.

  “이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어? 의미가 있으니까 이야기한 거지?”

  “뭐…. 그건 알아서 생각해야지. 잠뜰이 네가.”

  “뭘 알고 있는데, 덕개야?”

  “에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

비가 내린다. 쏟아지는 소리가 억세다. 발밑에, 이제는 물웅덩이가 고여 걸음마다 찰박이는 소리가 났다. 그 아래서 잠뜰을 보고 있음을 안다. 물그림자는. 비가 오는 날이면, 고인 물 안에서 잠뜰을 바라보곤 했으니까.

 

  “잠뜰아. 나한테 할 말 없어?”

 

 

그런 생각을 한다. 손안에 사과가 하나 쥐어졌다고.

 

새파란 우산 손잡이가 반질하다. 한입 베어 물면 분명 달콤하겠지. 그 다음엔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무지, 헷갈림, 그런 건 다시 없으리라. ‘내가 설명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 속삭임은 어떤 종류의 유혹이나 다름없었다. 귓가에 뱀이 도사린다. 나쁘지 않았다. 꽤 괜찮은 제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렇다면야 골머리 썩을 일도 없을 테고…. ‘그냥, 이야기만 한 번 해주면 돼.’ 그래, 이야기 한 번에 무슨 일이 있겠어? 아무도 잠뜰에게 비밀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평범한 일은 아니긴 하지. 어쩌면 문제일 수도 있고. 그럼 얘가 해결책을 알 수도 있지 않겠어? 손안에 쥔 우산 손잡이는 새파랗다. ‘왜 망설여?’ 잠뜰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그 질문을 속으로 되읊는다. 그러게, 왜 망설일까…. 진실을 알게 된다면, 그때 느껴야 하는 감정은 설렘과 불안 중 어느 것일까? 입술을 벌렸다가, 소리 내지 않고 다문다. 문득 떠올린다. 둥글게 입술을 오므리고, 소리 없이 읊는 두 음절. 그 이름, 발밑에 있을…. 빗소리가 요란하다….

 

잠뜰은, 우산을 확 뺏어 든다.

 

졸지에 가릴 걸 뺏긴 덕개의 위로 빗줄기가 쏟아진다. 머리며 가방이며 옷이며 할 것 없이 사정없이 젖는다. 그런데도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잠뜰은, 좀 전까지 생각에 늪처럼 빠져있던 잠뜰은, 저도 모르게 차오른 숨을 가쁘게 쌔근거리며….

  “말, 안 해.”

씹어뱉듯 이야기한다. 비보다 거세게 쏟아지는 생각을 밀어내고서. 숨을 고르다 말고 고스란히 기침했다. 다 나아가던 감기 끝에 남은 잔기침 따위가 아니었다. 덕개는 꼭 제가 밀려난 듯이, 비를 피하지도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잠뜰을 향한 시선만큼은 섬뜩하리만치 선명했다.

  “안 알려줄 거야. 방금, 방금 대체 뭐야? 너 왜….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

  “….”

  “너 뭘 알아?”

  “….”

  “너 뭐야, 대체….”

젖은 머리를 털고서, 덕개는 한숨처럼 웃었다. 떨어지는 빗물에 그제야 인상을 쓴 채다. 다 젖은 얼굴을 몇 번 손으로 대충 문지르더니, 그대로 몸을 돌린다.

  “비 많이 오겠다. 집에 조심히 가.”

 

쏟아지는 비. 장마의 시작이다. 덕개는 그렇게 가 버렸다. 잠뜰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다가,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젖지도 않은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다 나아가던 감기가 도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발밑에 고인 물웅덩이가 말을 걸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일상이란 건, 그러니까 일상이라는 건…. 어제가 오늘 같아야 하고, 오늘이 내일 같다는 뜻인데, 또 가끔은, 그 일상이라는 게 참 웃긴 게, 그렇담 매일 같이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그걸로도 일상이 되는 걸까? 이-상하다는 말과 일-상- 이라는 단어는 또 얼추 보기에 비슷하게도 생겼지, 혀끝으로 입천장을 막으면 그 동작 하나가 ‘ㄹ’을 만드는데, ‘이’라는 글자를 발음하려면 또 입꼬리를 납작하게 당긴 채 이를 맞부딪혀야 하니, 모양새로는 구분할 길이 없는 것이다, 일상, 일상, 이-상한 하루…. 비-일-상-….

 

영 새로운 오늘이 몰아닥쳤다. 어제로는 돌아갈 수 없다. 자각하기 전으로는, 겪기 전으로는.

 

잠뜰은 침대에 고개를 파묻었다.

‘어느 비 오는 날 밤이었어. 시골집에서야 할 게 없고. 어른들은 죄 바쁜 통에 소년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더래. 번개가 번쩍, 하는 순간 창문 너머로 누가 서 있는 게 보였는데….’

그건 지난번 체육 선생님이 들려주셨던 이야기였다. 비 오는 날, 취소된 수업 시간을 대신해 불을 끄고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잠뜰도 아는 이야기였지만 덕개의 말을 끊지 않았다. 창문 너머로 빗소리가 여전히 거셌다. 시간은 아마도, 밤일 테고, 가끔 천둥소리가 넘쳐서 방 안에 고이곤 했다.

 

‘갑자기 비가 와서, 문 좀 열어주세요. 그런 식으로 말을 걸었더라는 거야.’

 

마을 어른들이 돌아왔을 때, 함부로 문밖의 사람에게 문을 열어준 소년은 이미 없었다. 집안에는 축축한 물 자국이 가득했다고 한다. 무서운 이야기란 그런 식으로 끝난다. 사람이 없어지거나, 귀신이 없어지거나. 둘 다일 수도 있고. 함께, 같이, 그런 건 이런 존재에게 적용되지 않는 규칙인 것처럼. 들으면 괜히 찝찝해지는 이야기만 가득했다.

덕개가 했던 이야기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소원을 이뤄주는 인형이 있다는데, 알고 보니 사람들을 몽땅 인형으로 만들려고….’

‘어느 날 얼굴이 꼭 닮은 도플갱어가 나타나서….’

‘그렇게, 거울 너머에서 아직도 이쪽 세상으로 오고 싶어 한다는 거지.’

‘아직도 그 마을은 거기 있다나 봐.’

이어진 이야기는 어딘지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잠뜰이 듣기에, 그건 꼭…. 경고 같기도 했다. 자, 들어. 그리고 기억해 둬. 누군가 그렇게 속삭이기라도 하듯이. 그렇담 거기서 무엇을 교훈 삼아야 하는가?

 

비가 쏟아진다. 어디선가 노크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커튼 뒤 창문 너머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장롱 안에, 침대 아래 무언가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무서운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은 탓이다. 그래, 그런 이유로 신경이 쓰이는 거지. 본래라면 궁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잠뜰은 귀신과 유령을 믿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분명한 존재를 알고 있으니까. 은근한 불빛이 어른거리는 천장을 보며, 잠뜰은 침대에서 몸을 뒤척였다.

 

그리고 다시 곱씹는다.

 

대체, 침대 아래 뭐가 있는 걸까….

 

 

 

그러니까, 나는 있잖아.

평생 모르는 채 살 수는 없었는지도 몰라.

 

침대 아래를 들여다보려면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머리를 낮추고 고개를 비틀어야 한다.

물웅덩이 너머를 들여다보려면 바닥에 쪼그려 앉아 무릎을 감싸안아야 한다. 옷자락을 들치고 우산을 기울여야 한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은 알고 있었다.

 

너 역시도 그렇지?

 

 

  “너는 뭐야?”

 

그러면 너머에서도 잠뜰을 마주 본다. 눈꼬리를 휘어 접고 웃으며, 들린 입술 아래로 뾰족한 송곳니가 언뜻 내비쳤다. 무슨 재미난 농담이라도 들은 것 같은 표정이다. 초록색 우비인지 후드인지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마치 거울의 반사면처럼…. 잠뜰을 마주 본다. 한 겹 웅덩이의 물그림자 건너에서. 소리는 없지만 그것은 대답한다.

비밀.

 

반복되는 입모양에서 잠뜰은 단어 하나를 건져 올렸다. 그러고도 듣지 못할까 염려했는지, 그것은 우습게도 입술 위에 검지를 얹는 시늉을 했다. 입술이 두 번 다물렸다가 떨어진다. 물 너머의 소년은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인상을 콱 쓰고 있는 잠뜰과는 다르게.

  “왜 말을 안 해줘. 언제까지 비밀일 건데? 영영 모르고 살아야 해, 나는? 네가 뭔지도?”

잠뜰의 화가 와닿지도 않는지, 물그림자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가슴팍 앞으로 팔을 교차해 커다랗게 가위표를 그린다. 그리고 다시금 단어를 뱉는 것이다. 잠뜰은 더듬더듬 입 모양을 읽어

내린다. 말, 안 돼. 설…. 설명, 할, 수…. 없다고? 물 너머에서는 두 번 고개를 끄덕인다. 무엇을 말하는지는 이해했으나,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들뿐이다. 속이 콱 막힌 듯 답답하기만 했다. 궁금해. 궁금해하지…. 말라고. 조용한 뇌까림에 물그림자는 환한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뜰이 말을 알아들은 게 퍽 마음에 들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수면에 바싹 기울였던 몸을 번쩍 일으켜 세우곤, 일없이 물을 튀기며 서성였다. 잠뜰은 우산을 받쳐 든 채 그 모습을 빤히 보았다. 악의가 없다는 건 알았다. 단지 그뿐이라는 것도.

 

  “왜 물어보면 안 돼?”

물속에선 어깨를 으쓱인다. 웅덩이 너머의 그것이 불쑥 고개를 기울인다. 뒤집어쓴 초록색 모자가 그 얼굴에 언뜻 그림자를 드리운다. 잠뜰은 반 발짝을 물러나고 만다. 물 너머에서 눈을 끔뻑이고 있는 모습이, 우산을 치운 자리로 뚝 떨어진 빗물에 흐려졌다가 선명해진다. 잠뜰은 마른침을 삼킨다.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누구도 가르쳐준 적은 없다. 잠뜰은 갈대밭과 대나무숲의 이야기를 알았다. 임금님-귀는-당나귀-귀다- 그 문장 하나가 어디까지 퍼질 수 있는지를 안다. 그럼에도, 왜 말했는지도 미치도록 잘 알 것만 같았다.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소리치게 만든다. 절로 언성이 높아졌다.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서.

  “너…. 나쁜 거야? 사악한…. 귀신 같은 거? 사람 잡아먹고, 물속에 빠뜨려 죽이고?”

가끔은. 그것이 대답했다.

  “그러면 좋은 거야? 수호천사라든가, 뭐…. 사람 도와주려고 하는?”

그것도 가끔은. 물그림자가 답했다.

  “왜 거기 있어? 거긴 물 속이잖아. 왜 나한테만 보여?”

너니까. 그것은…. 그렇게 말했다.

  “….”

 

비밀. 비밀이야. 다른 대답은.

소리 없는 문장을 잠뜰은 읽었다.

 

알고 있었다. 모든 미지가 공포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포는 대개 미지에서 온다. 내가 보지 못한 것에, 내가 모르는 곳에 무엇이 있는가. 아주 오래된 이야깃감들이다. ‘어느 비 오는 날 밤에, 번개가 번쩍하고, 창 밖엔 사람이 서 있었는데….’ 침대 밑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잠뜰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았다. 그러나 한 번도 들여다본 일은 없었다. 보지 않아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이빨을 드러내며 침대째로 자신을 삼키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돌이켜 생각하기를, 나는 언제부터, 이것을 친밀하게 여겼는가? 아마도 그것 역시 처음 보았을 때부터,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테다.

나는 고작 그 정도의 이유로 너를 믿었다.

  “내가….”

이 문장은 한 번 고쳐 말할 필요가 있다.

 

  “너는, 내 친구야?”

물그림자는 샐쭉 웃었다. 익숙한 표정, 장난기가 묻어나는, 짓궂은 낯으로. 뾰족한 이 끝이 드러나도록…. 늘 그랬듯이….

그리고 대답하지는 않았다.

잠뜰은 그 너머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빗줄기가 사방을 두드렸다. 바닥에 우산 살이 닿도록 동그마니 몸을 웅크려, 웅덩이 앞에 쪼그려 앉은 채. 모퉁이 너머, 자동차 한 대가 요란스레 물을 튀기고 가는 소리가 선명하다. 행인들의 발소리, 물웅덩이가 튀기는 소리, 억센 빗소리…. 한치도 고요하지 않은 세상에서 잠뜰은 잠시 목소리를 내버렸다. 찬찬히, 입술을 둥글게 모은다. 혀도, 치아도 보이지 않도록 오므리고, 혀를 한 번 굴린다. 소리 낼 필요 없는, 작은 동작. 그것의 이름…을 불렀다.

  “네가 이상해.”

 

정말이지 오랫동안, 저것은 잠뜰의 일상이었다. 어제도 있었고, 아마 내일도 있을. 그러나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알고 있었다. 정말이지 오랫동안, 잠뜰은 그 사실을 외면해왔다. 그래도 이제는 묻을 수 없었다. 이제는.

  “너를 알아야겠어.”

 

이건 호기심 따위가 아니었다. 당위가 된다. 여름, 해가 뜨고 그림자는 짧아진다. 장마가, 억센 비가 하늘을 가려보려 애를 썼으나 그뿐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랴? 싹을 틔운 의문을 잘라낼 수는 없었다. 잠뜰은 끝끝내 고집스럽게 말을 맺었다.

  “네가 뭔지…. 오늘은 들을 거야.”

실상 할 수 있는 건 말뿐이다. 잠뜰은 그것을 알았다. 아마 물그림자도 그것을 알 테다. 말하지 않으면, 말하지 않으면…. 뒤이을 수 없는 협박성 문장을, 으름장을 어떻게든 완성하려 해봤자, 그게 전부다. 잠뜰은 쌔근거리며 물그림자에게 눈을 맞췄다.

 

바람이 우산을 흔드는 탓에, 잠뜰은 두 손으로 우산을 붙들었다. 도대체 비가 거셌다. 되는 일이 없었다. 잔뜩 구겨진 표정이 그다지 보기 좋을 리 없음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도무지 웃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그림자도 그걸 알았는지, 서서히 웃는 낯이 지워졌다. 그런 표정은, 그것 또한 처음 보는 낯이었다. 속 모를 표정으로 한 꺼풀 너머의 소년은 오래도록 침묵했다. 그것이 분노인지, 슬픔인지, 잠뜰을 이해한 건지 당황한 건지조차 알 길이 없었다.

 

그래도 그건 입을 열었다. 아마도 물 너머에서는 말했을 것이다.

이곳까지 소리가 와닿진 않았다. 그래도 잠뜰은 그걸 읽었다. 설명도 변명도 아니었다.

 

걱정 마.

바다는 네 편이니까.

 

  “…그게 무슨 소린데?”

 

소리 내 묻는 순간에, 바람이 우산을 채간다. 새파란 물건이 흐린 하늘을 돌연 날았다. 비가 억세게 쏟아져 내렸다. 당황한 잠뜰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제 것을 쫓아 뛰진 못했다.

새까만 우산이 잠뜰의 머리 위로 기울어진다.

 

잠뜰은 덕개를 마주 보았다. 심장이 커다랗게 뛰었다. 시간은 애매한 오후. 귀가하는 학생들이나 몇 있을까 말까 한 골목, 비 오는 날의 단골 장소…. 사람 없고, 고인 물이 잘 빠져나가지 않는…. 발이라도 담그면 신발이 젖고 말 웅덩이 앞에서. 그래, 이곳은 오가는 사람이 드물 뿐이지, 꽁꽁 숨은 곳은 되지 못했다. 잠뜰은 언젠가 언뜻 보았던, 모퉁이 너머의 사람을 떠올렸다. 이쪽을 보고 있었던 것만 같았던 게 착각만이 . 그게 너였구나.

 

들켰, 구나…. 부적절하게도 그런 문장이 떠올랐다.

  “안 그래도 한참 고민했거든. 비 오는 날인 건 알겠는데, 어디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

덕개는 시선을 내렸다. 잠뜰의 발밑을 응시했다. 덕개가…. 물그림자를…. 들여다보았다. 아무도 그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심장이,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었다. 좀 전까지 우산을 쥐고 있던 손이 얼얼했다. 머리 위로 드리운 검은 우산이 한꺼풀 그림자를 덧씌운다. 잠뜰은 입을 열었으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여기 있었구나.”

 

번개가 번쩍, 내리꽂히고, 한 순간 눈을 감으면, 곧장 암전.

비일상은 그렇게 끝맺는다.

 

 

3.5 막간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하늘은 단지 은유다.

어떤 공간이 아니라 개념적인 존재로서, 하늘은 실존한다. 이쪽에 맞춰 설명하자면…. 그건 규칙을 만드는 존재다. 오늘과 내일의 날씨를 정하고, 시험 성적과 대학 이름을 고르고, 먼 과거와 가까운 미래를 바꾼다. 그 밖에도 이런저런…. 뭐, 많은 일을 한다. 딱히 전지하지도 않고, 전능하지도 않고, 신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그러기엔 많이 부족하니까. 차라리 살아있는 운명에 가깝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실제로 살아있기도 하고….

 

물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하늘이 우리 삶을 정해주든, 언제나 우리를 바라보든…. 어차피 다들 모르고 살아가니까.

게다가, 원래라면 몰라야만 하고.

 

  “하늘을 조심하라는 게 뭔 소릴까?”

 

그리고 덕개는 생각했다, 얘가 대체 뭘 알고 있는 걸까….

 

 

잠뜰에게는 비밀이 있다. 덕개는 그걸 알았다. 그건 하늘의 정체 같은 것보다는 더 중요한 일이다. 그야…. 비밀이 있어선 안 되니까. 주인공에게는 앞으로 생길 사건과 고난과 적당한 결말…. 정도가 있으면 충분하다.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요소가 다 갖추어졌다면, 그 외의 것은 차라리 없는 게 나았다. 하늘이 모르는 비밀, 그런 게 용납될 리가. 거기서부터 그건 고쳐야 할 문제가 된다. 골칫거리란 말이지.

 

뭐, 잘못된 게 알아서 잘 고쳐지면 제일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하늘이 바쁘다잖아.

그렇다면 달리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수밖에.

 

쏟아지는 빗물은 바다에서 난 것이다. 파도, 태풍, 물결과 흐름, 소나기와 장마, 그것들도 대개 비슷했다. 하늘의 눈을 살짝 피할 수 있는, 출처가 명확한 것, 푸르게 나뉜 것, 뺏긴 것…. 뭐, 이쪽도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그다지 대단치도 못한 하늘의 눈을 가려버리는 것들이라 하겠다. 그렇게 먹구름과 빗줄기 사이로 교묘하게 숨은 것이 있다. 덕개는 그게 누구인지쯤은 알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그러니까, 애초부터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지 어디인 줄만 알면 되니까.

궁금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건 거짓이다. 판도라는 결국 상자를 열었다. 프시케는 초에 불을 켰다.

 

  “말, 안 해.”

잠뜰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걸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아쉽게도.

그런 이야기니까.

 

바다의 배를 가르더라도 없애야 하는 게 있다.

그렇다면 달리 해야 하는 수밖에.

 

 

 

4. 일상

 

조금 일찍 시작한 장마는 어느 예보가 예상한 것들보다도 훨씬 일찍 끝나고 말았다. 여름 내내 습하고 더운 날씨가 이어졌다. 뙤약볕은 흔하고, 여름 햇살로도 말리지 못한 끈적함이 짧은 방학이 끝나고도 남아있었다. 아이들은 매일같이 선풍기와 에어컨을 찾았고 빈 말로도 좋은 날씨라 부를 수 있는 날은 드물었다. 그해의 가을은 지독하게 가물었다고 한다.

겨울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 건지….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깜빡 눈을 뜨면 한 주가, 한 달이 끝나있었다. 계절 두 개를 보람 없이 보낸 초겨울에도 마땅한 성취는 없었다. 수능 시험은 그럭저럭 망쳤다. 이상하게도, 이것보단 더 잘 봤던 것 같은데…. 비 내리는 시험지를 들고서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뭐, 삶이란 게 그런 거지. 시험을 말아먹은 사람이 잠뜰만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냥 그런 식이었다. 또 이상하게 제 평소 성적보다 얼추 잘 본 덕개와 같은 대학에 붙었다는 게, 그나마 있는 별난 소식이 되어주었다.

 

별달리 유별난 것도 없는 날들이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을….

그건, 새삼스럽게도, 지루하고 또 실망스럽기도 해서….

 

덕개는….

덕개는 그날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굴었다. 아니면, 모르겠다. 어쩌면 정말 모르는 건지도.

태평한 낯으로 말을 걸어오는 그 애를 보고 있노라면 속이 끓다가도 차게 식었다. 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그러나 멀어지지는 않았다. 단지 같은 대학에 다니며 또 엇비슷한 동선을 공유하기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그건 어떤 운명 같기도 했다. 돌아갈 수 없다 적힌 표지처럼.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도 하고, 함께 놀며 즐기기도 하고, 다시, 일상….

 

  “이건….”

새로 시작된 봄은 짧았다. 시작된 여름도 밍숭맹숭했다. 매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뭔가….”

비답지도 않은 것이 몇 번 하늘을 흐리다가, 밖으로 나갈 즈음이면 젖은 땅도 어슴푸레 말라 있기 일쑤였다.

  “잘못됐어.”

매일이 초조하게 지나갔다. 물그림자는 오지 않았다. 그건 비 오는 날에만 왔으니까. 고인 물웅덩이 너머에서 잠뜰을 들여다보곤 했으니까. 호수와 강가에는 없다. 억지로 물 양동이를 들이부어도 없다. 말라붙은 땅을 야속해한들 바뀌는 일이 없었다. 웃다가도 속이 또 들끓고, 답답하고…. 그러나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난 말야, 물가에 살아야 하려나 봐. 아니면 비 많이 오는 나라….”

 

언젠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날에 했던 말은 사실 농담조차 될 수 없었다. 하루하루 말라가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기분만이 아닌지도 모르지. 그보다 간곡한 진심이 있을 수 있을까? 잠뜰은 생각한다. 바다가 내 편인 게 아니라, 내가 곧 바다에서 왔으리라고. 그 넓고 푸르고, 충만한, 물결에서…. 쏟아지는 비, 몰아치는 태풍에서 나는 만족했노라고.

그러나 깨달음을 일러줄 물그림자는 없다. 그것들을 몽땅 다 빼앗긴 거구나. 어느 저녁에 내린 짧은 비. 우산을 들고 들여다본 물웅덩이에는 잠뜰의 모습만이 고스란히 비쳤다. 잠뜰, 의 비는, 태풍은 이제…. 영영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잠뜰은 이제 스무 살이다. 어른이 되면, 어릴 적의 친구와는 쉽게 멀어진다고 한다. 그것이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든, 어릴 때 좋아하던 취미든, 상상 속…에나 나올 법한 수수께끼든. 상상 친구 같은 거라면 진작 졸업했어야지. 이상한 환상에, 비일상에 너무 오래 젖어있던 것이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사막의 신기루에 목멜 수는 없다고. 다 지나가 버렸다면, 이제는….

그렇게 이를 악물고 되뇐들, 우습게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 그래도, 그렇게 끝낼 수는 없다. 좀처럼.

 

 

나는, 아직 네가 뭔지도 모르는데….

 

 

있는 줄도 모르던 짧은 장마가 어제 끝났다고 한다. 잠뜰은 마른 땅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무작정 밖을 나갔다. 갑작스러운 충동이었다. 하늘은 어슴푸레 어두워 막 노을이 지려던 참이다. 낮이 제법 길어진 덕이지, 겨울이라면 해가 지고도 남았을 테다. 지금 나서면 몇 시에 도착하는 거지? 막차를 타도 집에 돌아올 수 있나?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데도,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도리어 서두르기만 했다. 핸드폰과 지갑, 얼결에 챙겨온 새파란 단우산 따위만이 소지품이 되었다. 버스를 잡아타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갑작스러운 뜀박질과, 탈것을 또 몇 번 바꾸고, 이럴 줄 알았더라면 종종 가볼걸, 이제야 후회해도 늦어버린 초행길을 거쳐서…. 목적지는 하나뿐이다.

 

바다, 에….

 

닿는다. 파도가 몰아닥치는 모래사장 앞에서 잠뜰은 숨을 골랐다.

짧지 않은 이동 사이에 해는 그렇게 다 져 버렸다. 저녁도 아닌 완연한 밤이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지지도 않은 해변가. 이곳에는 별 몇 개만 희미하게 빛나고, 사위가 어둑한 게 흐린 날씨와 다르지 않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뛰었더니 괜히 숨만 가쁘고, 신발 속에는 모래가 가득하다. 물속에 발 한 번 담근 적 없는데도 찝찝하다. 파도가 코앞까지 쏟아지며 물방울을 튀긴다. 잠뜰은 두 걸음을 물러났다. 썰물이었는지, 이미 젖은 모래 위로 발자국이 남는 것을, 숨 고르며 바라보다가…. 주먹에 힘을 준다.

  “바다가 내 편이라 했지?!”

 

철썩, 처얼썩, 쏴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데 파도만 친다. 그 물소리가 언뜻 빗소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그야말로 유치한 짓이다. 무슨 말을 믿는 거야? 들은 지 한 해는 족히 넘은, 정체도 모를 물그림자인데. 마지막으로 남긴, 그 말…. 그 말 하나를 무슨 동아줄처럼 붙들고 이곳에 왔다. 충동적으로. 새까만 바다가 눈앞에 남실거렸다. 잠뜰은 커다랗게 숨을 들이켰다. 짠 내가 물씬 풍기는 습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타는 듯한 갈증을 그걸로 해소할 수 있다는 듯이.

 

  “그러면, 그럼 이번만이라도….”

까랑까랑 높였던 목소리가 한 꺼풀 느려진다. 무엇을 바란다고 말해야 하는가? 바다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데? 밀려오는 물거품이 새하얗게 일었다가 고요히 사그라든다. 잠뜰의 말을 듣기 위해 파도조차 숨죽인 것 같았다. 발치로 시선을 내린 잠뜰이 성큼 발을 내디딘다. 젖는, 걸 두려워한 적은 없었다. 밀려온 파도가 운동화와 양말을 적신다. 모래를 씻어주기라도 하는 듯이. 그 얕은 바다에 발끝을 담그고, 잠뜰은 파도에 속삭인다. 나는, 내가 원하는 건….

 

비를.

태풍을 바랐다.

 

 

그리고, 바람이 몰아닥쳤다.

한순간에 세상이 쓸려나간 것만 같다. 파도처럼 억세게. 숨이 달려 허우적댄 것도 같은데, 두 발은 여전히 바닥을 단단히 딛고 서 있는 채였다. 고개를 들었을 땐 낯선 풍경이었다. 온통 흐리고, 먹구름으로 빚은 듯 탁하고…. 발목까지 물이 잠긴다. 웅덩이, 가 고인 것처럼. 그곳에서….

 

잠뜰은 눈앞, 에 서있는…. 형체를 마주봤다.

  “와, 내 목소리 처음 듣겠네. 그렇지?”

물그림자가 웃었다.

 

 

 

 

5. 폭풍

 

비가 거세게 쏟아졌다. 바람 소리가 어찌나 큰지,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우산은 어느샌가 들고 있지 않았다. 가지고 있었다고 한들 이 비바람에는 소용없었을 테다. 그런 게 의미 없을 만큼 이미 흠뻑 젖은 채였다.

 

잠뜰은 연신 젖은 소매로 얼굴을 훔쳤다. 보고도 믿기지 않아서 몇 번이나 눈을 비볐다. 그래도 사라지지는 않았다. 몰아닥친 비일상은. 눈앞에 있는, 사람…. 그건, 언제나 물웅덩이 너머로만 볼 수 있던, 그것이었다. 소년은, 사실 소년이라고 부르기엔 제법 큰 덩치의 상대는 익히 기억나는 낯으로 웃었다. 이빨이 다 보이도록 히죽 웃고서.

 

  “나를 불렀….”

그 짧은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잠뜰은 그것의 멱살부터 잡아챘다. 거칠고 다급한 손길을 못 내칠 것도 없을 텐데, 상대는 휘청일지언정 뿌리치진 않았다. 그 무게, 가…. 감촉이 낯설다. 잠뜰은 바싹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쳤다. 말이 너무 뒤엉킨 탓에 벌어진 입으로 제대로 된 말도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마음만, 마음만 너무 다급해서. 당황스러워서….

 

  “야!”

  “어엉….”

  “너, 너…. 어디 갔었어! 왜 이제야….”

  “들켰잖아! 너 때문에! 아니, 뭐. 너 때문은 아니긴 하지. 알아서 때 되면 나갈 건데, 왜 그렇게까지 한대? 막 너무하고 진짜, 매정하기 짝이 없어서, 참 내….”

구시렁거리는 말들이 하나같이 낯설다. 잠뜰은 한껏 눈을 둥그렇게 키우고 그 꼴을 보았다. 평생을, 한평생을 물 건너편으로 보았던 게 여기에 있었다. 그 목소리, 목소리가 들렸고, 맞닿은 팔에는 온기가 있고…. 살아, 있…. 그런 말을 중얼거리다 말고 잠뜰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놀라기만 할 때가 아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나? 그냥 뭐, 쫓겨났지. 뭐야! 설마 너 내 걱정….”

  “아니거든?!”

대번에 기겁한 잠뜰이 씩씩거리며 물그림자를 밀쳤다. 아니지, 이제 물그림자라고도 할 수 없긴 한데…. 휘청거리며 물러난 꼴이 암만 봐도 떠밀리는 척 해주는 모양새라, 잠뜰은 도리어 심기가 불편해졌다.

물 너머로는 몰랐다. 오랫동안 봐왔던 상대가 그토록 낯설었다. 물그림자는…. 키도 덩치도 웬만큼 크고, 탁한 갈색 머리칼은 잠뜰과 언뜻 닮은 듯도 하다. 뒤집어쓴 모자는 우비가 아니라 후드티였나본데…. 잠뜰은 그것이 하나도 젖지 않은 것을 알아챈다. 여전히 비는 억세게 쏟아지고 있는데, 그 비를 다 맞고도. 물웅덩이 너머에 있는데도…. 새삼스럽게 고개를 들면, 탁하기만 한 곳이다. 바다도 아니고, 아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

  “여긴 어디야?”

  “어…. 내가 있던 곳? 용케 찾아왔지, 네가.”

  “넌 누구야, 그럼? 아니지. 넌 뭐야?”

  “아니, 이제 사람 취급도 안 해주네!”

 

잠뜰은 우하하 웃어버리는 상대를 뚱하니 노려봤다. 사람 취급 안 해준 거, 맞는데…. 사람이 맞긴 한 건가? 이렇게 마주 보니,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사람, 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생겼다는 것도 알겠다. 그렇담 왜 물웅덩이 너머에만 있었는데? 잠뜰은 질문을 퍼붓는 대신 그냥 팔짱이나 꼈다. 당장 대답하라는 무언의 압박과도 같았는데, 비바람에 쫄딱 젖은 채로도 의미가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것은 뺨을 긁적였다. 좀 멋쩍은 것 같기도 한 태도였다.

 

  “그런데, 음, 글쎄…. 사실 생각 안 해봤어. 파도, 물안개, 물결? 뭐, 안 중요할걸?”

  “그런 게 어떻게 여기에…. 날 보러 오는데?”

  “아, 뭐…. 네가 파도를 좀 잊긴 했는데, 바다는 아직 네 편이라서.”

 

또, 또 그 소리다. 잠뜰은 냅다 표정을 구겼다. 야! 알아듣게 좀 말해! 버럭 호통치며 한 걸음 성큼 내디뎠더니, 상대는 당황한 낯으로 손사래를 쳤다. 비바람이 몰아치며 두 사람을 휘청 떠민다. 위협적인 것은 날씨지 사람이 될 수 없어서, 잠뜰은 화를 내려던 맘을 마지막으로 삼켰다. 다행히 상대도 얼른 변명 엇비슷한 걸 내놓았다.

 

  “아니아니, 설명해 줘도 네가 몰라!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내가 좀…. 규칙을 어겼어.”

  “무슨 뜻이야?”

  “여기엔 ‘등장’하면 안 되거든. 네가 보고 싶어서, 음, 뭐. 치트를 좀 썼지.”

  “지금까지 만났잖아. 지금도.”

 

잠뜰의 뚱한 대답에 그것은 그냥 커다랗게 웃어버리고 만다. 아니, 애초부터 썩 기분이 좋아보이는 것도 같았다. 그동안에도 자주 그랬듯이…. 하기야, 잠뜰도 저게 화를 돋구지만 않았다면 썩 기분이 나쁘지 않았으리라. 비가 이렇게나 쏟아지니까. 쫄딱 젖긴 했지만, 목이 마르고 답답하지 않으니까. 오랜 갈증을 달래려는 것처럼, 잠뜰은 커다랗게 숨을 골랐다. 쏟아진 빗줄기에 젖은 얼굴만 소매로 닦아낼 뿐이다. 소매 역시 젖어서 의미 없는 동작이었지만.

그것 역시 비슷한 모양새다. 좀처럼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는 것처럼 씰룩거리더니, 오히려 한 발자국 물러나고서 하늘을 향해 번쩍 손을 들었다. 한결 빗줄기가 거세진 듯한 착각이 일었다. 잠뜰은 팔을 들어 머리를 가렸다. 거의 아플 정도의 빗물이었다.

 

  “여긴 물그림자 너머니까. 네가 바다까지 와줬잖아. 꼼수 같은, 음…. 아무튼 여기도 곧 떠내려갈 거야. 폭풍이 오고 있잖아! 이런 걸 견딜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어.”

  “….”

  “난 여기서 끝.”

  “끝나면?”

  “다른 곳에서 만나겠지. 믿거나 말거나. 이제 숨어있지 않아도 되지롱.”

 

얼마나 답답했는지 몰라. 뭐, 재밌기도 했어. 영영 못 찾아도 재밌긴 했을 텐데…. 영원이란 건 어차피 없는 거니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빠르게 쏟아지는 말들을, 잠뜰은 멍하니 듣는다. 정말 수다쟁이…. 아니지,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아니었다.

 

이게, 정말 이야기의 끝이다. 여기에 마침표를 찍으러 온 것이다. 물그림자는 그에게로 되돌아온 게 아니라…. 오래된 비밀. 내 친구. 그 일상은…. 비로소 작별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잠뜰은 젖어든 얼굴을 마구잡이로 부볐다. 빗물이 들어간 눈이 따가웠다. 물론 상대방은 후련한 낯이었다. 킬킬 웃어버린 그것은 한 걸음 더 물러선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만큼의 간극이 벌어졌다. 잠뜰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추위에 온몸이 덜덜 떨렸다.

  “나….”

  “응?”

바람이, 비바람이 거세게 불며 다시 목소리를 흩어 놓는다. 잠뜰은 가늘어졌던 목소리에 힘을 준다.

  “나 대학 갔어!”

  “어엉?”

  “친구도 더 많고! 엄마랑도 화해했고, 또….”

언제나 그 재미없는 이야기들을 다 들어주었던, 비 오는 날을 기다리게 했던, 그 비밀 친구. 네가 무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설명을 아무리 들어도 이해할 수는 없을 테다. 바람 한 줄기가 잠뜰을 휙 밀어낸다. 그만 발을 휘청이고 말았다. 몇 걸음 앞의 상대가 잘 보이질 않았다.

  “…나도, 음….”

  “….”

  “…여기서 노는 거 재미있었어. 뭐, 넌 앞으로도 잘 할 거니까….”

그 문장 끝에, 작별 인사가 올 것을, 잠뜰은 직감했다. 그렇다면 이토록 오래된 친구에게는 무슨 이야기를 전해야 하는가? 떠올리는 순간에,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진 잠뜰이 온 힘으로 외쳤다. 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는 폭풍 속에서.

  “이름!”

  “뭐?”

  “이름 알려줘!”

 

물그림자는, 으하하 또 한바탕 웃어버린다. 가끔 동작으로만 봤던 그 웃음이 귓전을 때린다. 잠뜰은 빗물 사이에서 눈을 부비고 치켜뜬다. 입술을 둥글게 모은다. 혀도, 치아도 보이지 않도록 오므리고, 혀를 한 번 굴린다. 이제는 보이지 않아도 알 것만 같은 동작을 끝으로….

번쩍 눈을 뜨면 하늘이 맑다.

 

 

잠뜰은 혼자 서있었다. 바다도 아니고, 그냥 집의 어느 길목이었다. 언젠가 물웅덩이를 들여다보며 장난을 치곤 하던 장소 같기도 했다. 거기에, 그냥 혼자서…. 학교에 가려던 듯 바리바리 짐을 챙기고서. 걸음을 걷다 멈춘 것처럼, 어정쩡한 자세로. 눈을 끔뻑이다가 잠뜰은 걸음을 옮겼다. 서둘러야 수업 전에 도착할 시간이었다.

비 같은 건 온 적도 없는, 그저 일상의 한 자락. 내가 되찾은 비일상.

 

늦가을에 내린 몇 번의 소나기에도 네 얼굴이 비치는 일은 없었다. 그런 끝이다.

  “…공룡.”

 

비에 쓸려가 버린 네 이름 하나만, 사라지지 않고 잔잔히 남아있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잠뜰은 비밀 하나를 가졌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말하면 안 된다. 이건 잠뜰의 비밀이었다.

만들어진 세계, 이야기, 주인공. 어떤 뒷면에 대한 것들. 때가 되기 전까지는 모르는 채 있어야 하는 것들.

그러니까, 사실 잠뜰은, 이 비일상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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