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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는 푸른 별이 있었단다. 오색으로 무수한 빛을 뿜어내던 별이었지. 아주 아름다웠다더구나. 그런데 말이지, 언제고 그렇게 빛나며 영원을 품으리라던 그 별은, 한때를 좇는 종의 오만에 무너졌단다. 눈부신 별의 자태가, 그렇게 우주의 영겁 속에서 찰나의 수유(須臾)로 남아 빛을 잃고만 게야.

 

이 세계의 태초 신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한 별의 멸망으로부터.

 

보통 사람

 

 오늘따라 운이 안 따라주네. 잠뜰은 생각했다. 이른 아침부터 엘리베이터가 줄줄이 서는 바람에 학교는 지각, 급식은 하필이면 잠뜰이 못 먹는 해산물 위주, 게다가 하교하면서는 언덕길에서 돌부리에 걸려 요란하게 넘어지기까지. 거창하진 않아도 사소하지도 않게, 은근히 신경을 긁는 일들이 가득했다. 그래서 잠뜰은 산으로 향했다. 학교에서 버스로 20분 거리, 주말에는 붐비지만, 평일에는 이상하리만치 한산한 작은 산으로.

 

 잠뜰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산으로 향하곤 했다. 인적 없는 조용한 산길을 걷다 보면 저 아래 도시와는 유리된 기분이 들었다. 그 위에선 성가신 모든 것들을 무시할 수 있었고, 그러면 작은 산은 그녀만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셈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아침부터 이어져 오던 불운의 맥을 잠시 끊어버리려 산을 찾은 것이었다. 좁은 산길을 따라 산의 중턱까지 올라가면 작은 벤치가 하나 있었다. 그 옆엔 잠뜰이 쌓아둔 돌탑이, 그보다 조금 뒤에는 낮은 나무 그루터기가 하나 있었다. 그녀는 이 산에서 그루터기를 가장 좋아했다. 거칠거칠한 나무 표면을 쓰다듬다 보면 잡념을 다 털어낼 수 있었다. 귓가를 스치는 약한 바람 소리와 가끔 볼 수 있는 조그마한 버섯들은 덤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 그루터기는 불꽃에 그슬린 채 부서져 있었다. 잠뜰은 눈을 거듭 비비며 그루터기가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그 자리에는 눈 씻고 찾아봐도 나무와는 닮은 구석이 없는 비행선이, 그것도 1인용으로 보이는 아주 작은 비행선이 놓여 있었다.

 

 비행선 옆, 커다란 나무 뒤에 우두커니 서 있던 남자는 자신을 지구인이라고 소개했다. 지구에서 이곳으로의 여행 허가 신청을 위해 자신이 대표로 왔다고, 아주 거들먹거리기도 했다. 잠뜰이 황당하고 경계스러운 눈빛으로 지구인과 비행선을 번갈아 쳐다보자, 지구인은 머리를 몇 번 긁으며 사실 날아오면서 길을 좀 헤맸더니 선체에 연료가 거의 바닥났다고, 그래서 이곳에 급정거했다고 해명했다. 그래도 잠뜰의 커진 눈이 바로 떠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아니, 뭐가 문젠데?’라며 짜증스럽게 물은 뒤 작은 소리로 ‘…요.’를 덧붙였다. 제 어색한 존댓말에 골이라도 난 듯 높게 묶은 머리를 거친 손놀림으로 꽉 조이기도 했다. 잠뜰은 그 투박한 신경질을 보고서야 정신이 들어 가장 먼저 묻고 싶었던 말을 던졌다.

 

  “그러니까, 그, 허…. 그러니까 그쪽이, 지구에서 왔다고요? 그 멸망한 별에서?”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응? 아니, 네?”

 

 지구인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별이 무너지기 시작한 후에야 오만한 종자들은 저들의 새 보금자리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단다. 수년이 지난 후, 그들은 멀고 먼 별 중 비교적 가장 가까운 별을 찾아내었어. 푸른 별보다 아름답진 못해도 제 고유의 빛을 뿜어낼 줄 아는 별이었지. 그렇게 인간들의 새로운 터전이 마련된 게야. 인간들은 오만함을 버리고 화합을 이루는 삶을 살리라 맹세하고 새 터전을 가꿨단다. 그리고 수만 년이 지나, 우리가 바로 그 별에 살고 있는 거지.

 

  “그러니 우리도 오만함은 버리고 선조들의 뜻을 이어 바르게 살아야 한다…. 이게 우리 신화에요. 멸망한 별은 지구, 새로운 별은 바로 여기.”

 

 잠뜰은 다 그을린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말했다. 다 타버려 바스러지는 나무껍질을 손가락으로 뭉개선 흙에 버리면서. 이 산에서 가장 편했던 공간이 하루아침에 떨어진 비행선 때문에 망쳐졌다며 따지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누르는 중이었다. 이제 진짜 어디서 쉬냐고, 한숨과 함께 낮게 읊조리는 말을 무시하고, 지구인이 빈정대며 물었다.

 

  “무슨 신화가 그렇게 짧아?”

  “제가 간추린 거예요. 원래는 엄청나게 길어요.”

 

 그럼 그렇지, 그렇게 짧으면 안 되지. 지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무껍질을 뭉개는 손놀림이 점점 빨라졌다. 정신 사나워. 잠뜰은 생각했다. 손을 한시도 가만히 두지를 못하네. 스멀스멀 올라오는 짜증을 참느라 잠뜰의 얼굴이 조금씩 찌푸려졌다.

 

  “그, 나무는 그냥 좀 놔두고 지구 이야기나 좀 해주시죠.”

  “아… 미안한데, 그 얘긴 좀 길어. 보아하니 넌 아는 게 전혀 없는 거 같은데. 다 말해주려면 10분은 더 걸릴 거다.”

  “저 시간 많은데요? 그냥 해주세요.”

  “아니, 너 말고, 내가 시간이 없어. 차라리 산길 안내 좀 해주면 내려가면서 말해줄게.”

  “바쁠 게 뭐 있다고…. 알았어요. 저 따라와요. 근데 아까부터 왜 반말해요? 처음엔 존댓말 써주더니.”

 잠뜰이 산길을 도로 내려가며 말했다.

 

  “그야 딱 보기에도 너는 학생이고 나는 성인이니까. 뭐 설마 아무리 그래도 같은 사람인데 노화 속도가 그렇게까지 차이 나진 않을 거 아니야.”

 

 지구인이 손가락으로 잠뜰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역시 같은 인간으로 분류되긴 하나 보네, 하고 잠뜰은 조용히 생각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지구인이 자신과는 조금 다르게 생긴 것이었다. 그게 종을 달리 해야 할 정도로 큰 차이는 아니었지만, 당장 눈앞의 손가락만 보더라도 그랬다.

 

  “근데 그, 지구인들은 손톱 못 넣어요?”

  “응? 뭘 넣어…? 손톱?”

 

 잠뜰은 제 손가락을 지구인의 눈앞에 보여줬다.

 

  “봐요. 손톱 넣는 거. 지구인은 이런 거 못 해요?”

 

 그녀는 손가락 안쪽의 손톱을 두어 번 빼고 넣었다. 지구인의 눈이 한계까지 커졌다. 표정 볼만하네. 잠뜰이 놀리듯 중얼거렸다.

 

  “아니, 잠깐만, 그게 무슨, 뭐… 뭘 어떻게 한 거야? 아니지, 내가 따라 한다고 될 리가 없지….”

 

 지구인은 말을 더듬으며 제 손가락 한 번, 잠뜰의 손가락 한 번, 바쁘게 눈동자를 굴리며 번갈아 보았다. 손가락 끝에 단단히 자리 잡아, 넣고 빼기는커녕 흔들지도 못하는 지구인의 손톱. 그리고 자유자재로 손가락 안과 밖을 드나들며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거듭하는 잠뜰의 손톱.

 

  “이게 왜 안 되지? 그럼, 지구인들은 뭐, 기계 같은 거 안 만지나? 우린 손톱 빼놓고 만지면 기계에는 흠집 나고 손톱은 깨진다고 엄청나게 혼나는데.”

  “아니 우리도 기계는 있지. 당장 비행선도 타고 다니는데…. 희한하다, 너희는 참….”

  “허. 제가 하고 싶은 말이네요. 그럼, 말 나온 김에 하나만 더. 지구인들은 원래 그렇게 다들… 머리가 길어요? 처음 봤을 땐 당연히 가발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까 그것도 아니네요.”

 

 아, 머리? 지구인이 자신의 긴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보통 여자들은 길고 남자들은 짧아. 남잔데 나만큼 머리 긴 사람은 거의 없어.”

 

 내가 조금 특이 케이스지. 그가 머리를 다시 높게 묶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너는 머리가 짧구나? 숏컷이네. 하도 정신이 없어서 그것도 이제 알았다. 너희는 뭐, 다들 그렇게 짧나?”

  “네. 저희는 남녀 가를 거 없이 그냥 다들 짧아요. 가끔 멋 부린다고 가발 쓰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긴 한데, 진짜 드물죠. 캡슐 탈 때마다 머리 신경 쓰기 귀찮거든요. 캡슐 닫힐 때 잘못해서 머리 끼면… 어우, 죽어요, 죽어. 엄청 아프고, 내리고 나면 다 잘려있고.”

 

 잠뜰이 제 짧은 앞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땐 그냥 개인의 차이인 줄로만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별 차원의 다름이었다니. 두 사람은 새어 나오려는 외마디 탄성을 참으려 무던히 애를 썼다. 자칫 무례하기 보일까 봐서였다.

 

  ‘찾아보면 이런 게 아마 더 있겠지? 하긴, 아예 다른 별 사람이니. 알고 보면 아예 먹는 음식도 다른 거 아니야? 이 사람들은 생식만 한다든가, 아니면 채식만 할 수도….’

 

 잠뜰이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뒤에서 종종걸음으로 산길을 내려오며 뒤따라오던 지구인이 물었다.

 

  “음, 근데 그 캡슐이라는 건 뭐야?”

  “…지구에는 캡슐도 없어요?”

  “그런 것 같지, 아무래도?”

 

 멋쩍게 대답하는 지구인을 답답하다는 듯 바라보고, 잠뜰은 아래를 가리켰다. 산 입구에 거의 도착했기에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도시의 풍경을.

 

  “저게, 캡슐이에요.”

 

 얇고 길게 난 여러 개의 레일 위로 사람 한 명 들어갈 크기의 ‘캡슐’들이 줄줄이 미끄러져 가는 도로의 모습을.

 

  “그건 그렇고, 아저씨 이름은 뭐예요? 우리 아직 통성명도 안 했잖아요.”

 

 분주한 도시의 모습에 말을 잃은 지구인에게 잠뜰이 물었다. 캡슐을 보자마자 말문이 막혀 우두커니 서 있던 그는 급히 대답했다.

 

  “아. 난 각별. 각별이야.”

 

 각별은 도시로 내려간 뒤에도 한참은 에스코트가 필요해 보였는데, 막상 본인은 도우미를 자처하는 잠뜰의 안내를 단박에 거절했다. 공용 캡슐에 몸을 실으며 머리가 끼지 않게 낑낑거리는 모습에 잠뜰이 정말 괜찮겠냐고 되물을 때도, 전부 적응했다며 당당하게 캡슐을 닫고 별의 대표를 만나러 떠났다. 명색이 지구인 대표로 왔으니 주체적인 행태를 보이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게 그가 캡슐을 타고 쌩하니 가버린 그때 잠뜰은, 이제 뒷산의 새로운 스팟이나 찾아야겠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짧은 만남은 그게 끝이었다.

 

 잠뜰이 뒷산에서 작은 시냇물을 새로 찾고 돌탑을 다시 지었을 때쯤, SNS에서 지구인 이야기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구에서 이 별로의 여행이 공식 허가된 것이었다. 별의 대표자가 지구의 대표자 각별과 악수하며 웃는 사진이 온 인터넷을 휩쓸었고, 사람들은 지구인과 지구의 존재 자체에 경악하고 신기해했으며 두려워하고 설렜다. 댓글에선 저마다 의견이 분분했다. 지구인을 환영한다, 지구인이 두렵다, 지구인은 위험하다, 지구에 가보고 싶다, 그 외 수만 가지 의견들이 정신없이 흘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 중엔 잠뜰의 눈에 띈 글도 있었다.

 

  ‘우리들의 일상을 망가트리지 말아라.’

 

 잠뜰은 각별이 들려준 지구의 역사를 떠올렸다.

 

지구가 인간 때문에 망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새 터전을 찾아냈다. 여기까진 똑같아. 새로운 별을 찾아내고는 거기로 이주해 갔다. 그것도 맞아. 근데 하나가 생략된 거지.

모든 인간이 함께 떠날 수 있었던 건 아니야.

생각해 봐. 이 별이 크기는 커도 중심별에선 멀리 떨어져서 생명 가능 지대의 경계에 걸쳐있다시피 하고, 익숙하던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대기 성분과 지구보다 가벼운 중력의 영향에, 자전 속도랑 공전 속도까지 뭐 하나 지구와 같은 구석이 없어. 그러니까 자기네들이 다 옮겨 갔다가는 새 별도 똑같이 망하겠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처참한 꼴이 되겠구나, 싶었던 거야.

그래서 ‘선별’한 거지, 지구와 같이 남을 인간을.

 

 

 한 번 들어온 지구인이 사람들에게 각인된 후, 그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을 몰랐다. 지구인의 존재 자체에 들끓었다가 한 김 식은 여론은, 이제 지구인의 특성에 다시 들끓고 있었다. 넣어지지 않는 손톱은 색다른 패션 요소 또는 위험한 잠재적 흉기로, 짧게 손질하지 않는 머리는 자유로움의 상징 또는 야만적인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어떤 사람은 어두운 곳에서는 무엇도 보지 못하는 저들과 달리 지구인은 밤눈이 밝다는 것을 근거로, 그들이 밤중에 범죄를 저지르기 십상일 것이라 주장했다. 어떤 사람은 별의 문명에 비해 지구의 것은 발달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는 것을 이유로 그들은 미개하여 저들에게 자격지심을 가질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지구인들은 저들에 비해 미적 요소를 중시하기 때문에 이 별의 메마른 예술 기조에 변화를 줄 것이라고 보았고, 또 다른 사람은 지구인들의 융통성 있고 자유로운 생활 모습이 이곳의 정형화되고 딱딱한 사회 풍조를, 즉 그들의 일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잠뜰은 이 모든 것에 어떤 의견도 가지지 않았다. 다만 각별의 이야기를 계속 떠올리고 있었다.

 

근데 그게 사실 말이 선별이지, 그냥 배제거든. 자격이 안 되는 사람들은 다 두고 가겠다는 거였어. 하지만 인간은 끝까지 교만에 가득 차 있었던 거지. 무자격자를 개인 성품으로, 그래서 주변과의 인간관계로, 그래서 자란 환경으로, 그래서 가정의 재력으로, 그러니까 결국 사회계층으로밖에 판단하지 못했어. 그렇게 하위계층만이 이주 계획에서 배제된 채 지구에 남겨지고, 이곳에는 그 외의 사람들이 이주해 온 거야. 하지만 지구는 망하지 않았고, 같은 뿌리에서 나온 인간이 둘로 나뉘어 지구와 이 별에 서식하고 있지.

근데 말이야, 넌 어떻게 생각해?

 

네가 그 ‘자격’이라는 걸 판단하는 사람이었다면, 뭘 기준으로 삼았겠어?

 

 잠뜰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고, 각별은 ‘나는 말이야…’ 하고 말문을 다시 열었었다. 체념인 것 같기도, 울분인 것 같기도, 다짐인 것 같기도. 그런 복합적인 것들을 담담한 목소리와 흔들림 없는 미소로 이야기했었다.

 

 지구인의 등장은 잠뜰의 학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몇 달 전만 해도 그저 하나의 신화였던 이야기가 사실은 현실을 덮어버린 채 내려오는 것이었으니, 학생들에게 신화를 가르치고 있던 교육계에서는 논의가 끊기지 않았다. 신화는 이전과 같이 교육하되, 지구의 현 상태 또한 함께 교육하여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면 된다는 의견이 우세였다. 드물게는 신화의 내용 자체가 하나의 실존하는 문명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며, 그에 따라 지구인들과의 갈등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신화의 전승 자체를 중단해야 한다고도 주장했지만, 대부분은 이 별의 탄생 설화와도 같은 신화를 그런 식으로 취급하는 것은 황당무계한 이야기인 데다 납득할 수 없는 문화 억압이라고 여겼다.

 

 파장은 비단 교육자 사이에서만 인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도 저마다 소란에 동참했다. 잠뜰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지구인과의 연애도 가능해지는 거냐느니, 지구인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느니, 들뜬 이야기를 꺼내는 학생들도 있는 반면, 인터넷에 조금 열심인 학생들은 금방 그곳에서 한창 뜨거운 주제를 들고 오기도 했다. 지구인의 등장을 환영하는 학생들은 지구인을 차별적으로 바라보는 학생들을 오만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지구인의 입성을 달가워하지 않는 학생들은 그에 낙천적인 학생들을 이상에 사로잡힌 얼간이들로 보았다.

학교는 점점 조용하지만 빠르게 분열되었고, 점점 주장과 반박, 냉소와 분개가 들어차더니, 끝에는 아주 은밀하고 보이지 않는, ‘편’이 만들어졌다. 싸움에 지친 학생들이 이윽고 지구인에 대한 의견 표출 자체를 멈추었지만, 편이라는 개념이 한번 각인된 이후, 학생들은 속으로는 서로의 사소한 한마디 말을 빌미로 저 사람이 내 편일까, 저 말은 내 편다운 말인가, 재단하기 시작했다.

 

 잠뜰도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안에 있었고, 그에 대한 그녀의 감상은 간단했다.

 

  ‘이러쿵저러쿵…. 진짜 피곤하게들 사네.’

 

 그리고 또, 각별의 이야기를 이어서 상기했다.

 

나는 말이야, 만약 나한테 그런 권한이 있었다면 과연 어땠을까 하고 자꾸 가정을 해봤었거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더라고. 나는 아무리 생각을 하고 아무리 판단을 해봐도, 감히 그럴 엄두가 안 나는데, 그때는 사람을 어떻게 그런 식으로 나눌 생각을 했을까. 그 모든 사람의 삶을 모르고 생각을 들어본 적 없는 데다 하물며 작은 습관은 당연히 알아보지 못했을 테면서 어떻게 그다지도 매정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아마 반대였겠지? 그리 매정했으니 개인이 어떤 개인인지 따위는 상관없었던 거야. 개인을 하나의 집단에 의탁하고, 개성은 숭덩숭덩 잘라내어 전체의 특성으로 뭉뚱그리는 게 가능했던 거야.

재밌지 않아?

 

아마 내가 여기 왔다는 게 곧 알려지면, 이 별에서도 머지않아 지구인을 판단하고 재단하겠지?

 

 

  “여긴 왜 다시 왔어요?”

 

 작은 산에서 다시 만난 각별에게, 잠뜰이 물었다. 어제 나온 기사에 따르면 이제 지구로 돌아간다고 했는데, 한가하게도 동네 산에나 다시 와본다니. 그녀도 혹시나 각별이 제 우주선을 찾으러 오진 않을까 싶어 산에 와본 것이긴 했지만, 예상 내에서라도 가장 황당한 시나리오였던지라 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지구로 돌아가기 전에 갈 곳이 여기밖에 없나? 오면서 우리별 사람들한테 해코지나 안 당했을까? 묻고 싶은 건 산더미였지만 그녀는 속을 삼키고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지구의 역사를 말해줄 때도 혼자서 잘만 떠들던 사람, 말 많던 사람. 그러니 묻지 않아도 많은 걸 말해줄 터였다.

  “내 우주선 찾으려고. 여기에 버려둔 채 떠났었잖아.”

 

 각별은 다시 만난 인연이 놀랍지도 않은지 태연하게 답했다.

 

  “아, 그러고 보니 길이 좀 헷갈리긴 하는데, 오랜만에 나 좀 다시 안내해 줄래?”

 

 개구지게 웃는 각별이 참 한결같다고 생각하며, 잠뜰은 예와 같이 앞장섰다.

 

 산길은 조용했다. 원래 이렇게 조용했던가? 잠뜰은 생각했다. 적막한 와중에 엇박자로 들려오는 두 사람의 발소리가 어색했다. 어색함을 깨기 위해 각별에게 무엇이든 질문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궁금한 게 너무 많으면 질문이 망설여질 수도 있음만을 배웠다. 만남은 이제 고작 두 번째에 대화 내용도 깊지도 않았던 두 사람이기에 차라리 대화가 편한 줄로만 알았건만, 예상치 못한 어색함에 잠뜰은 적잖이 당황했다. 이대로는 숨막혀서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잠뜰이 먼저 말문을 텄다.

 

  “오늘은 왜 그렇게 말이 없어요?”

 

 잠뜰은 침묵을 깨는 자신의 첫 마디가 듣기 싫게 흔들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늘은-에서는 떨리는 목소리, 없어요?-에서는 주눅이 들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다. 그녀는 각별의 표정을 살폈다. 제발 아무렇지도 않아라, 제발 그냥 곱게 대답이나 해주길, 속으로 비는 그녀의 마음이 무색하게도 그는 웃음을 참지도 않고 있었다. 잠뜰은 단박에 직감했다. 저 표정, 폭소를 터뜨려버리기 직전의 것이라고.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떨면서 하냐?”

 어절마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길 노력조차 하지 않으며 각별이 말했다. 잠뜰은, 분하지만 어색함이 달아났으니 영 최악은 아니지 않나, 라고 생각하며 발밑의 돌멩이를 힘껏 찼다.

 

  “그리고, 난 원래 말이 많은 편은 아니야. 그때 내가 술술 이야기했던 건, 글쎄, 비상착륙 때문에 이미 머릿속이 어지러운 상태라 가능했던 거 아닐까?”

  “진짜 안 믿기네요….”

 

 잠뜰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단지 첫 만남 만에 각별은 말이 많은 사람이다, 라며 너무 쉽게 단정해 버린 것을 후회했다. 그녀는 사소한 일에서도 반성할 만한 것들을 찾아내는 습관이 있었다. 반성을 소홀히 하다가 훗날 후회할 일이 생기는 건, 그야말로 최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도 미안해요. 멋모르고 첫인상으로만 판단해서 이 사람은 말이 참 많은 사람이구나, 했었어요.”

  “뭐 미안할 것까지야.”

 

 각별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는 잠시 조용하더니 이내 앞서가던 잠뜰에게 말했다.

 

  “근데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뭔데요?”

  “지금은 어때? 산에서 처음 만났고, 며칠 동안 매체에서 소식을 접했고, 지금은 다시 산에서 만난 나는, 네 생각엔 어떤 사람이야?”

 ‘뭐라는 거야….’

 

 잠뜰이 속으로 꿍얼댔다. 왜 저런 낯간지러운 질문을 하는 건지, 혹시 비행선을 찾고 나면 다시는 자신과 안 만날 생각인지, 다시 안 볼 사람이라 저런 민망한 질문이나 하는 건지, 점점 서운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도 아주 말없이 조용하던 것보다는 나으니, 그녀는 애써 대답을 고민했다. 분명 말이 많은 것 같았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고, 매체에서는 온갖 이미지를 씌워대며 이 별의 운명을 바꿀 작자로 취급하기까지 하지만 지금은 그녀의 앞에서 머쓱해하며 긴 머리를 매만지는 그는,

 

  “그냥 보통의 사람 같아요. 일상에서 언제라도 만날 법한.”

 지구인 전체를 대표해서 이곳에 왔지만, 그들 하나하나의 특성을 다 보여주지도 못하며, 하물며 별의 모든 걸 좌지우지할 사람도 아니라고. 긴 머리와 드러낸 손톱이 어색하기는 하지만, 그런 사소한 차이만 차치한다면 언제 어디서라도 볼 수 있을, 그런 평범한 사람이라고. 잠뜰은 그렇게 생각했다.

 

  “…보통 사람.”

 

 각별은 답변이 마음에 드는지 잠뜰에게 환히 웃어 보였다. 산길을 오르는 그의 발걸음마저 조금은 경쾌해 보이기도 했다.

 

 그 후로 비행선이 있는 산의 중턱까지의 등산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묘하게 빨라진 각별의 발걸음에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 잠뜰이 서둘러 산길을 오르며 애를 먹은 덕분이었다. 원래 작은 그루터기가 있던 자리에 들어찬 작은 비행선이 노을빛에 광을 내고 있었다. 비행선 앞으로 걸어가는 각별을 보며, 이제 진짜 작별이겠네, 하고 잠뜰은 시원섭섭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시 안 볼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으면서도 쓸데없이 정을 붙인 게 후회되어, 작은 소리를 내며 혀를 찼다.

 

나 사실, 나 같은 지구인들은 이 별에서 아무래도 별종이라거나 외계인이라거나, 그런 취급만 받을까 봐 걱정했거든. 아니면 아예 너희 별의 문제점을 해결해 줄 구원자라거나. 근데 네가, 가장 처음으로 지구인을 보고, 가장 처음으로 지구와 이 별의 역사를 듣고, 짧은 시간이지만 나와 가장 가까이에서 얘기해 본 네가, 나더러 보통 사람이라고 말해줘서 정말 좋았어. 나한테 그 어떤 상징성도 부여하며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않아서.

 

 

 잠뜰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각별은 아주 들뜬 목소리로 말하며 비행선에 탔다. 잠뜰은 그제야 저 사람이 이미 매체에서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알고 있었구나, 하고 짐작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빈약했던 그 대답이 그에게 저렇게 기운을 넣어줬다니, 그녀는 괜스레 뿌듯해지는 어깨를 억누르며, 비행선의 창문 너머의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각별이 재빠르게 비행선에 탑승하는 바람에 잘 가라는 한 마디도 전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각별도 잠뜰을 보고 세차게 손을 흔들며 입을 뻐끔거렸다.

 

  ‘잘 있어. 또 보자’

 

 또 보자는 한 마디에 아까의 섭섭함이 녹아 없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잠뜰도 입 모양을 크게 해 외쳤다.

 

  ‘잘 가요. 꼭 또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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