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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리에서 일어난 수현은 커피믹스를 뜯어 머그잔에 털어 넣었다. 뜨거운 물을 받아 가루가 잘 녹도록 휘휘 저어 주면, 끝. 하루 권장 카페인 섭취량은 진작 넘긴 지 오래다. 의사란 남들에게 잔소리하면서도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그런 직업이지.

 원래 이런 사람이냐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나름 채소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12시 이 전에는 자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았기에. 해가 뜨기도 전부터 시작하는 일상에 발맞춰 강제 미라클 모닝을 시작한 지도 5년이 넘었고. 젊은 사람이 적다고 이리저리 불려 가 손을 보탠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걸 왜 내가 해야 해….”

 하지만 정말이지 이번 일은 내키지 않았다. 아침부터 빈속에 커피만 들이켜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 병원에 하나인 침대에 누워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골칫덩이. 다가올 운명도 모르는 도마 위의 생선 신세인 저 남자 때문에, 수현의 인생은 지금 거대한 풍파를 맞이하고 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해변에 떠밀려 왔다. 버려진 쓰레기나, 죽어가는 생물이 밀려오는 일은 흔한 일이지만 사람이 밀려온 일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상처 하나 없이 온전한 상태라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사정은 몰라도 숨을 쉬니 마을 사람들은 유일한 의사인 수현에게 남자를 데려갔다. 마침, 아이 를 진찰하고 있던 수현은 업혀 온 남자를 침대에 눕히고, 수액을 꽂고, 상태를 살폈다. 차가운 겨울 바다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을 테니 기대는 없었다.

 

 그러나 남자는 아주 멀쩡했다. 저체온증도 아니고 동상에 걸리지도 않았다. 기침도 하지 않고 쥐 죽은 듯 잠들어 있으니, 자신이 미친 건가 싶은 기이한 상황에 헛웃음만 나왔다.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단체 실험에 저도 모르는 새 참여하게 된 건 아닌지, 지금 상황이 꿈은 아닌지. 그동안의 상식을 깨부수고, 학회에 보고해야 할 수준의 사람이 눈앞에 있음에도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애꿎은 장비만 탓했다.

 당연하게도 마을 사람들 역시 이를 의아하게 여겼다. 남자를 발견한 어부도 몸이 차갑지 않고 뜨끈해 바다에서 떠밀려 온 줄 몰랐다 말했으니까. 동네에서 보기 힘든 붉은 머리에 수현은 비밀로 했지만 인간답지 않은 치아 구조 등등. 남자는 금방 인간이 아닌 미지의 존재로 분류되었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하필 바다에서 건져졌고, 인간다워 보이지 않는다는 것. 평소라면 티비에 제보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로 떠들었겠지만, 몇 년째 줄어가는 어획량은 마을 전체의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다음 달이면 나아지겠지, 내년이면 다시 물고기들이 돌아올 거야 하며 낙관적으로 여기던 사람들도 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당장 내일이 불투명한 하루하루가 쭉 이어진다고 생각해 보라. 누구든 우리와 같으리라고 수현은 장담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른 결론은 제물이었다. 바다께서 노하시니 산 제물을 드려 화를 가라앉히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마을을 구할 유일한 해결책으로 여겨졌다. 옆 마을 무당에게 길한 날짜를 받아온다던 어른들을 막지 못한 죄로 수현은 제물의 감시역을 맡게 되었다. 이유는 두 가지. 수면제를 쓸 수 있는 의사라는 점과 제물과 나이가 비슷한 청년이라는 점이다.

 

  “으으….”

 

 낯선 앓는 소리에 수현은 생각의 늪에서 깨어났다.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서둘러 침대 곁으로 다가가자, 남자의 고개가 저를 향했다. 새빨간 눈동자는 타오르는 태양을 닮아 있었다.

 

  “여긴 병원입니다. 제 말 들리시나요? 말하기 어려우면 눈만 깜박여도 괜찮습니다. 들리면 한 번 깜박거려주세요.”

 

 남자가 눈을 깜박였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주소나 전화번호나 기억나는 게 있으신가요?”

 

 남자는 입을 움직여 무언가 말하는 듯했으나 수현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수현은 협탁에 놓인 메모지와 펜을 남자에게 건넸다.

 

  “말이 어려우면, 글로 적어주시겠어요?”

 

 수현이 건넨 종이 위로 남자는 작게 끄적이곤 다시 종이를 돌려주었다. 서한솔. 처음 듣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마을 사람 중엔 성이 서 씨인 사람도 없고, 누군가 떠오르는 얼굴도 아니다. 하지만 수현은 남자가 낯설지 않았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인상을 주었다. 이런 외모면 기억에 남을 법도 한데 이상한 일이지. 고개를 갸웃한 수현은 이름이 적힌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새로운 종이를 찢어 다음 질문을 건넸다.

 

  “몸은 어떠세요? 머리가 울린다거나 가슴이 답답하지는 않으세요?”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수현이 들고 있던 종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아, 종이는 더 있으니까 편하게 써주세요. 가족이나 친구분 성함도 좋고, 어쩌다 바다에 빠지신 건지 떠오르는 게 있으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몰아치는 절망감에 수현은 입술을 씹었다. 연락처라도, 하다못해 가족이라도 기억한다면 돌려 보낼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게 옳다고, 사람답게 살자고. 그러나 현실은 수현의 심정과 정반대로 빼도 박도 못한 제물 행 표를 끊은 셈이다. 신이 있다고 믿은 적 없지만 이건 정말 최악이잖아.

 

 

 

 수현은 남자와 친해질 필요성을 느꼈다. 어른들이 시킨 대로 감시하고는 있지만 별 소득도 없고, 이대로 있다가는 무의미하게 제물로 보내줄 미래가 훤했다. 둘이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만큼, 어색한 사이보다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더 편하겠지. 다행히 남자도 같은 생각이라서 환자분이라고 부르던 호칭은 한솔씨, 한솔아로 변했다. 반대로 한솔은 의사 선생님에서 수현씨, 수현아라고 호칭이 변했다.

 

  “한솔아. 잠깐 마트 다녀올 건데 같이 갈래?”

 

 지낼 곳이 없는 한솔을 위해 수현은 임시로 제 집을 내주었다. 병원에서 지내기에 한솔은 너무나 건강한 사람이었다. 마을회관에도 빈방이 있지만, 구경거리가 될 게 뻔했고. 한솔도 영 내켜 하지 않는 눈치였다. 같이 살면서 몸과 지갑은 갈수록 힘들어지는 중이나 수현의 마음은 오히려 안정을 찾고 있었다.

 

 아니.

 

 한솔은 입 모양으로 거절을 말한 뒤, 다시 보고 있던 화면에 집중했다. 막 중요한 장면이 나올 참이었다. 짙은 바닷물 아래 유영하는 그림자의 정체를 밝혀줄 절호의 순간…. 휙 하고 핸드폰을 빼앗겼다.

 

  “핸드폰은 압수야. 너 요즘 너무 많이 보고 있어.”

 

 황당한 얼굴의 한솔이 수현을 올려봤다. 그럴 거면 애초에 같이 가자고 하던가. 선택지는 왜 준 거임? 하는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머쓱해진 수현은 핸드폰은 돌려주었으나 유튜브는 그만 보라는 말을 덧붙였다. 유튜브를 금지당한 이상 이 쓸쓸한 집에서 한솔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결국 한솔은 겉옷을 챙기는 수현을 따라갔다.

 

 걸어가는 길에는 침묵만이 존재했다. 집에서 마트까지 가는 10분 남짓한 시간을 위해 한솔은 종이를 챙기지 않았고, 수현은 대답 없는 대화를 10분이나 지속할 만큼 활발한 성격이 아니었다. 수현이 말을 건다 해도 어두운 밤길에 입 모양만 보고 무슨 말을 하는지 유추하기란 어려운 일이라서, 둘은 침묵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저녁은 뭐 먹을까.”

 

 그런 수현이 오늘은 먼저 말을 붙였다.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고 있던 한솔은 자연스레 시선을 내렸다. 수현이 노란 가로등 아래서 제게 손짓하고 있었다.

 

  “아니, 그동안 내가 먹고 싶은 음식만 먹었잖아.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걸로 해줄까 해서.”

 

 한솔은 고민했다. 수현의 요리 실력은 객관적으로 나쁘지 않지만, 사실 제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얇은 종이 느낌도 싫고 씹으면 물이 나오는 것도 별로다. 초록초록하고 흐느적거리는 채소가 입에 들어오면 뱉고 싶어 얼굴이 찌푸려진단 말이다. 수현이 만드는 식사에는 꼭 그런 풀들이 끼어있어서 한솔은 매번 씹지도 않고 그냥 삼켰다. 싱싱한 생선도 아니고 싱싱한 채소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고기 먹을래? 내가 스테이크는 또 기가 막히게 굽거든.”

 

 물고기면 몰라도 고기는 좀. 한솔은 재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초밥? 아니면 저번처럼 고등어 구워 먹을까.”

 

 한솔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수현의 입에서 나온 메뉴 중 가장 마음에 들긴 하나 조금 아쉬운 선정이었다. 차라리 생이 좋은데. 이것저것 하지 말고 깔끔하게 생선 하나는 안되나.

 

  “알았어. 회 먹자는 소리지?”

 자신의 표정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마음에 쏙 드는 대답이 나왔다. 한솔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수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눈짓하면 수현은 잠시 고민하더니 뻔하지 않냐 대답했다.

 

  “맨날 바다 다큐멘터리만 보고 있잖아. 내가 어부가 아니라서 직접 잡아줄 수는 없지만 비슷한 건 해줄 수 있어.”

 

 가자. 빨리 안 가면 다 팔리겠다. 말을 마친 수현은 다시 마트를 향해 앞장섰다. 내가 그렇게 많이 봤나 하는 한솔의 벙긋거림은 수현에게 들리지 않았다. 평온한 밤이었다.

 

 

 

 오늘은 출근길이 평소와 다르게 소란스러웠다. 축제 준비를 한다나 뭐라나. 수현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필요하면 부르겠지. 이번에도 어디 보건 교육이나 맡지 않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어획량도 좋지 않은 겨울에 신년도 아니고, 대체 무슨 축하를 한다고 그러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아서 더욱 불길했다.

 

  “피곤하면 집에서 쉬어. 오늘 병원에 사람들 많이 들락거릴 거야. 나도 곧 나갈 거고.”

 

 수현은 병원 창문을 열고 바깥 구경을 하는 한솔을 향해 말했다. 얌전히 있길래 재미난 구경이라도 하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턱을 괴고 조는 중이었다. 이럴 거면 왜 나오겠다고 한 거야? 하는 의문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어디 가는데

창문을 톡톡 두드린 한솔이 다가온 수현에게 종이를 건넸다. 수현은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준비 도와야지. 마을에 힘쓸 사람이 많지 않거든.”

  나는?

 

  “너는….”

 

 솔직하게 말해 수현은 한솔이 집에 머무르길 바랐다. 평소처럼 빈둥거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를. 혹여나 돌아다니더라도 손에 닿는 거리에 제가 지켜볼 수 있는 상황이 좋았다. 하지만 집에만 있으면 재미도 없고 심심하다는 사람에게 또 집에 박혀 유튜브나 보고 있으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며칠 전 유튜브를 금지해 놓고, 이제는 또 허락해 주는 건 말의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선뜻 같이 가자고 말하기에는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안 그래도 사람 없는 한밤중에만 돌아다녀 얼굴 보기 힘들다는 마을 사람들의 불평 아닌 불평이 귀를 간지럽히는 중이었다. 외부와 접촉을 줄여 한솔의 존재감을 옅어지게 만들고자 한 시도였지만, 기어코 축제를 열었으니 실패라 봐도 무방하겠지.

 

  “어떻게 하고 싶어?”

 

 결국 수현은 대답을 미뤘다. 어느 쪽도 제가 내릴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다. 이래도 죄책감, 저 래도 죄책감이라면 책임의 비중이 적은 쪽이 옳은 길이라 믿었다. 저를 빤히 보고 있는 한솔이 이런 제 감정은 진작 읽어버린 눈을 하고 있어서, 수현은 살며시 눈을 피했다.

 

  “의사 선생님!”

 

 병원 문이 벌컥 열리고 한 아이가 뛰어 들어왔다. 종이에 글씨를 써 내려가고 있던 한솔과, 눈치를 보고 있던 수현의 시선이 모두 문을 향했다.

 

  “선생님 여기 있어. 무슨 일 있니?”

 

 수현은 아이에게 다가갔다. 마을에서 저를 다급하게 찾는 이유는 대개 좋지 않은 일과 이어지기에, 어떤 상황인지를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밖, 밖에 무당님이 오셨어요. 자꾸 의사 선생님을 찾고 이름도 물어보고. 선생님이 어디 사냐고 물어봐서…, 헙!”

 

 바쁘게 말을 쏟아내던 아이는 무언가를 보고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시선은 수현의 오른쪽 뒤에 고정되어 떨어질 줄을 모른다. 그래, 소문을 들었구나. 주춤거리는 아이의 양손을 감싸 쥔 수현은 한숨을 쉬었다. 도망치려고 하지는 않으나 벌써 겁을 먹고 있으니, 어른들의 눈에는 얼마나 두려울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네가 이해할 수 있을까.

 

 무당이 왔으니, 한솔이 소문의 제물임은 해변 모래알도 아는 사실이었다. 바다의 물고기를 전부 잡아먹고 먹을 게 없어 뭍으로 올라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은 마을에서 빠르게 퍼졌고, 당사자가 있는 줄 모르고 떠들다가 한솔과 제게 들켜 민망하게 자리를 피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티를 안 낸다고는 하나, 같이 다니는 제게는 늘 불쌍하다는 연민의 시선을, 한솔에게는 명백한 적대감을 드러내니 눈치채지 않는 게 어려울 정도였다. 한솔은 그런 반응을 신경 쓰지 않는 척하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기억 없는 사람이 얼마나 위태로운데. 어차피 죽는 사람이니 상관없다는 거냐고 상상 속에서 소리만 백번 넘게 질렀다.

 

 이제 와서 정정하기에는 시간도 없고 이래저래 무리였다.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 그러나 이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라서 머리가 아팠다. 제가 이렇게 애쓰는지도 모르고 창가에 기대 멀뚱멀뚱 보고 있는 누구는 절대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참 친절해요. 전 의사 선생님이 궁금했을 뿐인데, 이렇게 병원까지 알려주고 말이에요.”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와 함께 낯선 목소리가 문을 타고 넘어왔다. 수현의 손에 힘이 풀린 틈을 타 아이는 재빨리 들어온 문으로 달아났다. 빈자리를 채우듯 나타난 사람은 뒤늦게 열린 문을 두어 번 두드리고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그러면서도 눈동자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바쁘게 병원을 살피니, 좋은 징조는 아닐 것이다.

 

  “누구시죠.”

  “아, 처음 뵙겠습니다. 무당 박슬기라고 합니다. 명함은 여기.”

 

 자신을 무당이라 소개한 사람은 스스럼없이 다가와 명함을 건넸다. 어딘가 수상한 냄새를 풍기는 명함엔 이름과 연락처만이 적혀있었다. 명함에 있을 만한 경력이라던가, 실력을 어필할 만한 문구는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았다.

 

  “혼자 계신 줄 알았으면 뭐라도 사올 걸 그랬네요. 비린내가 진동하길래 당연히 두 분이 같이 계실 줄 알았거든요.”

 

 혼자라는 말에 수현은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병원에는 무당이 들어온 문 말고는 뒷문이 없다. 그러니 한솔이 빠져나갔다면 창문을 통해서 밖에 없겠지. 그래서 창가에 있었구나. 다행이다. 수현이 안도하고 있자, 무당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걱정 마세요. 흔적은 잡았으니까.”

  “무슨 흔적을 말씀하시는지….”

  “무당의 감이라고 할까요. 제가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아서요. 한번 문 사냥감은 놓친 적이 없답니다.”

 

 수현은 입안을 깨물어 감정을 삼켰다. 한솔을 찾으러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랬다가는 무당에게 한솔의 위치를 제 발로 알려주는 꼴이었다. 무당에게 살갑게 대한다고 해서 돌아갈 리도 없고, 더 큰 보수를 제시하기도 어렵다. 다른 일도 아니고 인신 공양인데. 고작 일이백으로 성사된 일은 아닐 게 뻔해서 차라리 무당을 재우고 도망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많이 친하신가 봐요.”

 

 수현의 몸이 움찔 떨렸다. 슬기는 신기한 사람을 본다는 듯 수현을 보았다.

 

  “오해하지 마세요. 보통 사람들과는 반응이 달라서 여쭤본 거니까.”

  “…무당님은 아무렇지 않으세요?”

  “일이니까 하는 거죠. 돈을 받았으니, 돈값은 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슬기가 위로하듯 수현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수현에게는 그 두드림이 너무나 무거워 주저앉고 싶었다.

 

  “듣자 하니 의사 선생님께서도 저랑 비슷하시던데요. 뭘.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다 지나갈 겁니다.”

 

 

 

 머리가 아팠다. 긴장이 풀려 온몸이 욱신거렸다. 텅 빈 병원이 오늘따라 크게 느껴졌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겨….”

 

 무당이 병원을 나가고 수현은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와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애초에 부탁받지 말걸, 집에 들이지 말걸.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고 철저히 이성적으로만 행동할걸. 착한 일 한다고 무조건 결과가 좋은 것도 아니잖아. 여기를 떠나면 어디서 살 건데. 돈도 없고 차도 없으면서 뭘 믿고 허세를 부리냐고.

 

  “세상이 어떻게 이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무력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나는 너무나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라서 이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 끔찍했다. 스트레스에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핑핑 도는데도, 죗값을 치른다는 생각부터 들어서. 수현은 눈을 감고 천천히 침몰해갔다. 무력했던 그날의 기억이 또다시 저를 지배하도록.

 

 

 

비가 오는 날이었다. 맑을 거라던 일기예보가 틀리고, 부모님이 돌아오지 못했던 날.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수현은 사서 선생님의 마을 회관으로 가보라는 말에 책을 덮었다. 모처럼 찾은 재미 있는 책이기에 자기 전 읽어달라 할 생각으로, 젖지 않도록 조심하며 마을 회관에 갔다. 그리고 어른들의 표정에서 불안해졌다. 하나같이 저를 걱정하고, 안쓰러워하는 얼굴이었다.

 

  “수현아, 놀라지 말고 잘 들어. 오늘 바다에 나갔던 네 부모님이….”

 

 뒷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우산도 책도 버리고 무작정 뛰어나갔기 때문이다. 또 날 놀라게 해 주려고 그랬겠지. 집에 가면 엄마랑 아빠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걱정과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수현은 빠르게 집으로 달려갔다. 이상하게 손이 미끄러워 열쇠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간신히 뻑뻑한 열쇠를 돌려 문을 열었고, 무작정 소리 질렀다. 어디 있냐고. 내가 이겼으니까 빨리 나오라고. 집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문이 비바람에 흔들려 나는 끼익 소리만이 스산함을 더할 뿐이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오늘 밤에는 나랑 같이 자기로 약속했단 말이야. 수현은 상황을 부정하며 화장실, 안방, 옷장, 냉장고, 침대 아래까지 온 집안을 뒤졌다.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곳도 뒤져가며 소리쳤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갈수록 엉망이 되어가는 집은 빗물과 눈물에 젖어 울었다.

 

 어쩌면 아직 배에 있을지도 몰라. 배에서 집까지 오는 법을 까먹은 거야. 불쑥 든 생각이었다. 비가 와서 길 찾기가 어렵다면 제가 도와주면 된다. 마침, 수현의 눈에 들어온 상자에는 비상시를 대비한 손전등이 들어있었다. 동아줄을 발견한 사람처럼 수현은 환한 얼굴로 손전등을 챙겼다. 부모님을 찾고 싶은 간절함에 서둘러 바다로 향했다. 바다는 새까맸다. 늘 잔잔하게 밀려오던 파도는 무서운 소리를 내며 출렁였다. 가까이 가기에 겁이 나서 수현은 물과 한참 떨어진 곳에서 손전등을 켰다. 당연하게도 작은 불빛은 물에도 닿지 못하고 흩어졌다. 수현은 애써 엄마, 아빠하고 불러보지만, 작은 목소리 역시 금방 파도에 묻혀 버렸다. 수현은 떨리는 마음으로 조금씩 나아가, 아슬아슬하게 바닷물이 닿지 않을 거리까지 갔다. 그 상태로 팔을 쭉 뻗어 손전등을 깜박거리기도 하고, 위아래로 흔들어도 보았다. 그러자 바다 깊은 곳에서 무언가 수현에게 대답하듯 반짝였다. 간절함은 수현을 한 걸음씩 앞으로 이끌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까이....

 

  “앗 차가.”

 

 철썩이는 파도가 수현의 무릎을 적셨다. 내가 언제 이렇게 많이 들어왔지? 수현은 파도에 휘청 이며 뒤로 물러났다. 비바람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앞을 밝히고 싶어도 손전등은 한눈판 사이 손을 떠나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다행히 제 쪽으로 밀려왔다가 다시 멀어지기를 반복하니 잘하면 주울 수 있어 보였다. 고민하는 지금도 조금씩 멀어지고 있어 수현은 지체하지 않고 재빨리 바다에 뛰어들었다. 안타깝게도 바다는 수현의 마지막 희망마저 삼켰다. 숨을 쉬고 싶어도 위아래서 물이 들어왔고, 앞이 보이지 않아 제대로 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두려움에 발버둥을 칠수록 몸은 아래로 가라앉기만 했다.

 

  “살려, 주세요!”

 

 수현은 간신히 목을 빼고 소리쳤다. 그러나 사람은 보이지 않고, 물은 수현을 점점 더 깊은 바다로 이끌었다. 다시 한번 소리를 치고자 했지만, 목까지 차오른 물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로 시야가 점점 흐릿해져 갔다. 꼭 세상이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수현의 몸은 점점 힘을 잃고 가라앉는다.

 

  “…야!”

 

 아, 아프다. 귀도 아프고 목도 아파.

  “꼬맹이. 정신 차려!”

  “콜록, 콜록!”

 수현은 힘겹게 눈을 떴다. 몸이 바닷물로 가득 차 속이 메스꺼웠다. 붉은 눈의 남자는 수현의 등을 두드려 물을 뱉어내는 걸 도와주었다.

  “한겨울에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이 어디 있나 했는데 여기 있었네.”

  “누구...?”

  “생명의 은인이다.”

 

 손 아래 까슬한 모래의 촉감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여전히 생을 유지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살았구나. 살아버렸어.

 

  “흑. 흐윽….”

 

 눈물이 났다. 가족도 없는 세상에 죽음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저를 두고 떠나가 버린 부모님을 향한 원망, 멍청하게 바다에 뛰어든 자신에 대한 원망, 그런 저를 살린 남자에 대한 원망이 수현의 두 볼을 타고 방울방울 떨어졌다.

  “살리지 말지. 그냥 죽게 두지. 왜 살렸어요.”

  “그럼 죽어가는 걸 그냥 둬?”

  “그랬어야죠. 나는 이제 아무것도 없단 말이에요. 엄마도, 아빠도,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수현은 엉엉 울었다. 눈앞의 남자는 안중에도 없었다. 서러움이 터져 나와 자제할 생각은 애초에 들지도 않았다. 사람이 이렇게나 울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운 순간이었다.

 

  “다 울었냐.”

 

 수현이 우는 내내 옆자리에 있던 남자는 눈물이 멎고 숨을 고르는 모습을 보이자 말을 걸었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아직 서러웠지만, 눈물을 쏟아내고 나니 확실히 후련했다.

  “그래. 속상한 일 있으면 그렇게 울고 털어버리는 거야. 괜히 바다에 들어가 몸 상하지 말고.”

 

 남자는 수현의 머리 위로 우산을 씌워주었다. 멍한 얼굴로 올려본 우산은 구멍이 숭숭 뚫려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었다. 머리를 간신히 보호하나, 그마저도 바람이 불면 비가 들이닥칠 게 뻔했다.

  “왜. 뭐.”

  “아뇨, 그냥…. 이렇게 큰 구멍이면 쓰나 안 쓰나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아서요.”

  “이미 다 젖었는데 상관없지 않나?”

 남자는 힘 조절이 어려운지 수현의 머리를 쓰다듬는 듯 터는 듯 만졌다. 수현이 제 머리카락을 뽑아내려는 것 같다고 느낄 만큼 남자의 손길은 거칠었다. 게다가 점점 머리카락이 아닌 머리를 전체적으로 휘저었다. 목이 휘청거릴 정도로 거친데다가 아무리 기다려도 그만둘 생각을 안 한다. 할 수 없이 수현은 남자의 손을 억지로 떼어내고 그만하라고 소리쳤으나, 남자는 화를 내기는커녕 수현을 향해 웃었다.

  “여기 있으면 또 빠질지도 모르니까 저쪽에 가 있어. 곧 어른들도 오실 거야.”

 

 수현의 손에는 구멍 숭숭 우산이 쥐어져 있었다. 남자는 어리둥절한 수현을 일으켜 몸에 묻은 모래를 털어주고 마을 쪽으로 어깨를 밀어주었다.

  “어디 가요?”

  “나도 집에 가야지.”

 수현은 고개를 돌려 등 뒤에 있는 마을을 봤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남자의 뒤에는 바다만이 푸르게 펼쳐져 있었다.

  “집이 어딘데요?”

  “있어. 여기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곳.”

 남자가 눈을 감았다. 수현은 그런 남자를 따라 눈을 감았다. 빗방울이 우산에 부딪히는 소리와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가 귓가에 웅웅거렸다. 이대로 눈을 뜨면 사라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수현은 팔을 뻗어 남자의 소매를 잡았다.

 

  “오늘 집에 가면, 내일 다시 볼 수 있어요?”

  “….”

  “그럼, 다음 주는요? 제 생일이 1월인데 그때 다시 만나면 안 돼요? 우산도, 이거보다 좋은 거 우리 집에 있어요.”

 수현은 간절했다. 간신히 그친 눈물이 또다시 흐르기 전에 대답을 들어야 했다. 사람들이 몰리면 남자는 신기루처럼 사라지리라는 막연한 느낌이 있었다. 어쩌면 꿈이라서 눈을 뜨면 잊어버릴 순간이라고 해도 대답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한번 터진 눈물샘은 작은 감정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수현의 의사와는 반대로 이미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당장 양손을 쓸 수 없는 수현은 이도저도 못 하고 눈만 꾹 감았다. 잡은 소매의 감각이 사라지지 않도록 세게 힘을 주고서.

  “내기를 할까.”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이 들려왔다. 시끄럽던 소리는 조용한 배경음이 되어 수현은 남자의 목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무슨 내기요.”

  “네가 나보다 많은 사람을 살리게 되면 그때 다시 만나러 올게.”

  “몇 명이나, 살렸는데요?”

  “음. 일단은 한 명?”

 

 수현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고작 저 하나 살려놓고 내기를 하자니. 빈말인 걸 알지만 그럼에도 만나러 와준다는 뜻 같아서 힘이 되었다.

 

  “그러니까 착하게 살아. 또 나쁜 마음 먹고 바다에 뛰어들지 말고. 알았지?”

 

 남자는 제 소매를 붙잡은 수현의 손등을 위로하듯 두어 번 두드려주었다. 수현은 놓고 싶지 않았으나, 천천히 심호흡한 뒤 손에서 힘을 풀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꼭 만나러 와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 그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눈이 떠졌다. 잠깐 잠든 사이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비몽사몽인 정신은 아직도 비가 내리네 하며 꿈에서 벗어나지 못한 판단을 내렸다. 푸르던 하늘이 붉게 저물어가는 풍경이 꽤 인상적이었기에 더더욱 현실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10살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즈음의 기억은 제대로 떠올릴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의사가 된 지금이 가짜고, 방금의 꿈속이 진짜 같았다. 어른들 말씀으로는 부모를 잃은 충격이 너무 커 뇌가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탓이라고 하던데. 의사가 된 계기를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뇌가 거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의도적으로 지운 거겠지. 어린아이가 자신과의 만남을 떠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동시에 부모를 잃은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셈이다.

 

  “올 거면 따뜻한 봄에나 오지, 왜 하필 겨울이야.”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자, 바스락거리는 종이가 걸렸다. 내용은 보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어째서 십몇 년을 지난겨울에 와주었는지는 모르지만, 너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하며. 수현은 겉옷과 우산을 챙겨 병원을 나섰다.

 

 

비가 내려서인지 마을은 조용했다. 축제 전날이라고 떠들썩할 거라 예상했는데 전혀 달랐다. 덕분에 수현은 아무도 몰래 바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기 뛰어들어도 난 못 구해줘.”

 한솔은 물이 모래와 만나는 지점 그 가운데에 서 있었다. 춥지도 않은지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해가 지는 먼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모든 것이 과거와 같다. 달라진 것은 오직 저 자신뿐이다.

 

   “빨리 왔네.”

 놀란 수현은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말을….”

  “처음도 아니면서 새삼스럽게.”

 장난에 성공한 아이 같은 얼굴로, 한솔은 수현에게 다가왔다. 모래 위에 남은 흔적은 바다에서 올라와 수현에게로 닿는다.

  “오랜만이야. 약속대로 만나러 왔어.”

  “기억이 없다고 그랬으면서.”

  “네가 못 알아보는데 괜히 아는 척할 필요는 없잖아.”

  “알아봤어. 정확히 기억이 안 났을 뿐이지….”

 수현은 들고 있던 우산을 기울여 한솔에게 반쯤 씌워주었다. 혼자만 쓰고 있기도 그렇고, 괜히 찝찝해질 필요는 없으니까.

  “필요 없는데.”

  “그냥 써. 다 젖고 있잖아.”

  “금방 마른다니까.”

 거절하는 한솔 탓에 우산은 수현 혼자 쓰게 되었다. 일부러 큰 우산을 챙겨온 의미도 없이 한솔은 몸을 돌려 모래사장에 진한 발자국을 남겼다. 눈이라기엔 축축하고 비라기엔 날카로운 진눈깨 비가 뺨을 스친다.

  “진짜 넌 그대로구나.”

  “넌 키가 좀 컸고.”

  “당연하지. 벌써 20년 전의 일인걸.”

  “뭐야. 얼마 안 됐네.”

 무릎 높이에 손을 대고 네가 요만할 때는 귀여웠는데 하는 한솔 탓에 수현은 웃음이 나왔다.

  “엄청 오래됐거든.”

  “사람 기준에서야 오래된 거지, 나로선 얼마 안 돼. 100년이 지난 것도 아니고 20년이나 50년이나 거기서 거기야.”

  “그래 너 잘났다. 오래 살아서 좋겠어.”

 

 말을 뱉고서 뒤늦게 아차 싶었다. 20년 전과 지금 모습이 차이만 없을 뿐이지 제 나이에서 최소 20살은 더한 나이가 한솔의 나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먼저 분명하게 나이를 밝히지 않았고 제 말투에 대해 거리낌도 없어 보이지만, 유교 사상에 찌든 수현의 입장은 난감했다. 이런 걸로 트집 잡을 성격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괜히 눈치가 보였다.

 

  “저기, 몇 살… 이세요?”

 

 한솔은 어색한 수현의 말을 듣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해는 가지만 솔직히 이제 와서? 하는 생각이 더 컸기에. 제게 잘 보이려는 의도도 아니고, 순전히 실수한 건지 걱정하는 눈빛이 재미있었다.

 

  “이거 원래 말하면 안 되는데 너한테만 특별히 알려주는 거야. 꼭 너만 알고 있어야 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곤거리는 목소리를 놓치지 않도록 귀를 기울여 한솔이 말하는 한 글자 한 글자를 머리에 새겼다.

 

  “헉, 진짜로요?”

 예상보다 더 큰 숫자에 수현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구라야.”

  “야!”

 

 금방 찌푸려졌지만 말이다.

 

 

 

둘은 모래 위에 앉아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현이 어쩌다 의사가 되었고 그동안 어떻게 지 냈는지 말하면, 한솔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따금 반응했다. 오랜만에 만난 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몰라 대화를 끝마치기 아쉬웠다. 하지만 수현의 마음과는 다르게 붉은 태양은 수평선 끝자락에 걸쳐 아른아른 저물어가고 있었다. 황혼이 찾아오고 있었다.

 

  “걱정 많이 했어. 제물로 팔려 간다는데 나이도, 살던 곳도 모르고 심지어 말도 못 해. 내가 얼마나 떨었는지 알아?”

  “알지, 미안해.”

  “진작에 돌려줬으면 얼마나 좋아. 너도 바로 알아보고 쓸데없이 마음 졸일 필요도 없고.”

 

 수현이 팔꿈치로 한솔을 툭툭 건드렸다. 한솔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니까.”

  “어려워서 그래?”

  “어렵다기보다는 까다롭지. 네가 날 부정적으로 여기거나, 지금 의사가 된 걸 후회한다거나 하면 내가 돌려줘 봤자잖아.”

  “그럼 우린 운이 좋았네. 나는 너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고, 의사가 된 걸 후회하지도 않았으니까.”

 

 수현은 웃었다. 따스한 태양 빛에 눈이 멀 정도로 환하게. 세상 아름다운 것은 전부 보았다 자부하는 이들도 이곳에 온다면 자신의 무지함을 깨달을 게 분명했다. 이 찬란함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 싶었으니까. 실제로 한솔에게는 그럴 능력도 자신도 있지만 수현이 동의할지는 그에게도 미지수였다. 낯선 제게도 마음을 열고 속 얘기를 터놓는 수현은 이곳을 떠나기 싫어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정한 너에게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어차피 두 번 다시 볼일도 없겠다 하고 싶은 대로 저지르자는 마음이 한솔을 흔들었다.

 m결국 말을 할 듯 말 듯 입만 벙긋거리던 한솔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수현의 앞에 서서 바다를 등지고 손을 뻗었다. 그림자에 가려져 표정은 읽히지 않는다.

 

  “나랑 가자.”

  “…갑자기? 어디로?”

  “바다로, 인세에서 벗어난 신의 세계로. 아픈 사람도 없고 모두가 행복하기만 한 곳이야. 분명 너도 좋아할걸.”

  “가면 어떻게 되는데?”

  “나처럼 될 수 있어. 아니면 오늘 본 무당처럼. 그 누나도 나랑 같은 부류거든.”

 수현은 무의식적으로 제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지그시 누르던 손의 무게가 아직도 남아있는 듯했다.

  “아니면 깔끔하게 시작할래? 여기서 지냈던 기억을 지워 새로 태어난 것처럼 말이야.”

  “그런 것도 가능하구나.”

  “어쨌든 사람이 아니니까. 전지전능한 신은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수준은 된다고 봐야지.”

 한솔은 조바심이 났다. 고개를 끄덕이며 제 말에 대답하고 있지만 수현의 흥미를 끌지 못한 것 같아서. 완전한 밤이 찾아오면 더는 육지에 머무를 수 없기에 자꾸만 초조해졌다. 재촉할 수도 없고 억지로 데려갈 수도 없는 이 상황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는 거기서 행복해?”

 

문득 속을 알 수 없는 맑은 눈이 한솔을 올려보았다. 처음 본 그날처럼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긴 눈은 어떤 거짓말도, 과장도 원하지 않았다. 오직 진심을 종용한다.

 

  “…네가 오면 그럴 것 같아.”

  “지금은 아니라는 소리네.”

  “널 알기 전에는 분명 행복했을 거야. 그건 장담할 수 있어.”

 한솔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수현과 지내면서 겪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쭉 흘러 지나갔다.

 

  “몇 주 동안 나는 너의 시간 속에서 살았어.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밥을 먹고, 같이 움직였지. 네 시선으로 사람을 보고, 자연을 보고 세상을 보니까 평생 살아온 시간이 무가치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즐겁더라.”

 

 늘 똑같이 흘러가던 정적인 세계에서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것 같았다. 꼬마를 구한 그날 처음으로 숨을 쉬었다고, 삶을 살고 있다고 느꼈기에. 제 몸에 반도 안 되는 사람도 이렇게 발버둥을 치는데 나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지. 이렇게 머물러만 있는지 후회가 되었다. 그동안 흘려보내던 무수한 시간이 아깝고 앞으로 흘러갈 무수한 시간이 아쉬웠다. 그러나 손에 쥔 모래알처럼 떨어지기만 하는 생들은 한솔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라질 뿐이었다. 하나를 잡으면 하나가 사라지고, 다시 하나를 잡으면 또 다른 하나가 사라지는. 한솔에게는 그저 지켜보는 것만이 허락된 것이다.

 

 그러나 수현은 달랐다. 제 손으로 끊어진 생명의 끈을 다시 이어서 그런지 거부하지 않았다. 곁에 있어도 수현의 생은 여전히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람은 결국 모두 다 죽어. 아무리 이어간다 해도 한계가 있지. 아무리 유명하고 위대하다고 해도 결국 무로 돌아가고 만다고.”

 

 태초부터 존재했던 우리와 다르게 사람에서 시작한 너라면 다를지도 몰라. 아니, 분명 다르겠지. 무뎌지지 않고 처음 그대로. 사람의 한계에서 벗어난 너라면 더 밝게 타오를 수 있지 않을까.

 

  “같이 가자. 신이 된 최초의 사람이 되는 거야.”

 수현은 시선을 내려 내밀어진 손을 보았다. 하얀 손가락 사이로 빗물이 스쳐 떨어져 갔다. 그때는 내가, 이번에는 네가. 잡힐 듯 말 듯한 인연의 끝이 또다시 제게 달려있었다.

  “한솔아, 나는….”

거대한 파도가 바위를 때리며 산산이 부서졌다. 수현이 대답을 마치자, 한솔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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