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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들어 뒷산과 관련해서 들어오는 신고가 많았다. 문제는 그 내용이 터무니없다는 거였다. 뒷산에 귀신이 나오는 것 같아요. 괴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절대 인간의 형태가 아니었어요. 처음 신고를 들었을 때는 기운이 바짝 들어가 급히 출동했었다. 제아무리 박덕개가 막내라고 해도 형사팀 소속으로서 귀신같은 것을 물리치는데 동원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신고자들은 때때로 공포 혹은 긴장 탓에 상황을 왜곡하여 보기도 했다. 따라서 그들이 말하는 ‘불가사의한 존재’보다는 몸을 숨기고 있던 범죄자인 쪽이 더 타당했다. 팀 선배 한 명은 그럴 거면 무당이나 부르지 왜 경찰서로 전화를 걸어? 라며 불만스럽게 중얼거리기도 했으나 덕개가 출동하는 것 자체에는 별다른 시비를 걸지 않았다. 잠시 외부에 나간 사수는 일을 마치고 산 근처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큰 일이 아닐 확률이 높았지만 일단은 혼자 경찰서를 나선다는 생각에 긴장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가 사수보다도 먼저 현장에 도착해서 본 것은 깨끗한 공터였다. 분명 여기였어요, 여기에서 눈을 막 이렇게 빛내면서……. 신고자가 손짓발짓을 해 가며 설명했지만 그런다고 해서 텅 빈 공터에 귀신이나 괴물이 뚝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밤이라 어둡고 추워서 잘못 보셨을 수도 있어요. 저희가 한 번 주변을 수색해 볼 테니 안심하세요. 지금 자기를 믿지 못하는 거냐며 역정을 내는 신고자를 달래고 달래 돌려보낸 뒤 뒤늦게 산에 올라온 사수와 근처를 살폈으나 딱히 건질만한 단서는 없었다. 아아, 내 꿀 같은 휴식. 터덜터덜 산에서 내려가는 덕개의 뒤통수에 사수의 투덜거림이 꽂혔다.

 

 그럴 줄 알았다, 야. 조사 결과를 들은 팀원들은 혀를 차며 박덕개에게 새로운 업무를 던져주었다. 가끔 그런 장난 신고가 들어오거든. 뭐, 그래도 일단 신고받으면 나가봐야 하니까 어쩔 수 없지. 고생했다. 냉장고에서 비타오백이나 하나 뜯어 마시든가. 평소 그에게 살갑게 대해주던 선배가 어깨를 툭툭 두드리곤 지나갔다. 네, 감사합니다…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공터를 마주했을 때 덕개는 짜증이 났다기보다는 다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허위 신고에 뒷산까지 허겁지겁 달려갔다가 돌아온 것이 억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지만 그래도 범죄 현장을 맞닥뜨린 것보다는 나았다. 앞으로 이런 장난만 없으면 되는 일이지. 장난 신고 근절 광고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세상만사 제 뜻대로 흘러가면 그게 어찌 인생사라 할 것인가. 박덕개의 기나긴 뒷산 출동의 역사는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제는 장난인지 아닌지 구분조차 안 되는 신고들 덕에.

 

 덕개는 오늘로 열한 번째 신고 내용을 수첩 위에 휘갈겨 적었다. 그렇게 끝나는 줄로만 알았던 사건이 짧게는 2주 간격으로, 길게는 몇 달 간격으로 꾸준히 신고가 들어오며 완전히 손을 뗄 수도 없지만 몰두하여 해결할 만한 사건도 아닌 채로 지지부진하게 이어진 것이다. 팀 하나를 단체로 이 일에 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운 나쁘게 신고 전화를 받은 박덕개와 그의 사수 박잠뜰에게로 책임 소재가 떨어졌다. 오, 박 경장. 내가 너를 얼마나 믿었는데 왜 하필 그 전화를 받아서. 후배와 묶여 꼼짝없이 밤 순찰에 동원되게 생긴 잠뜰은 책상에 엎어지며 한탄했다. 허나 덕개도 할 말은 있었다. 경감 하나에 경위 하나, 그리고 경사 셋이 있는 이 팀에서 따르릉거리는 전화벨 소리가 들리면 달려가 받을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건 홀로 막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장 박덕개의 임무였다. 하지만 그 억울함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신고가 들어오기 전부터 묘하게 침체되어 있던 사수의 기분을 어렴풋이 인지한 탓이었다. 본인은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는 듯싶었지만 좋으나 싫으나 파트너로서 함께 활동하는 시간이 많은 탓에 알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오늘은 너만 가라, 덕개야.”

 

 얼토당토않은 제안에 덕개는 네에, 네하며 외투를 둘러 입었다. 그렇게 말해도 착실히 순찰하기 위해 함께 나갈 것을 알고 있었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개중에서도 잠뜰은 책임감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덕개도 내심 자신의 사수가 잠뜰임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아니라면 이 팀으로 발령된 이후로 현장 업무에 처음 나서게 된 경장을 이렇게까지 책임져주지 않았을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해서 세심하게 붙어 가르쳐주는 성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충분했다. 간혹 너무 바쁘거나 신입에게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선배들을 만나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현장에 던져진 동기들의 우는 소리는 이제 질릴 만큼 들었다. 사무실 앞에 서서 뒤를 돌아보자 잠뜰이 꾸물꾸물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에 팔을 꿰어 넣고 있었다. 어차피 할 일이면 기분 좋게 하자. 부모님의 오랜 가르침을 선배에게도 전수해 주고 싶었지만, 덕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말과 하면 안 되는 말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잠뜰이라면 뒤통수를 한 대 갈기고서 하하 웃고 넘어갈지도 모르지만.

 

 2월도 슬슬 막바지를 향하는데 여전히 날이 추웠다. 잠뜰은 장갑까지 착용하고서 패딩 지퍼를 목 끝까지 올렸다. 어깨를 움츠리니 패딩이 얼굴을 반쯤 가렸다. 오는 길에 붕어빵 사 먹자. 그가 경찰서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붕어빵 포장마차를 향해 눈짓했다. 노릇노릇한 열기와 함께 고소한 향이 스멀스멀 날아와 침이 고이긴 했다. 포장마차 앞에는 5개에 천 원이라는 요즘 보기 드문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안 돼요. 경찰이 업무 중에 뭐 먹는다고 신고당해요. 원래 이런 규칙을 읊는 건 선배 몫 아닌가? 덕개가 속으로 불만을 중얼거리며 자연스럽게 뒷산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모퉁이를 돌았다. 야, 어차피 우리 사복이잖아. 잠뜰이 조그맣게 항의했지만 이미 포장마차는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뒷산으로 들어가는 길목부터는 인적도 드물고 주택가도 아니라 어둡고 고요했다. 한동안은 낮에 순찰하였으나 아무 이상이 없던 날에도 해 다 저문 밤이 되어 신고가 들어오니 순찰 시간을 바꾸자는 건의 사항이 나왔다. 누구야! 잠뜰이 두 손으로 책상을 치며 벌떡 일어났지만 범인이 순순히 나오는 법은 없었다. 그리고 건의자를 찾는다고 한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따지고 보면 그쪽이 꽤 타당한 제안을 한 거고, 이 사건의 책임자로서 임무를 부여받은 두 사람은 효율적인 방안을 거부할 이유는 없는 거고. 당직이 아닌 날까지 순찰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더 따질 것도 없어진 잠뜰은 결국 변동된 순찰 계획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슬슬 주위가 스산해졌다. 단순한 추위와는 달랐다. 평소 귀신 같은 오컬트 현상을 믿는 건 아니었지만 별개로 공포심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았다. 아마 어릴 적 장르가 뭔지도 모른 채로 보았던 공포 영화가 큰 역할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당장이라도 뭐가 튀어나올 것 같은……. 왁! 갑자기 잠뜰이 그의 어깨를 잡으며 소리를 질렀다. 으아악! 덕개가 화들짝 놀라 옆으로 튀어 올랐다. 매번 당하고도 학습하는 바가 없었다. 이때쯤 그의 사수가 잔뜩 긴장한 그를 놀라게 할 줄 알았으면서도. 잠뜰에게서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요, 재밌으시겠죠. 겁이 많기로는 잠뜰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런 식으로 놀리는 것에는 서슴지 않았다. 앞선 평가를 전부 철회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선배 잘못 만난 것 같았다.

 

  “넌 진짜 겁이 너무 많다, 응?”

 

 가까스로 웃음을 멈추고 놀리듯 말을 건넨다. 덕개가 슬쩍 잠뜰을 흘겨보았다. 아마 어두워 그의 불손한 눈빛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무슨 일이 났을지도 모르는데 무서울 수도 있죠!”

  “그래봤자 여태 건진 건 하나도 없는데.”

  “신고를 한 사람이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벌써 열한 건이나 들어왔고, 신고자가 전부 달라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정말 귀신이 나오는 게 아닐까요?”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옆에서 곧바로 비웃음이 들려왔다. 귀신은 무슨 귀신. 너 겁먹은 거야? 자고로 형사란 귀신도 호랑이도 때려잡아야 한단다, 덕개야. 짐짓 뻐기는 듯한 말투가 황당했다. 대체 언제부터 형사가 귀신과 호랑이를 때려잡는 직업이었단 말인가. 그런 건 무당이나 퇴마사한테 맡길 일이고, 호랑이는 소중히 아껴줘야지. 세상에 나쁜 고양이는 없다고 했다. (강아지였나? 아무튼.) 고양이나 호랑이나 덩치만 좀 다를 뿐이지 비슷하니까, 그러니 호랑이도 나쁘진 않을 거다. 순식간에 동물을 소중히 대하자는 흡사 공익 광고 가까운 문구에 다다른 덕개는 엉뚱한 사고 과정을 지나친 이후에야 잠뜰이 귀신에 대한 화제를 우습게 여기고 넘겨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 선배는 그곳에 뭐가 있다고 생각하시는데요?”

 

 이미 ‘아무 일도 없다’는 보기는 날아간 지 오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두 명이 신고해야 장난이지 이 정도로 신고를 받고 나서야 아예 없는 셈 치기는 힘들었다. 범죄나 불길한 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무언가 일어나고 있는 건 맞겠지. 이쯤 되니 자꾸만 그를 괴롭히는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싶었다. 뭐라도 단서를 알아내야 이 지긋지긋한 신고 행렬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높은 확률로 별일이 아닐 테지만, 그래서 싱겁게 일이 끝나 허탈해지더라도 이제 슬슬 얻는 것 없는 이 순찰을 끝내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었다. 잠뜰은 덕개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입을 열었다.

 

  “글쎄… 외계인이라든가?”

  “…선배님, 그런 거 좋아하세요?”

  “그런 게 뭔데?”

 

 대번에 불퉁한 목소리가 톡 쏘아붙였다.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이쪽도 떨떠름해진 건 맞았다. 갑자기 외계인이라니. 귀신보다도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생각해 보라. 지구에 귀신이 있다는 것과 외계인이 있다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현실성 있는지. 아마 십중팔구 전자를 고를 것이다. 귀신의 존재는 실제로 많은 이들에게 막연히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사실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잠뜰은 나름대로 진심으로 한 말이었던 것 같았다. 왜? 너도 내가 공상과학에 빠진 오타쿠 같니? 어어, 거기까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만……. 덕개가 말을 흐리자 잠뜰이 콧방귀를 뀌었다. 외계인이 지구에는 왜 왔는데요…? 대충 장단을 맞춰주기 위해 사교성을 박박 긁어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패딩 위로 눈만 나와 있는데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였다. 내가 외계인도 아닌데 어떻게 알아? 그럼 외계인이 거기에서 대체 뭘 하는데요? 모르지. 누가 외계인을 죽였을지도. 그의 답변은 의외였다. 그러니까, 외계인이 뭘 하는 게 아니라 누가 외계인을 죽인 거라고?

 

 그들은 이제 주로 신고가 들어오는 장소 근처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등산에는 영 취미가 없던 덕개도 이제 이 근방은 눈 감고도 발을 옮기 수 있을 정도로 익숙했다. 챙겨온 손전등 불을 켜자 덩치 조그만 동물이라도 있었는지 후다닥 마른 풀을 밟고 도망치는 소리가 들렸다. 빛 끝에는 바람에 아른아른 흔들리는 풀 그림자가 걸렸다. 어, 이게 뭐죠? 덕개가 푸른색으로 얼룩덜룩 물든 나무 밑동을 가리켰다. 잠뜰은 그걸 건성으로 스윽 살피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유치원인가, 여기로 야외 미술 활동 하러 자주 온다던데. 물감 아니야? 물감이라기엔 약간 비릿한 냄새가 났지만 오래 이곳에 방치됐으니 변질됐을 가능성이야 차고 넘쳤다. 손전등으로 다른 곳을 구석구석 빛을 비추어봤지만 역시나 이렇다 할 흔적이나 단서는 없었다. 이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네요. 덕개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의 내용을 중얼거렸다. 역시 누가 이런 곳에서 외계인을 죽이겠어요?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리자 커다란 바위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그 아래를 살피던 잠뜰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사선으로 솟은 눈썹은 어딘가 불만이 있어 보였다.

 

  “왜? 우울해서 외계인 좀 죽였을 수도 있지…….”

 

 우울함과 외계인을 죽이는 행위가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 지구에 외계인의 존재 증명 자체가 지금으로써는 요원한 일이었다. 하지만 덕개는 어느 지극히 비관적인 SF영화에라도 나올 것 같은 대사에 별다른 반론을 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잠뜰이 문득 나무 너머의 공터를 바라보며 나른하게 웃었다. 덕개가 보기에는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는 웃음이었다. 그는 뒤늦게야 그의 사수가 요즘 유행한다는 MBTI 질문을 던진 게 아닐까 생각했다. 뭐라고 대답하는 게 나았을까. 왜 우울했을까요. 어떤 외계인을 죽인 걸까요……. 전혀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속 편할 것 같아서.

 

 

 

 언젠가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세상이 망한다거나 인류가 전부 멸종한다는 거, 되게 뜬금없잖아? 처음 말문을 틔운 사람은 평소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를 들고 오는 선배였다. 그때 그들은 막 꼬리를 잡은 마약 밀매상을 체포하기 위해 4인승 승용차에 끼어 타서 차갑게 식은 김밥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덕개는 그 말을 듣자마자 원래 잠복 수사라는 게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보통은 그간 조사한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계획을 세우며 생산성 있는 대화를 하는 게 맞지 않나. 물론 여태 책상 앞에서만 일해온 덕개가 아는 건 영화 속의 꾸며낸 형사들의 모습이 전부였다. 선배들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인류가 어떻게 멸종할 것 같냐는 물음에 헛소리하지 말라며 타박하는 반응도 있었지만 의외로 잠뜰은 곰곰이 고민하는 듯했다. 아마, 외계인 때문이 아닐까요? 그는 그런 답변을 했었던 것 같다.

 

 조명이 불규칙적으로 깜박거렸다. 슬슬 전등을 갈아 끼워야 할 때가 왔다. 아마 그 또한 막내인 덕개의 몫일 터다. 지금 당직을 위해 사무실에 남은 인원은 덕개와 잠뜰이 전부였다. 사실 당연한 말이었다. 형사는 기본적으로 2인 1조로 활동한다. 다들 덕개가 파트너로서 1인분을 해내기에는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명실상부 잠뜰의 파트너였다. 슬쩍 건너편에 앉은 잠뜰을 살폈다. 아직 일에 익숙해지지 않아 업무량에 허덕이는 덕개와 달리 그는 이미 제 몫의 서류 업무를 끝내고 양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요즘 OTT에서 영화를 보는 것에 푹 빠져있는 것 같았다. 아마 장르는 SF. 몰래 알아내고자 한 건 아니었고, 가끔은 잠뜰이 덕개에게도 자신이 보는 화면의 각도를 틀어 보여주기도 했다. 영 관심 없는 장르였지만 선배가 보라면 봐야지. 그런 마음으로 몇 번 함께 시청한 적이 있었다. 화면 속에서는 외계인이 인간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지구를 침공해 인간을 죽여버리기도 하고, 반대로 인간에게 당해 죽기도 했다. 그걸 보며 “선배, 정말 외계인 좋아하네요.”라는 말을 했다가 이제 그만 보고 가라는 냉랭한 축객령을 당했었다.

 

 그러고 보면 항상 외계인이었다. 밤 순찰을 위해 뒷산에 갔을 때도, 인류 멸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을 때도, 할 일 없어 빈둥거리며 영화를 볼 때도. 하지만 그 말마따나 ‘외계인 오타쿠’라고 바로 판단해 버리기에는 꺼림칙했다. 화면 속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잠뜰의 눈에는 희미한 경멸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누구를 향한? 영화를 재미없게 만든 감독? 형편없는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 그것도 아니라면 겨우 창작물 속에 등장할 뿐인 외계인? …묻지 않았으니 그 대상을 알 길은 없었다. 그를 이해하는 것이 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불가해한 구석까지 낱낱이 해석하려고 드는 건 무리였다.

 

  “너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여야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거야?”

 

 미래의 살인범을 막기 위해서 말이야……. 덕개는 잠시 자신이 들은 것이 환청인지 아니면 정말 잠뜰의 목소리인지 고민했다. 그 물음은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상황이다. 그는 경찰이라는 직업을 가진 자로서 이미 목숨을 잃은 사람은 물론 가까운 미래에 목숨의 위협을 당할지도 모를 사람을 위해 뛰어다녀야 함은 분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경찰이라고 하더라도 그에게 직업을 명분으로 내세워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는 없었다. 도망치는 현행범을 잡기 위하여 총을 발포할 수는 있어도, 혹은 나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정당방위로서 상대를 위협할 수는 있어도, 기본적으로 몹시 극단적인 예시 속의 극단적인 허용 범위일 뿐, 그걸 마인드로 삼고 수사에 임하지는 않는다. 그를 비롯하여 세상에 있는 누구도 생명의 무게를 저울질할 자격은 없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도 보신 거예요? 잠뜰이 귀에서 이어폰 하나를 뽑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대답할 줄은 몰랐던 눈치였다. 혼잣말에 가까운 물음이었다는 뜻일 터다. 그 왜 있잖아요, 범죄를 예측해서 예비 범죄자를 미리 수감하는 영화요. 아아……. 잠뜰이 생각났다는 듯 조그맣게 탄식했다. 그쪽은 잠뜰이 말한 것에 비해 가볍긴 했다. 죽이는 게 아니라 처벌하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방금까지도 그 영화의 제목조차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를 의도하고 물은 게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아니면 트롤리 딜레마 같은 건가요? 한창 논리 서적을 뒤져볼 때 수도 없이 접했던 윤리 딜레마 문제였다. 선로를 바꾸지 않으면 선로 위의 5명이 죽고, 선로를 바꾸면 5명은 살지만 바꾼 선로에 있는 사람 1명은 죽게 되는 이야기. 이번에는 잠뜰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도 답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럼 지금 보는 영화에 그런 내용이 나왔던 걸까.

 

 먼저 물은 것은 잠뜰이었지만 그는 도통 앞뒤 맥락을 제대로 설명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번만이 아니었다. 덕개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일이 있다면 친절히 (그러나 답답한 듯한 타박을 뒤섞어서) 설명해 주었지만 본인의 판단에 몰라도 된다는 생각이 들면 철저히 생략했다. 덕개는 공식적으로는 그의 파트너였지만 친구는 아니었고, 다른 선배들과 달리 동기도 아니어서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어려웠다. 따라서 잠뜰이 툭 던지는 말의 내막을 알아내는 건 온전히 그만의 힘으로 해내야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은 실패로 이어졌다는 뜻이다.

 

  “미래의 살인범이라는 걸 어떻게 아는데요?”

 

 보통 때 같으면 어영부영 대화가 끝나고 정적에 휩싸일 타이밍이었으나 덕개의 당돌한 질문이 공기를 갈랐다. 막 책상 위로 엎어지려던 잠뜰이 어정쩡한 자세로 몸을 다시 일으켰다. 넌 알 거 없다며 냉정하게 선을 긋는 답이 날아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잠뜰은 고심하는 눈치였다.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한참을 고민하다 그가 돌려준 답은 그게 전부였다.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다 아는 법이 있어.”

  “다른 방법으로는 막을 수 없는 상대에요?”

  “응.”

 

 반드시 미래에 살인을 저지르고, 다른 방법으로는 그 살인을 막을 수 없다면. 그럼 덕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거 아닌가. 그는 제게 주어진 가능성을 셈한다. 설득하기, 체포하기, 심문하기, 그 뒤로는 검찰에 넘겨 적절한 형을 받게 하기. 그중에는 누군가를 죽이기 따위는 없었다. 반드시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쉽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덕개야, 어차피 우린 천국 못 가. 잠뜰이 웅얼거렸다. 경찰은 범죄자랑 한 끗 차이라고 하잖아. 그 말이 우울하게 분위기를 짓눌렀다. 잠뜰이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지나치게 작위적인 침묵이 사무실을 채웠다. 덕개는 도로 업무에 집중했다. 몇 장 남지 않은 서류 위로 까만 글자가 건조하게 나열되었다.

 

 

 

 휴일을 맞이하여 열두 시가 넘어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때늦은 점심을 우동으로 때우고 친구와 온라인 게임을 몇 판 하니 해가 훌쩍 넘어갔다. 출근하는 날에는 퇴근 시간까지 시간이 가지 않아 발을 동동 굴렀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고 만다. 덕개는 이 불합리한 시간 개념에 투덜거리다가 몸을 일으켰다. 비번이니 구태여 ‘밤 순찰’을 나갈 필요는 없었지만 루틴이 되어버린 탓에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필 순찰하지 않은 날에 단서가 남기라도 할까 싶었다. 어차피 하루 종일 집에 있었으니 한 번쯤 산책을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산길은 조금 무서웠으나 이제 슬슬 익숙해지기도 했고, 멀리서 공터만 스윽 둘러보고 나오면 금방일 것이었다.

 

 제대로 확인만 하고 나서 경찰서 근처의 붕어빵 포장마차로 가야겠다. 사실 잠뜰이 붕어빵을 먹자고 했을 때 그도 그 고소한 냄새에 큰 유혹을 느꼈었다. 하지만 안 되죠! 우리 신고당한다고요! 지금은 경찰이 아니니 괜찮았다. 아니, 경찰이 맞긴 한데, 아무튼 지금은 산책 중이다. 평범하게 휴일을 즐기는 중이니 어디서든 붕어빵을 사서 입에 물고 걸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별거 아니지만 제 딴에는 완벽한 계획을 세운 덕개는 제법 신이 난 발걸음으로 산길에 들어섰다. 초입에서부터 딱 5분만 걸으면 나오는 공터. 신고가 많이 들어왔다고 하기에는 피해자도, 사건도 없어 막아두기에도 애매한 장소. 꼭 학창 시절 운동회에서 고깔을 찍고 돌아오는 대결을 하는 것처럼 딱 그곳만 확인하고 돌아올 결심에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덕개는 공터가 보이는 곳에 다다르자마자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저게 뭐지? 혹시 꿈꾸는 건가. 팔을 들어 눈을 비볐다.

 

 수없이 신고가 들어왔던 그 공터에 도저히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기괴한 생명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앞에는 그보다 훨씬 작은 인영이 우뚝 서 있었다. 지독하게 내려앉은 어둠 탓에 어느 쪽이든 제대로 알아보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었지만, 그 순간 덕개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외계인이라는 세 글자였다. 전부 선배 탓이다. 하도 외계인을 입에 달고 살아서. 드넓은 우주 어느 행성에 외계인이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외계인이 지구에 있을 거라는 상상은 손톱만큼도 해본 적이 없었다. 잠뜰이 그에게 그러한 가능성을 먼저 끄집어내기 전까지는. 생명체가 끼익 거리는 울음소리를 내며 앞에 선 인영에게로 달려든다. 하필 휴무라 가벼운 차림으로 외출한 덕개에게는 근무 중이라면 반드시 소지하고 있었을 총이 없었다. 그렇다고 공격할 수 있는 다른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겁에 질린 채로 혹시나 죽을지도 모르는 이에게 당장 피하라고 소리를 지르려던 찰나 공기의 파동이 달라졌다. 어둠 속에서 미약한 빛이 피어올랐다. 일반인이라면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덕개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총이었다. 그것도 소음기가 장착된. 어디에서 사격을 배우기라도 한 것처럼 깔끔하고 정확한 자세로 울부짖는 생명체에게 총알을 연이어 발포하더니 한 발짝 물러선다. 그리고 그 자리로 생명체가 풀썩 쓰러졌다. 위로 푸른 액체가 솟구쳤다. 피다. 인간의 것이 아니다.

 

 고요해진 공터 위로 달빛이 스며들었다.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바람에 휘날리는 적당히 긴 머리카락과 사격 교본에라도 나올 것 같던 자세, 달빛에 비친 옆얼굴, 그리고 허공에 대고 경건히 성호를 긋는 모습……. 덕개는 새어 나오려는 비명을 두 손으로 막았다. 떨리는 다리에 가까스로 힘을 주어 버텼다. 왜? 어째서? 어떻게 잠뜰은 이곳에 나타나는 생명체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고, 그 생명체를 단숨에 죽여버리는 거지? 이전에 잠뜰이 던졌던 질문이 문득 생각난 것은 우연이었을까. ‘너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여야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거야?’ 하지만 언제나와 같이 덕개가 알아낼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잠뜰이 그에게 허락하는 이해의 범위는 항상 한정적이었고, 그 이상을 해석해 내기 위해서는 그의 선배가 그어놓은 선 너머로 침범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공터를 깔끔하게 정리한 잠뜰은 푸른 피를 뒤집어쓰고서 천천히 발을 옮겼다. 반사적으로 나무 뒤로 몸을 숨긴 덕개는 터벅터벅 산길을 따라 내려가는 잠뜰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는 뒤에 덕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지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산에서 내려갔다. 덕개로서는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인기척이 모두 사라진 이후에야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도 한참을 서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가 돌아와 모든 걸 봤냐고 물을 것 같았다. 덕개는 마구 뛰어대던 심장이 제 속도를 찾아내고 나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화롭기 그지없는 산을 뒤로하고 달리다가 산의 초입 앞에서 멈췄다. 길 위에 떨어져 있는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항상 잠뜰이 들고 다니던 그것이다. 덕개는 앞서간 선배를 부를 용기는 없어 그걸 주머니 깊숙이 넣어 숨겼다. 돌려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가 그 모든 것을 봤다는 사실을 알려야 할 수도 있으니.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침대에 눕자마자 과도한 정보를 받아들인 뇌가 전원을 차단하기라도 한 듯이 정신이 푹 꺼졌다. 꿈에는 공터에서 본 ‘외계인’이 등장했다. 거대한 몸을 이끌고 덕개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차마 덕개에게 닿기도 전에 뒤에서 총알이 발포된다. ‘외계인’이 쓰러지고 그 너머에 선 인영이 그에게로 다가온다. 잠뜰이다. 그가 덕개를 붙들고 무어라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꿈은 끝났다.

 

 덕개는 출근하자마자 잠뜰의 눈치를 살폈다. 묘하게 우울해 보이는 낯, 평소와 달리 침체된 분위기. 그제야 가끔 널뛰던 그의 감정의 근원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대체로 그 감정의 기복은 신고와 맞물렸다. 뒷산에 귀신이 나타났어요. 혹은 괴물이 나타났어요. 그런 신고를 받았던 무렵. 이제는 알고 있는 것이 생겨서 더 묻지 못하게 되었다. 그 생명체, 그러니까 당신은 외계인이라고 여기는 그 존재를 죽이는 건 어떤 느낌이었나요. 그게 당신의 모든 순간을 휘어잡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나요. 그렇다면, 왜 그 살해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덕개에게 주어진 건 반쪽짜리 답안이었다. 그 외계인이 미래에 사람을 죽일 거라서. 그리고 그 사실을 잠뜰은 알고 있어서. 정확한 내막은 어디에도 공개된 적 없었다. 잠뜰이 어떠한 방식으로 외계인이 살인을 저지를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지. 그리고 외계인은 왜 사람을 죽이는지. 선배님. 꿈에서는 저에게 뭐라고 하셨던 거예요?

 

  “덕개야.”

 

 다들 점심을 먹으러 나가고 조용해진 사무실에서 잠뜰이 그를 불렀다. 혹여나 모든 걸 덕개가 봤다는 걸 알아차리기라도 한 걸까. 괜히 찔려 움찔거렸으나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마치 두 사람만이 이곳에 남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주저하지 않고 물었다.

 

  “너 내가 외계인을 진짜 죽였으면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도, 너무 비현실적인 가정이라 덕개는 쉬이 답변을 내어놓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때 덕개가 본 것이 정말로 잠뜰이 외계인을 죽이는 장면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를 언어로 명명하는 건 도무지 단번에 이해의 영역에 들여오기 어려운 것이라서. 잠뜰은 자신이 질문을 던져놓고 시선을 비스듬히 아래로 피했다. 갈 곳 잃은 눈동자가 아무것도 없는 책상 위를 괜히 훑어내렸다. 덕개는 평소와 다른 잠뜰의 모습을 보며 주머니 속의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뒷산에서 주운 잠뜰의 수첩은 주인에게 돌아가지 못한 채 여전히 주머니 속에 있었다. 꼭꼭 숨기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도 같았다. 그러한 행위를 할 수밖에 없게 된 자신을 위로해 주길 바라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난생처음 맞닥뜨리는 상상 그 이상의 현실에 위로의 말을 건네기란 쉽지 않았다. 덕개가 왼손을 뻗어 책상 한쪽에 세워진 형사법전을 슬쩍 꺼냈다. 잠뜰의 시선이 그리로 꽂혔다.

 

  “괜, 괜찮을 거예요.”

  “누군가를 죽였는데도?”

  “그치만, 형법에는 외계인을 죽였다고 처벌하는 조문은 없으니까요.”

 

 정말 멋없는 대답이다. 근본적으로 위로가 될 수 없는 말이었다. 애당초 잠뜰은 처벌을 받는다든가, 법에 저촉된다든가 하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래, 이건 고도의 윤리 딜레마에 가까웠다. 사람을 지키기 위해 경찰이 되었는데 도리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누군가를 해쳐야 하는 그런 비극 같은 것을. 그의 선배는 잠시 그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듯 눈을 깜박였다. 덕개는 콱 혀를 깨물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곧이어 들리는 호탕한 웃음소리에 고개를 퍼뜩 들었다. 잠뜰은 손가락을 들어 눈물까지 닦아가며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주변을 지나가던 다른 팀 소속 형사들까지 뭐가 그렇게 재밌냐며 물어볼 정도였다. 덕개는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서툴게 내뱉은 말에서 웃긴 점은 한 군데도 없었다. 아하하, 박덕개 너 진짜 웃기는 애구나? 웃음 사이사이로 건네는 말에서 덕개가 알 수 있는 건 어설프게나마 잠뜰을 위로하고 싶었던 덕개의 마음을 잠뜰이 제대로 이해했다는 것뿐이었다.

 

  “그렇지. 만약 나 잡혀가면 그렇게 변호해 줘야 한다?”

 

 그 말에서야 덕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뜰이 아무리 외계인을 많이 죽여 해치운다고 한들 그가 ‘외계인 살해죄’ 따위로 법정에 끌려갈 일은 없었고, 그러므로 덕개 또한 나서서 그를 변호할 수 없다. 따라서 덕개가 그의 선배이자 파트너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런 위로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건 경장 박덕개로서는 조금 서운한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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