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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맥박은 쉼 없이 뛴다

 

행성의 동맥을 잘 짚는 것

함께한 순간의 지름을 믿지 않는 것

 

커다란 믿음 속에 진한 유성으로 흔적을 남기기

 

-차정은, 『여름 피치 스파클링』, <수성 행성> 中

 

 

 

 

* * *

 

 

 

 

 

 

 

 박덕개는 여름이 싫었다. 겨울에 태어난 것도 있었지만, 여름 특유의 축축하고 눅눅한 공기가 너무나도 싫었다. 더우면 더울 것이지 굳이 눅눅할 것까지는 없지 않냐며 여름만 되면 항상 투덜거렸더랬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여름만 되면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기 일쑤인지라 몇 번을 씻어도 찝찝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도 유독 뽀송한 사람이 있었으니······.

 

  “잠뜰아, 너 안 더워?”

  “응? 딱히 안 더운데?”

 

 바로 수상한 전학생 박잠뜰 되시겠다.

 

 박잠뜰. 몇 주 전, 뜬금없이 나타난 이 전학생은 정말 특이했다. 아는 게 많은 건지 적은 건지 공부는 정말 똑소리 날 정도로 잘했으나, 이상한 곳에서 덜렁거렸다. 체육 시간에 멀뚱멀뚱 서 있다든가, 급식실에서 식판을 빤히 보고만 있다든가.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것처럼 행동하긴 하지만 공부도 잘하고 상냥한 친구라 박잠뜰은 순식간에 친구들과 친해졌다. 박덕개 또한 그런 박잠뜰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덕개는 박잠뜰을 관찰할수록 기묘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눈치채고 말았다.

 

 

 

  학교의 뒤뜰에는 청둥오리가 사는 연못이 있더랬다. 아주 난폭한 오리라 먹이를 주는 경비아저씨도 장갑을 여러 겹 끼고 주곤 했다. 그런데 하교하던 박잠뜰이 오리에게 손을 내미니 그 미친 청둥오리가 애교를 부리며 손 위에 올라가는 게 아닌가! 몰래 보고 있던 박덕개는 눈을 비볐다. 쟤 미친 오리 아니야? 왜 저래? 혹시 몰라 박잠뜰이 집으로 간 후, 박덕개 자신도 오리에게 손을 내밀어 보았다. 드디어 철이 들었나. 어디 아픈 건 아닌가. 결과는······.

 

  “꽥, 꽤액—!”

  “아, 아파! 아파!”

 

······실패였다. 청둥오리는 미친 주둥이라는 별명답게 박덕개의 손을 열정적으로 깨물었다. 씹고, 뜯고, 맛보았다. 물론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매우 나빴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걱정이 무색하게 저 미친 주둥이는 아주 건강했다. 그리고 이 일은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 중 새 발의 피였다.

 

 그다음 날은 바로 체력 검사가 있는 날이었다. 각 종목 별로 측정해 부족한 기초 체력을 단련하자, 라는 목적이었으나······.

 

  “너 오늘 몇 개 뛸 거야?”

  “당연히 25개지. 누구 죽일 일 있나.”

 

 몸을 움직이는 것이 싫은 한창때의 고등학생들은 그저 턱걸이 개수만 채우자, 라는 마음만 가득할 뿐이었다. 박덕개 또한 대충 1등급 개수만 채우고 가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먼저 여학생들을 차례대로 줄을 세워 신호를 주는 것과 동시에 왕복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삑- 하는 신호가 울릴 때마다 잘 달리던 학생들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 20개쯤부터 하나둘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대부분의 학생이 30개에서 우르르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아직도 멀쩡히 뛰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박잠뜰이었다. 박잠뜰은 아직도 숨이 하나도 차 보이지 않는 뽀송한 상태로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숫자를 세던 박덕개는 눈을 의심했다. 옆 반에서 운동을 제일 잘한다던 황수현도 60개 정도에는 숨이 차서 헐떡인다던데, 박잠뜰은 60개가 훌쩍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편하게 달리고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걷고 있었다. 걷는데도 발이 어찌나 빠른지 신호가 울리기 전에 도착하며 박덕개를 향해 브이를 날리는 여유까지 부렸다. 말도 안 돼. 쟤 발에 무슨 바퀴라도 달린 거 아니야? 어느새 100개를 돌파하고, 보다 못한 선생님이 박잠뜰을 멈춰 세웠다. 박잠뜰은 땀이 하나도 나지 않은 뽀송한 상태로 박덕개에게 달려왔다.

 

  “충분히 더 뛸 수 있었는데. 아쉽다.”

  “너, 너 발에 바퀴 달린 거 아니야?”

  “무슨 소리야, 덕개야. 내 발을 봐. 멀쩡하잖아.”

 

 박잠뜰은 대체 무슨 망상을 하는 거냐며 일침을 가하고는 달리기 기록을 출석부에 적던 반장에게 가 어깨를 으쓱댔다. 뭐······. 전에 육상 선수를 준비했을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며 자신도 왕복달리기를 준비했다. 그래도 어딘가 찜찜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박잠뜰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확신으로 만들어준 일이 벌어진다.

 

 때는 과학 시간. 화학 실험 수업 중에 박덕개는 같은 조인 박잠뜰을 지켜보고 있었다. 실험 방법을 다 보고 본격적으로 실습을 하던 찰나, 박잠뜰이 화학 약품을 그만 쏟고 말았다.

 

  “야, 박잠뜰! 너 괜찮아?”

 

 그리고 그 순간, 시간이 느려지는 듯한 느낌과 동시에 쏟은 화학 약품의 흔적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박덕개는 급하게 타올로 실험실 책상을 문질렀다. 하지만 아무것도 묻어 나오지 않았다. 당황한 얼굴로 박잠뜰을 보자, 박잠뜰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바, 방금 화학 약품이 쏟아졌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멀쩡히 잘 있잖아.”

 

 아닌데, 분명히 내가 다 봤는데. 박덕개는 허망하게 타올과 박잠뜰을 번갈아 보았다. 가만히 있는 그들을 본 선생님의 개입으로 어찌저찌 실험을 마쳤으나, 박덕개는 굉장히 기묘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가만히 생각하던 박덕개는 한숨을 흘렸다. 이렇게 찝찝한 마음만 가지고 있다가는 궁금해서 죽을 것 같으니 죽더라도 물어보고 죽어야지. 박덕개는 방과후, 뒤뜰로 박잠뜰을 불러내기로 했다.

 

 

 

 방과후, 박잠뜰은 뒤뜰로 향했다. 여전히 미친 청둥오리는 박잠뜰을 보자마자 꽥꽥 소리를 내며 아양을 떨었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박덕개는 어이없다는 듯 청둥오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야, 내가 있을 때는 아는 척도 안 하더니! 괘씸하다, 진짜! 꽥. 청둥오리는 고개를 홱 돌렸다. 저, 저어 미친 오리가! 박잠뜰은 씩씩거리는 박덕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날 왜 부른 걸까, 쟤는.

 

  “그래서 나는 왜 불렀는데?”

 

 박덕개는 그제서야 박잠뜰을 보고 속삭였다.

 

  “너······. 사람 아니지.”

 

 뜨끔. 박잠뜰의 시선이 허공을 배회하다 다시 박덕개에게 향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했대? 박덕개는 손가락을 접어가며 이유를 대기 시작했다. 첫째, 더위를 안 타도 너무 안 타. 보통 36도가 넘는 한여름에는 움직이지 않아도 땀이 줄줄 흐르기 마련인데, 너는 그런 게 하나도 없어. 특히 팝스 잴 때도 전혀 힘든 기색도 없었어. 박잠뜰이 움찔거렸다. 둘째, 저 미친 오리가 널 안 물어. 박잠뜰은 황당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리가 안 물 수도 있지!”

  “저 미친 오리가 안 문다고? 쟤 별명이 뭔지 알아? 미친 주둥이야.”

 

 꽥. 청둥오리는 박잠뜰을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이렇게 귀여운데 별명이 왜 그래? 박덕개는 한숨을 내쉬며 청둥오리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네가 전학 와서 뭘 모르나 본데······ 쟤 주인인 경비아저씨도 무는 애야. 그런 미친 애가 너한테는 애교 부리는 거 내가 다 봤다니까? 움찔. 박덕개는 또다시 말을 이었다.

 

  “마지막 셋째, 과학 시간에 너 화학 약품 쏟은 거 맞지?”

 

 내가 이 두 눈으로 네가 화학 약품 쏟은 걸 똑똑히 봤는데, 갑자기 세상이 느려지더니 그 쏟은 화학 약품이 사라졌다니까? 움찔. 박잠뜰은 한숨을 흘리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아······. 이걸 들키네.

 

 

 

 

 

  박잠뜰. 진명은 —. 성체가 되기 위한 일종의 시험을 치르기 위해 저 멀리 외계행성에서 날아온 외계인. 외계인은 종종 인간들과 동업해 일을 할 때도 있기 때문에 성체가 되기 전에 인간과 섞여 사는 법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외계인은 인간들에게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된다. 그러나 아직 성체가 되지 않은 외계인은 아직 능력을 숨기는 것을 잘 못하기 때문에 인간들에게 들키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성체가 되기 위해 어린 외계인들은 지구에 내려와 인간들 속에 섞여 지내며 능력을 숨기는 법을 배운다. 여기서 성체 외계인이 되는 조건은 간단하다. 지구에 내려가 1년 동안 인간들과 지내며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두 명 이상의 인간들에게 들키지 않기. 그렇게 박잠뜰은 성체가 되기 위해 지구에 내려와 고등학생들 속에 숨어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벌써 박덕개 한 명에게 들키고 말았다. 박잠뜰은 곤란했다. 굉장히 곤란했다.

 

 박잠뜰은 할 말이 굉장히 많았다.

 

 먼저 첫 번째, 외계인은 더위와 추위를 타지 않는다. 애초에 종족 자체가 다른데 온도를 느낀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이걸 알아차릴 줄이야. 이것은 여름에 내려온 자신이 계절 운이 없었던 탓이라고 박잠뜰은 생각했다.

 

 두 번째, 외계인은 동물과 친하다. 아니, 외계인 특유의 기운이 동물을 끌어당긴다고나 할까. 인간도 동물에 속하기에 전학 온 첫날부터 인간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미친 주둥이라 불리는 청둥오리도 박잠뜰의 기운에 홀려 애교를 부렸던 것이다. 애초에 학교 연못에 무는 오리가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냐며 박잠뜰은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세 번째, 외계인은 잠깐이지만 시간을 멈출 수 있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세계가 멈추면 같이 멈추기 때문에 시간을 멈췄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텐데. 박덕개가 알아차린 것은 제 실수인지, 아니면 박덕개 그가 특이한 건지 알 수가 없어 억울했다. 물론 자신의 잘못임은 인정할 수 있었다. 실수로 소매에 걸린 화학 약품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움직여 약품을 쏟았으니. 너무나도 당황한 탓에 세계의 시간을 잠깐 멈추고 쏟은 약품을 다시 쓸어 담았다. 그리고 재빨리 시간을 풀고 아무렇지 않은 척 실험을 계속했다. 박잠뜰은 굉장히 억울했다. 이 일만큼은 자신의 실수가 맞지만, 세계의 이상을 알아차린 박덕개가 이상한 게 아니냐며 외계협회에 항의하고 싶었다.

 

 

 

 

 

  “······그, 그러니까 박잠뜰······님이 외계인이라고······요.”

  “어색하게 왜 그래, 덕개야.”

 

 하아, 어쩔 수 없네. 박잠뜰은 박덕개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왜, 왜 그러세요! 박덕개가 뒷걸음질을 쳤다. 박잠뜰은 성큼성큼 다가가 박덕개의 어깨를 턱, 잡았다. 그리고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있지, 덕개야. 이 일은 내가 돌아갈 때까지 비밀로 해주어야 할 거야.”

  “네, 네? 뭐가요?”

 

 잔뜩 떨고 있는 박덕개를 본 박잠뜰은 피식 웃었다. 아, 좋은 생각이 났다. 진작 이렇게 할 걸.

 

  “덕개야, 외계인 돕기 해보지 않을래?”

 

 아, 물론 이건 강제이긴 하지만 선택은 할 수 있게 해줄게. 박잠뜰은 씩 웃었다. 좋은 건수를 물었다는 듯이. 박잠뜰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성체가 되기 위해 1년 동안 인간들 속에 섞여 있어야 해. 그런데 네가 내 정체에 대해 알아버렸으니, 시험을 완벽히 끝내고 돌아가기에 굉장히 곤란해졌어.”

 

 꿀꺽. 박덕개가 침을 삼켰다. 그, 그래서요? 그래서 네가 날 도와주어야겠어. 네? 박덕개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별건 아니야. 그냥 네가 뒤처리만 해주면 되니까.”

  “뒤, 뒤처리요?”

 

 뒤처리라니, 사람이라도 죽이겠다는 건가. 박덕개의 동공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박잠뜰은 푸핫 웃었다.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아는데, 그런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그냥 내가 저번 과학 시간처럼 능력을 썼을 때 인간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변명해달라는 이야기였어. 박덕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박잠뜰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계약 성립이었다.

 

 

 

 

 

 박덕개와 박잠뜰이 강제적인 동맹을 맺은 지 어느덧 두 달. 그 두 달이라는 짧은 사이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더랬다.

 

 동맹 후 첫날, 뭐 하나 잘못되면 박덕개가 알아서 해주겠지, 라는 마음에 편해졌는지 박잠뜰은 외계인임을 숨기지 않았다. 미술 시간, 서로의 얼굴 그려주기 활동을 하던 중에 박잠뜰은 귀찮다는 이유로 능력을 사용해 연필을 띄웠다. 그리고 허공에 띄워진 연필은 쓱쓱 움직이며 새하얀 도화지 위에 박덕개를 그리기 시작했다. 책상에 엎드린 박잠뜰을 발견한 박덕개는 불길한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허공에 떡하니 띄워져 저절로 움직이는 연필을 보고 사색이 되었다. 이, 이 미친 외계인 같으니! 박덕개는 급하게 일어나 연필을 잡아 내렸다.

 

  “덕개야? 무슨 일 있니?”

  “아, 아니요, 선생님! 파리가 들어와서요. 하하.”

 

 아, 파리가 자꾸 방해하네. 하하. 박덕개의 변명이 먹혔는지 선생님은 다시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잠뜰은 박덕개의 도움 아닌 도움으로 완벽한 결과물을 제출할 수 있었다. 박덕개는 황당했다. 이 외계인이 숨기려는 의지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동맹 후 2주. 한 달 뒤에 있을 체육대회를 위해 단체줄넘기를 연습하던 중이었다. 자꾸 발에 걸리는 줄이 걸리적거렸던 박잠뜰은 한가지 꾀를 냈다. 가운데에서 계속 둥둥 떠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박잠뜰은 박덕개를 바라보았다. 의미심장한 시선에 박덕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뭐가 되었든 하지 마세요. 제발, 뭐든 하지 마. 하지만 박잠뜰은 박덕개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탁. 탁. 탁. 줄이 넘어갈 때마다 학생들이 점점 들어와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박잠뜰은 점프하는 것처럼 발을 들고 허공을 밟았다. 바닥을 6cm 정도 띄우고 허공에서 놀고 있는 박잠뜰을 본 박덕개의 눈이 커지며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야, 이 미친 외계인아! 아무리 그래도 공중에 뜨는 건 아니지!

 

  “으랴아아아아—!”

  “야, 박덕개! 제대로 안 하냐!”

  “죄송합니다!”

 

 박덕개는 줄넘기를 향해 세차게 달려들며 발을 슬쩍 걸었다. 타닥. 줄이 발에 걸리며 멈춘다. 모두의 야유가 박덕개를 향해 쏟아졌다. 박덕개는 하하 웃으며 박잠뜰을 데리고 구석으로 향했다.

 

  “미쳤어? ······요? 내가 외계인이다, 인간들아! 하고 싶으면 말로 하라고! ······요!”

 

 박잠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화내? 줄에도 안 걸렸고, 인간들 눈에만 안 걸렸으니 된 거 아닌가? 완벽한 계획 아니었어? 겠냐고요, 이 외계인아. 박덕개는 미칠 것 같았다. 그냥 죽더라도 도와달라는 약속 거절할걸. 박잠뜰과 지내면 지낼수록 점점 수명이 깎이는 기분에 박덕개는 마음 놓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렇게 또다시 한 달이 지나고, 드디어 현재. 체육대회 날이 밝았다. 오늘도 박덕개는 다크써클이 잔뜩 내려온 채로 박잠뜰의 뒤를 따랐다.

 

  “오늘은 사람들이 더 몰리니까 내가 막아줄 수가 없어. ······요. 그러니 제발 아무 짓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요. 알겠어? ······요?”

  “알겠으니까 그냥 편하게 해라, 제발······.”

 

 박잠뜰에게 단단히 약속을 받아낸 박덕개는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아침부터 불길했단 말이에요. 박덕개는 아침의 일을 회상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는데 샴푸가 아니라 로션으로 머리를 감았다던가, 드라이기에서 갑자기 나사가 빠진다던가, 계란프라이를 하려고 깬 계란이 다 섞여 있었다던가.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에 박덕개는 굉장히 불안했다. 제발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이 찝찝한 기분이 기우이길.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덕개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체육대회의 첫 종목은 단체줄넘기였다. 전에 연습했던 대로 무난하게 지나갔다. 박잠뜰 또한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정석적으로 줄을 넘었다. 박덕개는 자랑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두 번째 종목, 세 번째 종목까지 지나고 드디어 체육대회의 꽃, 계주가 시작되었다. 저번 왕복 달리기 때도 그랬지만 그 이후에 쟀던 개인 달리기 기록에서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한 박잠뜰이 모두의 동의 하에 마지막 주자로 나가게 되었다. 물론 박덕개는 세 번째 주자였다.

 

 계주가 시작되고, 박잠뜰은 여유롭게 발을 풀었다. 첫 번째 주자에 이어 두 번째 주자까지 달리고, 세 번째 주자인 박덕개의 차레가 되었다. 바통을 넘겨받고 열심히 달리던 박덕개는 뒤에서 달리던 주자가 앞질러가는 순간, 함께 부딪히고 말았다. 어, 어어? 하는 사이에 오른쪽 발목이 삐끗하며 박덕개가 넘어졌다. 우당탕! 바통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박덕개는 이를 악물고 기어가 굴러가는 바통을 잡았다. 모두가 자신을 앞질러 간 상황에서 이기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시원한 바람이 운동장을 감쌌다.

 

  “박덕개, 괜찮아?”

 

 박잠뜰이었다. 박잠뜰은 바람을 불러 박덕개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박덕개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을 움직여 달리도록 만들었다.

 

  “어, 어어? 어?”

 

 박덕개가 바람을 타고 박잠뜰에게 도착하자, 박잠뜰은 씩 웃으면서 바통을 건네받았다. 아니,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박잠뜰은 웃었다. 괜찮아. 이기고 싶잖아? 이 정도면 징계감이긴 하겠지만 뭐어······. 협회에서도 인정해 주겠지. 박잠뜰은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람이 뜨거운 운동장의 열기를 낮추었다. 다른 팀의 주자를 하나둘씩 제치고 박잠뜰은 선두에 섰다. 모두에게 자신의 능력이 보여졌기에 성체 시험은 탈락했지만, 지금 박잠뜰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1등이야, 덕개야!”

 

 꼴등에서 1등으로. 있을 수 없는 기적을 눈 뜨고 본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야, 봤어? 전학생 방금 하늘 날았는데? 아니야, 발이 안 보일 정도로 달리던데? 엥, 아니야! 발이 공중에 떠 있었어!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박덕개에게 들렸다. 우승은 했으나 박덕개는 웃을 수 없었다. 박잠뜰이 자신과 동맹을 맺은 이유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며 성체 시험에 합격하기 위함이었는데, 자신으로 인해 이 모든 것이 어그러졌으니. 박덕개는 박잠뜰을 데리고 뒤뜰로 향했다.

 

  “미쳤어요? 거기서 그냥 가만히 있지 능력을 왜 써요!”

 

 박잠뜰은 갸웃거렸다. 응? 그야 네가 다쳤잖아? 외계인은 인간이 다친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안 돼. 그런 법이 어딨어요? 그것 때문에 지금 당신이 시험에 통과 못하게 생겼는데! 박잠뜰은 청둥오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그동안 나도 재밌었으니.”

 

 그리고 시험은 이미 망한 것 같았거든.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읏차. 박잠뜰은 일어나 박덕개에게 손을 내밀었다. 맞잡은 손의 온기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박덕개의 물음에 박잠뜰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뜨거웠던 온기는 점차 사라져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박잠뜰은 손을 떼고 박덕개를 향해 웃어보였다.

 

  “안녕, 잘 있어.”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박잠뜰을 보니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잡을 수는 없었다. 박덕개는 박잠뜰이 뒤뜰을 나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다친 발목이 더 이상 욱신거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쯤, 박잠뜰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여느 때처럼 등교한 박덕개는 이 세계에서 박잠뜰이라는 존재가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같이 계주를 뛰었던 친구들에게도, 반 친구들에게도, 심지어는 선생님께도 물어보았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박잠뜰이 대체 누구냐.’고. 박덕개는 그 길로 뒤뜰을 향해 달렸다. 뒤뜰에는 여전히 미친 주둥이 청둥오리가 꽥꽥대며 반겨주었다.

 

  “······다시 볼 수 있으려나.”

 

 꽥. 청둥오리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해, 이 성격 나쁜 오리야. 꽤액. 오리는 유유히 수면 위를 헤엄쳤다. 외계인이라는 비일상의 존재가 사라진 조용한 세계.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지겠지만, 이 추억만큼은 유성으로 그은 것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언젠간 다시 만나, 다정하고 이상한 외계인 씨.

 

 그때는 부디 완전한 모습이길.

 

 박덕개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늦여름 햇살이 뜨거웠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처럼 뜨거웠다. 여름의 한창때가 지나가고 있었다.

 

 

외계인도 인사를 하나요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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